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람에 대한 서방세계의 경계 필요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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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거트 윌더스 (2012-07-01 07:29)
몇 시간 전에 거트 윌더스는 콜로라도 덴버에서 서방세계 보수주의 정상회담에서 연설하였다. 다음은 그의 연설의 전체 원고이다.
저를 서방세계 보수주의 정상회담에 초청해주신 친구들과 신사숙녀 여러분에게 감사드립니다. 미국에 오는 것은 항상 즐겁습니다. 저는 이슬람에 관하여 그리고 미국과 유럽에 대한 이슬람의 위협에 관하여 이야기하고 나의 친구인 국회의원 Michele Bachmann을 만나기 위해 몇 주 전에 여기에 왔습니다.
서구의 관문인 덴버에 왔다는 것도 즐겁습니다. 여기는 개척자 정신이 아직도 살아 있는 미국 보수주의의 심장입니다.
제가 안타까운 시점에 왔다는 것을 압니다. 여러분 가운데 많은 사람들이 여기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일어난 엄청난 산불로 고통을 받았습니다. 수 천 명이 대피하였으며 그들 가운데 일부가 이 호텔에 머물고 있습니다. 집을 잃어버린 것과 같은 손실은 적은 것입니다. 저는 이 재난으로 상심하신 모든 분들에게 심심한 애도를 표하고자 합니다. 그리고 이 산불로 생명을 잃은 분들의 가족들에게 조의를 표하고자 합니다.
덴버의 시민들이 피해자들에게 전한 도움과 연대감에 감동받았습니다. 여러분은 위대하고 관용이 많은 도시에 살고 있습니다. 덴버는 콜로라도 기독교 대학과 “신앙, 가문, 자유”를 모토로 하는 100주년 연구소의 고향으로도 유명합니다. 여러분들의 모토는 여러분들이 우선권을 가졌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신앙, 가문, 자유는 우리 기독교-유대 문명의 기둥들이고 옹호되어야 합니다.
유럽과 특히 나의 조국 네덜란드의 상황에 대하여 여러분들에게 오늘 강연하도록 초청받은 것에 대하여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이 상황은 여러분이 경계하지 않으면 미국에서도 일어날 수 있는 경고도 될 수 있습니다. 미국 대통령 앤드루 잭슨이 다음과 같이 말하였습니다. “나의 동료 시민들이여 영원한 경계는 자유의 대가이고 여러분들이 그 축복을 지키기를 원한다면 그 대가를 지불하여야 한다는 것을 기억하라.”
그러나 먼저 나 자신의 소개를 하겠습니다. 저는 서방 유럽에서 1700만 명의 인구를 가진 작은 나라 네덜란드의 하원의원 150명 가운데 한명입니다. 저는 자유당의 지도자입니다. 제가 소속한 당은 네덜란드 의회를 대표하는 11개 정당들 가운데서 세 번째로 큰 정당입니다.
아마도 여러분 가운데 많은 사람들이 네덜란드에서 이 정치인의 삶이 여러분들의 의회의원들의 삶과 비슷할 것이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안타깝게도 그것은 사실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지난 8년 동안 저는 경찰의 24시간 감시 하에서 살아왔기 때문입니다. 내가 가는 곳마다 사복차림의 경찰들이 저와 함께 갑니다. 저는 방탄으로 아주 잘 보호된 정부의 안가에서 살고 있습니다.
저는 매일 경광등이 번쩍이는 경찰차를 타고 정부의 안가에서 네덜란드 의회로 출근합니다.
저는 지난 8년 동안 혼자서 거리를 걸은 적이 없습니다. 제가 가끔 식당이나 영화관에 갈 때는 경찰이 먼저 모든 것을 검사합니다. 나의 아내와 나는 단지 암살에서 안전하기 위하여 군대막사나 감옥과 같은 곳에서 살았습니다.
왜 내가 이 보호가 필요합니까? 저는 대통령 또는 왕이 아니고 의회의원일 뿐입니다.
그러나 저는 이슬람을 비판하였다는 이유로 죽음에 처해있습니다. 2004년 11월 초에 한 이슬람 광신자가 데오 반 고호가 이슬람을 비판하였다는 이유로 그를 살해하였을 때부터 경찰의 보호 아래 있게 되었습니다. 데오 반 고호는 암스테르담 거리에서 벌건 대낮에 살해되었습니다. 몇 시간 후에 경찰은 저도 살해하겠다고 위협하는 암살범이 쓴 편지를 발견하였습니다.
여러분은 이와 같이 질문할 수 있습니다. 내가 한 일이 이러한 죽음의 위협을 받을 만한 일인가? 저는 이슬람에 대한 나의 관점을 솔직하게 말하였습니다.
간단히 말하면 나의 관점은 이슬람은 종교이기 보다는 주로 전 세계를 지배하기 위하여 투쟁하는 전체주의 사상입니다.
일부 사람들은 이 이야기를 듣기 싫어합니다. 그것은 이 진실을 이야기하는 사람은 누구든지 그들이 살해하려고 위협하기 때문입니다.
제가 암살 대상이 된 유일한 사람이 아닙니다. 영국 작가 살만 루시디, 스칸디나비아 만평가 커트 베스테르가르드와 라스 빌크스가 모두 암살공격의 피해자들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정말로 자유를 사랑한다면 여러분은 그 진실을 말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이미 이슬람의 희생자가 되어버린 중동과 북아프리카와 페르시아와 인도와 인도네시아의 사람들과 같이 우리는 이슬람의 희생자가 되어 버릴 것입니다. 결과가 어떻게 되든 간에 그것이 내가 과거에 이야기했던 이유이고 현재 내가 이야기하고 앞으로도 내가 계속해서 이야기할 이유입니다. 저는 유럽도 미국도 이슬람화 되는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이야기를 계속하기 전에 제가 무슬림들과 문제를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을 분명히 하기를 원합니다. 많은 온건한 무슬림들이 있습니다. 저는 항상 사람들과 이데올로기 사이를, 무슬림들과 이슬람 사이를 구별합니다. 많은 온건한 무슬림들이 있지만 온건한 이슬람이라는 것 따위는 없습니다.
오직 하나의 이슬람이 있고 그것은 위험한 이데올로기입니다. 이슬람은 관용하지 않으며 폭력적입니다. 이슬람은 관용되어질 수 없으며 억제되어야 합니다.
유럽에서 이슬람이 사회에서 더 강력해지면 - 대부분의 무슬림들이 온건하더라도- 사회는 보다 덜 자유롭게 되고 비-무슬림들에 대하여 보다 더 관용하지 않게 된다는 것을 우리는 경험하고 있습니다.
2008년 말에 제가 워싱턴의 그의 사무실을 방문하였을 때 만났던 마이애미의 토박이이며 이 위대한 도시의 거주자인 전 의회의원 톰 탄크레도는 마이애미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였습니다. “마이애미에 일어난 것들을 봐. 마이애미는 제 3세계 국가가 되었어. 당신이 미합중국 안에 있다는 것을 절대로 모를 거야. 틀림없이 당신이 제 3세계 국가 안에 있다고 말할 거야.”
그와 동일한 상황이 유럽에도 적용됩니다. 우리 안에 있는 도시들의 어떤 부분들은 더 이상 유럽이 아닙니다. 그것들은 카이로(이집트의 수도), 라바트(모로코의 수도), 알제(알제리의 수도), 다마스커스(시리아의 수도), 메카(사우디아라비아의 이슬람 성지)와 같습니다.
무슬림 인구가 도시지역에 집중되면서 많은 유럽의 도시들이 매우 많은 이슬람 인구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머리 스카프와 부르카와 일부다처 제도와 여성할례와 명예살인에 직면하게 되었습니다.
과거 30년 동안 유럽은 치명적인 실수를 하였습니다. 유럽은 이슬람 국가들로부터 수백만의 사람들이 유럽으로 이주하는 것을 허용하였습니다. 우리 자신의 유대-기독교적이고 인도주의 전통과 완전히 다른 문화에 뿌리를 가진 너무 많은 사람들이 유럽으로 들어와서 우리의 전통과 우리의 자유와 우리의 번영과 우리의 문화가 위험에 처해있습니다.
아마도 많은 미국인들은 아직도 유럽을 관광여행이나 그들의 할아버지들의 이야기로부터 들어 아는 지역으로 믿을 것입니다. 이 유럽은 지금 사라지기 직전입니다.
이탈리아의 작가 오리아나 팔라치는 2006년 그녀가 죽기 직전에 “우리의 도시들 각 지역 안에 제 2의 도시가 있는데 국가 안에 국가가 있고 정부 안에 정부가 있다. 코란에 의하여 통치되는 무슬림 도시이다.”라고 글을 썼습니다.
아마도 많은 미국인들은 이민이 미국에 크나큰 기여를 하였기 때문에 이민이 본질적으로 국가에 좋은 것으로 볼 것입니다. 이전에 미국으로의 이민자들의 대부분은 미국과 같은 유대-기독교 전통을 가진 대륙인 유럽에서 온 반면에 유럽의 현재 이민자들은 우리와 공통의 전통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대조적으로 우리 사회의 이슬람화는 우리의 서방세계 유대-기독교적 가치들을 약화시키고 있습니다.
저는 단지 테러리즘이나 폭력의 위협에 관하여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여기에는 비폭력적인 지하드 현상도 있습니다. 유럽에서 증가하고 있는 독단적인 이슬람의 로비는 성공적으로 유럽 정치인들을 압박하여 이슬람을 옹호하는 정책을 적용하고 이슬람 샤리아 법의 요소들을 채택합니다.
이슬람의 요구에 따라 그들의 삶을 사는 사람들의 수가 증가하고 있는데 특히 젊은 사람들 가운데 그렇습니다. 15살의 독일 무슬림들 가운데 40%가 이슬람이 민주주의 보다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영국의 무슬림 대학생들 가운데 40%가 샤리아 법을 지지합니다. 그러한 학생들의 세 명 가운데 한명이 이슬람의 이름으로 살인하는 것이 합법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슬람의 증가는 또한 우리의 사법제도 내에서 샤리아 법의 증가를 의미합니다. 유럽에서 우리는 샤리아 유언, 샤리아 학교, 샤리아 은행들이 있습니다. 우리 사회에 샤리아 법 요소의 도입은 합법적인 차별대우 시스템을 만듭니다. 샤리아 법은 체계적으로 사람들의 집단을 차별합니다. 약간의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영국에는 공식적인 샤리아 법정이 있습니다. 이 법정들 가운데 하나가 재산이 그의 자녀들에게 분배되어야 하는 사람에 관련한 유산분규를 해결하였습니다. 이 법정은 여자는 단지 남자의 절반의 가치를 가진다는 코란의 견해에 따라서 아들들에게 딸들의 두 배를 주었습니다.
나의 조국인 네덜란드에서 -믿기 어렵지만 슬프게도 사실이라는 것을 제가 아는데- 네덜란드 법정에 의하여 샤리아가 적용되고 있습니다.
이것은 수치입니다. 우리 문명에서 남자와 여자는 법 앞에 평등하게 대우되어야 합니다.
신사 숙녀 여러분 실수하지 마십시오. 이슬람은 미국을 향하여 오고 있습니다. 정말로 이슬람은 이미 와있습니다. 여러분의 나라도 역시 스탤스 지하드에 직면하고 있는데 - 그것은 조금씩 조금씩 샤리아 법을 도입하는 이슬람의 시도입니다. 이슬람은 무슬림을 위한 분리된 캠퍼스 기숙사를 요구합니다. 이슬람은 여성만의 체육수업과 수영장을 가져야 한다고 요구합니다. 학교는 크리스마스 기념행사를 금하고 있으며 무슬림 학생들을 자극하지 않기 위하여 학교 식당 메뉴에서 돼지고기를 제외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법정들은-미국에서도 우리가 플로리다에서 예를 보았듯이-샤리아 법 적용을 시작하였습니다.
이것은 단지 시작이라는 것을 아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이슬람화를 막지 못한다면 우리는 우리의 정체성, 우리의 문화, 우리의 민주적인 헌법국가, 우리의 자유와 우리의 문명을 포함하여 모든 것을 잃을 것입니다. 유럽에서 우리는 이미 이슬람을 비판하는 자유인 언론의 자유를 잃어가고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필요한 것은 저항정신입니다. 악에 저항하는 것은 우리의 도덕적 의무입니다. 이 저항은 이슬람의 피해자들인 모든 기독교인들, 모든 유대인들, 모든 비-무슬림들, 모든 무슬림 배교자들, 모든 사람들에 대한 우리의 단결력을 나타내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우리가 이집트의 콥틱 교도들과 레바논의 마론파 교도들과 이라크의 앗시리아인들과 그밖에 나이지리아의 용감한 기독교인들과 같은 이슬람 세계의 기독교인들의 운명을 본다면 이슬람이 우리에 대하여 가지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거의 매일 이슬람 국가들에서 교회들이 방화되고 기독교인들이 암살됩니다. 소위 온건한 국가들인 터키와 인도네시아에서도 기독교인들은 매일같이 차별과 굴욕에 처해있습니다.
이 모든 기독교인들의 고통의 원인은 이슬람입니다. 눈물의 강물이 중동에서부터 흐르는데 거기에는 기독교인들을 위하여 유일하고 안전한 피난처가 있습니다. 진실로 기독교인들이 기독교인이 되기에 안전한 중동에서 유일한 곳은 이스라엘입니다. 이것이 이스라엘이 전 세계적으로 기독교인들의 지지를 받아 마땅한 이유입니다. 이스라엘은 탄광 안에 카나리아입니다. 이스라엘이 평화스럽게 존재할 수 없다면 우리들 가운데 아무도 살아남지 못합니다.
이스라엘은 중동에서 유일한 민주주의 국가입니다. 이스라엘은 모두에게 안전한 피난처입니다. 이스라엘은 완전한 어둠의 지역에서 신호등불입니다. 이스라엘이 멸망하면 우리도 역시 그 영향을 받을 것입니다. 사실상 이스라엘은 우리의 싸움을 싸우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어머니들이 밤에 군대에 있는 그들의 아들들을 염려하기 때문에 서방세계의 어머니들이 안전하게 잠을 잘 수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 이스라엘입니다. 소위 이슬람의 이스라엘에 대한 “성전”은 우리 모두에 대한 전쟁이기 때문에 우리는 모두 이스라엘을 지지해야 합니다.
2008년 3월에 저는 네덜란드에서 이슬람화의 위험과 코란에 관한 15분 짜리 다큐멘터리인 Fitna를 공개하였습니다. 그 당시에 저는 미국 상원의 동료 의원들에게 Fitna를 보려주기 위하여 상원의원 Jon Kyl에 게 초청받은 반면에 저의 영화의 상영이 유럽의회에 의하여 금지 되었습니다. 영국정부는 제가 영국 상원에서 Fitna를 보여주기 위하여 초청된 그 날에 영국에 입국하는 것을 금지까지 하였습니다.
2008년 말에 네덜란드에 있는 좌익과 자유주의와 이슬람 조직들이 Fitna 때문에 저를 법정에 세웠습니다. 그들은 집단모욕과 증오와 차별을 선동한다는 혐의로 저를 고소하였습니다. 저는 이슬람에 관한 나의 의견을 말했다는 이유로 기소되었습니다. 다행히도 저는 모든 혐의에 대하여 무죄가 입증되었지만 합법적인 고생이 거의 3년이나 지속되었습니다. 의회에 소속된 자가 재판에 대응하기 위하여 3년을 보냈다는 것을 상상해보시기 바랍니다. 이것은 엄청난 시간과 정력과 돈이 소요되었습니다. 내가 무슬림들이 아닌 이슬람을 비판하였고 선거에서 선출되어 공개토론에 참여하는 정치인으로서 저에게 모든 시민들보다 더 큰 언론의 자유가 주어졌기 때문에 법정은 저를 결국 무죄 처분하였습니다.
신사숙녀 여러분 친구 여러분 서방세계가 어떻게 현재의 상황을 헤져나가야 하는지 우리가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가 어리석게도 다문화주의 사상을 채택했기 때문에 그것은 부분적으로 우리의 잘못입니다. 저는 문화적 상대주의를 말하기 위하여 “다문화주의”라는 용어를 사용합니다. 이것은 정치적으로 올바른 유럽과 오늘의 미국에게 까지도 가장 큰 병입니다. 이것은 모든 문화는 같다는 미친 생각입니다. 물론 문화들은 같지 않습니다. 기독교와 유대교와 인도주의에 근거한 우리 문화는 훨씬 좋으며 이슬람 문화에 비하여 휠씬 우수합니다. 우리는 그렇게 말하는 것을 자랑스러워하고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문화적 상대주의는 서방세계를 날로 약화시키고 있습니다. 정부 지도자들, 법률가들, 판사들, 교회들, 노동조합들, 미디어, 학계, 자선단체들- 그들 모두가 정치적 올바름에 의하여 눈이 가려지고 이슬람을 용인하고 있습니다. 문화적 상대주의의 결과로 자유서방세계가 매일 조금씩 죽어가고 있습니다.
다문화주의는 재난입니다. 다문화주의는 관용과 같은 우리의 핵심 가치들을 위협하는 사상인 이슬람을 촉진시키는 도구가 되었기 때문에 다문화주의는 그러한 엄청난 재난입니다.
다문화주의는 동화되지 않는 사람들에게 우리의 경계를 열게 만들었습니다. 다문화주의는 불관용을 관용하게 만들었고 지금은 불관용이 관용을 전멸시키고 있습니다. 우리는 관용의 이름으로 우리에게 더 이상 관용하지 않는 사람들을 관용하지 않을 권리를 주장해야 합니다. 우리는 자기보존의 이름으로 우리의 가치에 적응하기를 거부하는 사람들이 우리의 국가들에 들어오는 것을 더 이상 허용하지 말아야 합니다.
나의 친구 여러분 저는 비관론자가 아닙니다. 우리가 오늘 행동한다면 -유럽에서도- 그 흐름을 아직 돌릴 수 있습니다.
우리가 취하여야 할 네 가지 수단이 있습니다.
첫째로 우리는 사람들에게 위기상황을 말해야 합니다. 서구유럽에서 언론의 자유는 이슬람을 따르는 자들과 그들과 협력하는 자들의 요구로 제한되고 있습니다. 기독교가 모욕을 받는다면 그것은 예술의 형태로 여겨지고 이슬람이 모욕을 받는다면 그것은 증오할 범죄입니다.
우리의 언론의 자유 침식이 우리가 이슬람을 수용하기 위하여 지불하여야 하는 대가가 될 우려가 있습니다. 이슬람이 문제라는 것을 부인하는 사람들이 문제들을 토론하고 진실을 말하는 권리를 우리에게 주지 않을 우려가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의 가장 우선되고 가장 중요한 의무입니다. 우리가 진실로서 보는 것을 말하는 권리를 지킵시다. 그것이 유럽에 있는 우리가 미국의 예를 따르고 유럽헌법을 도입할 필요가 있는 이유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일단 진실을 이야기할 권리를 가졌다면 우리는 그 권리를 사용할 필요가 있습니다. 진실을 말하는 권리는 미국에 있는 여러분도 해당됩니다. 진실을 말하는 것이 불편할지라도,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않을지라도, 우리가 죽음의 위협을 받을지라도 진실을 말하십시오. 진실은 타협될 수 없습니다.
둘째로 우리는 문화적 상대주의를 종식시켜야합니다. 우리가 누구인가를 말하고 누가 우리가 아닌가를 아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의 유대-기독교 가치들은 이슬람의 가치들 보다 훨씬 좋고 우수하다고 자랑스럽게 선포하여야 합니다.
셋째로 우리는 이슬람화의 진행을 중지시켜야 합니다. 이슬람이 더 많이 확장 될수록 더 관용이 없어지는 것이며 샤리아 법이 더 많이 확장 될수록 더 자유가 없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슬람 국가들로부터 이민을 중지시켜야하며 범법자인 이민자들을 추방하여야하며 새로운 모스크의 건설을 금지하여야 합니다. 서방세계는 이미 이슬람이 너무 많습니다.
넷째로 우리 국가들 안에서 다시 자긍심을 가져야합니다. 이민자들이 우리의 가치를 받아들일 것을 요구하고 그 반대는 허용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가 고향이라고 부르는 것은 지도상의 한 장소보다 더 중요한 의미를 가집니다. 고향은 가치의 공동체, 사상과 이상의 공동체를 향한 우리의 소속감입니다.
친구 여러분 여러분과 나, 미국인들과 유럽인들인 우리는 공동의 서방 문화에 소속합니다. 우리는 공동 유산의 가치들과 이상들을 공유합니다. 우리 국민들과 우리 고향들을 보존하기 위해서, 우리의 유산을 우리 자녀들에게 전해주기 위해서, 생존하기 위해서, 우리는 함께 일어나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네이숀의 이슬람의 제복 안으로 흡수될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바라는 것이 아닙니다.
정말로 우리의 문명을 지켜야 합니다. 로널드 레이건은 “미래는 용기 없는 자에게 속하지 않는다”라고 말하였습니다. 레이건이 옳습니다. 우리는 용감해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전체주의에 의하여 가라않을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 우리의 가문, 우리의 자유를 보전하는 것은 끊임없는 투쟁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을 우리의 자녀들에게 빚졌습니다.
그것이 우리가 굳건히 서야하는 이유입니다.
우리는 이슬람에 항복하지 않을 것입니다. 절대로.
우리의 유대-기독교 유산을 가지고 살아남을 것입니다.
우리의 자유를 지킬 것입니다.
우리는 진실을 말할 것입니다.
진실을 밝혀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진리가 우리를 자유하게 할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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