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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아라비아의 역사와 고고학은 기독교가 등장하기 전에 메카가 존재하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21-11-13 13:59 조회1,72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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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세가 기록한 아브라함의 삶은 팔레스타인에 기근이 들었을 당시에 서부 아라비아와 같은 버려지고 알려지지 않은 곳에 아니라 이집트로 가고자 하는 족장의 바람을 보여주었다. 

 

성경에 드러난 아브라함의 역사를 살펴보자. 아브라함은 기원전 21세기의 가장 비옥하고 문명화된 땅 중 하나인 남부 메소포타미아의 우르의 시민이었다. 가나안에 기근이 들었을 때 아브라함은 문명인이라면 할 수 있는 일을 했다. 그의 조국보다 열등한 나라로 여행하는 것을 선택하지 않았다. 대신 그는 이집트로 여행을 갔다. 왜일까? 그 당시 이집트는 그의 조국과 경쟁할 수 있는 유일한 문명이었기 때문이다. 나일강 때문에 이집트는 물이 풍부했고 문명이 발달한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기근이 끝나고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자신과 이삭의 자손에게 유산으로 주기로 약속하신 아름다운 땅 가나안으로 돌아왔다. 아브라함은 그것이 가나안을 떠나는 것을 의미하더라도 이집트 문명을 선호했다. 그렇다면, 어떻게 그는 서부 아라비아와 같은 알려지지 않은 사막과 나중에 메카가 건설된 곳으로 여행하는 것을 생각할 수 있었을까?

 

아브라함과 가까이 살았던 족장들은 아브라함이 아라비아 서부 미지의 광야로 가는 여정을 그의 시대에 한 번도 언급하지 않았다. 성경 예언자 중 영감을 받은 사람도, 아브라함의 후손에 대한 어떤 문헌도 그런 여정을 언급하지 않았다.

 

논쟁을 위해 아브라함이 아라비아 서부를 선택했을 것이라고 가정해 보자. 왜 그의 후손들은 이 역사적인 여행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을까? 그들은 아브라함이 약속의 땅으로 여행을 시작했을 때부터 그의 남은 삶을 매우 상세하게 기록했다. 왜 그들은 이와같이 중요한 것을 생략했을까?

    

우리는 모세가 아브라함의 삶에 대해 아주 자세하게 썼다는 것을 알고 있다. 어떻게 모세는 이렇게 중대한 여정을 놓치고 아브라함이 메카에 성전을 지었다는 무슬림의 주장을 언급하지 않았을까? 이스라엘의 다른 예언자들도 어떻게 그런 중대한 사건이 실제로 일어났다면 침묵할 수 있었을까? 왜 우리는 고대 히브리어 기록에서 아브라함의 여정에 대한 단서를 찾지 못하는가? 만약 아브라함이 나중인 서기 4세기에 메카가 건설된 사막을 방문했다면, 그는 선구자가 되었을 것이다. 그의 후손들은 예언자, 역사가, 그리고 다른 저자들을 통해 그러한 업적을 자랑했을 것이다. 메카의 성전은 이삭과 야곱의 후손들이 신앙의 아버지로서 아브라함을 중요하게 여겼기 때문에 순례의 장소가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모세의 시대부터 예언자들을 거쳐 아라비아의 한 종교 사원을 찾아 여행하거나 메카로 순례하는 사람은 이스라엘에서 볼 수 없다.

    

내 요점을 설명하기 위하여, 알래스카 사람들이 셰익스피어가 그들 사이에 살면서 그곳에 신전을 지었다고 주장한다고 가정해 보자. 그러한 주장을 증명하기 위하여 알래스카 사람들은 종교적 저자의 주장이나 셰익스피어 이후 세기에 살았던 누군가의 증언이 아닌 역사적 증거에 의존해야 할 것이다. 유일한 권위 있는 자료는 영국 역사일 것인데 셰익스피어 시대에 셰익스피어가 알래스카를 방문했다는 알래스카 사람들에 대한 내용의 문서가 없다. 실제로 영국 역사에는 그 유명한 영국 시인에 대한 완전한 설명이 있고, 알래스카 방문에 대한 언급은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역사적 자료들이 셰익스피어가 알래스카를 방문한 적이 없다는 것을 확인시켜준다고 결론을 내릴 것이다. 아브라함이 서부 아라비아를 방문하였다고 주장하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아브라함 당시 아라비아에 아브라함의 방문을 언급하는 기록된 글들이 없는 상황에서 모세 때부터 이스라엘에 있던 그의 후손들의 글을 모두 살펴보는 것이 논리적이다. 아브라함이 메카를 방문해 그곳에 사원을 지었다는 이슬람의 이런 주장에 대한 언급은 어디에도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기원전 21세기에 메카가 존재하였고 아브라함이 사원을 지었다는 이슬람의 주장이 역사에 삽입된 공상적이고 잘못된 생각임을 알 수 있다. 증거를 검토한 결과, 어떤 똑똑하고 정직한 사람도 이러한 이슬람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그들의 종교를 진정한 세계사와 모순되는 잘못된 역사적 주장에 근거하는 것은 무슬림들이 거부해야 할 것이다. 무슬림들은 그러한 엄청난 거짓에 의존하는 종교에 그들의 영원한 운명을 맡기는 것을 그만두어야 한다.

 

아라비아의 다른 고대 도시와 왕국에서 발견된 고고학적 기록에서 메카의 부재

 

아브라함 시대에 왕국과 문명이 적었고, 그 비문들은 그들이 서로 잘 알고 있음을 증명하지만, 그들 중 메카에 대한 언급은 없다.

 

앞서 우리는 아브라함 시대부터 아라비아에 메카가 존재했다는 이슬람의 주장을 반박하는 중요한 논거를 논의했다. 우리는 아라비아에 나타난 각각의 문명이 그 존재를 증명하는 중요한 고고학적 발견을 남긴 것을 보았다. 그러나 기원후 5세기 이전에 메카에 대한 어떠한 증거도 찾을 수 없다. 우리는 이제 고대 메카의 개념에 반대하는 또 다른 중요한 고고학적 논쟁, 즉 아라비아의 다른 고대 도시와 왕국에서 발견된 고고학적 기록에서 메카의 부재에 대하여 토론할 것이다.

    

아브라함은 기원전 21세기에 살았다. 아브라함 시대에 메카가 존재했다면, 오만이라고도 불리는 딜문, 마간 왕국에서 온 비문 등 아라비아 동부 문명의 상세한 비문으로 분명히 기록되었을 것이다. 게다가, 만약 메카가 기원전 21세기에 존재했다면, 그 당시 아라비아 서부에 존재했던 유일한 왕국이었을 것이다. 수천 년 동안, 마간은 메소포타미아 그리고 오늘날의 인도와 파키스탄인 인더스 계곡과의 무역으로 알려져 있었다. 딜문은 아브라함 시대 1000년 전부터 메소포타미아로 제품을 들여올 정도로 아시아와 무역이 풍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아브라함이 살았을 때 메카가 존재했다면 마간과 딜문 무역의 중요한 시장이었을 텐데, 이들의 비문에는 메카에 대한 언급이 없다.

    

우리는 또한 아라비아 남서부 문명이 기원전 13세기부터 예멘에 나타나기 시작하여 아브라함 당시 서부 아라비아에 마간과 딜문이 교역할 문명이 존재하지 않았다는 결론을 내리게 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아브라함 시대에 그 지역의 왕국과 문명은 소수였고, 서로에게 모두 알려져 있었다. 메소포타미아에 나타난 왕국들은 서로 그리고 나머지 중동 문명들에게 기원전 3,000년 전까지 알려져 있었다. 마간(오만)과 딜문(Dilmoon)과 같은 동부 아라비아 왕국에 대한 많은 비문이 발견되었는데, 이는 메소포타미아의 문명과 같은 다른 중동 문명에 관하여 그들이 알고 있었다는 주장을 입증한다.

 

메카가 아브라함 시대에 존재하였다면 그 가운데 일부는 3,000년 이상 존재하였던 동부 아라비아의 문명이 그러한 수 천 년 동안 모두 아라비아 서부에 그들과 동시에 존재하였던 또 다른 오래된 도시를 알지 못하는 것은 불가능하였을 것이다. 

 

이러한 동부 아라비아 왕국들 가운데 어느 나라도 비문에 메카 같은 도시를 언급하지 않고는 기원전 3,000년부터 기원후 3세기까지의 긴 기간을 정당화하기는 어렵다. 보이는 증거에도 불구하고 고대에도 메카가 존재했다고 계속 주장하는 것은 수천 년의 역사 동안 이집트 북부의 왕조가 이집트 남부의 왕조에 대해 들어본 적이 없다고 주장하는 것과 같다. 실제로 이집트 북부에서 발견된 비문은 이집트 남부에 대한 정보로 가득 차 있고, 그 반대도 마찬가지이다. 이것은 메카가 기원후 3세기 이후에야 지어졌다는 우리의 주장을 뒷받침한다. 같은 지리적 지역(예: 인도, 이집트, 메소포타미아, 중국)에 수천 년 동안 존재했던 두 문명이 서로에 대해 들어본 적도 없고, 비문이나 다른 고고학 기록에서 서로에 대해 언급한 적도 없었을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불합리하다. 어떻게 아라비아가 예외일 수 있나? 어떻게 메카가 서아라비아에 존재했고, 동부 아라비아에 적어도 2,400년 동안 완전히 알려지지 않았을 수 있었을까?

 

다른 아라비아 지역의 비문에서 메카의 부재

 

지금까지 우리는 동부 아라비아 문명에 대하여 조사해 왔다. 이제 아라비아 북부, 남부, 중앙의 문명에 관심을 돌려보자.

   

동시에 존재하였던 다른 아라비아 왕국과 도시의 비문에서 언급된 다양한 아라비아 왕국과 도시로부터 비문들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 

 

예멘 비문에서 메카는 없다

 

앞서 언급했듯이 예멘의 고고학적 비문은 중동에서 가장 많이 발견된 것들 가운데 하나이다. 우리는 그것들에서 그들의 왕, 전쟁, 역사적 사건에 대한 많은 정보를 발견한다. 게다가, 우리는 아라비아와 그 너머의 주변 문명에 대해 많은 것을 배운다.

    

예멘의 비문에서, 우리는 남부 아라비아의 다양한 왕국에 대한 상당한 양의 정보를 발견한다. 예를 들어, 킨다(Kinda)는 중앙 아라비아에 있는 왕국으로 후에 메카가 건설된 곳에서 약 500마일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었다. 그것이 예멘 비문에 잘 나타나 있다. 마찬가지로 오늘날 메카의 북쪽에 있는 아라비아 북부의 도시 케다르(Qedar)와 데단(Dedan)도 예멘의 비문에 잘 나타나 있다. 그것들은 예멘 왕국들과 메카 동쪽과 북쪽의 아라비아 도시들 사이에 존재했던 상업적 관계를 확인한다.

  

메디나라고도 불리는 야트립(Yathrib) 도시조차 예멘의 비문에 나타나 있다. 예를 들어, 사바 비문은 사바 사원에서 여성 노예를 봉헌했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비문에 따르면 노예들은 가자, 야트립, 데단, 이집트 출신이었다.[26] 그렇다면, 기원전 6세기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야트립(또는 메디나)이 예멘 비문에 나타난다면, 메카가 야트립 보다 예멘에 더 가까운데도 메카가 아브라함 시대에 존재하였지만 예멘의 비문에 발견되지 않을 수 있는가?

   

우리는 또한 예멘 비문에서 악숨(Axum)과 하바샤트(Habashat)의 왕국에 대한 중요한 언급을 발견한다. 이 왕국들은 에티오피아 서부, 홍해 건너편에 존재했다.[27] 우리는 메카가 건설된 위치의 북쪽, 동쪽, 서쪽에 위치한 왕국들에 대하여 예멘인들의 비문에서 더 많은 정보를 찾을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메카에 대한 예멘의 비문은 찾을 수 없다. 다시 한번 무슬림들의 주장대로 메카가 서기 4세기 이전 아라비아의 주요 도시였다면 필자가 언급한 다른 아라비아와 에티오피아 왕국들 가운데 어느 나라보다도 예멘 비문에 많이 언급되었을 것이다.

    

근접성 또한 중요하다. 만약 메카가 존재했다면, 메카는 언급된 다른 왕국들보다 예멘과 더 가까웠을 것이다. 예멘 비문이 단순히 메카를 건너뛰는 것은 정당화되거나 논리적으로 설명될 수 없는 일이다. 로마가 스페인과 영국을 연대기에서 언급하면서도 이 두 나라보다 로마에 훨씬 가까운 프랑스를 언급하지 않는 것과 같을 것이다. 고고학적 증거나 뒷받침이 없이 예멘 영토와 접해 있었을 메카가 서기 4세기 이전 아라비아 고대사에서 지배적 도시였다고 주장하는 것은 논리적이지 못하다.

 

아라비아 북부 도시들의 비문에서 메카는 없다. 

 

데단과 같은 아라비아 북부의 도시들에서 발견된 비문을 보면, 우리는 같은 현상을 볼 수 있다. 그들의 비문은 아라비아의 서부 및 남부 문명을 언급하며 그들 자신의 역사의 양상을 드러낸다. 예를 들어 아라비아 북부 도시 데단의 비문에서 남부 아라비아의 마인(Main) 예멘 왕국의 일부 왕들에 대한 언급을 찾을 수 있다.[28]

    

서부와 서남부 아라비아 왕국에 대한 많은 정보가 북부 도시들의 비문에서 발견되지만, 메카는 내가 언급한 남부 및 서부 아라비아 왕국보다 북부 도시들에 더 가까울지라도 전혀 언급되지 않았다. 이러한 증거에 비추어 볼 때, 기원전 21세기부터 메카가 아라비아의 주요 도시였다고 주장하는 이슬람 전통은 수 세기 동안 로마가 이탈리아에 존재하였지만, 이탈리아의 어떤 비문에서도 그것에 대한 언급은 찾아볼 수 없는 것과 같다. 실제로 로마는 고대 이탈리아 비문에서 가장 많이 언급된 도시이다. 그리스의 아테네와 메소포타미아의 바벨에서도 같은 논리가 적용된다. 따라서 이슬람 전통에서 메카에 대한 주장이 사실이라면 메카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우리는 이전에 몇몇 무슬림들이 프톨레미가 마코라바(Macoraba)라고 불리는 도시에 대해 언급한 것이 사실 메카에 대한 언급이라고 주장하는 것을 보았다. 우리는 이미 프톨레미의 경도와 위도 체계로 마코라바가 메카가 아니라 서기 2세기 옛 예멘 도시 카르나(Carna)의 남쪽 예멘의 작은 정착지라는 것을 증명했다. 아브라함 시대부터 메카가 주요 도시로 존재했다는 증거로서 그러한 주장을 고수하는 것은 부적합하고 비논리적이다. 따라서 모든 반대되는 증거에도 불구하고 아브라함 시대부터 아라비아에 메카가 계속 존재해왔다고 주장하는 것은 일관성이 없고 비논리적이다. 그것은 터무니없는 주장이다. 고고학과 역사와 모순되는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명확한 고고학적, 역사적 사실을 재해석하거나 무시할 수 없다는 것은 진리다.

    

다시 한번 우리는 메카가 무슬림들이 그것이 존재하였다고 주장한 시기보다 오랜 후에 건설되었다는 것을 보여주며 우리의 연구를 확증하는 역사의 증언을 본다. 

 

그 지역을 점령하였던 국가들의 기록 연구에서 메카는 없다

 

서기 4세기 이전의 메카의 부재는 결국 메카가 건설된 지역인 아라비아 북부와 중부에 살았던 많은 고대 문명의 기록된 역사와 유적을 바탕으로 한 입증 가능한 결론이다. 아라비아 북부와 중부는 역사를 통틀어 많은 나라들에 의해 점령되었지만, 그들의 연대기에서 메카에 대한 언급이 있는 비문과 고고학적 발견물은 어디에도 없다.

 

마인 왕국의 팽창

 

마인 왕국은 북쪽으로 확장하여 지역과 도시를 식민지로 삼았지만, 메카가 그들과 가장 가까운 도시였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비문에는 메카에 대한 언급이 없다.

   

마인(Ma'in)은 아라비아 북부에 식민지를 건설한 왕국 중 하나이다. 마인은 아라비아 남서부의 예멘에서 그들의 상업적 식민지를 통해 북쪽으로 확장되었다. 이 식민지들은 시리아와 팔레스타인과의 무역을 촉진했다. 아라비아 북부에 있는 마인의 식민지는 기원전 559년경 시작된 아케메네스(Achaemenid) 왕조 시대부터 존재했다. 북쪽으로의 식민지화에서, 민애인들(Minaeans)은 아라비아의 북부 도시 데단을 점령했다. 데단은 왕이나 통치자로 이루어진 민애 왕조를 가지고 있었고 많은 비문들을 남겼다. 민애 비문은 아라비아 북부 여러 곳에 흩어져 있다. 민애 비문은 이라크 국경 근처의 알-자우프(al-Jawf) 지역에서 발견되었다.[29] 민애 비문들은 트란요르단에 있는 민애인들이 세운 상업적 식민지에도 흩어져 있다. 아카바에서 약 20마일 떨어진 자발람(Jabal Ramm)에서 민애 비문이 발견되었다.[30] 요르단 남부에 위치한 마안(Maan)이라는 이름으로 민애 이름을 딴 유명한 식민지가 있었다. 분명히, 민애인들은 오랫동안 히자즈(아랍 북부와 중서부)를 점령했다. 생각해보면 히자즈를 점령한 그 민애인들이 예멘과 아라비아 북부 여행에서 마주쳤을 메카라는 도시를 어떻게 방치할 수 있었는지 자문해본다. 당시 메카가 존재했다면 중앙 아라비아를 통한 무역로를 보호하기 위해 메카를 정복하고 식민지화하는 것이 중요했을 것이다. 메카는 사막을 여행하면서 캐러밴들이 쉴 수 있는 편리한 도시였을 것이고, 예멘과 아라비아 북부 도시들을 잇는 가장 직접적인 경로에 위치했을 것이다. 그러나 민애인의 카라반들은 메카가 건설된 지역에서 어떠한 종류의 정착지도 접하지 못했다. 대신, 캐러밴들은 아라비아의 내륙을 향해 더 먼 길을 여행했고, 야트립, 그리고 데단까지 도달했다.

 

메카를 언급하지 않고 그 지역을 점령한 리얀(Lihyan)

 

리얀은 아라비아 북서부를 지배했던 또 다른 부족이었다. 그들의 왕은 데단의 도시를 통치했고 아라비아 북서부의 무역로를 통제했다. 리얀은 또한 "마다인 살리흐(Madain Salih)"라고도 불리는 헤그라(Hegra)를 통치하여 통치를 남쪽으로 확장하여 아라비아의 중서부 지역까지 통치하였다. 그러나, 우리는 풍부한 리얀 문헌에서 메카의 비문이나 다른 언급을 찾을 수 없다.

    

기원전 120-100년경에 데단을 통치하였던 마수두(Mas’udu)는 데단의 비문에 따르면 리얀의 마지막 왕이었다. 

 

나바테아 영토

 

나바테아인들은 메카가 나중에 건설된 아라비아 중서부의 사막을 포함하여 남쪽으로 향하는 육로를 따라 식민지를 형성했다.

 

나바테아인들은 남쪽으로 확장했고 리얀 왕국이 소유한 영토를 점령했다. 아라비아 북부에 있는 그들의 비문은 서기 4세기 초까지 계속 쓰여졌다.[31]

  

나바테아인들은 그 지역의 역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기원전 24년과 23년 로마 제국의 아라비아 원정에서 홍해 위에 있는 루체 코메(Leuce Come) 마을은 원정 당시 나바테아인들의 지배하에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탐험에 동행한 그리스의 지리학자 스트라보(Strabo)는 나바테아의 지배권은 남쪽으로 루체 코메까지 확장되었다고 기록했다. 사실, 그는 나바테아의 왕인 오보다스(Obodas)와 관련이 있는 아레타스(Aretas)에 의해 통치된 다른 지역을 언급했다.[33] 나바테아의 영향력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스트라보는 "오보다스가 통치하는 영토에 있는 마을"이라고 언급했는데, 그 마을은 말라탄(Malathan)에서 62마일 떨어진 홍해와 가까운 에그라(Egra)였다.[34] 오보다스는 나바테아의 왕이었고, 말라탄은 우리가 이전에 보았듯이, 후에 메카가 건설된 곳과 매우 가까운 항구였다. 스트라보는 나바테아인들의 수도 페트라로 가는 길에 예멘에서 온 나바테아 카라반의 규모를 보고하기도 했다. 스트라보는 이 캐러밴들이 "사람들과 낙타들은 군대와 전혀 다른 점이 없었다"고 썼다.[35] 스트라보의 언급은 로마 원정 당시 아라비아 북서부와 아라비아 중서부의 일부를 지배했던 나바테아인들이 홍해를 따라 육로로 이동할 때 예멘까지 캐러밴을 지키곤 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또 다른 고대 역사학자 플리니는 나바테아인들이 "나바테아인들의 식민지인 미개한 나바테아 인 영토를 통해" 육로를 어떻게 통제했는지에 대해 말한다.[36] 아라비아 북부와 중부에 있는 이 황폐한 부분은 홍해를 건너 아프리카 해안 미개인의 땅과 마주하고 있어 나바테아인들이 남쪽으로 향하는 육로를 따라 식민지를 형성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그들은 메카가 나중에 건설된 지역을 포함한 아라비아 중서부 사막을 통제했다.

 

메카는 수 세기 전에 나바테아인들이 걸어 다녔던 왕래가 많은 육로 위에 지어졌지만, 나바테아인들은 그들의 통제 하에 있는 작은 도시들을 반복적으로 언급했음에도 불구하고 메카를 언급하지 않았다.

 

나바테아의 많은 비문들과 다른 고고학적 발견들을 고려하면, 어떻게 나바테아인들이 메카 같은 도시를 언급하지 않았을까? 특히 메카가 그들이 통제하는 왕래가 많은 육로를 따라 건설되었다고 무슬림들이 주장하기 때문에 더욱 그러하다. 나바테아인들이 그들의 통제하에 있는 가장 작고 보잘것없는 장소들에 대해 비문에 썼는데, 어떻게 그들이 메카를 놓칠 수 있었을까? 그 통제하에 있는 몇 개의 마을과 작은 도시들을 반복적으로 언급하면서, 한 나라의 오랜 역사 기록이 한 도시를 등한시하는 것은 믿을 수 없는 것이다.

 

킨다는 아라비아 중서부 지역을 통치하였다. 그들의 비문에 대한 연구는 메카가 서기 2세기와 3세기에 존재했다는 것을 부정한다.

 

나바테아인들이 히자즈를 지배했을 뿐만 아니라, 한때 아라비아 북서부와 중부에 위치하여 결국 메카가 건설되었던 지역을 지배했던 다른 나라들도 있었다. 이 왕국들 가운데 하나가 중앙 아라비아에 연맹을 형성한 킨다였다. 때때로 킨다는 나중에 메카가 건설된 사막을 포함해서 히자즈를 지배하기도 하였다. 그 비문을 통해 기록된 킨다의 역사는 기원후 2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수도 카리아트 알-파우(Qaryat al-Fau)는 메카에서 동쪽으로 500마일 떨어진 야마마(Yamama) 근처에 있었다. 그들의 비문에는 메카에 대한 언급이 없고, 따라서 서기 2세기와 3세기에 메카가 존재하지 않았다는 우리의 결론을 입증한다.

 

후에 메카가 건설된 지역을 차지했던 힘야르인들(Himyarites)의 비문은 3세기 동안 메카가 존재하지 않았음을 확증한다.

 

히자즈를 점령한 또 다른 왕국은 예멘에서 온 힘야르 왕국으로 기원전 115년경에 시작되었다. 서기 275년, 힘야르는 사바를 점령했고, 그 후 카르나인들(Carnaites)의 땅을 향해 북쪽으로 확장했다.[37] 힘야르는 육로를 통제하였고, 히자즈의 대부분을 장악하였다.

    

힘야르인의 비문이 풍부함에도 불구하고, 또 다시 메카의 존재는 없는데, 이것은 메카가 서기 3세기 말이나 4세기 초에 존재하지 않았음을 암시한다.

 

이러한 나라들이 존재하였을 때 메카가 존재하였다면 중앙 아라비아를 점령하였던 모든 나라들이 메카를 간과한다는 것은 논리가 되지 않는다.   

 

이러한 사실들을 보면서, 우리는 고전 저자들과 에티오피아인, 콥트인, 기독교인 등의 이야기들을 조사하면서 우리가 내린 것과 같은 결론에 도달한다. 히자즈를 점령했거나, 결국 메카가 건설된 육로를 지배했던 아라비아 국가들의 비문과 고고학적 기록에는 모두 메카가 빠져 있다. 이것은 메카가 기원후 4세기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은 확실한 사실이다. 중서부 아라비아를 차지한 모든 나라들은 수많은 비문으로 알려져 있다. 이 국가들 가운데 어느 나라도 그들이 작은 마을들을 언급했던 지역에서 도시를 기록하지 않은 나라는 없었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 모든 나라들이 그들이 기록한 다른 작은 도시들과 마을들보다 그들 각자에게 더 가까운 메카를 놓칠 수 있었을까? 마치 메소포타미아 같은 땅에 있는 모든 왕국이 바벨이라는 도시를 기록하지 않는 것과 같다. 아무도 이것을 받아들이지 않을 것인데 그 이유는 고대 도시의 중요성은 분명하며 그 영토를 차지하고 있던 왕국들의 비문에서 제외되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한 나라의 비문에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영토를 점령한 각 나라, 심지어 접촉한 나라들의 비문에도 수백 번 등장한다.

   

그러므로 우리의 무슬림 친구들은 아라비아를 둘러싸고 있는 나라들의 고고학, 심지어 세계 모든 나라의 고고학으로부터 배워야 한다. 기원전 2,000년 전에 특정 도시가 존재했다는 주장을 입증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증거가 필요한가? 그 주장을 받아들일만한 고고학적 조건은 무엇인가? 특히 메카 지역은 다양한 시대에 히자즈를 점령한 왕국들로 둘러싸여 있고, 그것의 고고학과 역사가 중동의 주변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또는 더욱 잘 기록된 아라비아와 같은 조건에서는 더욱 그렇다. 메카가 존재했다면, 분명 역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러지 않았다. 증거는 모든 시대와 역사에서 고고학의 명백한 참고가 되고 필수적인 기초가 되어야 한다.

 

메카의 존재에 대한 중앙 서부 아라비아를 점령하였던 거대 국가들의 기록과 이슬람의 주장

 

아시리아인, 바빌로니아인, 페르시아인, 로마인들은 모두 아라비아 북부와 중부를 차지하고 있던 고대 제국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 중 누구도 메카의 존재를 언급하지 않았다.

 

역사를 통틀어 많은 위대한 제국들은 아라비아의 일부, 특히 북서부와 중서부 아라비아를 합병했다. 이 황량한 지역에 대한 관심은 주로 극동과 지중해 지역 사이의 무역로에 위치한 전략적 위치 때문이었다. 극동에서 무역은 인도양을 건너 아라비아 남부의 항구까지 이어졌다. 무역로는 아라비아 서부를 거쳐 지중해를 따라 있는 중동 국가들로 이어졌다. 이들 중 무역은 지중해 지역의 나머지 지역에까지 미쳤다. 이것은 고대 제국에 있어서 그 지역의 통제를 필수적으로 만들었다.

   

제국들이 아라비아 북서부와 중서부를 합병하려는 두 번째 이유는 자신들의 보호를 위해서였다. 아라비아 북부와 국경지대 부족 연합은 이웃에 대한 잦은 공격으로 알려져 있다. 합병은 대제국과 아라비아의 적대적인 부족들 사이에 완충지대를 제공했다.

    

아라비아 북서부와 중부에 관심을 갖게 된 세 번째 이유는 금과 다른 중요한 광물의 존재 때문이었다. 후에 메카가 건설된 곳에서 동쪽으로 약 500마일 떨어진 중앙 아라비아의 야마마(Yamama) 지역은 금광과 구리 광산으로 유명했다. 아라비아는 오만의 구리 광산으로도 알려져 있다.

 

아시리아의 지배

 

아라비아 역사의 전문가인 글레이저(Glaser)는 아시리아인들이 기원전 8세기와 7세기에 그들의 통치를 야마마(Yamama)로 확장했다고 주장한다. 그는 아라비아 부족과의 아시리아 전쟁에 대해 알려주는 아시리아 비문에서 언급된 장소들을 확인했다. 아슈르바니팔(Assurbanipal) 왕은 테이마(Teima)와 카이바르(Khaybar)에 군사원정을 하였다.[38]

     

아시리아 비문은 많은 것들이 아라비아 부족, 통치자, 도시를 기술하기 때문에 중요하다. 이 비문들은 아시리아인들이 기원전 8세기와 7세기 동안 이 지역을 점령하면서 얻은 직접적인 지식을 바탕으로 하기 때문에 매우 중요하다. 아시리아의 지배는 메카가 건설된 지역 근처까지 내려갔을 것으로 추정되지만, 우리는 메카나 이슬람 전통이 아브라함 시대부터 메카에 살았다고 주장하는 주르훔(Jurhum) 부족과 같은 부족에 대한 어떠한 언급도 아시리아의 비문에서 볼 수 없다.

    

아시리아의 비문에는 예멘을 통치한 사바 왕이 한 명 이상 언급되어 있다. 우리는 사바 왕들이 이라크와 이란의 국경에서 지중해까지 뻗어 있는 메소포타미아, 시리아, 레바논, 팔레스타인, 트란스요르단을 포함한 비옥한 초승달 지대에 이르는 육상 무역 경로에서 협력의 상징으로서 아시리아 왕들에게 공물을 바쳤다고 들었다. 

    

다시 한번 아시리아 비문이 메카를 언급하지 않기 때문에 우리는 메카가 기원전 9세기와 7세기 사이에 존재하지 않았다고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다. 그렇지 않았다면 메카가 그 기록들에서 언급되었을 것이다. 

 

바빌론인의 히자즈(Hijaz) 점령

 

나보니두스는 메카가 건설된 곳과 가까운 지역의 도시들을 점령했다. 그는 테이마(Teima)에서 10년을 살았지만 메카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아시리아인들은 아라비아 북부와 중부를 점령했을 뿐만 아니라 바빌로니아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기원전 556년부터 539년까지 통치한 바빌론의 왕 나보니두스의 통치 기간 동안 아라비아의 이 지역들을 점령했다. 이 왕과 그의 점령에 대한 정보는 하란 비문 (H2로 알려져 있음), 나보니두스와 왕실 연대기, 그리고 소위 나보니두스의 운문 기록(Verse Account of Nabonidus)에서 찾을 수 있다.

   

나보니두스는 제국을 그의 아들 벨사자르(Belshazzar)에게 맡겼고, 나보니두스는 아라비아의 도시 테이마로 떠났다. 그곳에서 그는 그곳의 왕을 죽이고, 도시를 점령하고, 테이마를 그의 거주지로 만들고, 궁전을 지었다.[39] 나보니두스의 하란 비문에서 우리는 나보니두스가 테이마에 머무는 동안 데단(Dedan), 파닥(Fadak), 카이바르(Khaybar), 야디(Yadi), 야트립(Yathrib;메디나)의 도시들을 정복하기 위해 더 남쪽으로 갔다는 것을 알고 있다.[40] 메카의 최종 위치에서 약 200마일 떨어진 야트립은 후에 이슬람의 발흥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나보니두스가 이 지역 전체를 지배했기 때문에, 그는 야트립에서 나오는 세 개의 육로를 모두 지배할 수 있었다. 그는 이 지역 전체를 지배했지만, 그가 남긴 비문에서 메카를 언급하지 않았다. 만약 메카가 그의 시대에 존재했다면 야트립 주변 지역에서 그의 통제하에 있지 않은 유일한 도시였기 때문에 메카는 그의 공격의 중요한 목표였을 것이다( see Fig. 4).

    

메카가 이슬람 전통이 주장하는 영향력 있는 도시였다면 나보니두스가 정복한 다른 도시들보다 훨씬 더 중요한 목표였을 것이다. 그런데 왜 그가 메카보다 덜 중요한 다른 도시들을 모두 정복하고 메카에 대해 언급조차 하지 않았을까? 그것에 대한 언급이 분명히 있어야 하였는데 그가 10년 동안 그 지역을 통치했고 그 위치에서 가장 가까운 다른 도시들에 점령하였기 때문이다. 이것은 기원전 6세기 무렵에 메카가 이 지역에 존재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페르시아의 점령

 

 페르시아인들은 아라비아의 많은 부분을 점령했고 부족과 국가들과 동맹을 맺었지만, 메카는 그들의 기록에 없다.

 

바빌로니아에 이어 같은 지역이 페르시아의 지배하에 들어갔다. 데단 근처에서 발견된 비문을 조사하면 기원전 6세기 말 아케메네스(Achaemenid) 왕조 시대에 아라비아 북부를 정복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페르시아인들은 또한 데단을 감독할 총독을 임명했다. 이것은 리얀인(Lihyanite)의 왕들이 케다르와 데단, 그리고 아라비아 북서부의 다른 지역들을 지배하기 전에 일어났다.

    

기원전 5세기에, 그리스 역사가 헤로도투스(Herodotus)는 페르시아인들이 아랍인들과 동맹을 맺었다고 우리에게 말한다. 수세기 후, 페르시아인들은 홍해 바다 항해지(The Periplus of the Erythraean Sea)를 집필할 당시 오만 지역을 점령했다.[41] 나는 이전에 홍해 바다 항해지가 쓰여진 시기가 서기 62년경이라고 언급했다. 사실 서기 1세기에는 오만을 포함한 페르시아만 지역 전체가 옛 이란(페르시아)의 지배 왕조인 파르티아(Parthian) 제국 아래 있었다.[42] 페르시아 만 근처의 제라(Jerra)땅은 서기 320년경에 페르시아의 영토가 되었다. 오늘날, 제라는 알-카티프(al-Qatif)로 알려져 있다.[43] 페르시아인들은 많은 아라비아 부족들과 동맹을 맺었다. 그 중에는 킨다 부족도 있었는데, 킨다 부족은 한때 아라비아 중부와 예멘 남부 하드라마우트(Hadramaut)의 일부까지 영토를 확장했다.[44] 페르시아는 무함마드 시대까지 야마마(Yamama)에 광산을 보유하고 있었다. 야마마는 킨다의 수도가 있었던 지역으로 오늘날의 메카에서 약 500마일 떨어져 있었다. 이것은 페르시아인들이 얼마나 멀리 이 지역에 침투하여 영향을 끼쳤는지를 반영한다. 페르시아인들은 국경을 보호하기 위해 메소포타미아 국경에 위치한 알-히라(al-Hira) 부족인 라흐미드(Lakhmids)를 이용했다. 라흐미드 왕조는 사산 왕조 시기에 속국 통치자가 되었다. 알-타바리(Al-Tabari)는 파팍(Papak)의 아들 아르다시르(Ardashir)시대에 아라비아 부족들이 히라 지역에 정착했다고 전한다.[45] 아르다시르는 사산조 왕국(Sassanian Kingdom)의 창시자였다. 그는 또한 "아르타크세르시스(Artaxerxis)"라는 이름으로도 알려져 있다. 그는 서기 226년에서 240년 사이에 통치했다. 라흐미드를 통해 페르시아인들은 아라비아 남부와 남서부의 다른 부족과 도시들과 긴밀한 관계를 형성했다. 이것이 중앙 아라비아에서 그들의 지속적인 영향력에 더해졌다.

    

만약 메카가 서기 3세기에 존재했다면, 페르시아의 기록들은 분명히 메카를 언급했을 것이다. 비록 페르시아인들이 아라비아의 많은 지역에 침투했지만, 우리는 페르시아의 기록이나 문헌에서 언급된 메카를 찾을 수 없다. 페르시아인들이 아라비아 남부와 비옥한 초승달 지대 사이의 모든 육로를 통제하는 데 관심이 있었고, 메카는 결국 이 무역로들 중 가장 중요한 지점들 중 하나에 건설되었기 때문에 이것은 중요하다. 더욱 중요한 것은 페르시아인들이 직접 정복하거나 기존 국가들과의 동맹을 통해 아라비아 전역으로 영향력을 확장하는데 관심이 있었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페르시아의 아라비아 정복 계획과 관련된 공식적인 페르시아 기록에는 메카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것은 적어도 서기 4세기 초까지는 메카가 존재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서부 아라비아로 로마의 원정

 

로마의 아라비아 서부 원정 기간 동안, 그들은 그 지역의 모든 마을과 도시들을 정확하게 기록했다. 그들의 저작은 기독교 시대인 서기 1세기 무렵에는 메카가 존재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지금까지 아시리아인, 바빌로니아인, 페르시아인에 대하여 썼다. 이제 아라비아 북부와 중서부를 차지했던 마지막 고대 제국인 로마 제국으로 향한다. 로마인들은 기원전 23년경에 갈루스(Gallus)의 원정 기간 동안 아라비아의 이 지역을 정복했다. 갈루스가 처음에 아라비아 북서부를 점령하고, 그 후 예멘 국경에 있는 나지란(Najran)까지 아라비아 중서부의 모든 도시를 정복한 경위에 대해서는 이미 자세히 이 원정을 논했다. 그곳에서부터 갈루스는 마립(Ma'rib)에 도달할 때까지 예멘의 도시들을 정복했다. 우리는 이 탐험이 당시의 중요한 역사학자이자 지리학자였던 스트라보(Strabo)에 의해 역사적으로 어떻게 기록되었는지 보았다. 그는 아라비아 북서부와 아라비아 중서부 지역의 내용을 상세히 기록했는데, 그 지역은 결국 메카가 건설된 곳이다. 그러나 스트라보의 조사에서 아라비아 북서부와 중서부의 작고 보잘것없어 보이는 마을들이 언급되었지만, 그는 메카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스트라보의 저술 외에도, 플리니(Pliny)가 아라비아 북서부와 중서부를 조사할 때 참조했던 다른 로마 기록들이 있다. 스트라보의 저작과 마찬가지로, 메카는 플리니의 조사에 없었다. 로마인들은 그들이 정복하거나 심지어 방문한 지역의 장소, 도시, 마을들을 매우 정확하게 보고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들의 저작은 우리에게 메카가 스트라보와 플리니의 시대인 기원전 1세기에는 존재하지 않았다는 것을 확인시켜준다.

 

수천 년 혹은 그 이상에 걸친 위대한 제국들은 아라비아 중서부를 점령했고, 메카를 언급하지 않고 작은 마을들을 언급했다. 어떻게 무슬림들은 이 위대한 제국의 기록을 무시할 수 있을까?

 

우리는 수년간 아라비아 북부와 중서부의 일부를 차지했던 위대한 고대 제국들의 기록을 조사했다. 우리는 아시리아, 바빌로니아, 페르시아, 로마인들의 글과 비문에서 메카의 존재에 대한 사례를 찾으려고 노력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메카는 아라비아 북부 도시와 남부 예멘 사이의 전략적 위치에 있었지만, 우리는 그 존재에 대한 기록이 없다. 이 지역들은 이 제국들에게 잘 알려져 있었다. 메카 주변 지역을 통제하는 것이 예멘과 비옥한 초승달 지대, 지중해 지역을 오가는 교역로와 캐러밴을 통제하는 전략이었지만, 우리는 메카의 존재에 대한 기록이 없다. 예멘은 극동, 특히 인도와 해상 무역의 전략적 요충지였다. 이 모든 무역을 통제하려는 그들의 야망을 고려할 때, 이 네 제국 모두가 이 지역의 메카 같은 도시를 언급하는 것을 소홀히 할 것이라고 믿기는 어렵다. 이 지역을 모두 점령하고 침투한 그런 위대한 제국들의 기록을 연구하지 않는 것은 우리가 가진 가장 중요한 역사적 기록들을 버리는 것이다. 만약 우리가 이 위대한 제국들의 기록을 고려하지 않고 우리의 판단을 내린다면, 우리는 분명히 잘못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떤 기준으로 무슬림들은 그 제국들이 중동 지역을 지배했던 수천 년 동안 메카가 존재했다고 주장하는가? 무슬림들은 메카가 실제로 존재했다고 주장하는 어떤 증거를 가지고 있는가? 답은 간단하다. 무슬림들은 메카가 존재했다고 주장할 때 메카가 존재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이 오랜 기간의 어떠한 역사적 문서도 가지고 있지 않지만, 그들은 그들의 가르침을 집요하게 고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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