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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과 인권

터키: 숨겨진 러브 스토리와 이슬람의 야만성

작성자 워치독 작성일16-12-15 16:40 조회4,67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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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4.4 수요일,

글쓴이: Yagmur Dursun

한 터키 무슬림 여성이 자기 언니의 비극적인 “러브 스토리”를 말하는데 그녀의 언니는 지역 이맘의 권고에 따라서 뱃속의 아이와 함께 돌에 맞아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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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은 Yagmur(“비”를 의미한다)이다. 나는 터키 시골의 한 마을에서 태어났다. 일반적으로 터키 여성들은 우리 아랍 자매들은 생각도 못할 많은 자유를 누린다. 터키 시골에서는 이야기가 다르다. 명예살인은 매일 일어나고 여성들은 집안일에 많은 말을 할 수 없으며 여성 취업하는 것은 생각도 할 수 없다. 그러나 남자들이 힘든 일하기를 원하지 않기 때문에 많은 힘든 일을 여성이 하는데 여성은 가축이나 노예와 같다. 남편이 당신에게 무슨 일을 하라고 하면 당신은 순종해야 한다.

나의 어머니는 교육을 잘 받은 분이여서 집에서 나를 가르쳤고 나도 학교에 갔다. 나의 취미는 책을 읽는 것이었다. 독서를 통하여 나는 다른 언어들과 많은 지식을 얻었다.

고집이 센 나의 언니와는 달리 나는 절제하고 순종적인 여자였다. 언니가 18세 때 한 청년과 사랑에 빠졌다. 둘은 서로 사랑하였으나 그 청년은 다른 여자와 결혼해야할 운명이었는데 그의 부모가 그렇게 결정하였다. 데이트는 이슬람에서 완전히 금지되었고 결혼은 계획되지만 젊은이들은 종종 결혼식 날에 처음 보게 된다.

언니는 반항적이었다. 언니는 그 젊은 청년과 “데이트”하였다. 매일 밤 언니는 그를 보러 갔다. 그들은 키스도하였고 사실상 그들의 진도는 너무 많이 가있었다. 언니는 임신하였다. 처음에 그들은 안전한 큰 도시로 도망갈 계획을 하였다. 그들은 마을에서는 종교가 지배하여 자신들이 곤경에 처할 것을 알았다. 당국자들은 시골 터키에서 일어나는 일에 신경을 쓰지 않았다. 때로는 샤리아 법을 실시하고 세속국가 법을 폐지하려 하는 이맘들과 물라들과 장로들이 처벌받았지만 당국자들은 관광객이 많은 대도시에 보다 관심을 가졌고 시골 마을에서 일어나는 일에는 눈을 감았다.

나는 그 젊은 얼굴들을 기억한다. 내가 어린 여자였기에 전체 상황을 알지 못했다. 그러나 내가 그들을 볼 때 나는 그들이 행복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들의 행복은 나를 행복하게 만들었고 나는 미소 짓기를 원하였다. 도망가지 않고 그들은 나의 아버지에게 말하기로 결정하였다. 또는 “임신은 결혼 허락을 얻기에 아주 좋은 이유”라고 그들은 생각하였다.

슬프게도 나의 언니는 아버지의 그녀에 대한 사랑과 아버지의 자기 종교에 대한 집착을 잘 못 계산하였다. 아버지는 노했다. 두 젊은 연인을 결혼시켜서 사랑의 둥지를 만들게 하는 대신에 아버지는 언니를 종교지도자에게 데리고 갔고 그들은 언니가 간음하였다고 심판하였다. 언니는 돌팔매 형이 선고되었다. 그들은 언니의 뱃속에 아기에게도 자비를 보이지 않았다. 언니는 집안의 “명예”를 더럽혔고 그 오명을 제거하는 유일한 방법은 그녀의 생명을 제거하는 것이었다. 언니의 태어나지 않은 아기도 역시 오점이여서 그 작은 핏덩이도 마찬가지로 죽어야하고 그럼으로 나의 집안이 명예롭게 살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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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가 처형되기 전날 밤에 그녀는 내 방에 와서 나를 그리워할 것이라고 말하였다. 언니는 울었고 나를 자기 가슴에 안았다. 그다음 언니는 미소 지었고 곧 자기 아기를 보게 될 것이라고 말하였다. 나는 다행히도 그녀의 운명을 알지 못했지만 안 좋은 일이 일어날 것 같은 느낌이 있었다. 나는 굉장히 무서웠다.나는 아직도 언니의 검은 눈을 기억하는데 언니는 땅속에 묻히는 동안 하늘을 바라보았다. 언니는 흰색 천으로 싸였고 손은 몸에 묶였다. 언니는 허리까지 땅에 묻혔다. 광신적인 군중들이 손에 돌을 들고 언니를 둘러싸고 알라는 위대하다 알라는 위대하다고 외치면서 돌을 언니에게 던지기 시작하였다. 언니는 돌들이 연약한 몸을 때리고 머리를 깨뜨릴 때 고통으로 떨었다. 피가 얼굴에서 뺨에서 입에서 코에서 눈에서 뿜어져 나왔다. 언니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은 죄우로 구부리는 것 뿐 이었다. 점차로 그 움직임이 느려졌고 마침내 언니는 움직이지 않았지만 돌팔매질은 멈추지 않았다. 언니의 머리가 자기 가슴 위로 늘어졌다. 언니의 피투성이 얼굴은 평화로 왔다. 모든 고통은 사라졌다.

발작하던 군중들도 조용해졌고 알라는 위대하다는 외침도 그쳤다. 언니의 숨을 끊기 위하여 누군가가 손에 커다란 둥근 돌을 가지고 다가와서 언니의 머리를 내리 쳤다. 언니는 이미 죽었기 때문에 그럴 필요가 없었다. 생명으로 빛나던 언니의 밝고 검은 눈은 감겼다. 그녀의 주변을 가득 채웠던 쾌활한 웃음은 잠잠해졌다. 단지 짧은 시간동안 천국의 사랑과 같은 것으로 박동 치던 그녀의 심장은 멈추었다. 그녀의 태어나지 않은 아기는 한모금의 숨을 쉴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다. 그는 (또는 그녀는) 자기의 나이어린 엄마를 따라 고독하고 차가운 무덤으로 갔거나 누가 아는가 아마도 사랑이 있고 고통과 무지가 없는 더 좋은 곳으로 갔는지. 이 두 피어나던 생명들은 베어졌고 나의 아버지는 자신의 명예를 지킬 수 있었다.

언니는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하기를 원했다. 언니는 성대한 예식이 있고 많은 사람들이 초대되어서 그녀를 축하하고 결혼식 노래를 부르고 꽃들과 색종이를 그녀에게 던지는 하얀 웨딩드레스 입는 결혼을 꿈꾸었다. 그렇다 예식이 있었지만 그것은 그녀의 결혼식이 아니었다. 그녀는 흰색을 입었지만 그것은 그녀의 웨딩드레스가 아니었다. 많은 사람들이 그 파티에 왔지만 그들은 그녀를 저주하고 그녀에게 돌을 던지려고 왔다. 아무 음악도 연주되지 않았고 아무런 결혼식 노래도 불러지지 않았고 오직 알라는 위대하다는 외침만이 울려 퍼졌다. 그녀에게 유일한 포옹을 해준 것은 그녀의 하반신이 묻힌 땅이었다. 그녀가 받은 유일한 키스들은 그녀의 살을 찢고 그녀의 뼈를 부수려고 그녀에게 던져진 돌들이었다. 그것들은 죽음의 키스들이었다. 그녀는 자신이 사랑한 남자와 결합된 것이 아니고 죽음과 결혼했다.

이것은 언니의 연인의 비극이다. 그의 삶은 그 의미를 잃었다. 그는 채찍질만을 당하였다. 그는 그 연애에 관하여 전부를 쉽게 잊어버리고 자신의 삶을 살 수 있었으나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나는 그가 마치 나의 언니가 나와서 그를 만나는 것을 기다리는 것 같이 매일 우리 집 앞에 서있었던 것을 보았던 것을 회상한다. 나는 그가 우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가 우리 집 앞에서 울고 있지 않을 때는 그가 공동묘지에서 자신의 사랑과 자신의 아기의 무덤 위에서 울고 있었던 것을 상상할 수 있다. 어느 날 그는 더 이상 자신의 고통을 참을 수 없어서 목을 매달았다.

그의 죽음은 은폐되었고 아무도 그것에 관하여 말하지 않았다. 아마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을 것이다. 그는 자신의 사랑과 자신의 아기와 다시 만났을 것이다. 어느 누구도 더 이상 그들을 해칠 수 없다. 어느 누구도 그들을 더 이상 서로 떼어 놓을 수 없다. 이것은 슬픈 이야기이다. 그러나 로미오와 줄리엣의 이야기와는 다르게 이것은 결코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이다. 어느 누구도 이 젊은 연인들에 관하여 이야기하지 않는다. 어느 누구도 그들을 위하여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 그들은 매장되었을 뿐 아니라 그들의 기억도 결코 없었던 것처럼 또한 묻혀버렸고 그들의 진실한 사랑은 다른 사람들에게는 피로 씻어져야 할 수치였다.

그러나 가장 슬픈 부분은 이슬람에 따르면 나의 언니는 그 죽음이 마땅하였다. 노인들은 언니가 지옥에서 영원히 불에 타고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아니다, 나는 하나님이 사랑하고 행복해지는 것 때문에 사람들을 지옥에 보낼 수 있다는 것을 상상할 수 없다. 나는 잔인한 하나님을 받아들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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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나의 인생을 보자. 내가 18살이 되었을 때 독일에서 온 터키 사업가와 결혼하게 되었다. 내가 독일에 갔을 때 그에게 다른 부인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가 나쁜 남자는 절대로 아니다. 그는 매우 친절하지만 무슬림이다. 예를 들면 그는 유럽인들이 일부다처제를 좋아하지 않는 이유를 이해하지 못한다. 그는 우리가 집에서 나오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그는 이 이상한 방식으로 우리의 명예를 보호한다.

그때 우리는 영국으로 이사했다. 여기서 우리는 터키인들이 더 없었기 때문에 독일에서 보다 더 고립되었다. 독일에서 우리는 적어도 우리 동포 친구들을 만날 수 있었다. 남편의 첫 부인과 나의 관계에 관하여 말하자면 우리는 친구였다. 우리 사이에는 약간의 경쟁의식이 있었고 그것은 확실하다. 그러나 나는 혼자이고 어느 누구를 만나거나 집을 떠날 수 없다. 그녀의 인생도 나와 마찬가지로 무의미하고 공허하다. 우리는 서로 미워할 수 없고 우리의 문제들을 극복하기 위해서 친구가 되어야 한다. 남편의 첫 부인과 나는 두 명의 감방동료와 같다. 우리는 우리 둘 밖에 없다.적대감 또는 힘든 감정을 가질 여지가 없다.

나는 5명의 자녀를 두었고 그녀는 4명을 두었다. 그녀는 아들을 낳았기 때문에 우리 가족 안에서 더 많은 특권을 가진다. 나는 지금까지 딸들만 나았다. 우리 둘 다 교육받았지만 그녀는 자식들에게 더 집착하여 자신을 돌보지 않는다. 나는 아직도 존재하지 않는 하찮은 것을 잡으려고 노력하고 있는데 아마도 어느 날 나는 자유롭게 될 것이고 책들을 읽을 것이고 계속해서 배우고 생각할 것이다. 그녀는 책을 읽거나 생각하는 것에 관심이 멀다. 나는 혼자이다. 때때로 나는 도망치는 것을 생각해 보지만 나는 5명의 딸들이 있다. 나는 그들을 떠날 수도 그들과 같이 도망칠 수도 없다. 사실상 나는 움직일 수 없다.

내가 오래전에 이슬람을 떠났어도 기도하거나 금식하는 것을 그만 둘 수 없다. 남편은 불순종하는 것에 대하여 매질을 한다.....내가 항의를 하려할 때 꾸란에서 인용한 말 때문에 말문이 닫힌다. 이슬람이 우리의 삶을 정의한다. 사람들이 오래전에 쓰여 진 한 권의 책에 따라서 사는 것이 어리석은 것 아닌가? 내 인생에 대하여 우는 소리를 하는 것이 아니라 이슬람을 증오한다. 적어도 나는 어떤 전통들을 반대할 수 있지만 이슬람은 우리 문화에서 가장 나쁜 것을 보존하였고 여성들을 노예로 전락시켰으며 그들을 계속해서 무지하게 만든다. 교육받지 못한 여성들에게서 무엇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내 딸들을 볼 때 나는 그들이 자유로운 세상에서 이슬람과 이 노예상태에서 자유롭게 살기를 기도한다. 알리씨, 당신이 이슬람을 아주 조만간 패배시킬 것을 약속하였으니 부디 그렇게 해주기를 부탁드립니다. 때로는 당신이 포기하고 싶은 느낌을 가질 것이라는 것 압니다. 그것이 내게는 좋은 명분에 당신이 전력을 다하고 있는 것으로 느껴집니다. 당신이 때로는 결코 성공하지 못할 것이라고 느낄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당신이 나와 같은 여성들을 위해서 싸우고 있다고 말해 주기를 원할 뿐입니다. 당신이 절망할 때 나와 함께 비슷한 비극적인 경험을 가진 수 백 만의 여성들을 생각하시기를 바랍니다. 절대로 포기하지 마세요. 당신은 빛나는 갑옷을 입은 나의 기사입니다. 내가 당신의 열성적인 후원자라는 것만을 당신이 아시기를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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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agmur Dursun은 필명이다. 이 이야기의 일부 상세한 부분이 저자의 신분을 보호하기 위하여 변경되었다.

(이 글은 2005.3.13에 faithfreedom.org에 처음으로 발표되었다)

 

원문보기 http://www.islam-watch.org/index.php?option=com_content&view=article&id=978:turkey-an-untold-love-story-and-islamic-barbarism&catid=34:testimon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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