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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인들이 아라비아 서부와 남부를 원정하다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23-11-14 16:49 조회80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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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인들이 아라비아 서부와 남부를 원정하다

 

 

저자: Dr. Rafat Amari

 

 

서부 아라비아와 남부 아라비아로 원정한 로마 탐험대는 중부 아라비아 지역에 지어진 마을들을 정확하게 설명했지만, 메카라고 불리는 도시는 결코 언급되지 않았다.

 

기원전 30년, 이집트는 로마의 속주가 되었다. 그 후 로마인들은 홍해를 따라 아라비아 지역들, 특히 아라비아 홍해 연안의 도시 루체 코메(Leuce Kome) 남쪽을 지배하기 원했다. 그곳에서 서쪽 중부 해안을 통해 야만족들이 해적 행위를 하며 바다 항해를 위협하는 장소들이 있었다. 로마인들은 또한 예멘을 지배하기를 원했고, 그 후 예멘을 통해 인도로부터 오는 향신료 무역도 통제하기를 원했다.

   

로마는 이집트의 총독 갈루스(Gallus)에게 군사 작전을 맡겼다. 그는 성공하지 못했지만, 그의 작전은 우리에게 더 많은 역사적 정확성을 제공한다. 갈루스는 1만 명의 로마 병사들, 1,000명의 나바테아(Nabataean) 병사들, 그리고 그 지역의 다른 로마 동맹들과 함께 이집트의 홍해 연안에서 출발했다. 나바테아인들은 그 당시 로마 제국의 지배를 받고 있었기 때문에, 그들은 군인들과 길잡이로서 이 원정에서 로마인들을 돕겠다고 약속했다. 나바테아인들은 홍해를 따라 북부 아라비아의 일부가 나바테아의 영토 아래 있었기 때문에 가이드로서 이상적이었다. 유명한 지리학자이자 역사가인 스트라보(Strabo)는 이 원정에 참여했고 그것에 대하여 그의 16번째 책에 기록하였다. 이것은 지리적인 측면에서 이 원정에 특별한 가치를 부여하는데 그것은 매우 기록이 정확한 원정이지 어떤 종류의 이야기가 아니다.

  

이 원정은 내륙 더 깊은 곳의 도시들을 놓칠 수도 있는 여행자의 여행이 아니었기 때문에 지리학자들에게는 특별한 의미가 있었다. 이 지역에서 로마 무역을 위협할 수도 있는 모든 마을과 도시를 통제하기 위한 군사적 원정이었다. 로마인들은 매우 철저했고 도시를 놓치지 않았을 것이다. 로마 원정대는 홍해를 따라 지리학자들이 탐험하던 땅을 살펴보았는데, 이전에 나는 그 땅이 해안에서 내륙으로 최소 100마일까지 확장된다고 말했다. 로마인들은 서부 아라비아 중부에서 시작된 해적 행위가 계속되었기 때문에 모든 마을을 제압하기를 원했고, 따라서 이 군사적 원정에서 어느 도시나 마을도 제외되지 않았다.

    

원정대는 "하얀 마을"을 의미하는 루체 코메(Leuce Come)에 도착했다. 이 마을은 원정 당시 나바테아 영토의 일부였다. 스트라보는 이 마을을 통해 페트라로, 그리고 그곳에서 이집트와 시리아로 가는 육로가 번성했음을 증명했다. 이 마을은 오늘날의 아라비아 지도에 북위 25도 7분, 동경 37도 13분의 엘 하우라(El Haura)에 위치해 있다.[1] [1] 루체 코메는 나중에 메카가 건설된 곳에서 280마일 정도 떨어져 있다. 이 마을의 남쪽에는 홍해를 따라 아라비아의 중서부가 펼쳐져 있는데, 그곳에는 기원전 103년에 사람이 살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홍해를 따라 육로가 번성하기 시작했기 때문에 갈루스가 점령한 기원전 103년 이후로 몇 개의 마을이 지어졌다. 이 마을들은 이 중요한 원정의 목격자였던 스트라보의 기록에서 언급된다.

 

갈루스는 루체 코메에서 그의 군대를 이동하여 낙타가 물을 운반해야 하는 지역들을 통하여 진군했다.

 

갈루스는 나바테아의 왕 오보다스(Obodas)가 자신의 친족인 아레타스(Aretas)에게 할당한 사막에 도달할 때까지 행군했다. 우리는 갈루스가 루체 코메에서 약 1,100 그리스 스타디아(약 137마일) 떨어진 에그라(Egra) 마을을 향해 행군하고 있었다고 추측한다. 스트라보는 아레타스가 통치하는 이 땅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그 땅은 거친 곡물의 일종인 제아(zea), 야자수 몇 그루 그리고 기름 대신 버터만을 제공했다.[1][2]

 

이 말은 남쪽에서 오는 카라반 루트에 기지가 거의 없는 인적이 드문 땅을 묘사한 것이다. 이 기지들은 주로 이 지역을 통과하는 무역을 보호하고 통제하기 위한 나바테아 기지들이다.

   

스트라보는 다음과 같은 말로 아라비아 중부-서부 원정의 다음 부분을 설명했다:

 

갈루스가 그 다음으로 건너간 지역은 유목민의 땅이고, 그 땅의 대부분은 정말로 사막이었으며 그 땅은 아라렌(Ararene)이라고 불렸고 그가 네그라니(Negrani)에 도착하는데 50일이 걸렸다.

 

그곳은 메카에서 남쪽으로 약 385마일, 홍해 해안에서 약 125마일 떨어진 예멘의 국경에 위치한 나즈란(Najran)이라는 도시였다. 우리는 스트라보의 설명을 통해 원정 당시 홍해를 끼고 있던 아라비아 중부 서쪽 항로는 기원전 3세기와 2세기 이후 거의 변화가 없었다고 이해한다. 이 지역은 이전의 지리학자들에 의해 북쪽에는 사람이 살지 않았고, 남쪽에는 예멘 근처에 더 문명화된 사람들에게 도달할 때까지 베두인이 거주하고 있다고 설명되었다. 나바테아인들이 카라반 도로상에 건설한 기지 중 적어도 세 곳은 작은 마을이 되었고, 이는 이번 원정에서 언급된 것이다. 이 상황은 기원전 2세기와 3세기의 상황과 비슷했을 것이다.

 

갈루스는 이 지역에서 오는 해적 행위로부터 무역을 보호하기 위해 그 지역을 제압하기를 원했다. 그의 계획은 이 위험한 지역에서 발견되는 모든 도시들을 점령하는 것이었지만, 나즈란에 도착할 때까지 어떤 도시도 찾지 못했다. 이것은 메카가 그 당시에 아직 건설되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즉, 기원전 23년경 갈루스는 나즈란을 점령했고, 그 당시 (예멘 영토 내) 아스카(Asca)를 점령했다. 남쪽으로 가면서, 그는 아트룰라(Athrula)라고 불리는 도시를 점령했고, 그리고 나서 마르시아바{Marsiaba; 아마도 사바의 수도인 마립(Ma'rib)}를 향해 진격했다. 그는 6일 동안 그 도시를 공격하고 포위했지만, 물이 부족해서 포기했다. 그는 나즈란의 아라비아인들과의 전쟁과 그 남쪽에서의 전투에서 단지 7명의 군인을 잃었다. 그의 군대에서 대부분의 손실은 물과 보급품의 부족과 질병에서 왔다.

 

만약 메카가 로마 원정 당시에 존재했더라면, 휴식과 보급품을 보충할 도시가 필요했던 지친 군대가 놓치는 것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갈루스 군대의 고생은 후대에 메카가 건설된 아라비아 중부의 이 지역에 있는 몇 안 되는 작은 마을들 사이에 존재하는 광대한 거리 때문이었다. 이로 인해 많은 병사들이 물과 물자 부족으로 목숨을 잃었다. 로마인들은 실레우스(Syllaeus)가 길잡이로서 마을과 도시 사이에서 원래보다 더 먼 길을 선택했기 때문에 자신들을 돕지 않았다고 비난했다. 원정대의 모든 동시대 사람들이 그 마을들과 도시들을 알고 있었고 주민들이 확인했기 때문에 그 지역에 존재하는 모든 마을들을 통과하는 계획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 즉, 각 마을이나 도시들은 나즈란과 예멘의 다른 도시들로 가는 도중 갈루스가 방문해야 했던 다음 도시나 마을의 이름을 알고 있었다.

   

서부 아라비아 중부를 모두 제압하는 것이 원정의 중요한 목표였기 때문에, 만약 그때 그곳에 메카가 존재했더라면 갈루스는 메카와 같은 도시를 놓치지 않았을 것이다.

   

또 하나 고려해야 할 점은 갈루스가 예멘의 도시 마르시아바를 점령하는 데 실패한 후, 그는 길잡이로서 실레우스를 제외하고, 대신 원주민의 전문가들에게 의존하여 네그라나(Negrana)로, 그리고 다시 나바테아 마을인 루체 코메로 돌아갔다는 것이다. 결국 메카가 나중에 건설될 카라반 도로 위에 세워진 몇 안 되는 마을들을 통과하면서, 스트라보는 그 마을들의 이름을 언급했지만, 메카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1][3] 결국 갈루스는 전쟁에서 철군했다. 이 중앙 아라비아의 길 위에 건설된 마을들 사이의 거대한 거리는 11,000명 이상의 군대에게 보급품 공급의 문제를 일으켰다. 갈루스는 물과 보급품이 부족하여 수천 명의 병사를 잃었다.

    

로마의 역사학자 디오 카시우스(Dio Cassius)는 로마의 역사라는 책에서 탐험의 실패에 대해 다음과 같이 썼다:

 

처음에 아엘리우스 갈루스(Aelius Gallus)는 아무도 만나지 못했지만, 어렵지 않게 진군한 것이 아니었는데 그 이유는 사막, 태양, 그리고 (일부 특이한 특성을 가진)물, 이 모두가 그의 부하들을 큰 고통에 빠뜨려서 군대의 많은 병사가 죽었기 때문이다.[1][4]]

 

이것은 우리의 주장을 발전시킨다. 만약 메카가 도시로 존재했더라면, 메카를 통제하는 것이 갈루스의 주요 목표였을 것이다. 역사학자들 중에 카라반 도로 위에 세워진 몇 개의 마을을 제외하고는 어떤 도시도 언급하지 않았다. 메카가 존재했더라면, 그곳은 휴식을 취하고 보급품을 보급하며, 사람이 나즈란과 예멘의 다른 도시들을 향해 이 끔찍한 길의 나머지 지역을 횡단할 수 있도록 준비하는 중요한 장소였을 것이다. 사막을 점령하려고 계획했던 사람들은 그 중심 도시를 버리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 사막에는 메카와 같은 도시가 존재하지 않았고, 그것이 원정대가 보급품 문제로 고생했던 이유이다.

    

이것이 궁극적으로 보여주는 것은, 메카가 아브라함 시대에 번성했던 도시였다는 이슬람교의 주장은 근거가 없고 거짓이라는 것이다. 당시 역사가들의 모든 기록은 메카가 기원후 4세기까지 존재하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 핵심 주장에 대해 이슬람교가 틀리다면, 우리가 어떻게 다른 주장들을 믿을 수 있겠는가?

 

 

 

[1][1] Wilfred Schoff on his comment on The Periplus of the Erythraean Sea,  Munshiram Manoharial Publishers Pvt Ltd. ( New Delhi, 1995), page 101

 

[1][2] The Geography of Strabo,  Book XVI. 4 .  24

 

[1][3] Regarding the expedition of Gallus; He returned to Negrana in nine days after he failed to occupy Marsiaba in Saba. Negrana is Najran, about 650 kilometers south of Mecca. On the 11th day he reached a village called Hepta phreata, then he went to another village named Chaalla, then on to another village named Malotha which, most probiblay, was Malothan located close to the actual city of Jadda, which is about 30 miles from Mecca. But between Malotha or Malothan and Egra (north of where Mecca was later built) there were no villages mentioned by Strabo who accompagned the expedition. Gallus badly needed urgent supplies of water and food, but he could not find villages which could give him rest, and re-supply his troops in the area where Mecca was eventually built.

See The Geography of Strabo,  Book XVI. 4 .  24

 

[1][4] Dio Cassius: History of Rome, Book LIII. xxix.3-8.

 

For more on the subject of History and Mecca, we refer the reader to Dr. Amari's book: Islam in light of History

 

 

 

http://rrimedia.org/Resources/Articles/the-romans-explore-western-and-southern-arab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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