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람은 종교가 아닌 폭력적인 정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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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Dr. Sami Alrabaa (2013. 4. 15)
꾸란(무슬림들의 거룩한 책)이 대부분의 무고한 사람들인 무슬림들과 비-무슬림들을 살해하라고 선동하는 흉악한 구절들(아래를 보라)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에 비추어 그리고 그들의 사회들과 전 세계에, 특히 아프가니스탄, 파키스탄, 나이지리아, 말리, 그리고 하마스의 가자에서 테러를 일으키고 있는 이슬람의 무슬림 극단주의자들이 있다는 사실에 비추어 볼 때 우리는 이 “종교”에 잘 못된 것이 있다고 말해도 무방하다.
게다가 이슬람이 지배하는 곳 마다 또한 이란, 남부 레바논(여기는 헤즈볼라가 지배한다), 소말리아,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압제가 통치이다. 그곳에는 어떤 종류의 자유가 없는데 종교의 자유 그리고 언론의 자유가 없다. 우수한 것이라곤 독재밖에 없다.
증오와 살인을 전파하는 신앙을 “종교”라고 부르는 것은 극도로 비논리적이며 전혀 이치에 맞지 않는다. 문명화된 세계에서 그것은 정치적으로도 종교적으로도 전혀 이치에 맞지 않는다.
불행하게도 성경에도 현대 문명화된 세계에서 삶에 맞지 않는 구절들이 있다. 예를 들면 여성들이 차별 받는 구절들이 성경에 있다. 여기 한 예가 있다. “여자는 교회에서 잠잠하라 그들에게는 말하는 것을 허락함이 없나니 율법에 이른 것 같이 오직 복종할 것이요 만일 무엇을 배우려거든 집에서 자기 남편에게 물을지니 여자가 교회에서 말하는 것은 부끄러운 것이라.”[고린도전서 14:34-35]
하나 더 인용하겠다: “무릇 여자로서 머리에 쓴 것을 벗고 기도나 예언을 하는 자는 그 머리를 욕되게 하는 것이니 이는 머리를 민 것과 다름이 없음이라 만일 여자가 머리를 가리지 않거든 깎을 것이요....“ [고린도전서 11:5-6]
그러나 유대인들과 기독교인들은 이러한 구절들을 수 세대동안 건너뛰거나 무시하였다. 어느 누구도 그 구절들을 설교하지 않으며 가장 보수적인 자들도 그렇다. 게다가 꾸란과 달리 성경은 폭력이 없다.
반면에 보수적인 무슬림들은 그것이 얼마나 흉악하든지 상관없이 꾸란의 모든 구절들을 주장한다. 꾸란을 무슬림 하나님인 알라가 만들어서 예언자 무함마드에게 전파하라고 주었다고 그들은 주장한다.
이슬람이 시작된 이후 지난 14세기 동안 무슬림 체제는 이러한 구절들을 건너뛰거나 무시하거나 또는 역사적인 배경에서 그러한 구절들을 보는 것을 거부하였다. 그렇게 하는 자는 누구든지 이단으로 여겨지며 사형에 직면한다. 보수적인 무슬림들에게 있어서 꾸란은 하나님의 말씀이며 그러므로 그것은 모든 시대와 장소에서 유효하며 꾸란의 모든 말씀은 신성하다.
솔직하게 그리고 은연중에 이슬람을 비판자하는 자들은 평범한 무슬림들이 꾸란을 상세히 읽고 그들이 선택을 자유롭게 할 수 있다면 그들은 이슬람의 면전에서 문을 쾅 닫고 이슬람을 버릴 것이라고 확신한다. 많은 자유주의 무슬림들이 이슬람을 떠나려고 하지만 그들은 꾸란에 따르면 사형으로 처벌받는 배교로 고소되는 것을 두려워한다. 여기 꾸란이 배교에 관하여 말하는 것이 있다. “그럼에도 그들이 배반한다면 그들을 포획하고 그들을 발견하는 데로 살해할 것이며....” (꾸란 4:89)
다른 종교들, 특히 기독교와 유대교와 다르게 이제 이슬람은 어떠한 종류의 개혁도 허용한 적이 이제까지 절대로 없었다. 이슬람의 14세기 역사 동안 모든 개혁시도는 짓눌렸고 초기에 싹이 잘렸다. 개혁자들은 핍박을 받았고 이단자로서 살해되었다.
9.11테러공격 이후 그리고 인터넷, 그리고 TV의 국제화 덕분에 이슬람 역사에서 처음으로 모든 곳에서 엄청난 토론이 전파되기 시작하였다. 이슬람의 비판자들이 그들의 관점을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는 포럼들이 곳곳에 있다. 9.11테러공격과 인터넷은 이슬람을 폭로하고 있다.
여전히 과격한 무슬림들은 모든 곳에서 사람들을 두렵게 하고 겁을 주고 있다. 예를 들면 이슬람에 관한 나의 비평논문들 가운데 하나를 읽으라고 내가 주었던 Reinhardt는 그것을 읽고 “그러한 과격한 무슬림들에게 살해당하는 것이 두렵지 않습니까?”라고 질문하였다. 나는 “물론 나는 두렵습니다. 그러나 이슬람에 관하여 진실을 말해줄 누군가는 있어야 합니다.”라고 대답하였다. 덧붙여서 나는 이슬람을 폭로하기 위하여 단순히 사실들과 꾸란에서 인용들을 사용하고 있다고 Reinhardt에게 말하였다. 내가 말하고 있는 모든 것은 무슬림들의 거룩한 책이 전파하고 있는 것을 보는 것이다. 게다가 나는 어떠한 것도 해석하고 있지 않다. 나는 단지 이슬람의 최고의 권위가 말하고 있는 것을 말하고 있을 뿐이다.
세상 끝까지 내가 이루기 원하는 모든 것은 진실과 그들의 거룩한 책이 그들에게 하라고 가르치는 것을 무슬림 테러리스트들이 실제로 이행하고 있다는 사실에 무슬림들과 비-무슬림들의 눈을 여는 것이다. 그 악은 뿌리에 있지 열매에 있지 않다.
나아가서 인권단체들, 평화활동가들, 그리고 당신과 나와 같은 평범한 사람들이 꾸란의 그러한 모든 흉악한 구절들을 정죄하기 위하여 모든 서방세계 인권법원에 청원서를 제출한다면 법원은 그러한 구절들을 부정하고 그것들을 엄정하게 정죄할 것이라고 나는 강하고 확실하게 믿는다. 많은 서방세계 국가들에 증오를 관용하지 않는 입법들이 있는데 그것은 언론의 자유와 아무 관계가 없다.
그러나 일부 관찰자들은 그렇게 낙관적이지 않다. 그들은 일부 판사들이 정치적으로 되어 그것들을 역사적인 배경 안에서 참작한 다음에 그러한 구절들을 인정할 가능성이 있다고 믿는다.
이제 서방세계 인권법원이 꾸란의 흉악한 구절들을 정죄한다고 가정하자, 그 다음에도 무슬림들은 평소대로 거리를 점령하고 맹렬하게 항의하고 중세시대와 같이 무고한 사람들을 살해하고 그들의 부동산들을 파괴할 것이다.
그것이 정확하게 서방세계의 많은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그러한 종류의 반응이다. 일부 서방세계 정치체제와 그들의 미디어는 주장할 것이다. 우리는 그들을 자극하였다. 우리는 그렇게 하지 말아야 했다.
분명히 21세기의 세계는 이슬람의 악한 부분과 같이 살 운명이며 이것은 다가오는 세대에서도 그렇게 될 가능성이 있다. 그것은 커다란 딜레마이며 그것에 대한 보이는 해결책이 없으며 단기적으로도 중기적으로도 없으며 장기적으로도 없을 지도 모른다.
꾸란의 흉악한 구절들에 의하여 고무된 과격한 무슬림들의 정치
팔레스타인 이슬람 과격파 정당인 하마스는 되풀이하여, 노골적으로, 명백하게 그것의 궁극적인 목표가 “이스라엘의 파괴!”라고 반복하여 말하였다. 이것은 또한 그것의 정치적 프로그램에 아주 명백하게 진술되어 있다.
실제로 하마드 정치인들, 그리고 그들을 위하는 모든 이슬람 과격파 단체들은 꾸란에 의하여 고무되었고 꾸란에 의하여 움직인다. 이러한 단체들은 꾸란이 그들에게 가르치는 것을 철저하게 이행하며 실행한다. 여기 꾸란의 일부 구절들이 있다.
이교도들을 살해하라:
“그들을 발견한 곳에서 그들(비-무슬림들)을 살해하라....”(꾸란 2:191)
무슬림들은 유대인들과 기독교인들을 친구로 삼지 말아야 한다:
“오 믿는 자들이여 유대인과 기독교인들을 친구로 그리고 보호자로 삼지 말라” (꾸란 5:51)
혼내주고 또 모욕하기 위하여 무슬림들의 “예언자” 모함메드는 그가 살아 있는 동안 유대인들을 되풀이하여 비난하였다. 그의 하디스(무슬림 지도자가 그의 생애동안 한 말들과 권고에 관한 7,000페이지 이상의 엄청난 수집들)에서 그는 무슬림들에게 그들이 있는 모든 곳에서 유대인들을 청소하라고 선동하였다. 그는 그들을 원숭이와 돼지로 비하하였는데 무슬림들의 눈에는 이것들은 “쓸모 없는” 동물들이다.
꾸란에서 흉악한 말들은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 꾸란은 이슬람을 떠나는 무슬림들을 살해하라고 선동하는 구절들로 가득하다.
다른 종교로 개종하는 무슬림들을 살해하라:
“그럼에도 그들이 배반한다면 그들을 포획하고 그들을 발견하는 대로 살해할 것이며....”(꾸란 4:89)
여전히 버락 오바마 그리고 전 독일 대통령 기독교인 Wulff는 “이슬람은 평화스러운 종교이다!”라고 믿는다.
또한 꾸란은 성별에 근거하여 증인으로서 여성들을 차별한다:
두 명의 여성은 남성 증인 한 명과 같다:
“그리고 두 남자의 증인을 세울 것이며 두 남자가 없을 경우는 한 남자와 두 여자를 선택하여 증인으로 세우라 한 증인이 잘못 한다면 다른 증인이 기억을 할 것이기 때문이라.” (꾸란 2:282)
간음한 여성들은 죽임을 당해야 한다:
“너희 여인들 가운데 간음한 자 있을 때 네명이 그 사실을 증거하고 그리고 그 여인들이 인정할 경우 그 여인들은 죽을 때가지 집안에 감금되거나......”(꾸란 4:15)
남성들은 그들이 원할 때마다 아내들과 성관계하는 것이 허용된다:
“여성들은 너희들이 가꾸어야 할 경작지와 같나니 너희가 원할 때 경작지로 가까이 가라 그리하여 씨를 뿌리되...”(꾸란 2:223)
게다가 꾸란은 모순들로 가득하다. 예를 들면, “종교가 강요받아서는 아니 되니라,”(꾸란 2:256)라고 말하는 반면에 그 동일한 꾸란은 “그들을 발견하는 곳에서 그들(이교도들)을 살해하고”(꾸란 2:191)라고 말한다.
마찬가지로 꾸란은 “너희는(무슬림들) 가장 좋은 공동체 백성이라.”(꾸란 3:110)라고 자랑한다.
거의 모든 곳에서, 특히 발전하는 세계에서 사람들이 민주주의와 자유를 요구하고 있는 반면에 무슬림 지도자들은 모스크들과 TV쇼들에서 다음과 같이 외친다:
- 이교도들을 제거하라 그러면 모든 것이 잘 될 것이다.
- 샤리아(꾸란과 하디스에 기초한 이슬람 법)를 적용하라 그러면 모든 것이 잘 될 것이다.
일부 이맘들은 그 이상 더 나간다. 독일 Osnabrück 모스크에서 그들 가운데 한 명이 지난 금요일 “이교도들이 자동차와 비행기를 발명한 것은 알라의 뜻이다. 그(알라)는 이교도들이 우리 무슬림들을 위하여 일하게 만든다. 그들은 우리의 노예들이다. 알라는 불신자들로 있기를 고집하는 그들을 처벌하고 있다.”라고 말하였다.
다른 말로 주장하는 바에 따르면 “인간들 가운데 가장 우수한 국민”인 무슬림들은 단지 이교도들이 생산한 열매를 즐기고 있다. 이 모든 것이 무슬림들의 눈에 할랄(halal; 허용되는)이다.
그러한 쓰레기 같은 말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놀랍다. 웃어야 하나 아니면 화내야하나?
지금 무슬림들이 통치하거나 아니면 적어도 위와 같은 말을 하는 사우디아라비아를 포함한 모든 사회들 안에서 아동기에 성별분리와 여성들이 히잡을 쓰는 것은 엄격하게 시행되는 관습들이다.
4월 1일, 월요일, 하마스는 학교에서 여학생들은 여성 교사들에게만 배워야하는 법을 도입하였다. 남성은 여학생들을 가르치는 것이 허용되지 않는다.
다행히도 그러한 중세기적 조치들을 거부하는 무슬림들이 있지만 그들은 힘이 없다. 교사이며 인권운동가인 Zainab Al Ghonaimi는 가자에서 전화로 내게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나와 동료 몇 명이서 교육부 대변인 Waleed Mizher 앞에서 그 법에 대하여 항의하였을 때 그는 ‘당신들이 그것을 싫어한다면 당신들은 가자를 떠나면 된다.’ 그는 더하여서 ‘우리는 단지 이 세상에서 가장 좋은 법인 알라의 샤리아를 시행하고 있다.’라고 말하였고 그것으로 끝이었다.”
Al Ghonaimi는 또한 하마스가 최근에 무슬림이든 아니든 관계없이 모든 여성들에게 이슬람 의상을 강요하였다고 내게 말하였다. 남성은 여성을 위한 미용사로 일할 수 없다. 게다가 가자거리를 걷는 남녀들은 종종 경찰에 의하여 그들의 관계를 질문 받는다.
독일의 터키인들(약 300만명)은 독일 경찰당국이 그들이 이제까지 요구한 각종 모든 요구를 들어준 것에 기뻐하고 있다.
몇 년 전에 독일에서 터키인 8명을 살해한 혐의로 기소된 “우익 테러집단”이라고 주장되는 소위 NSU에 대한 가장 최근의 재판이 4월 중순에 시작된다.
독일과 국제 언론들은 기한 내에 재판정의 입회인 좌석을 신청하였고 배정받았다. 터키 언론은 그 좌석예약을 놓쳤고 이제 그들과 그들의 정부는 독일의 사법부가 터키인들에 대하여 불평등하다고 비난하고 있다. 터키 언론은 그들의 뉴스 머리기사에서 “독일인들은 터키인 8명의 살해에 관한 진실을 터키가 아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라고 말한다.
입회인들은 독일이 결국에 터키인들의 모든 요구들에 양보할 것이라고 믿는다.
몇 가지 사회학 연구들에 따르면 독일에 살고 있는 터키여성들의 80% 이상이 그들의 머리를 덮는 이슬람 의상인 머리스카프 히잡과 롱코트를 입는다.
독일의 납세자들은 터키 어린아이들을 위한 터키 TV 프로그램에 비용을 부담한다. 독일에서 태어나고 살고 있는 터키 어린아이들에게 있어서 그들의 제 1언어는 독일어가 아니며 터키어이다.
장기적으로 볼 때 터키인들의 출생률이 상당히 높다는 사실에 비추어 터키인들은 독일로부터 독립을 위하여 싸울 수 있고 유럽 한 가운데 터키 국가, 이슬람법 샤리아를 토대로 하는 터키 이슬람 국가인 그들 자신의 국가를 가질 수 있다.
게다가 하디스에 따르면 무슬림들은 비-무슬림들에게 거짓말하고 그들을 속이고 그들의 여성들을 강간하고 그들을 학대하는 것이 허용된다.
그의 가족과 함께 터키로 시리아 내전을 피하였던 시리아 기독교인 난민 Hanna Jabbour는 전화로 내게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시리아 국경 Akcakale시 근처에 있는 여기 난민캠프의 터키 당국자들은 기독교인들을 차별한다. 그들은 우리에게 무슬림들보다 더 적은 음식을 준다. 그들은 텐트에서 사제들이 예배를 드리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다. 그들을 우리를 개와 같이 취급한다. 우리가 항의하기 시작하자 경찰은 우리를 매질하였고 우리를 분산시키려고 췌루가스를 사용하였다.”
이것은 그 캠프에서 소요를 일으켰다. Hanna가 “그와 같이 학대받기 보다는 내전에서 죽는 것이 더 낫다”고 말하였듯이 많은 기독교 난민들은 “지옥”인 시리아로 돌아가기로 결정하였다.
서방세계 민주주의자들은 그들 자신의 문명화된 이상적인 인본주의 원리의 희생자들이다. 영국신문 the Guardian에 따르면 테러리스트 혐의를 받고 있어 그의 고향 요르단으로 추방될 예정인 광신적인 성직자 Abu Qatada가 이제까지 5십만 영국 파운드 이상의 비용을 영국 납세자들에게 부담시켰다. 수백명 독자들에 의한 촌평의 요지는 “이것은 잘못되었다!”, “그 사람은 문명화된 가치들에 대항하여 증오를 전파하였고 그것을 위하여 그에게 그렇게 많은 돈이 소비되었다.”였다.
독일의 터키인들은 또한 매년 납세자들에게 수십억 유로를 부담시킨다. 무엇으로? “그들 가운데 대다수는 기생충 소비자들이다. 그들은 빈둥거리며 건설적인 것은 전혀 안한다.” Hartmut가 과감하게 말한다. “독일의 정직한 납세자는 그의 돈이 게으른 거지들이 아닌 건설적인 프로젝트에 잘 투자되는 것을 보기 원한다!” Dieter가 더하여 말하였다.
결국 전 세계는 북한과 이란의 핵과 광신적 이슬람에서 오는 3중의 치명적인 위험들에 직면하고 있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말해서 핵전쟁을 억제하는 것은 군사적으로 기술적으로 쉬울지도 모르지만 이슬람의 거룩한 경전들에 의하여 지지되고 무슬림들을 대적하는 두려움 때문에 서방세계 정부들이 관용하는 이슬람 극단주의를 억제하는 것은 장기적으로 극도로 어려울 것이다.
나의 논문 “독일에서 터키인들은 시한폭탄이다”에서 말하였듯이 독일의 3백만 터키 이민자들은 더 많은 이슬람을 자꾸 자꾸 요구하고 있고 그들이 원하는 것을 얻고 있다. 결국 그들은 자신들의 국가를 요구할 것이고 그들이 사이프러스에서 하였듯이 자신들을 “보호”하기 위하여 터키군대를 초청할 것이다. 결국 우리는 유럽의 가운데 이슬람 칼리프 국가를 가질 것이다.
위의 인용한 구절들을 찾아보기 위하여 http://quran.com/1을 보라.
원문출처 http://www.islam-watch.org/authors/75-sami/1290-islam-is-a-violent-political-party-not-religion.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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