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람의 문화에 대한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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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민 사리히 (2/29/2012)
이슬람이 다른 사람들을 대우할 때 이슬람은 그 자체의 구분체계가 있다. 이슬람은 다른 사람들과 공존하지 않으며 다른 사람들의 씨를 말리려고 고안된 유일한 종교이다. 정말로 꾸란에서 땅과 종교가 알라만을 위한 것이 될 때까지 다른 사람들을 이 세상에서 청소하라고 말하고 있는 것과 같이 이것이 이슬람의 목표이다 이슬람은 단지 이질적인 사상을 거부할 뿐만 아니라 실제로 다른 사람들을 싫어하고 그들의 파멸을 원한다. 이슬람의 이 독특한 모습은 그것의 적절한 이행이 이슬람 자체의 추종자들을 포함하여 모두를 위험하게 만든다.
이슬람의 적절한 이행은 탈레반과 사우디에서 그랬듯이 그들 문화의 순수성을 보호하기 위해 무슬림들이 다른 사람들과 접촉하는 것을 금한다. 이 원리의 배경이 되는 이론은 죄에 대한 가장 최선의 보호는 그것의 원인을 제거하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타종교의 실천과 전파는 이슬람 국가들에서 환영받지 못하며 단지 사원들과 다른 경전들의 존재만으로도 적대감을 일으킬 수 있다. 이것은 사우디아라비아에서와 같이 이슬람이 지배하는 곳마다 타종교의 실천 또는 다른 경전들의 수입이 법으로 금지되는 이유이다. 이집트와 같이 이슬람이 아직 정식으로 정권을 잡고 있지 않은 나라들에서 기독교인들과 그들의 교회에 대한 공격들은 평범한 일들이다.
이슬람에서 여자들은 죄악의 주요한 원인으로 간주되므로 그들은 완전히 가려져야 하며 남자들과 섞일 수 없다. 술과 할랄 음식이 아닌 것은 법으로 금지된다. 책들과 모든 인쇄물은 누드나 이슬람에 이질적인 진화론, 사회주의, 또는 언론의 자유와 같은 것들을 게재할 수 없도록 철저히 검열 받는다. 연극, 영화 오페라 하우스는 허용이 안되며 음악, 미술, 사진과 같은 대부분의 예술도 학교에서 가르치지 않는다.
무슬림들이 소수일 때에 그들은 자신들의 나라에서 인정하지 않는 인권법과 종교의 자유를 이용하면서 자기들 뜻대로 하기위하여 열심히 노력할 것이다. 무슬림들의 전략은 종교 때문에 자기들이 특별한 요구를 가진다는 사실로 서방세계를 이용하는 것이다.
무함마드는 이 문제에 대한 지침 없이 그의 추종자들을 내버려두지 않았다. 유명한 하디스에서 그의 가르침이 분명하다: ‘너희들이 좁은 길에서 비무슬림을 만났을 때 그들에게 길을 비켜주지 말라: 그들이 길을 양보하게 하라.’ 그는 또 비무슬림에게 먼저 인사하지 말라고 추종자들에게 가르쳤다. 무함마드의 지침은 단지 좁은 길뿐만 아니라 모든 곳에서 다른 사람들을 대하는 무슬림들의 전략의 요점을 말해준다. 기독교인들이 소수그룹으로 살고 있는 이집트, 시리아, 요르단과 같은 나라들의 독실한 무슬림들은 그들이 기독교인 이웃들이나 동료들을 만날 때 인사말을 먼저 하지 않으며 상대방이 먼저 인사하기를 기다리고 그 다음에서야 대응한다.
무슬림들은 다른 사람들이 자신들에게 기꺼이 적응하게 만들면서 가능한 자신들은 편리를 취하려하며 그 다음에 다른 사람들은 자신들의 편리를 완전히 잃어버리고 떠난다. 예루살렘, 베들레햄, 나사렛과 같은 도시들은 소수의 무슬림들을 가진 주요 기독교 도시들이었다. 수 십 년 후에 어떤 전쟁도 없이 거기에는 단지 극소수의 기독교인들만이 아직 살고 있다. 유사한 사례가 이라크, 요르단, 레바논에 적용되는데 이 나라들은 독립 후 기독교인이 대다수인 국가였지만 지금 그들은 소수그룹이다.
이슬람 문명은 완벽하고 다른 것들은 속빈 강정이다.
무함마드 시대에 아라비아에 다른 예언자들이 있었고 각자에게는 수천의 추종자들이 있었다. 이 예언자들은 어떠한 전쟁이나 문제없이 서로 공존하였다. 그러나 무함마드는 이슬람을 또 하나의 다른 종교만으로 소개하지 않았다; 그는 이슬람을 모든 다른 종교들의 대체물로 소개하였다. 무함마드가 메디나에서 강성하게 되었을 때 무함마드는 아랍족들에게 이슬람이 가장 우수하며 받아들일 만한 유일한 종교라고 말하였고 모두가 이슬람을 받아들이든지 아니면 종말을 맞을 것을 요구하였다. 다른 종교를 믿었던 사람들은 그들이 다른 사람들과 충돌 없이 평화롭게 살았지만 자동적으로 알라와 그의 사도에 대한 적들로 여겨지게 되었다. 그들이 이슬람을 받아들이지 않은 것은 침략행위로 간주되었다. 마음 깊숙이 무함마드는 그들의 거부를 보복 받아 마땅한 굴욕적인 거절로 해석하였다. 무함마드가 이슬람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 때문에 그들에 대하여 전쟁을 시작하였을 때 유대인, 기독교인 그리고 다른 아랍족들은 그들의 사업에만 몰두하고 있었다.
오늘날 무슬림들도 자기들의 종교는 최선이고 다른 사람들의 것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믿으며 성장했다. 그들은 이슬람이 알라에 의하여 생겨났다고 믿기 때문에 이슬람을 그 자체의 ‘완벽한 문명’이라고 생각한다. 이것 때문에 무슬림들은 이슬람이 다른 문명들이 이루어 놓은 것에 의하여 잠식되어가는 것을 참을 수 없다. 14세기가 지난 다음에도 무함마드가 과거에 동일한 이유로 그랬던 것과 같이 이슬람은 여전히 그들의 진로를 방해하는 다른 문명과 복수심을 가지고 싸운다.
먼저 있던 암흑의 시대
이슬람에 희생된 첫 번째 문화는 아랍족 자신의 이슬람 이전 문화였는데 이 문화는 이슬람에 의하여 이루어진 문화보다 훨씬 우수하였다.
무슬림들은 이슬람 이전 아라비아는 여자 유아를 산채로 매장하는 것과 같은 무지하고 야만적인 관습으로 점철되어있었다고 믿으며 양육되었다. 그러나 아랍족이 이슬람 도래 전에 계몽과 문화적 다양성의 시대에 살았다는 증거가 넘쳐난다. 인쇄시대 이전에 이슬람 도래 이전 아랍족은 그들의 사회적 문화적 활동을 그들의 시에 기록하였고 이것은 아랍족이 만들어낸 최고의 것이다. 시에는 여자아이 유아를 산채로 매장하거나 야만적 관습에 관하여 아무런 단서가 없다. 여성들이 보다 신임을 받았고 사회생활에 참여하였다는 증거가 있다. 무함마드의 첫 번째 부인인 카디쟈는 성공한 여성 사업가였고 무함마드에게 청혼한 사람도 여성인 그녀였는데 이것은 이슬람 이후에 생각도 못할 관습이었다.
아랍족은 외부 세계와 무역하고 교류하였고 시와 그들이 선호하는 예술에서 번성하였고 우수하였으며 과거의 아랍의 시는 오늘날의 신문과 같은 역할을 하였다. 아라비아는 종교의 자유와 언론의 자유를 제공한 건강한 다문화적 환경을 즐겼으며; 무함마드도 13년 동안 그의 종교를 전파하도록 허용되었다. 메카인들은 무함마드에게 다른 사람들의 종교를 존중해줄 것과 그들을 그대로 내버려둘 것만을 요구하였다. 유대인들과 이방 아랍족과 기독교인의 배경은 혼재하였고 조화 속에 예배를 드렸다. 그들은 메카의 외부인 Okaz에서 모든 문화를 기념하기 위해 연례적인 축제를 마련할 정도로 문명화되어 있었다.
무함마드는 시기가 많은 사람이었다; 그의 시기심은 그의 행동을 얼마간 지배하였고 다른 사람들의 것에 대한 긍정적인 참고에 대하여 그를 지나치게 예민하게 만들었다. 그의 꾸란에서 무함마드는 되풀이하여 자신이 피조된 인간가운데 가장 우수하다고 주장하였는데 이것은 그의 하디스에서 여러 번 나온다. 그는 사람들이 자기 부모와 식구들을 사랑하는 것보다 더 그를 사랑해야 하는 것을 모든 무슬림들에게 의무로 만들었고 그것을 진실한 신앙의 조건으로 만들었다. 그의 하디스 가운데 하나에서 무함마드는 반복적으로 그의 추종자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너희들 중에 아내를 가장 잘 다루는 자들이 너희들 중에 가장 우수하며 나는 나의 아내들을 다루는데 최고이다.” 다른 이야기에서 Umm Salma는 사랑하는 남편을 잃어버린 매우 매력적인 여자였는데 모든 청혼을 거절하였고 Abu Bakr와 Omar과 같은 지위 높은 인물의 청혼도 거절하였다. 그녀의 이유는 그녀의 죽은 남편보다 더 낫다고 생각하는 남자와만 결혼할 수 있다는 것이었고 이것은 그녀가 이러한 남자들 가운데 누구도 죽은 남편보다 낫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의미였다. 이 이야기를 듣고 무함마드는 그녀와 결혼하기로 하였고 모두에게 증명하여서 Umm Salma도 무함마드가 그녀의 죽은 남편보다 낫다는 것을 믿었다.
무함마드의 시기심은 문화에 까지 확장되어 그의 추종자들이 이슬람 도래 이전 시대의 계몽에 관하여 긍정적인 말을 할 때마다 화를 내곤 하였다. 그는 추종자들에게 그 시대를 무시하도록 명령하였고 그 시대를 무지의 시대로 또는 오늘날 알려진 대로 'jahilyia'로 불렀다.
근대적 jahilyia
메카와 같은 문화적으로 풍성하고 자유로운 사회에서 이슬람의 출현은 우리에게 오늘날 자유롭고 다문화적 유럽에서 이슬람의 출현을 다시 생각하게 한다. 무함마드의 골수분자들이 유럽에 밀려들어 그들의 증오로 가득 찬 종교를 전파하고 동시에 서구문명을 '근대적인 jahilyia'로 낙인을 찍는다! 그들은 실제로 같은 이유에 대하여 같은 말을 사용한다. 무슬림의 관점에서 서구인들은 이슬람을 받아들일 때까지 무지하다. 무함마드는 아라비아에서 이슬람 이전 문화를 뿌리 뽑는데 성공하였으니 우리는 그의 추종자들이 그렇게 성공하지 못하기를 희망하자.
무함마드의 시기심이 그의 추종자들에게 유전되었다는 것이 재미있다. 오늘날 무함마드의 추종자들은 이슬람이 이전의 모든 문명들보다 훨씬 우수하다는데 단호하다. 이슬람을 떠나서는 근대적인 무지의 시대로 낙인을 찍은 현대문명을 포함하여 모든 문명들을 다른 형태의 무지의 시대로 간주한다. 민주주의, 인권, 사회주의, 자본주의, 언론의 자유는 무지의 표현이상 아무것도 아니거나 그들이 부르듯이 '근대적인 jahilyia'이다.
이슬람을 위한 문화 거부
초기 무슬림들은 그들의 옛 문화를 부인하고 그들의 가족과 부족 관계를 부인하도록 요구되었다. 그들은 옛 전통들에 대하여서도 등을 돌리고 꾸란에서 승인된 무함마드와 알라에게 유일한 충성을 바치도록 강요되었다. 내가 Abu Bakr라고 생각하는 무함마드의 대단한 동료들 가운데 한명에 관한 이야기가 있는데 그가 바드르 전투의 기억에 관하여 자기 아들과 이야기하고 있었는데 이 전투는 그 아들이 아직 꾸라이시족과 전투하는 불신자였을 때 일어났다. 그 아들이 아버지에게 말하였다: “나는 아버지를 안 죽이려고 고의적으로 아버지에게서 멀리 있었어요” 이에 Abu Bakr가 대답하기를 “내가 너를 보았다면 나는 알라와 그의 사도를 위하여 너를 죽였을거야!” 이 사건은 불신자의 도덕성에 비교하여 무슬림의 도덕성에 관한 모든 것을 말해준다.
이슬람으로 개종하는 사람은 아직도 아랍인같이 보이고 아랍인같이 생각하는 새로운 사람을 그 세계로 데려오는 것을 지향하는 완벽한 문화와 정체성의 변동을 견디어야한다. 갑작스럽게 아랍의 이해관계가 팔레스타인 문제를 그 이해관계 목록의 최상에 두는 개종자 자신의 이해관계가 된다. 이슬람으로 개종하는 사람들은 아랍식 이름을 선호하여 전에 사용하던 이름을 버린다. 그들은 아랍인같이 옷을 입고 아랍의 옛 전통을 받아들인다. 그들은 오른손으로 먹으며 물 한잔을 세 번에 나누어 마시며 무함마드가 그랬듯이 식사 전후에 동일한 기도 ‘dua'를 한다. 그들의 입맛이 그것에 관하여 어떻든지 대추야자와 꿀을 먹는다. 그들은 이슬람 방식과 맞추기 위하여 그들의 화장실 사용습관을 바꾼다. 그들은 무함마드가 좋아하고 싫어한 것을 모방하여야 하므로 자기 자신이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으며 그들에게 물어보면 그것은 자신들의 선택이라고 말한다!
그들의 문화적 배경에 관계없이 이슬람으로 개종한 사람들은 무함마드를 모방하는 것을 추구한다. 그들은 무함마드가 14세기 전에 그랬음으로 개들을 싫어하기 시작한다. 무함마드가 고기를 먹었으므로 그들은 채식주의자가 될 수 없다. 무함마드가 나중에 결혼했던 고아였던 자기 양자의 아내 자이납이 벗은 것을 어렴풋이 본 후 입양제도에 대하여 마음을 바꾸었기 때문에 그들은 고아를 입양할 수 없다. 녹색이 그들의 선호하는 색이 되었고 북소리가 그들의 선호하는 음악이 되었다. 그들은 아랍어를 배우고 아랍어를 유창하게 말하기를 원한다. 그들은 유럽에서도 짧은 아랍식 ‘thaub'를 입고 반면에 그들의 아내들은 니캅으로 덮어 씌우고 물어보면 그것은 자기들의 선택이라고 말한다!
이슬람이 지배한다면....
현재 서방세계 국가들에서 샤리아의 적용에 관한 문제들이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샤리아를 할랄 음식과 술에 관련하여 생각한다. 그러나 이슬람은 종교적 실천에 관한 것만이 아니다: 이슬람은 광범위하고 무슬림 삶의 모든 면을 통제하는 모든 것을 포함하는 완성품이다. 무슬림이 새벽 기도를 위해 일어나는 순간부터 그가 밤에 잠자리에 들 때까지 몇 분 동안이라도 이슬람의 지배력 바깥으로 나갈 수 없다.
나는 15년 이상 전에 당시 Al Muhajeroon 그룹의 지도자인 Omar Bakri에 관한 TV 다큐멘터리를 본 것을 기억하는데 영국에서 이슬람 국가에 관한 그의 비전에 관한 것이었다. 그것은 9/11훨씬 전이었고 Bakri는 알려진 사람이 아니었다. 나는 그가 타끼야[taqyia] 또는 이슬람의 속임수를 쓰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것을 보고 그 사람의 정직성에 놀랐다. Bakri는 있는 그대로 말하였고 독실한 무슬림이 영국을 지배할 방법을 기술하였는데 영국은 이 글에서 기술되고 있는 것 또는 사우디아라비아 또는 탈레반이 지배하는 지역에서 이미 일어나고 있는 것에서 멀리 있지 않다는 것이다.
문명과 문화에 아무 잘못된 것이 없을지라도 이슬람 지배 아래서는 모든 것이 실패하게 되어있다! ‘이슬람 문명’은 다른 모든 것을 비난하며 그것들을 청소되어야할 쓰레기로 낙인찍는다. 과학과 의학과 같이 ‘다른 문명’이 엄청난 성공을 이루어 놓은 분야도 이슬람의 경멸감을 진정시키지 못 한다. 이슬람의 ‘성스러운 문명’은 다른 문명들의 업적과 성공에 의하여 잠식될 것 같지 않다. 무슬림들은 어째든 이러한 업적들을 과소평가할 방법을 찾아낼 것이다.
이슬람 지배 아래서 서방세계 도시들은 다시 디자인될 것이다. 그 다시 만드는 것은 이슬람에 저촉이 되는 모든 조각들과 조상들을 제거할 것이다. 그것들은 Asnam(우상들)이라고 호칭되고 이슬람을 공격하였던 곳에서 이슬람이 옳았다고 발표하게 될 것이다. 선지자 이브라힘이 그랬듯이 무함마드는 자기 도시의 우상들을 파괴하였다. 오늘날의 우상들은 오늘날 무슬림들이 아마도 대단한 기념으로 그 똑같은 행위를 함으로서 알라를 기쁘게 하는 황금 같은 기회를 제공한다. 1990년대에 탈레반이 종교 또는 문화를 조금도 존중하지 않고 세계의 주목에도 불구하고 거대한 부처상을 포격하였다. 이집트에서 많은 살라피 교도들이 역사적인 고대 유적에 대하여 관심을 보이고 알라가 그들에게 관대하게 보상할 것이니 그것들을 없애는 것이 이집트인들에게 좋을 것이라고 제안하였다.
이슬람 치하의 삶은 이상에서 기술한 바와 같이 상상이나 추측한 것이 아니고 이슬람이 지배하는 모든 곳에서 실상이다. 사우디아라비아가 전형적인 표본이지만 이슬람 집단들은 세계의 여러 곳의 그들의 통제 하에 있는 지역에서 이슬람을 크게 확장하고 있다.
이슬람은 현재 그것의 황금기를 지내고 있으며 전에 이렇게 여건이 좋았던 적이 없었다. 나는 역사에서 무슬림들이 오늘날과 같이 이슬람에 그렇게 집착하고 그렇게 환멸을 느꼈던 때가 있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대규모 이슬람화의 현재의 수준은 필요한 기술과 통신이 없었기 때문에 수세기 전에는 가능하지 않았다. 서방세계는 이 위험에 부인과 무관심으로 대응하고 있다. 이슬람이 그들을 더 공격할수록 그들은 더 양보한다. 서방세계가 그것의 최저점에 이름과 동시에 이슬람이 그것의 최고점에 이르는 것은 매우 이상하고 두려운 우연의 일치이다.
세계에서 이슬람화의 이 파도는 걸프국가들의 대규모 부로 인한 또는 서방세계의 타협책으로 인한 단순한 우연의 일치가 아니었고 그 둘 다의 결과이다.
무슬림들 모두다 알라가 약속한대로 서방세계가 그들에게 점령될 것이라는 데 만족하고 있으며 그들은 그 승리의 순간이 저절로 나타나고 있다는 것을 볼 수 있다. 인터넷은 이 가시화를 반영하는 기사들과 비디오들로 가득 차 있다. 반면에 서방세계 사람들은 이것이 매우 비현실적이거나 불가능한 가정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페르시아와 로마제국이 이슬람에 떨어질 때 생각도 그랬었다. 일어나지 않을 것 같은 일들이 일어날 수 있다. 일 년 만에 아랍세계가 무슬림 형제단에게 떨어졌고 그것이 서방세계의 도움으로 되었다.
서방세계 사람들이 깨어나고 있다는 것은 사실이지만 너무 늦었다. 그들 국가들은 한 두세대가 지나면 대다수가 되어버릴 무슬림들을 이미 충분히 가지고 있다. 피 흘림이 없다면 이 사건의 연속은 중지할 수 없을 것 같으며 모든 것이 단지 법에 따른 약간의 변화에 의하여 뒤집어 질 수 있었기 때문에 안타깝다.
원문출처 http://www.faithfreedom.org/articles/op-ed/islam%e2%80%99s-war-on-cul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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