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슬림들과 사시만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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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함마드에 관한 시사만평들은 무슬림들의 더러운 특성들 가운데 또 다른 하나를 그의 추종자들에게서 보게 만들어주었다.
TV에 나온 사진들은 그들과 같지 않은 사람들 모두에게 모욕, 더러운 욕설, 협박을 하며 소리를 지르는 뒤틀어진 얼굴들을 가지고 증오를 선동하는 완전히 너저분한 사람들을 보여준다.
그들은 마치 어떤 사람들이 그들의 여성들을 강간하였거나 그들의 아버지를 살해한 것처럼 행동하였다.
그들의 계속되는 병적이며 불쾌한 행동에 대한 중요한 이유는 사실상 그들의 비뚤어진 종교에 완전히 근거한다는 것을 설명하는 사람이 내가 아는 한 아무도 없다.
내가 설명하겠다.
오늘날 무슬림 세계 전역에서, 예언자들 모두가 이스마(isma) 교리를 누리고 있다고 믿어지는데 그것은 그들이 실수를 하지 않는다는 하나님의 보호하심이며 따라서 다시 말하면 그들이 죄가 없다는 것이다.
이것은 무함마드 이슬람의 비정상적인 것들 그리고 거짓말들 가운데 또 다른 하나이며 이 교리는 무함마드의 꾸란과 하디스들의 아주 명백한 주장과 정반대로 수립되었고 전해져 왔다.
이슬람 정통파는 예언자는 죄를 짓지 않으며 따라서 죄가 없다고 주장한다. 애석하게도, 이 교리는 내가 앞으로 몇 개의 예들을 낭송하듯이 꾸란과 무함마드의 아랍어로 말하는 전통들에 기록된 다양하고 아주 분명한 주장과 모순이 된다.
꾸란 47:19 “그러므로 알라 외에는 신이 없다는 것을 알고 그대의 잘못과 믿는 남성과 믿는 여성의 과오를 위해 용서를 구하라.....”
꾸란 48:1~2 “알라께서 그대에게 분명한 승리를 베푸셨노라 그것은 알라께서 지나간 그대의 과오를 용서하고.......”
사히 알-부카리 9.482(Ibn Abbas의 이야기)
예언자는 알라에게 기도하곤 하였다.....“오 알라시여! 내가 과거에 지었고 미래에 지을 죄를 또한 은밀히 또는 공개적으로 지었던 죄를 용서해 주소서 당신은 나보다 더 잘 아십니다.....”
완전히 분명한 아랍어 또는 영어로 계시된 이러한 구절들의 아주 분명한 의미를 이해하는데 우리는 천재가 될 필요가 없다.
그러나 이슬람 초기의 세기들에서, 인기에 영합한 정서와 신학적 가정에 근거한 한 교리가 나왔고 꾸란과 하디스들의 가르침과 다르게 발전되었다. 그것은 처음에 알 피끄 악바르(Al Fiqh Akbar) Ⅱ로 알려진 신조로 형성되었고 다음과 같이 말한다.
“모든 예언자들은 가볍고 무거운 죄들에서, 불신앙과 더러운 행위들에서 면책된다. 그러나 그들에게 방황과 실수가 일어날 수 있다.”
이스마(isma) 교리는 예언자들을 받은 사람들이 예언자들이 연약하여 죄를 짓고 거짓을 말한다고 생각한다면 알-누부와(al-nubuwaa; 예언자 직임)의 목적이 실패할 것이라고 가정하는데 왜냐하면 그들은 그때 예언자들의 가르침, 명령, 중보기도에 관하여 동일하게 생각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슬람에 이 교리가 나타난 것에 기본적으로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로, 초기 무슬림들은 복음서(Injil)들이 예수가 이제까지 살았던 유일한 죄 없는 사람이었다는 것을 곧 발견하고 이 증거에 대항하여 모든 예언자들이 특히 무함마드가 죄가 없었다는 픽션을 만들어낼 필요가 있었다.
예수가 무함마드 보다 더 우수하다는 생각은 참을 수 없는 파문이었다. 따라서 무함마드에게 적어도 모세와 예수의 위상과 동등한 위상을 주기 위하여, 수많은 기적들이 만들어져서 이슬람의 창시자에게 돌려졌고 그래서 무함마드도 정확하게 그 동일한 목적으로 죄가 없게 되었다.
둘째로, 무함마드 이슬람 계시의 교리는 경전들이 중개자인 천사(가브리엘)에 의하여 예언자들에게 직접 말하여졌다고 주장함으로, 결과적으로 예언자들은 그들의 사생활에서 그들이 실수하지 않도록 보호하는 죄를 범하지 않는 성격을 가져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그들은 알라의 나무랄 데 없는 계시들을 전달하도록 위임될 수 없었다.
이 후자의 가정은 필연적으로 예언자들은 죄가 없어야 한다는 결론에 달하였다.
꾸란은 무함마드가 실수를 하며 죄가 있는 사람이었다고 분명히 말한다. 무함마드가 이상적인 남자이며 인류의 모델이라는 개념은 훨씬 후대에 나온 개념이다.
게다가, 꾸란의 원래 가르침과 모순이 되는 이 교리의 수용은 교리적인 동기를 가졌다.
꾸란의 내용을 모든 변질의 의심이 없도록 만드는 것이 불가피하게 여겨졌는데, 계시의 기관(무함마드)이 실수할 수 있다면 의심이 배제될 수 없기 때문이다.
청취자 여러분, 무함마드가 죄가 없다는 교리는 예수가 죄가 없다는 기독교 개념과 다른 기초에 근거한다는 것을 알기 바란다.
무함마드가 죄가 없다는 교리는 오직 그의 계시, 그의 꾸란의 유효성을 수립할 목적으로 주장된다. 반대로 예수가 죄가 없다는 교리는 그의 신성에 대한 확증 그리고 인간의 진정한 본질에 관한 기독교 이해의 결과이다.
예언자 직임 보호 또는 죄가 없다는 교리(isma)는 무함마드 개인의 품성에 대한 기술이기 보다는 계시를 존중하는 이슬람의 가정이다.
무함마드가 사망하기 전에, 그의 꾸란과 그의 순나 두 가지를 남긴다고 그들에게 말하는 설교를 그의 추종자들에게 하였다. 따라서 순나와 꾸란은 동등하다.
사히 알-부카리 9.381(Hudhaifa의 이야기)
알라의 사도가 우리에게 말하였다, “정직이 천국에서 내려와서 사람들(신실한 신자들)의 마음속에 자리 잡았고, 그리고 꾸란이 계시되어 사람들이 꾸란을 읽었고(그리고 그것에서 배웠고) 순나에서도 배웠다. 꾸란과 순나는 둘 다 그들(신실한 신자들)의 정직을 강하게 만들었다.“
사히 알-부카리 9.382(Abdullah의 이야기)
가장 좋은 이야기는 알라의 책(꾸란)이며 가장 좋은 방법은 무함마드의 방법(순나)이다.
무함마드가 사망하기 전에, 추종자들에게 두 가지 “그의 꾸란과 그의 순나”를 남기니 그 둘을 따르라고 말하는 설교를 하였다.
따라서, 그의 추종자들에게 있어서 순나와 꾸란은 동등하다! 그의 추종자들은 따라서 무함마드를 알라와 동등하게 여긴다. 무함마드의 이름과 알라의 이름이 정확하게 동일한 크기와 동일한 높이로 모스크에 그려져 있다는 사실에 의하여 이것이 입증된다.
알라는 무함마드가 아는 것을 알며, 알라는 무함마드가 증오하는 것을 증오하며, 알라는 무함마드가 사랑하는 것을 사랑한다고 말하는 하디스들에서도 입증된다!
이것은 “알라와 그의 사도가 가장 잘 안다”라는 반복되는 주문에서 입증된다.
그리고 마지막이지만 중요한 것으로 사실상 신성모독의 행위인 무함마드에 대한 축원이다.
"Salla^Allahoo A'layhi wa sallam"은 “알라가 무함마드를 위하여 기도하고 그에게 인사한다”를 의미한다!
무슬림들의 알라신은 그의 피조물이 그에게 기도하고 알라의 이름을 축복하는 대신에 그 자신의 피조물 무함마드를 위하여 기도하고 인사한다.
무함마드의 죄 없음이 그를 하나님으로 만든다!
무함마드를 모욕하는 것은 그들의 신 알라와 무함마드의 꾸란을 모욕하는 것과 정확하게 동일하다.
자료출처 http://the-koran.blogspot.kr/2010/05/muslims-cartoons-part-223.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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