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 잘못되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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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세계의 모든 기준에 의하여-경제발전, 식자율(글을 읽고 쓰는 능력), 과학적 성과- 한 때 막강했던 무슬림 문명은 바닥으로 떨어졌다. 중동의 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외세를 비난하고 있다. 그러나 무슬림 세계의 기본적인 고통은 단순한 자유의 결핍일 것이다.
글쓴이 Bernard Lew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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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를 통하여서 중동에서-그리고 정말로 모든 이슬람 국가들에서 일들이 대단히 잘못되어 왔다는 것은 분명히 확실하다. 천년이상 동안 이슬람의 경쟁자였던 기독교와 비교하여 이슬람 세계는 빈곤하고 약하고 무지하게 되었다. 서방세계의 제1위와 그로 인한 서방세계의 지배는 무슬림의 대중과-보다 고통스럽게도-무슬림 개인 삶의 모든 면에 침투하면서 모두가 보기에 분명해졌다.
무슬림 근대화주의자들은-개혁 또는 혁명으로-군대와 경제와 정치의 세 가지 주요 분야에 자신들의 노력을 집중하였다. 성취한 결과는 실망스럽다고 말 할 수 있다. 현대화된 군대가 승리하려고 노력하였으나 계속해서 비참한 패배를 맛보았다. 발전을 통한 번영의 노력은 일부 국가들에서 외부의 도움을 요하는 빈곤하고 부패한 경제를 초래하였고 다른 국가들에서는 단하나의 자원-원유-에 비정상적으로 의존하고 있다.
그리고 이것마저도 서방세계 창의력과 산업에 의하여 개발되고 추출되고 이용되어서 조만간 소진되거나 원유가 사용되거나 운반되는 곳마다 토양과 바다와 대기를 오염시키고 세계경제를 변덕스러운 독재자들의 동맹에 맡기는 연료에 국제사회가 지쳐감에 따라서 대체될 가능성이 있다. 그 가운데 최악은 정치적인 결과인데 자유에 대한 오랜 열망은 압제와 세뇌를 위한 그들의 보안기관 만이 유일하게 현대적인 전통적 군주국에서 독재정권까지 망라한 초라한 전제정치 국가들의 조종수단으로 남았다.
많은 구제책들이-무기와 공장, 학교와 의회-시도되었지만 바라는 결과를 얻지 못하였다. 여기저기서 약간의 일시적 효과가 있었고 인구의 한정된 부분에 약간의 이득이 있었다. 그러나 이슬람과 서방세계 사이의 증가하는 불균형을 교정하거나 증가를 정지시키는 것조차 실패하였다.
미래는 더 안 좋다. 무슬림들이 수세기 동안 부유하고 강력하였던 다음에 빈곤해지고 약해지는 것, 그들의 권리로 여겨왔던 지도적인 지위를 잃어버리는 것, 서방세계를 쫓아가는 역할로 입지가 줄어든 것은 더 안 좋다. 그러나 20세기 특히 그 후반은 굴욕을 더 안겨주었는데-그들이 더 이상 서방세계를 쫓아가는 자들 가운데 첫 번째 주자가 아니라 특히 동아시아의 열심이고 더 성공적인 서구화주의자들의 기나긴 줄에서 끝으로 떨어지고 있다는 자각이다. 일본의 성장은 격려도 되지만 치욕도 된다. 나중에 다른 아시아 경제력의 성장은 그들에게 치욕일 뿐이다.
옛 문명의 자랑스러운 후손들은 자신들의 계약자들과 기술자들에게 불가능한 사업을 수행하기 위해서 서방의 회사들을 고용하는데 익숙해졌다. 지금 중동의 통치자들과 사업가들은 이러한 사업들을 수행하기 위해서-단지 최근에 일본 식민 통치에서 해방된-한국으로부터 계약자들과 기술자들을 초청하고 있다. 미래는 더 안 좋은데 끝에서 느리게 나가는 것은 아주 불길하다. 현대 세계에서 참고하는 모든 기준에 의하여-경제발전과 일자리 창출, 식자율, 교육적 과학적 성취, 정치적 자유와 인권존중-한 때 강력한 문명이었던 이슬람이 실제로 바닥으로 떨어졌다.
“누가 우리에게 이렇게 했어?”라는 질문은 물론 만사가 잘 못될 때 보통사람들의 반응이고 중동에서 많은 사람들이 과거와 현재 이 질문을 한다. 그들은 몇 가지 다른 대답을 발견하였다. 자신의 불행에 대하여 다른 사람들을 비난하는 것은 보통 쉽고 언제나 더 만족감을 준다. 오래 동안 몽고족은 좋은 악역이었다. 13세기 몽고의 침략은 무슬림 권력과 이슬람 문명의 파괴와 이어서 일어나는 허약함과 침체로 보여 지는 것에 대하여 비난받았다. 그러나 얼마 후에 역사가들과 무슬림들과 다른 사람들은 이 논쟁에서 두 가지 결함을 지적하였다. 그 하나는 이슬람의 위대한 문화적 업적의 일부가 특히 이란에서 몽고의 침략 이전이 아닌 그 이후에 있었다는 것이다. 나머지 하나는 더 받아들이기 어렵지만 그래도 부인할 수 없는 것으로 몽고족들은 이미 치명적으로 약해져있었던 제국을 전복하였고 정말로 한 때 칼리프의 막강한 제국이 어떻게 동아시아에서 초원을 건너온 유목민 무리들에게 굴복하였는지 이해하기가 어렵다.
민족주의의 출현은-유럽에서 수입되었는데-새로운 개념을 만들었다. 아랍족은 그들의 문제에 대하여 튀르크족을 비난할 수 있었는데 튀르크족은 수세기 동안 아랍족을 지배하였다. 튀르크족은 그들 문명의 침체에 대한 비난을 과거 아랍의 죽어버린 영향력에 돌릴 수 있었는데 튀르크족 사람들의 창조적인 에너지는 아랍의 영향력 안에 붙잡혔고 활동할 수 없었다. 페르시아인들은 그들의 옛 영광을 잃어버린 것에 대한 비난을 아랍족과 튀르크족과 몽골족에게 돌릴 수 있었다.
19세기와 20세기에 대부분의 아랍세계에서 영국과 프랑스의 지배는 새롭고 더 그럴듯한 희생양-서방 제국주의-를 만들어내었다. 중동에서는 그러한 비난에 대한 좋은 이유가 있었다. 서방의 정치적 지배와 경제적 침투와 그리고-가장 길고 가장 깊고 모든 것 가운데 가장 교활하였던- 문화적 영향은 그들을 새로운 방향으로 전환시키고 새로운 희망과 두려움을 야기하며 그들의 과거 문화에 전례가 없는 새로운 위험과 새로운 기대를 만들면서 그 지역 전체를 변화시키고 그 지역 사람들의 삶을 바꿔버렸다.
그러나 앵글로 프랜치의 막간극은 비교적 간단하여서 반세기 전에 끝났고 안 좋은 상황을 향한 이슬람의 변화는 오래전에 시작되었고 나중에도 약화되지 않았다. 불가피하게 영국과 프랑스의 악당역할은 서방세계 지도력의 다른 측면과 함께 미국에 의하여 계승되었다. 그 죄를 미국에 전가하려는 시도는 상당한 지지를 얻었으나 비슷한 이유로 설득력 없이 남아있다. 몽고족의 침공과 마찬가지로 앵글로-프랜치 지배와 미국의 영향은 중동국가들과 사회들의 내부적 연약함의 원인이 아닌 결과였다. 그 지역의 내부와 외부의 일부 관찰자들은 전에 영국에 속했던 식민지시대의 발전에서 차이점을-예를 들면 중동의 아덴과 싱가포르 또는 홍콩 간의 또는 인도에서 한때 대영제국을 만든 여러 가지 나라들 간의 차이점을 지적한다.
이 논쟁에서 또 다른 유럽의 기여는 반유대주의인데 잘못된 모든 것에 대하여 “유대인들”을 비난한다. 전통적인 이슬람 사회에서 숫자가 적은 유대인들은 통상적인 속박과 빈번한 위험을 경험하였다. 17세기와 18세기에 서방세계의 관용이 나타나고 확산될 때까지 그들은 대부분의 중요한 점에서 기독교인들의 지배 하에서 보다 무슬림들의 지배 하에서 더 대우가 나았다. 드문 예외로 유대인에 대한 적대감을 가진 상투적인 문구가 이슬람 전통사회 내부에 존재하는 곳에서 이슬람 사회는 의심하고 집착하기보다는 경멸적이고 멸시적이었다. 이것이 1948년의 사건-이스라엘의 건국을 막지 못한 사건-을 굉장한 충격으로 만들었다. 일부 저술가들이 그 당시 관찰하였듯이 서방세계의 거대한 제국의 힘에 의하여 패배당하는 것은 충분히 굴욕적이었고 경멸하는 유대인 악당의 손에 같은 운명을 당하는 고통은 용인될 수 없었다. 반유대주의와 간교하고 사악한 괴물로서 유대인의 이미지는 위로를 주는 해결책이었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중동에서 최초의 반유대주의 성명은 기독교 소수 집단 안에서 발생하였으며 보통 유럽의 기원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그것들은 영향이 제한되었는데 예를 들면 프랑스의 드레퓌스 재판에서 한 유대인 장교가 적대적인 법정에 의하여 불공정하게 기소되고 정죄되었을 때 무슬림 의견들은 그의 기독교인 박해자들에 대항하여 그 박해받는 유대인에게 호의를 보였다. 그러나 그 독은 계속해서 확산되었고 1933년에 시작된 독일 나치와 그것의 다양한 대변기관들은 아랍세계에 유럽-스타일의 반유대주의를 조장하는데 일치단결되어 전반적으로 두드러지고 성공적인 노력을 하였다. 팔레스타인을 위한 투쟁은 역사의 반유대주의 수용을 크게 용이하게 하였고 일부 사람들이 중동에서-그리고 정말로 세계에서-모든 악을 유대인들의 은밀한 계략의 탓으로 돌렸다. 이러한 해석은 교육과 대중매체와 오락물에서도 보여 지며 그 지역 공개적 토론에서 대부분 확산되었다.
자주 제시된 하나의 논쟁은 동방과 서방 사이의 변화된 관계의 원인은 중동의 쇠퇴가 아니라 서방의 부흥이며-서방을 변화시키고 서방의 부와 힘을 거대하게 증가시킨 지리적 발견과 과학적 기술적 산업적 정치적 혁명이다. 그러나 이 문제는 그 질문을 다시 말하게 할 뿐인데 왜 미국 땅의 발견자들이 일찍이 그러한 항해들이 행하여졌던 무슬림들의 대서양 항구로 부터가 아니라 스페인의 항구로부터 시작되었는가? 왜 그 위대한 과학적 발견이 사람들이 합리적으로 기대하였을지도 모르는 보다 부유하고 보다 발전되고 대부분의 점에서 보다 계몽된 이슬람 세계에서가 아닌 유럽에서 일어났는가?
책임공방의 더 복잡한 형태는 그것의 책임을 외부가 아닌 내부인 이슬람 사회에서 찾는다. 그 책임의 하나가 종교인데 좀 더 구체적으로 이슬람이다. 그러나 이슬람을 그렇게 비난하는 것은 보통 위험하고 자주 시도되지 않는다. 그것이 아주 바람직한 것도 아니다. 중세기 대부분 동안 문명과 발전의 중요한 중심이었던 것은 동방의 더 오래된 문화도 아니었고 서방의 더 새로운 문화도 아니었으며 이슬람의 세계였다. 이슬람 세계에서 오래된 과학은 재발견되고 발전하였고 새로운 과학이 만들어졌고 이슬람 세계에서 새로운 산업이 생겨났고 제조업들과 상업이 전례 없는 수준으로 확장되었다. 이슬람 세계에서 또한 정부와 사회가 사상과 표현의 자유를 성취하였고 그로 인하여 박해받는 유대인들과 다른 사상을 가진 기독교인들이 기독교 세계를 피하여 이슬람에 피난처를 찾았다. 근대적 사상들과 비교하여 그리고 보다 진보된 민주주의에 있어서 근대적 관습과 비교하여도 중세의 이슬람 세계는 제한된 자유를 제공하였을 뿐이지만 그것은 이슬람 이전의 것들과 이슬람 동시대의 것들과 또는 이슬람 이후 대부분의 것들 어느 것에 의하여 제공된 것 보다 굉장히 많은 것이었다.
그 요지가 종종 만들어졌는데 이슬람이 자유와 과학과 경제적 발전에 장애물이라면 과거의 무슬림 사회가 세 가지 모두에서 선도자였던 것은 어떻게 된 것인가-그리고 그때가 무슬림들이 지금보다 그들 신앙의 원천과 영감에서 시간적으로 훨씬 가까운 시기였는가? 일부 사람들은 다른 형태로 질문을 제기하고-“이슬람이 무슬림들에게 행한 것”이 아닌 “무슬림들이 이슬람에게 행한 것”으로-특정의 가르치는 자들과 교리들과 집단들에 그 비난을 함으로 해답을 찾았다.
오늘날 이슬람주의자 또는 근본주의자로 알려진 사람들에게 있어서 현대 이슬람 국가들의 실패와 단점은 그러한 나라들을 괴롭히는데 그들이 이질적인 개념과 관습을 채택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진정한 이슬람에서 멀어졌고 그래서 그들은 전의 위대함을 잃어버렸다. 현대주의자 또는 혁신주의자로 알려진 사람들은 반대의 관점을 취하는데 이 실패의 원인이 포기한 것에 있지 않고 옛날 방식을 가지고 있는 것에 있으며 특히 너무 많은 이슬람 성직자의 융통성 없음에 그 원인이 있는데 그들이 말하는 이슬람 성직자는 천 년 전에는 창조적이고 진보적이었을지 모르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은 신앙과 관습의 유지에 책임이 있다고 본다. 그 현대주의자들의 통상적인 전략은 종교를 그렇게 거부하는 것이 아니며 특별히 이슬람은 여전히 해당이 없지만 그들의 비평은 광신주의를 겨냥한다. 그들이 한때 위대했던 이슬람의 과학적 움직임을 질식시키고 보다 전반적으로는 사상과 표현의 자유를 질식하게 만든 탓으로 돌리는 것은 광신주의이고-좀 더 구체적으로는 광신적인 종교적 권력들이다.
이 주제에 대한 좀 더 통상적인 접근은 한 구체적인 문제를 토론하는 것으로 정치적인 질서 안에서 종교와 전문적인 종교 인물들의 위치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서방세계 발전의 중요한 원인은 교회와 국가의 분리이며 세속적인 법에 의하여 통치되는 시민사회가 만들어진 것이다. 또 다른 접근은 무슬림 사회에서 여성들을 열등한 지위로 만들어 버리는 것이 중요한 문제로 보여 지는데 무슬림 사회는 이슬람 세계의 인구 절반의 재능과 역량을 박탈하고 나머지 절반 인구의 중요한 어린 시절의 양육을 문맹이고 인권이 짓밟힌 어머니들에게 맡기고 있다. 문제가 되어 왔듯이 그러한 교육을 받고 나온 사람들은 거만하거나 아니면 굴종적인 성격으로 양육되었을 가능성이 있고 자유롭고 공개된 사회에 부적합하다. 우리가 세속주의자들과 여권주의자들의 관점을 어떻게 평가하던 간에 그들의 성공과 실패는 중동의 미래를 만드는데 중요한 요소가 될 것이다.
한때 열성적인 지지를 받았던 일부 해결책들은 버려졌다. 20세기의 두 지배적인 움직임은 사회주의와 민족주의였다. 둘 다 버려졌는데-전자는 그 실패로 인하여 후자는 그 성공과 이어서 나타난 비효율성 때문이다. 민족적 독립을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되는 자유는 모든 다른 유익을 가져오는 위대한 부적으로 보여 졌다. 압도적으로 대다수의 무슬림들이 현재 독립된 나라에 살지만 이것이 그들의 문제에 해결책을 가져다주지 않았다. 두 이데올로기의 사생아인 민족적 사회주의는 소수의 국가들에서 유지되며 거대한 보안 기관들과 유일하고 강력한 정당을 통한 독재정부와 사상주입의 나치-파시스트 스타일의 정권을 유지하고 있다. 이 정권들은 생존을 제외한 모든 시험에 실패하였고 약속했던 유익을 하나도 이루지 못하였다. 다른 것이 있다면 그들의 산업기반시설들은 다른 무슬림 국가들의 것들보다 더 시대에 뒤졌고 그들의 군대는 기본적으로 테러와 압제를 위하여 만들어졌다.
현재 무엇이 잘못되었는가에 관한 문제에 대한 두 가지 해결책이 그것의 진단과 합당한 처방으로 중동에서 광범한 지지를 받는다. 일방은 모든 악을 이슬람이 하나님의 유업을 저버린 것에 돌리며 진정한 것으로 또는 상상의 과거로 돌아갈 것을 주장한다. 그것은 이란혁명 그리고 다양한 무슬림 국가들에서 소위 근본주의자 운동과 정권들의 방식이다. 다른 사람들은 과거를 비난하고 세속적 민주주의를 옹호하는데 1923년에 Kemal Atatürk에 의하여 선포되었던 터키공화국에 아주 잘 구체화되어있다.
중동의 대부분을 지배하는 압제적이지만 비효율적인 정부들에 있어서 비난할 대상을 찾는 것은 정말로 효율적이고 유용한 목적을 가지는데-그들이 해결하지 못한 가난을 설명해주고 그들이 도입한 독재를 정당화해준다. 그들의 불행한 문제들에 대한 증가하는 분노를 피하는 것을 다른 사람들에게서 외부의 대상에게서 찾는다.
그러나 중동사람들의 증가는 보다 자기 비평적 접근방법을 채택하고 있다. “누가 우리에게 이렇게 했어?”라는 질문은 단지 신경과민의 공상과 음모이론으로 인도할 뿐이다. 그리고 “우리가 무엇을 잘 못했지?”라는 질문은 자연히 “어떻게 우리가 그것을 바로 잡지?”라는 두 번째 질문으로 인도한다. 그 질문 안에 그리고 발견되는 다양한 해답들 가운데 미래를 향한 가장 최선의 희망이 있다.
지난 몇 주 동안 오사마 빈 라덴과 그의 호스트인 탈레반의 행동과 관점에 주어진 전 세계적인 주목은 한 때 인류의 역사에서 가장 위대하고 가장 발전되고 가장 공개적인 문명이었던 것의 쇠퇴에 대한 새롭고 생생한 통찰력을 제공하였다.
서방세계 자유의 이론과 실천 안에서 공부한 서방세계의 한 관찰자에게 있어서 무슬림 세계 문제들의 많은 부분에 근거가 되는 것은 자유의 결핍인데-문제를 제기하고 질문하고 말할 수 있도록 속박과 세뇌로 부터 마음의 자유, 부패와 만연하는 잘못된 관리로 부터 경제의 자유, 남성들의 압제로 부터 여성들의 자유, 독재로부터 시민들의 자유이다. 그러나 서방 세계의 경험이 충분히 입증하듯이 민주주의로 가는 길은 길고 험난하며 함정들과 장애물들로 가득하다.
중동의 사람들이 계속해서 그들의 현재의 길을 간다면 자살폭탄 테러범은 그 전 지역에 대한 상징이 되고 조만간 그러나 아직은 아닌 또 다른 외세의 지배-아마도 예전 방식으로 돌아가는 새로운 유럽으로부터, 아마도 다시 부흥하는 러시아로부터, 아마도 동방에서 일부 팽창하는 매우 강력한 나라로부터-로 절정에 달하면서 증오와 원한, 분노와 자기연민, 가난과 압제의 추락으로부터 피할 곳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불만과 피해자 의식을 버리고 그들의 차이점들을 해결하고 그들의 재능과 역량과 자원을 통상적인 창조적인 노력에 결집할 수 있다면 그들은 현시대에서 이슬람이 중세 이전과 중세기에 그랬던 것처럼 다시 한번 중동을 문명의 중요한 중심지로 만들 수 있다. 당분간 그 선택은 그들의 것이다.
원문출처 http://www.theatlantic.com/past/docs/issues/2002/01/lewis.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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