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사 교과서의 이슬람의 종교적 관용에 대한 거짓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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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고등학교 세계사 교과서의 이슬람의 종교적 관용에 대한 거짓말과 진실입니다.
교학사 92p 이슬람이 개종을 강요하지 않았고 종교적 관용을 베풀었다고 거짓말을 합니다. |
과연 그런지 꾸란을 보겠습니다.....
꾸란9장5절에 너희가 발견하는 불신자들마다 살해하고 그들을 포로로 잡거나 그들을 포위할 것이며 |
꾸란9장29절 이슬람 종교를 따르지 않는 사람들이 항복하여 인두세를 낼 때까지 싸우라고 말한다. |
꾸란9장123절에서 불신자들에게 투쟁하고 그들로 하여금 무슬림들의 엄함을 알게 하라고 말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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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슬림 관용의 뿌리
무슬림 세계의 군대가 중동의 옛 기독교 공동체를 휩쓸었을 때 무슬림 세계는 매우 빠르게 확장되었기 때문에 이슬람은 초기부터 종교적 소수집단의 문제에 직면해야 했다. 이슬람의 다른 대부분과 마찬가지로 이슬람은 이 소수집단들의 대우에 대한 구체적이고 포괄적인 법전을 개발하였다.
이슬람 정통파를 폭넓게 대변하는 이슬람 사법제도의 Shafi'i 학파의 법전인 Reliance of the Traveller는 이러한 법들을 상세하게 수록한다. 이 법들은 딤미스(dhimmis) 또는 정복된 비-무슬림들-주로 유대인들과 기독교인들인-에 대한 비-무슬림 인두세인 지츠야(jizya)의 지불을 포함한다. 이 세금은 꾸란에서 직접적으로 유래되었는데 꾸란은 무슬림들이 “하나님과 내세를 믿지 아니하며 하나님과 선지자가 금기한 것을 지키지 아니하고 진리의 종교를 따르지 아니한 자들에게 비록 그들이 성서의 백성이라 하더라도 항복하여 인두세를 지불할 때까지 그들에 대항하여 성전하라”(수라 9:29; 이탤릭체는 강조된 부분임)고 명령한다. 그 법전은 jizya의 매년 세율은 최소한 한 디나르이며 그 법전은 이것이 금 4.235그램과 같다고 설명한다. “최대한도는 쌍방의 합의에 달려있다.” 딤미스가 선택권을 가졌다면 왜 그들이 최소한도 이상의 것에 합의하는가는 설명되지 않았다.
Reliance of the Traveller는 jizya는 "관용과 정중함으로 거두어지고 여성, 어린이, 정신이상자에게는 과세되지 않았다“고 덧붙인다.
그러나 한 사람이 어깨를 톡 치는 것이 상대방에게는 맞는 것이 되듯이 그러한 관용과 정중함은 문화마다 다르다. 왜냐하면 jizya를 거두는 것은 실제에 있어서 종종 법전이 말하는 것과 많이 다르다. 시리아인 미카엘은 칼리프 마르완(Marwan) 2세(744-750)가 통치할 때 관용과 정중함은 분명히 경제적인 압박으로 인하여 배제되었다고 보고한다. 그 당시의 한 저자는 “마르완의 주요 관심사는 금을 모으는 것이었고 그의 멍에는 그 나라의 사람들을 무겁게 압박하였다. 그의 군대는 사람들에게 수많은 못된 짓을 하였는데 구타와 약탈과 남편이 보는 앞에서 여자들을 겁탈하였다.”고 말하였다. 이것이 유일한 것이 아니다. 미카엘은 마르완의 후계자들 가운데 한명인 알-만수르(al-Mansur;754-775)는 “모든 지역의 모든 사람들에게 모든 종류의 세금을 올렸다. 그는 기독교인들에게 부과되는 모든 세금을 두 배로 올렸다”라고 말한다.
이슬람 지배하의 종교적 소수그룹들에 관한 주도적인 역사가인 밧 요르(Bat Ye'or)은 8세기 이집트에서 jizya의 징수에 관한 어두운 그림을 기술한다:
“그들은 존경받는 남자들과 백발이 성성한 장로들을 무자비하게 때렸다.” 이러한 못된 짓이 압바시드(Abbasid) 제국 전체를 괴롭혔다. 하 이집트에서 세금징수로 인하여 기반이 무너지고 황폐화되었으며 고문에 지친 콥트교도들이 반란을 일으켰다(832). 아랍 통치자들은 그들의 마을과 포도원과 경작지와 교회 그리고 전 지역을 불에 태우도록 명령하였다; 대량학살을 피한 사람들은 강제로 이주되었다.
그리고 폴 프레고시는 무슬림들의 관점을 명확하게 표현한다: “기독교는 오토만 제국 내에서 보호받는 종교적 실체 또는 제국 바깥에서 공격받는 종교적 실체이든 간에 항상 최우선적이고 으뜸가는 젖을 짜낼 암소였다.”
정중함에 관하여서는 jizya는 공공장소에서 기괴하게도 무슬림 세금 관리가 딤미(dhimmi)의 머리나 목 뒷부분을 때리는 굴욕을 주는 예식을 하면서 지불되어야 했다. 물론 이 의식화된 폭력은 딤미스(dhimmis)의 굴종을 상징하였다. 실제로 12세기 꾸란 주석가 자마크흐샤리(Zamakhshari)는 jizya는 “무시당하는 느낌과 굴욕감을 주면서” 징수되어야한다고 지도한다.
이것이 단지 옛날이야기인가? 아니다. 밧 요르에 따르면 이 때리는 의식이 “20세기가 시작될 때까지 그대로 존속하였으며 예멘과 모로코와 같은 아랍 무슬림 국가들에서 의식적으로 시행되고 있었고 꾸란에 근거한 세금을 유대인들로부터 계속해서 착취하였다.”
Reliance of the Traveller도 jizya는 여자와 어린이에게서는 징수되지 않는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다시 한번 실상은 다르다: 밧 요르는 “인두세는 고문으로 착취되었으며 세금 조사관들은 자신들을 위한 선물들을 요구하였고 과부들과 고아들은 약탈되었고 탈취되었다”라고 말한다.
이론상으로 여자들과 빈민들과 병든 자들과 허약자들은 인두세가 면제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르메니아와 시리아와 유대의 자료들은 jizya가 어린아이들과 과부들과 고아들과 죽은 자에게 까지도 과세되었다는 많은 증거를 제공한다. 수세기 이상 보존된 상당한 양의 광범한 문서들은 이러한 조치들이 끈질기게 지속되었다는 것을 증거 한다. 1683년 Aleppo에서 프랑스 영사 Chevalier Laurent d'Arviex는 10살의 기독교인 어린이들이 jizya를 지불했다고 기록했다. 여기서 다시 우리는 이상적인 이론과 사실에 관한 실상 사이에 모순과 일치하지 않는 것이 있다는 것을 발견한다.
대안은 노예가 되는 것이었다. 17세기 유럽인 여행가 진-밥티스테 타베르니에르(Jean-Baptiste Tavernier)은 다음 사실을 알게 되었다:
너무 가난하여 인두세를 지불하지 못하는 아르메니아인들은 아내와 자식들과 같이 노예가 되는 운명이 되었다. 1651년 [Tavernier가] Cyprus에 들어갔을 때 그는 “지난 3달 또는 4달 동안 400명 이상의 기독교인들이 마호멧 교도가 되었는데 이유는 그들이 kharaj를 지불하지 못하였기 때문인데 이 세금은 Seigneur 황제가 자기 나라에 있는 기독교인들에게 과세한 공세였다”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1652년 바그다드에서 기독교인들은 “그들의 빚 또는 kharaj를 갚아야만 했을 때 이슬람교도들에게 자녀들을 팔아야 하는 정도의 빚을 가지고 있었다.” 다행히도 역사가 보존하고 있는 집단들과 공식문서들과 개인의 행동에 관한 역사적 자료들은 모두가 딤미들의 자손들이 경제적 또는 정치적 목적을 위한 노예의 저장고로 간주되었다는 많은 증거를 제공한다.
지츠야(jizya)를 이렇게 많이 남용한 것은 분명히 이슬람법에 반한다. 게다가 지츠야(jizya)에 관한 법 자체가 아직도 법전들에 있고 샤리아 법이 적용되는 곳마다 어디든지 집행될 수 있다. 그 사실은 무슬림이 대부분인 나라에 살고 있는 비-무슬림을 불안하게 하며 나이지리아나 레바논에서 기독교인들이 무슬림들과 싸우며 샤리아 법 적용에 저항하는 이유를 궁금해 하는 사람들은 그 사실에 주목하여야한다.
출처: 로버트 스펜서, Islam Unveiled, ENCOUNTER BOOKS, 145~148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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