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들어낸 이야기 트렌치(Trench) 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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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능한 많은 장들을 시작할 때 다음과 같은 점을 강조하는 것이 필수적인데 무함마드, 그의 꾸란, 그의 순나에 관한 주제들을 연구하는 사람들의 주목을 쉽게 피하는 사실이다.
무함마드, 그가 주장하는 계시들, 그의 행동, 그의 생각 그리고 무함마드와 그의 추종자들이 무함마드를 핍박하는 자들이며 적들이라고 비방하는 사람들에 관하여 인류가 가진 모든 정보는 무함마드와 그의 추종자들의 자료인 오직 한 가지 자료에 의하여 우리에게 전하여졌다.
다신교도 아랍인들, 기독교 아랍인들, 유대화된 아랍인들 그리고 그 밖의 사람들에 관한 그들의 보고들은 물론 자신들을 위한 것이며, 입증되지 않았고, 확증이 없으며, 그것들 가운데 어느 것도 외부의 목격자 단 한 사람의 보고도 없이 승리자들에 의하여 전하여졌다.
무슬림들의 주장들을 입증하거나 논쟁하는 것으로 무함마드와 그의 추종자들의 피해자들에게서 나온 독립된 기록들이 없는데 그 이유는 이러한 피해자들, 다신교도 아랍인들, 기독교 아랍인들, 유대화된 아랍인들은 학살당하였고, 강제로 개종되었거나 추방되어서 그들의 모든 기록들과 그들이 만든 모든 것들이 소실되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무슬림들에 의하여 인류에게 전해진 단 하나의 하디스도 어떤 사실 또는 실상에 근거한 것으로 여겨지지 않는다.
이것을 말해 주었지만, 연구하면서 이러한 문제들을 연구하는 용어를 되풀이 말할 때, 우리는 수많은 거짓말들의 쓰레기 가운데서 진실에 관한 몇 가지 단서들을 아직도 찾을 수 있다.
트렌치 전투에 관한 이야기는 무함마드의 꾸란에도 그것에 관한 것들이 있으나 주요 자료는 알프레드 구일라움(Alfred Guillaume)에 의하여 “무함마드의 삶(The Life of Muhammad)”으로 번역된 무함마드 이븐 이스학(Muhammad Ibn Ishaq)의 기념비적인 저서 “시라 라술 알라(Sirat Rassool Allah)"에 언급된 보고들에 있다.
소위 신자들 그리고 불신자 쿠파르 여러분, 내가 이 전투를 여러분들과 함께 연구를 시작하기 전에, 내가 여러분들 모두에게 다시 한 번 상기시켜 줄 것은 내가 여러분들에게 읽어 줄 모든 각각의 단어는 그 사건이 있고 140년에서 300년 사이에 이기적인 무함마드의 추종자들에 의하여 기록되어서 완전히 일방적이며, 입증되지 않았고, 그 동일한 사건에 관하여 어떤 다른 목격자들에 의한 확증이 전혀 없다는 것이다.
그 전투의 상세한 부분들은 알프레드 구일라움의 “무함마드의 삶” 450페이지에서부터 찾아 볼 수 있으며 나는 이 이야기를 요약할 것이다. 이 이야기가 오직 이기적인 승리자들, 즉 무슬림들에게서 나온 것이라는 것을 기억하고 그에 따라 이야기를 판단하기 바란다.
다른 무슬림 자료들에 따르면, 이 전투는 서기로는 627년 3월인 이슬람력 5년 샤왈(Shawwal; 이슬람력 10월) 2일, 4일 또는 9일에 일어났다.
무슬림 군대 3,000명
다신교도 군대 24,000명
무슬림 순교자 없 음
이 전투는 또한 칸다끄(Khandaq) 전투, 아흐잡(Ahzaab) 전투, 아부 서피얀(Abu Sufiyan) 전투의 여러 가지 이름으로 알려져 있다.
다신교도들은 이슬람이 아라비아에서 그들의 경제적 안정과 정치적 우위에 대한 위협이라고 생각하였고 그들은 이슬람이 존재하는 한 상생할 수 없었다.
그들이 무함마드를 죽인다면, 아라비아에서 그들의 이익은 안전하고 그들의 패권을 되찾는다는 것을 알았다.
이러한 목적으로 그들은 메디나에 마지막 치명타를 가하여 모든 무슬림들을 전멸시키기로 결정하였다.
메카 외곽의 다신교도 부족들은 그들과 함께 동일한 꿈을 나누었다. 이 믿음은 이러한 부족들을 함께 묶었다.
이러한 사람들에게서 사절단이 메카로 왔고 헤지라(Hijrah; 이슬람력) 5년에 다른 아랍 공동체들이 무함마드에 대한 전쟁을 준비하고 있었고 앞으로 있을 전쟁을 위하여 아랍 군대를 동원하려하고 있었다.
그들은 메카사람들이 무함마드에 대항하여 군대를 동원하도록 설득하는데 많은 노력이 필요 없었다. 초청에 대한 그들의 반응은 신속하였고 지체 없이 그들은 4000명의 군사를 동원하였다.
무슬림들과 메디나를 이웃하여 사는 성서의 백성들 사이에 그들이 무함마드와 맺은 약속을 위반하였기 때문에 생긴 분쟁들이 있었다.
다음의 일곱 부족들이 무슬림들에 대항하여 이 전투에 참여하였다. 가트판(Ghatfan), 사렘(Saleem), 아스자(Asjaa), 아사드(Asad), 까리자(Qareeza), 타지르(Tazeer), 꾸레시(Quresh). 약 24,000명의 이 군대는 아부 서피얀(Abu Sufiyan)이 지휘하였고 3,000명의 무슬림 군대는 무함마드가 지휘하였다.
무함마드는 그들이 메디나에 도착하기 몇 일 전에 그 임박한 침공의 소식을 들었다. 그는 그의 동료들과 상의하였고 살만 알-파리시(Salman al-Farisi; 페르시아인)가 침입자들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메디나 주변에 깊은 도랑을 파자고 건의하였다.
무함마드는 무슬림들이 그 계획을 실행하도록 명령하였다. 그 도랑을 파는데 소요되는 날 수는 서로 다른 역사적 기록에 따르면 6일에서 20일 사이라고 보고한다.
그 도랑을 보고 침입자들은 놀랐고 그들이 메디나에 입성하기 어렵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그들은 메디나를 직접 침공하는 대신에 메디나를 포위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았다. 이 포위는 약 20일 또는 27일 동안 계속되었다.
무슬림들 가운데 무서운 소문들을 퍼뜨리는 위선자들이 많이 있었고 이것이 무슬림들에게 두려움을 더하였다. 꾸란은 그 시기동안 무슬림들이 가지고 살았던 심리적인 갈등에 관하여 우리에게 말한다.
꾸란 33:10~13 “그들이 너희 위쪽과 너희 아래쪽으로부터 공격하여 왔을 때 눈은 몽롱하여지고 마음은 공포로 목까지 올랐으며 너희는 알라에 대한 무익한 생각들을 시작하였노라.........
그때 위선자들과 마음이 병든 자들은 알라와 선지자는 우리를 기만하는 약속밖엔 하지 아니 하였도다라고 말하며
그들 중의 어떤 무리는 야쓰리브의 주민이여 여기는 당신들이 설 자리가 없나니 돌아가라고 말하고“
아므르 이븐 압두우드(Amr ibn Abduwud)가 무슬림들에게 도전하였을 때, 아므르가 한 때 혼자서 1,000명의 사람들과 싸웠던 용사였다고 말하면서 우마르가 두려움을 더하였다는 것이 Maarij-un-Nabuwwah(4:128)에도 보고 되어있다.
아므르 이븐 압두우드는 드히라 이븐 알-카탑(Dhirar Ibn Al-Khattab), 아크라마 이븐 아부 자힐(Akramah Ibn Abu Jahl) 그리고 그 밖의 사람들과 함께 싸웠고 그 도랑에서 폭이 좁은 곳을 발견하였다. 그들의 말들은 그 도랑을 뛰어 넘어 건너편으로 갔다.
무슬림들은 이러한 다신교도 병사들이 그들의 편에 도달하기 전에 충격과 공포의 상태에 있었다. 그들이 도랑을 건너옴으로 눈에 보이는 새로운 위기는 무슬림들의 사기를 전 보다 훨씬 더 저하시켰다.
무슬림들 대부분의 마음이 두려움으로 가득하였지만, 그들 가운데 일부는 새로운 위기에 흔들리지 않았다. 그것은 알라, 그의 사도, 약속된 승리에 대한 그들의 신앙을 더 강하게 만들었다.
이미 자신들을 희생한 무슬림들이 있었고 그들 가운데 한 명인 알리 빈 아비 타립(Ali bin Abi Talib)은 그 위험을 제거하기 위하여 시도하기로 결심하였고 곧 그 위험을 제거하였다. 꾸란은 이러한 신자들의 사기에 관하여 우리에게 말한다.
꾸란 33:23 “믿는 사람들 중에는 그들이 알라에게 약속한 성약에 충실한 사람들이 있고 그들 중에는 그들의 맹세를 다 하는 자 있으며 아직 기다리는 자들이 있으나 그들은 결코 그들의 결심을 바꾸지 아니 하니라”
도랑을 건너간 아므르 이븐 압두우드는 아랍인들 가운데 잘 알려져 있었다. 그는 그 전투에 참가하여 그의 위상을 사람들에게 자랑스럽게 알렸다. 그가 단지 아주 적은 수의 병사들을 데리고 도랑 이 편에서 저 편으로 건넌 것은 그 사람이 굉장히 용감하였다는 것을 말해준다.
그는 24,000명의 병사들 가운데 무슬림들에게 직접 침입하여 완전히 무슬림들 속에 고립되면서 그들에게 도전하려고 시도하였던 유일한 사람이었다.
아므르는 자신의 말을 타고 Sal'a 지역을 돌아다니며 무슬림들을 보고 그들에게 도전하였다: “결투할 사람이 있는가?” 그는 이 요청을 반복하였지만 무함마드의 편에서 반응이 없었다.
마지막으로 아므르는 무슬림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당신들 무슬림들은 낙원이 있다고 믿는다는데 나에게 도전할 용기를 가져서 내가 그를 죽여서 그의 낙원으로 그를 보낼 사람이 당신들 가운데 누구라도 있는가?”
이것을 듣고 무함마드가 그의 동료들에게 요청하였다, “이 개의 허튼 소리를 저지할 사람이 그대들 가운데 있는가?” 알리가 세 번째로 일어나서 지금 그가 저지할 수 있다고 말하면서 허락을 요구하였다.
무함마드는 결국 알리에게 허락을 주었고 그가 이기기를 기도하였고 알리에게 자신의 터반을 씌우고 자신의 지라(Zirah; 갑옷)를 그에게 주고 바드르(Badr) 전투에서 알라가 보낸 칼 줄피까르(Zulfiqar)를 그에게 주었다.
알리는 아므르에게 가서 대결하자고 요청하였다. 아므르는 거만하게 대답하였다, “너의 아버지 아부 타립(Abu Talib)은 내 친구 중의 한 사람이다. 알라에게 맹세하건데, 나는 너를 죽이고 싶지 않다.”
알리가 대답하였다, “그러나 알라에게 맹세하건데, 나는 당신을 죽이고 싶다.” 몇 가지 거친 욕설을 교환한 뒤 결투가 시작되었다. 먼지가 가라않았을 때, 알리가 걸어 나오는데 아므르의 머리가 그의 손에 들려있었고 그의 칼 줄피까르는 피에 흠뻑 젖어 있었다.
이 광경을 보고 무함마드는 “알라후 악바르(알라는 위대하다)”를 외쳤고 무슬림들도 따라서 외쳤다. 아므르의 죽음은 그 새로운 위기의 끝이 되었다.
아므르와 같이 있었던 사람들이 살려고 도망하였지만 그들 대부분이 도랑을 다시 건너기 전에 살해되었다.
아므르의 죽음은 다신교도 군대에게 그들이 다시 그 도랑을 건널 수 없다는 것과 아므르가 할 수 없는 것은 다른 사람들도 할 수 없다는 것을 입증하였다.
이 사건으로 다신교도 군대는 두 가지 선택 가운데 하나를 선택해야 했다.
철수 또는 무슬림들이 항복 또는 그 도랑을 건너와 다신교도들과 싸울 때까지 포위를 계속하는 것이었다.
메디나를 계속하여 포위하는 것은 다신교도 군대의 능력으로 할 수 없었다.
몇 달 또는 몇 주 동안 그들이 포위를 하도록 해줄 24,000명의 병사들과 그들의 말들과 낙타들의 식량이 없었다.
연합군은 철수하였고 무슬림들은 그 위기를 안전하게 넘겼다. 연합군이 최대한 동원하여도 실패하였기 때문에 무슬림들은 미래에 대하여 확신을 얻었다. 그들이 철수한 후에 사도는 말하였다, “오늘 이후로, 우리는 그들을 공격하지만 그들은 우리를 공격하지 않을 것이다.”
이제 나는 다음의 비정상적인 것들, 불합리한 것들, 과장들, 일관성이 없는 것들을 여러분들에게 알려줄 것이다.
1. 무슬림들은 메디나 안에 3,000명이 있었고 24,000명의 다신교도들은 그들을 포위하고 있었다.
2. 그 도랑은 물이 없었고 폭이 좁았다. 그것은 해자가 아니었고 다신교도 병사 몇 명이 저항을 받지 않고-그 도랑을 뛰어서-건널 수 있었다.
3. 무슬림 기록들에 따르면, 다신교도들은 그들 가운데 10,000명의 흑인 노예들을 데리고 있었다.
4. 이 모든 전투원들이 도보로 그리고 말로 그 도랑을 건널 수 있도록 도랑의 폭이 좁은 부분을 흙으로 채울 수 없었다는 것이 어떻게 가능한가?
5. 무함마드의 첩자들이 계속하여 다신교도 군대에 건너가서 간첩으로 공작원으로 그들과 함께 섞였고 무함마드에게 보고하기 위하여 쉽게 돌아 올수 있었다.
6. 아므르 이븐 압두우드와 그 밖의 다신교도 병사들 몇 명이 저항을 받지 않고 그 도랑을 뛰어 건널 수 있었다면, 왜 더 많은 다신교도 병사들이 똑같이 하여 메디나 내부를 공격할 수 없었는가?
7. 전기 454페이지에서 이븐 이스학(Ibn Ishaq)은 다음과 같이 보고한다. “사도와 다신교도들은 20일 이상 거의 한 달을 화살을 쏘고 포위를 하는 것을 제외하고 전투가 없이 있었다.”
8. 다신교도 군대가 공포에 빠졌었는가? 그들이 너무나 겁이 많았거나 경쟁이 안 되어서 그들의 군량과 물이 날마다 줄어들고 있음에도 그들과 싸우려 하지 않고 무함마드와 그의 추종자들을 포위만하고 있었는가?
9. 이 사건에 관한 마와르디(Mawardi)의 버전에 따르면, 아므르 이븐 압두우드는 무슬림들에게 계속하여 삼일 동안 도전을 하였고 그 도전은 무함마드 자신을 향한 것이었는데 특히 그의 조롱이 “당신들 가운데 아무도 (죽임을 당하여)그의 주님에게서 보상을 얻으려고 또는 적 한 명을 지옥에 보내기 위하여 나오지 않으니 무슨 일인가?”이었기 때문이다.
10. 이것들은 지하드에서 알라를 위하여 싸우다가 죽임을 당하는 경우에 그의 추종자들에 대한 무함마드의 약속들이었다. 아랍인들에 따르면 아므르는 천명의 병사들과 같은 가치를 가지는데 왜 무함마드가 아므르와 싸우지 않고 알리를 내보내었는가?
11. 무함마드가 메카에서 메디나로 밤에 도망할 때 겁쟁이 무함마드는 자신의 집에 알리를 자게 하였다.
안사르(Ansar) 사람들에게서 자신의 동료들을 얻은 줏대가 없는 무함마드는 우흐드(Uhud) 전투에서 그 동료들이 자신을 방어하며 죽게 만들었다.
자신이 용감하다고 주장하였던 무함마드는 우흐드 전투에서 죽은 체하여서 다시 아부 서피얀의 도전에 대답하기를 거부하였다.
12. 아므르가 계속하여 삼 일 동안 무슬림들의 메디나에서 무슬림들에게 도전할 수 있었다면, 왜 (아므르의)다신교도 군대가 메디나를 공격할 수 없었는가?
13. 다신교도 아므르는-혈연으로 연결된-그의 가족에게 속하였던 알리를 죽이기 원하지 않았지만 무슬림 알리는 이슬람을 받아들이지 않은 가족을 포함하여 누구라도 살해하는 것에 대하여 전혀 양심의 가책을 가지지 않았다.
14. 무함마드와 그가 주장하는 계시들에서 항상 그렇듯이, 그의 꾸란에 인용된 모든 구절들은 사건들이 일어난 후에 그것들을 설명하고 정당화하기 위하여 편리하게 ‘내려왔다’.
15. 아랍인들 사이의 이 사건은 한 줄기 의심도 없이 무함마드와 그의 추종자들이 저지른 대량학살이 아니라 단 한 번의 결투로 그들의 이견들이 해결되었다는 것을 입증한다.
16. 이 보고들이 올바르다고 가정한다면, 무슬림들 3,000명 가운데 사상자가 전혀 없고 24,000명 다신교도 군대에서 27일 동안 6명 미만이 죽었는데, 도대체 어떤 생각으로 그것을 전투라고 부르는가?
언제나 무함마드와 그의 추종자들은 그들 자신의 신화들을 만들어 내었고 시간이 지나고 반복되면 그 모든 것이 진실로 믿게 된다.
그들은 1400년이 지난 21세기에도 동일한 짓을 계속한다.
이제 그들의 일방적이며, 이기적이며, 입증되지 않고, 확증이 없는 이야기들이 얼마나 정말로 사실인지 생각하고 판단하는 것은 청취자들인 여러분들에게 남겨둔다.
자료출처 http://the-koran.blogspot.com/2010/05/myth-battle-of-trench-part-224a.html
자료출처 http://the-koran.blogspot.kr/2010/05/myth-battle-of-trench-part-224b.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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