두 국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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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언론과 정치가들은 아랍 이스라엘 분쟁에 대한 유일하며 평등한 해결책은 두 개 국가 해결책이라고 최근에 발표하고 있다. 이것이 새로운 생각인가?
A: 나는 아라비아 정복의 문제부터 이야기하겠는데 그들은 이것은 알 파투흐(al fatuhh)라고 자랑스럽게 부른다. 아랍인들과 그 밖의 무슬림들은 세계 뉴스언론을 서방세계 제국주의에 대한 중상들, 경고들, 그들이 주장하는 참상들로 넘쳐나게 하고 있지만, 이라크에서 우즈베키스탄까지, 현재 시리아에서 아르메니아와 발칸반도까지, 이스라엘에서 모리타니아까지, 수단에서 프랑스와 이탈리아까지 무함마드 무슬림 도적떼들의 제국주의에 대하여 한 번도 말하지 않는다.
아랍세계와 북아프리카에서 서방세계 제국주의는 100년이 안 되는 기간 동안 지속되었지만, 아랍인들의 제국주의는 과거 1,400년 동안 약해지지 않고 지속되었고 현재도 지속되고 있다.
서방세계 제국주의는 아랍인들과 그 밖에 아프리카와 아시아에서 (단지 몇 가지 공헌만 거명하더라도)민주주의, 의학, 전력, 상하수도, 교육, 고고학, 도로, 철도, 공항의 토대를 가져다주었지만, 아랍인들과 무함마드 이슬람은 정복된 수억명의 사람들에게 지난 700년 동안 비참함, 무지, 폭정, 테러, 정복, 문맹만을 가져다주었다.
서방세계 제국주의자들은 그들의 실제의 그리고 전해지는 잘 못된 행위들을 보상해오고 있지만, 아랍인들은 역겨울 정도의 위선과 거짓말로 수백만을 학살한 것과 아시아, 아프리카, 유럽에서 무함마드 이슬람의 정복을-모든 모스크 설교에서, 그들의 책, 그들의 TV, 모든 그들의 언론에서-실제로 계속하여 찬양하고 있다.
서방세계 제국주의자들은 이전에 그들의 식민지 국민들에게 사과를 하였지만, 아랍인들은 누구한테 절대로 사과하지 않았다.
북아프리카에 거주하였던 사람들은 아랍인들이 아니라 함의 후손인 아프리카인들이었다. 그들은 셈족 아랍인들에게 정복되어 7세기와 8세기에 아랍화 되었다. 그들 대부분은 근본주의 무함마드 이슬람의 테러와 압제로 그들의 정체성, 그들의 문화, 그들의 전통, 그들의 종교를 빼앗겼다.
7세기에 무슬림 아랍인들 도적떼에 의하여 그들이 정복될 때까지 현재 이라크, 시리아, 요르단 또는 이스라엘에 아랍인들이 없었다.
무함마드의 이슬람은 세속적인 구성요소가 없는 신정정치 체계이며 근본주의 무함마드 이슬람 신자들은 무함마드 꾸란의 모든 말씀이 하나님이라고 전해지는 알라에 의하여 계시되었다고 철저하게 믿는 다는 것을 우리는 알았다.
이스라엘 민족과 그들의 약속된 땅에 관한 문제를 이야기하는 다음의 꾸란 구절들을 자세히 읽어보기 바란다.
꾸란 17:104 "그런 후 알라는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그 (약속된)땅에서 안전하게 살라‘고 하였으며.....“
꾸란 7:137 “이렇게 하여 알라는 겸손했던 백성에게 축복을 보내고 축복의 땅 동편과 서편을 차지하게 하였노라 이는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주님의 공평한 약속이 충족된 것이라 이것은 그들의 인내에 대한 보상이라 또한 알라는 파라오와 그의 백성이 세운 것들을 파괴하였노라”
꾸란 3:194 “주여 당신의 선지자들을 통하여 약속하신 것을 저희에게 주옵소서 심판의 날에 저희를 방황치 않도록 하여주소서 당신은 약속을 절대로 깨지 않는 분이옵니다”
꾸란 30:6 “그것은 알라의 약속이라 알라께서는 그분의 약속을 절대로 어기시지 아니하시나....”
이 구절들은 무함마드의 추종자들이 알라의 말씀이라고 주장하는 바로 그 꾸란에 있다. 그렇다면 -신학적으로 또는 역사적으로- 무슨 근거로 그들은 이스라엘 땅 전체가 자신들의 것이라고 주장하는가?
이것이 모든 것을 아는 알라가 자신의 약속을 어겼음을 의미하는가? 무엇보다도, 꾸란 어디에서도 위의 구절들을 뒤집거나 취소하는 구절이 없으며, 그럼으로 이슬람 신학적 토대의 근거만으로도 이스라엘의 땅은 유대인들에게 속한다.
굉장히 많은 사람들이-기념비적인 것들일지라도-실수들을 할 때, 그 결과로 나온 널리 퍼진 관점에 도전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예를 들면, 지구가 평평하다는 것이 한 때는 전통적인 지식이었다. 옛날에는 지구가 둥글다고 감히 주장하는 사람이 있었다면, 그는 화형대에서 불태워 처형되었다.
오늘날에는, 아랍-이스라엘 분쟁이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땅 불법점령” 또는 “팔레스타인의 민족적 야망 부인”이 아닌 다른 용어로 설명하려는 시도는 많은 경우에 지구가 평평하다고 선언하는 것으로 간주된다.
그러나 이 관점이 잘못되었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아랍-이스라엘 분쟁을 이해하는데 있어서 우리가 콜럼부스 이전 시대에 살고 있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중동에서 모든 악의 뿌리로 간주되는 유대인 국가가 사실상 피해자였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142장 “팔레스타인과 팔레스타인 사람들”에서 팔레스타인이라고 호칭되는 실체 또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이라고 호칭되는 사람들이 실제로 존재한 적이 있었는지 여부를 확실히 하기 위하여 관련된 질문 몇 개를 하였다. 무함마드의 꾸란, 하디스들 또는 아랍역사 전체에서 팔레스타인 땅 또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언급된 곳은 어디에도 없다.
그들이 실제로 존재하였다는 어떤 증거로 나의 질문에 답변한 사람은 이제까지 아무도 없었다.
무함마드와 그의 추종자들의 무지로, 가나안 사람들을 팔레스타인 사람들이라고 단정함으로 소위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역사적 장소와 인물들을 섞어버렸다.
시온주의가 식민지주의가 아니며 고대민족들이 그들의 역사적 그리고 언약의 땅에 대하여 깊이 관련된 증거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 실제의 식민지주의는 과거나 현재나 아랍 제국주의의 결과이며 이것이 아랍에 의하여 정복된 지역 500분지 1위에 위치한 유대인 국가를 거부하고 있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거의 4,000년 전에, 유대민족의 조상들인 아브라함, 이삭, 야곱은 이스라엘 땅에 살았으며 하나님은 이 땅을 그들에게 그리고 그들의 자손들에게 영원히 약속하였다. 그 약속은 시나이 산에서 확인되었고 3,300년 이상 전, 모세의 죽음 이후에 여호수아를 통하여 하나님에 의하여 성취되어서 이스라엘 민족은 이집트 노예제도에서 해방된 후에 그 땅에 들어갔다. 약 3,000년 전에 다윗 왕은 예루살렘을 약속된 땅의 수도로 정하였다.
성경전체 어디에서도 팔레스타인 또는 팔레스타인 사람들 땅에 관한 언급이 전혀 없다. 40년 전까지 그들이 아랍어로 언급되지도 않았다.
바빌로니아 사람들이 BC586년에 침공하여 그들 가운데 많은 사람들이 정복당하여 처음으로 이주당할 때까지 850년 동안 유대인들은 이스라엘 땅인 유대에서 살았다.
나중에 70년 후, 페르시아 고레스 대왕이 그들을 해방한 후에 그들은 많은 수가 돌아왔고 두 번째로 135년 로마제국에 의하여 그들 가운데 많은 사람들이 쫓겨날 때까지 700년 동안 유대에서 계속하여 거주하였다.
끊임없는 반-유대주의와 박해에도 불구하고, 일부 유대인 사회는 로마에 의한 디아스포라와 1948년 유대인 국가 재수립을 이끈 사건들 사이의 긴 기간 동안 약속된 땅에 가까스로 남아 있었다.
그 논쟁이 팔레스타인 국가에 관한 것이 아니라 실제로는 유대인들의 멸망과 지구상에 남은 유일한 유대국가에 관한 것이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
1917년에, 나중에 국제연맹에 의하여 확인된 발포어(Balfour) 선언은 영국식민지 팔레스타인이 유대민족의 국가적 고향이라고 선언하여, 4,000년 동안 그 땅에 대한 유대의 관련성과 로마인들에 의한 고대 이스라엘 파괴의 부당함과 유대인들을 강제로 쫓아 낸 것을 인정하였다.
1922년에, 영국인들은 자신들의 규정을 위반하여 유대국가에게 주기로 지정된 땅의 76%를 가져갔고 대신에 아랍인들에게 할당해주어 트랜스요르단(나중에 요르단으로 알려졌다)이라고 부르는 새로운 국가를 요르단 강 동편에 만들었는데 오늘날 이 나라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많이 살고 있다.
1947년에, 국제연합(UN)은 요르단 강 서편 국제사회에 의하여 유대 국가를 위하여 할당되었던 원래 땅의 나머지 24% 위에 두 국가-하나는 아랍, 하나는 유대-를 수립하기로 투표하였다. 그들의 원래 땅이 엄청나게 축소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유대인들은 그 제안을 받아들였지만 아랍인들은 이것마저도 거부하여 그 땅 전체를 계속하여 원하였다. 이것이 아랍이 거절한 긴 역사의 시작이 되었다.
청취자 여러분, 60년 이상 동안, 협상테이블 위에는 두 국가 해결책이 있었다. 이것은 새로운 생각이 아니며, 굉장히 자금 지원을 잘 받은 아랍 선전선동 체계와 범죄적으로 방심하고 있는 서방세계 언론에 의하여 많은 사람들이 속아서 믿게 되었다.
그러면 사실은 무엇인가?
1948년에, 새로이 다시 수립된 이스라엘 국가는 이집트, 레바논, 이라크, 시리아, 요르단의 아랍 군대에서 온 아랍 군대에게 침공당하였고, 그들 모두는 아주 작은 유대 국가를 그 수립 초기에 파괴하여 수십만 명의 홀로코스트 생존자들인 그 시민들을 전멸시키려고 하였다는 것을 아주 분명히 하였다.
그들 생존을 위하여 처절하게 싸웠던 유대인들은 아랍군대를 모두 이길 수 있었고, 아랍군대는 휴전을 요청할 수밖에 없었다. 적대행위의 중지는 영원한 평화를 위하여 더 이상의 협력의 전주곡인 듯하였다. 그러나 아랍의 요구는 협력하고 정상적으로 되기보다는 일방적이며 이스라엘이 자멸할 것을 요구하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다음은 아랍측이 편리하게도 사람들이 아는 것을 싫어하는 몇 가지 간단한 사실들이다:
1. 1948년 아랍이 이스라엘에 대하여 전쟁을 도발하기 전에, 아랍 난민들은 없었다.
2. 식민지 팔레스타인에 관하여 영국이 가지고 있는 기록들에 따르면, 유대인들이 그 땅에 가져온 번영 때문에 주변 국가에서 점점 더 많은 아랍인들이 그 지역에 정착하였다.
3. 아랍 난민들은 아랍-유대 분쟁에 대한 두 국가 해결책을 만드는 UN결의안에 반대하여 반란을 일으킨 주변 아랍 국가들에 의한 그리고 팔레스타인 식민지에 살고 있는 아랍인들에 의한 도발 전쟁의 산물이었다.
4. 그들이 주장하는 700,000명의 ‘팔레스타인 아랍’ 난민들은 아랍의 전쟁도발 결과였지만 약 900,000명에 달하는 아랍과 무슬림 국가에서 온 유대 난민들은 거의 1,400년 전에 아랍군대에 의하여 정복된 국가들에서 그들의 고대 사회들에게 저질러진 나치스타일 율법들인 반-유대주의의 산물이었다.
5. 1947/48년의 동일한 기간 동안, 영국은 그 대륙을 세속주의 인도와 무슬림 파키스탄으로 나누면서 인도를 떠났다. 그로 인한 내전으로 수십만 명이 학살되었고 2,000만 명이 난민이 되었다.
6. 유대교 또는 힌두교 난민들에게 “돌아가는 권리” 또는 보상을 요구하는 UN결의안들은 없었으며 오직 “팔레스타인 사람들”에 대한 것들만 있었다. 이 특별한 난민들을 돕기 위한 UN의 재정지원은 없었고 오직 아랍인들을 위한 것만 있었다.
7. 과거 60년 동안, 우리는 “팔레스타인” 난민들의 참상에 관하여 들었지만 유대 또는 힌두교 난민들에 관하여 듣지 못하였다.
8. 유대교와 힌두교 난민들은 그들을 존중하는 국민들에게 흡수되었지만,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그들이 아랍의 명분을 위하여 싸우고 있다는 핑계로 아랍 지도자들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인질들로 과거나 현재나 이용당하고 있다.
9. “팔레스타인” 난민들은 서방세계 정부들에 의하여 그리고 일부 아랍 국가들에 의하여 수십억 원조 달러로 금전적인 지원을 받았지만, 유대 또는 힌두 난민들에게는 한 푼도 제공되지 않았다.
10. “팔레스타인” 난민들은 어느 방향으로도 몇 마일 밖에 안 떨어져 있으며 동일한 언어를 말하며 동일한 종교와 전통들을 가진 이웃 아랍 국가들로 탈출하였지만 유대 난민들은 많은 경우에 수많은 언어와 방언을 말하며 아주 다른 전통들을 가진 국가들로부터 수백 수천 마일을 이동해야 했다.
11. 유대 난민들은 그들이 추방되고 처음 수십년 동안 그들의 난민켐프에서 아랍 난민들 못지않게 고통을 당하였지만, 그들을 받아준 국가에 동화되고 생산적인 국민들이 되었다.
12. 애석하게도, 우리가 TV에서 보고 신문에서 읽는 바와 같이 “팔레스타인” 난민들은 그들의 형제자매 아랍 국가들에 동화되지도 통합되지도 않았고 그 주인 국가들의 국민들 가운데 상처로 남아있다.
13. 70개의 다른 국가들 출신의 이스라엘 유대인들은 번성하며 활력이 넘치며 모든 것을 포용하는 민주주의를 만들었지만, 우리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서로 간에 그리고 그들의 아랍 주인국가를 상대로 전쟁하는 것을 본다.
14. 유대인들이 “팔레스타인” 아랍인들에 대항하여 인종청소를 하고 있다는 것이 사실이라면, 아주 작은 이스라엘 국가에서 시민들로 150만 명의 아랍인들이 살고 있으나, 22개 국가 3억3000만 명의 아랍인들 가운데 유대인들 5,000명 이상을 우리가 계수할 수 없다는 사실을 누가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는가? 그렇다면 사실상 누가 인종청소에 가담하고 있는가?
15. 다시 한 번, 두 국가 해결책은 과거 60년 동안 협상 테이블에 있었지만 지금도 이스라엘 땅 전부를 그들이 원한다고 주장하는 바로 그 아랍인들에 의하여 언제나 거부되었다는 것을 나는 말해주고 싶다. 위선과 속임수의 수준은 종교를 무색하게 한다.
이스라엘은 그 국가 수립에 반대하는 아랍의 도발 전쟁에서 살아남았지만, 1948년에서 1967년 사이에 서안지구와 가자지구가 아랍 측의 영토였고, 그 당시에 이러한 영토에 대한 유대의 “점령”이 분명히 없었다.
19년 동안, 가자와 서안지구에서 이스라엘 사람들은 없었다.
19년 동안, 가자와 서안지구에서 유대 정착촌은 없었다.
19년 동안, 두 국가 UN계획에서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것으로 지정된 땅에 대한 트랜스요르단과 이집트의 점령에 UN도 어떤 정부도 반대하지 않았다.
19년 동안, 유럽 또는 아랍 정부들 가운데 한 국가도 이러한 뻔뻔스러운 점령에 관하여 항의한 적이 없다.
19년 동안, 서방세계 학계 또는 서방세계 노동조합들 가운데 아무도 이집트 또는 요르단 학자들과 노동단체들을 보이콧하려고 어떤 시도라도 한 적이 없다.
19년 동안, 전 세계와 UN은 이집트와 요르단에 의한 팔레스타인 땅 점령에 관하여 귀를 막은 듯이 잠잠하였고, 아무도 “팔레스타인 사람들”에 관하여 이야기하지 않았다.
현재 아랍-이스라엘 분쟁에 대한 원인이 정말로 1967년 6일 전쟁 후의 서안지구와 가자지구에 대한 이스라엘의 “점령”이라면, 왜 1948년에서 1967년 까지 19년 동안 이스라엘에 대한 도발이 행하여졌고 아랍은 이스라엘을 인정하거나 평화조약을 맺기를 계속하여 거부하는가?
6일 전쟁 직전에, 서안지구와 가자지구가 유대인들의 수중에 들어가기 전인 1967년 5월 15일에, 이집트의 자말 압둘 나세르(Jamal Abdul Nasser)의 요청으로 아랍 지도자들이 그들의 군대를 동원하여서 다시 한 번 이스라엘 국가의 파괴와 그 국민들에 대한 학살을 요구한 이유는 무엇인가? 그 당시에 어떠한 “점령”이 문제가 되었는가?
왜 그 당시의 시리아 지도자는 그의 병사들에게 유대 민간인들을 공격하여 “유대인들의 유골로 아랍의 도로들을 포장하라”고 명령하였는가?
요르단은 서안지구를 이집트는 가자지구를 통치하는 그 19년 동안, 아랍 세계는 그러한 지역에 팔레스타인 국가를 수립할 기회를 가졌지만 그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소위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지도자들은 그 당시에 어디에 있었는가? 이러한 지도자들은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권리에 관하여 왜 귀를 막고 잠잠히 있었는가? 사실상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어디에 있었나?
왜 그들은 아랍 점령자들에 대항하여 인티파다(intifada; 1987년에 시작된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점령 지구에서의 팔레스타인인의 반이스라엘 투쟁)를 시작하지 않았는가?
그 분쟁이 팔레스타인 국가에 관한 것이라면, 왜 그 당시에 그 모든 19년 기간 동안 팔레스타인 국가에 관한 대화가 없었는가?
6일 전쟁 이후에, 이스라엘은 즉시로 서안지구, 가자, 그리고 모든 다른 중요한 문제들의 정치적 미래에 관하여 아랍 세계와 협상에 들어가려고 하였다. 그것은 모든 아랍 국가들이 악명 높은 세 가지 No-"No Peace(평화), No Negotiation(협상), No Recognition(인정)“-를 선언하였던 1967년 9월 1일 카르토움(Khartoum) 회의에서 평소대로 타협하지 않는 아랍 측의 반응을 만났다.
이제 우리는 최종적인 아랍-이스라엘 평화 협정을 위하여 협상지침이 되는 원칙들로 수립되고 만장일치로 채택되어서 1967년 11월 22일에 선언된 UN 안전보장이사회 결의안 242조를 보자. 이 결의안은 경합하는 제안들 사이에서 어렵게 협상된 타협안이었다. 모든 글자, 단어, 문장은 그것들의 엄청난 영향 때문에 관련된 모든 당사자들이 싸웠고, 마침내 그 최종 버전이 다투는 당사자들이 수용하지 않을 특별한 조항들 대신에 몇 가지 모든 것을 포용하는 용어들이 포함되었기 때문에 결정되었다. 다음에 인용한 것들은 누구에게나 인터넷으로 또는 UN 기록보관소를 통하여 입증될 수 있다.
그 결의안이 말하는 가장 우선적이며 중요한 다툼이 있는 부분은 “전쟁에 의하여 획득한 영토의 불인정”이다. 아랍인들과 그들의 지지자들은 분명한 이유로 마치 그것이 여기서 끝나고 그로인하여 그들이 생각하는 한, 이스라엘이 1967년에 점령한 모든 영토를 포기해야 한다는 그들의 주장을 지지한다고 결의안 242조를 읽었다.
진실에서 나아간 것이 전혀 없었다. 반대로, 그 구절은 오직 도발적인 전쟁으로 획득한 땅만을 의미하며 자기를 방어하는 전쟁에서 획득한 적의 영토를 의미하지 않는다는 것을 분명히 의미한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그 결의안은 도발자에게 동기를 부여하는 것이 되는데, 왜냐하면 한 국가가 다른 국가를 공격하고 그 방어하는 국가가 그 공격 국가에게 승리하고 그 과정에서 영토를 획득한다면 아랍의 해석은 방어자인 피해자에게 그 땅을 돌려달라고 요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도발자들은 잃을 것이 없는데 왜냐하면 그들의 도발에 대한 처벌이 없으며 그들은 전쟁패배의 중요한 결과에 대비하여 손해를 보지 않을 보장이 되어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 결의안은 “최근의 분쟁으로 점령한 영토에서 이스라엘 군대의 철수”를 요구하며, 이 요구는 “교전 국가의 모든 주장과 말에 귀를 기울이지 말 것”과 “그 지역의 모든 국가는 위협과 폭력에서 자유로우며 안전하고 인정된 경계 내에서 평화롭게 살 권리를 가진다.”는 것을 인정할 것을 요구하는 애매모호한 두 번째 구절과 연계된다.
그 결의안은 이스라엘의 철수를 아랍의 행동에 대하여 필요조건으로 만들지 않는다. 반대로, 그 양측들은 평화협정을 이루기 위하여 협력해야 한다. 그 결의안은 얼마나 많은 영토를 이스라엘이 포기해야 하는지 구체적으로 말하지 않는데, 안전보장이사회 용어는 “최근의 분쟁으로 점령한 영토에서 이스라엘 군대의 철수”라는 문장에서 “그 모든(All the)”이라는 단어를 의도적으로 제외하였기 때문이다.
결의안 242조가 만들어질 당시에 UN주재 미국대사는 아더 골드버그(Arthur Goldberg)였다. 그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철수에 관하여 중요한 생략은-이것은 우연이 아니었다-”THE(그)“ 또는 ”ALL(모든)“ 그리고 ”1967년 6월 5일을 기점으로“이라는 단어들이다.....그 결의안은 철수의 범위를 정의하지 않고 점령된 영토에서 철수에 관하여 말한다.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스라엘이 철수하기 위하여 먼저 평화협정이 있어야 한다는 사실인데 왜냐하면 결의안 242조의 궁극적인 목적은 3항에 표시된 바와 같이 “평화스럽고 인정된 정착촌”을 성취하는 것이다.
아랍인들은 이스라엘이 UN 결의안을 준수할 것과 한편으로 "No Peace(평화), No Negotiation(협상), No Recognition(인정)“의 그들의 카르토움 선언이 여전히 유효하다고 주장하였다.
다시 한 번 분명한 점들을 몇 가지 말해주겠다:
1. 결의안 242조 전체에서 팔레스타인이라고 부르는 실체에 관하여 언급이 없다.
2. 팔레스타인 사람들에 관한 언급도 없다.
3. 팔레스타인 난민들에 관한 언급이 없다.
4. 아랍 난민들에 관한 언급이 없다.
5. 그 결의안은 어느 곳에서도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 정치적 권리 또는 영토를 주라고 요구하지 않는다.
6. 사실상, 그 결의안은 1948년 이스라엘에 대한 아랍 공격 이후로 생겨난 두 개의 난민문제들이 있음을 의도적으로 인정하는 것으로 포괄적인 용어 “난민들”을 사용하였다.
1973년 전쟁에서 패배한 후에, 이집트의 안와르 알 사다트(Anwar al Sadat)가 이스라엘과 평화협정을 맺었을 때, 이스라엘은 시나이 반도 모든 곳에서 철수하였고, 그로인하여 1967년 자국을 방어하는 전쟁에서 획득한 모든 영토의 91%에서 단번에 철수하였다.
무함마드 이슬람에서 항상 그렇듯이, 알 사다트는 이스라엘과 평화협정을 맺은 혐의로 암살되었다.
서안지구와 가자의 95%를 “돌려주고” 더 나아가서 나머지 5%에 대한 보상으로 땅을 더 주겠다는 이스라엘의 2000년 켐프 데이비드 제안을 야세르 아라파트가 간단히 거부하였을 때, 그의 비타협적인 태도는 중동에서 어떠한 유대인의 존재도 부인하는 아랍의 태도와 완전히 일치하였다.
아랍-이스라엘 분쟁이 팔레스타인 국가에 관한 것이라면, 거기에는 언제나 명백한 두 국가 해결책이 있었다. 그 분쟁은 사실상 무함마드 무슬림 중동의 중심부에 유대국가의 존재 자체, 그리고 아마도 모든 유대인들을 완전히 부인하는 아랍의 무자비함에 관한 것이다.
게다가, 그 문제에 관한 무함마드 아랍인들의 이 거부는 완전한 무슬림 중동에 레바논과 같은 기독교인 대다수 국가, 또는 어떠한 기독교인들이라도 존재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거기에 더하여, 하마스 헌장은 전 세계에서 모든 유대인들 살해할 것을 요구하며, 이스라엘이 가자에서 철수한 후에도 가자에서 계속하여 로켓을 이스라엘 시민들 목표로 날려 보낸다. 집단학살과 두 번째 홀로코스트(첫 번째 홀로코스트를 부인하면서)의 위협이 이란에서 퍼져 나오며, 아랍세계는 과격한 반-유대주의로 가득 차있다.
이스라엘을 목표로 한 전쟁은 실제로 근본주의 무함마드 이슬람이 모든 곳에서 자유와 민주주의에 대항하여 일으킨 전 세계 전쟁의 일부분이다. 이스라엘은 그 나라의 작은 규모와 약하게 보이는 것 때문에 첫 번째 표적이 되고 있다. 그럼으로 자신들이 힘이 없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보호하고 있다고 믿는 모든 사람들은 역사에서 가장 최악으로 불공정한 것들 가운데 하나에 사실상 공모하고 있다. 그들은 죽음과 파멸, 두려움, 편견의 세력에 편들고 있다.
유대인들과 이스라엘은 리트머스 종이와 같아서 근본주의 무함마드 이슬람에 의하여 세계 지배를 위한 시험지로 사용된다. 이스라엘과 유대인들 다음으로, 기독교인들, 힌두교인들, 불교인들, 토속신앙인들 그리고 모든 다른 불신자들 차례가 올 것이다.
정말로 당신이 이 글을 읽고 있는 순간에도, 파키스탄에서 이란까지, 체첸에서 코소보까지, 이라크에서 레바논까지, 이집트에서 수단까지, 필리핀에서 인도네시아까지 이슬람 국가들의 기독교인들이 살해되고, 추방되며, 납치되고, 고통당하거나 박멸되고 있지만 UN과 서방세계 언론과 기독교 성직자들은 전혀 말하지 않는다. 그들의 침묵은 귀 구멍을 막은 듯하다.
위임통치하에 있는 팔레스타인에 대한 UN의 분할계획을 보는 사람으로 지성이 조금이라도 있는 모든 이는 유대인들에 대하여 안 된다는 연속된 3개 항목이 어떠한 무력에 의하여서도 변명할 여지가 없다는 것을 즉시로 알 수 있다!
현재 이스라엘 국가의 수립은 완전히 아랍인들의 우둔함과 근시안 때문인데, 왜냐하면 그들이 유대인들과 전쟁을 시작하지 않았었다면, 이스라엘 인구를 증가시킨 유대난민들이 없었을 것이며 영토의 손실이 이스라엘을 더 방어적으로 만들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사실상, 그 전쟁이 없었다면 이스라엘은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아바 에반(Abba Eban)이 말하였다: 아랍인들은 기회를 놓치는 기회를 절대로 놓치지 않는다!
자료출처 http://www.the-koran.blogspot.kr/2008/08/two-states-israel-palestine-146-c.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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