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삭인가 이스마엘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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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무슬림 아랍인들은 특이하게도 성경에 유일하게 나타나는 원래의 이야기가 우리에게 말해주듯이 아브라함이 이삭이 아닌 이스마엘을 번제로 드리려하였다고 꾸란이 주장한다고 세계에 말한다.
사실이 무엇인가?
A: 이삭은 사라의 유일한 아들이었고 토라에서 제물로 드려진 자였다.
창세기 22장
1절. 그 일 후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시험하시려고 그를 부르시되 아브라함아 하시니 그가 이르되 내가 여기에 있나이다.
2절.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일러준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
9절. 하나님이 그에게 일러 주신 곳에 이른지라 이에 아브라함이 그곳에 제단을 쌓고 나무를 벌여 놓고 그의 아들 이삭을 결박하여 제단 나무 위에 놓고
10절. 손을 내밀어 칼을 잡고 그 아들을 잡으려 하니
11절. 여호와의 사자가 하늘에서부터 그를 불러 이르시되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하시는지라 아브라함이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매
12절. 사자가 이르시되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 그에게 아무 일도 하지말라 네가 네 아들 네 독자까지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 아노라.
꾸란에 있는 버전(꾸란 37:100~107)은 성경의 이야기와 완전히 상반되며 다르다. 게다가 꾸란은 후대의 무슬림 학자들이 다른 이야기로 필사적으로 조작하였듯이 제물이 되는 자가 이스마엘이었다고 주장하거나 단정하지 않는다.
위의 성경구절들은 제물이 되는 자가 아브라함의 가장 중요한 아들로 여겨지며 “네 아들 네 독자까지도”라고 반복하여 기술하였듯이 항상 이삭, 오직 이삭이었음을 반복하여 그리고 아주 명확하게 보여준다.
이삭의 이름은 꾸란의 4개 장 에서 이스마엘과 더불어 나타난다.(꾸란 2:133,136,140; 3:84; 4:163; 14:39).
(이스마엘 없이)그의 이름만 아브라함 또는 야곱과 더불어 꾸란의 8개 장에서 나타난다.(꾸란 6:84; 11:71; 12:6; 38; 19:49; 21:72; 29:27; 37:112~113; 38:45).
꾸란은 이삭의 이름을 16번 언급하지만 이스마엘의 이름은 8번만 언급한다.
***무함마드의 추종자들이 어떠한 대가를 치르더라도 자신들에게 걸 맞는 조상을 만들기 위하여 기록된 역사, 사실, 실상, 언어를 왜곡하고 조작하고 뒤트는데 있어서 그들의 비참하고 가련한 노력에 최선을 다하는 것은 인류 지성에 대한 모욕이다.***
전해지며, 입증되지 않았으며 완전히 조작된 아랍의 ‘전통들’에 따르면 그리고 성경에 기록된 원래의 이야기들과 반대로 이삭이 이스라엘 민족의 ‘조상’인 것처럼 이스마엘은 그들의 ‘조상’이다.
아주 처음부터, 위에서 말하는 소위 ‘전통들’은 그들이 주장하는 무함마드의 ‘계시들’ 그리고 후대의 하디스들 이전에 다신교도 아라비아 사람들의 마음속에 존재하지 않았다.
이 장에서 나는 독자들에게 이스마엘에 관한 두 가지 버전의 이야기를 보여주겠는데 성경에 있는 원래의 이야기와 그것과 비교하고 대조할 꾸란에 있는 이야기이다.
성경에 따르면 아브라함은 히브리 부족에 속하였다.
창세기 14:13 도망한 자가 와서 히브리 사람 아브람에게 알리니 그때에 아브람이 아모리 족속 마므레의 상수리 수풀 근처에 거주하였더라 마므레는 에스골의 형제요 또 아넬의 형제라 이들은 아브람과 동맹한 사람들이더라.
히브리인들은 지금 이라크라고 부르는 땅에 살았던 수많은 셈족들 가운데 하나였다.
이라크와 시리아의 셈족들이 아라비아에서 유래되었다는 추측에서 역사가들이 옳다면 히브리인들은 이러한 부족들 가운데 하나이다. 만약 이것이 사실이라면 아브라함과 이스마엘은 아랍인들이 그들에게서 유래되었다고 주장하는 아랍인들의 조상들이 또한 될 수 없다.
조작되고 입증되지 않은 아랍의 ‘전통들’에 따르면, 아브라함은 ‘아기’ 이스마엘과 그의 어머니(하갈)과 함께 메카 계곡까지 여행하였고 나중에 함께 카바 신전의 기초를 지었다.
꾸란 2:127 또 아브라함과 이스마엘이 성전의 초석을 세운 것을 ‘주여 받아 주소서. 참으로 당신께서는 모든 것을 들으시고 아십니다.
꾸란 2:128 주여, 저희들을 당신이 귀의자로 하여 주시고, 저희들의 자손을 당신에게 귀의할 수 있는 백성으로 만들어 주소서.
***역사의 왜곡, 사실과 실상의 조작은 소위 ‘이슬람 학자들’이 가장 최고이다. 다신교도 아라비아의 기록에도, 이러한 아랍인들에게 구전되는 전통들에도 그들의 주장들 가운데 어떤 이라도 입증할 그러한 ‘아랍의 전통’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그들은 아주 잘 안다.
무슬림 학자들이 옳다면 알라는 아브라함에게 히브리어로 말하였을 것이고 카바가 있는 지역에서 들었던 최초의 언어도 아랍어가 아니라 히브리어였어야 했다.
몇 구절에서 무함마드도 다신교도 아랍인들도 이전의 계시들에 관한 어떠한 지식도 없었다고 주장하는 꾸란에도 무슬림 학자들이 모순되는 것은 그들이 지성적으로 자포자기한 수준을 알 수 있다.
꾸란 2:78 그들 중에는 글을 읽지 못하여 그 성서(Book)를 알지 못하고[ummiyoona la ya'lamoona'l kitaba]......
꾸란의 단어 Ummi는 수니파 (정통)무슬림들에 의하여 의도적으로 “문맹, 글을 모르는”으로 잘못 번역되었다. 비평적 학자들(그의 Tafsir에서 Tabari)은 이 의미가 궁금한 형용사는 꾸란에서 변함없이 성서의 백성들(Ahl al Kitab)과 같이 또는 대조하여 사용되었고 그러므로 성서 또는 경전이 없는 이전에 계시된 종교를 모르는 자를 의미하는 것으로 번역되어야 한다.
하나님은 그의 ‘유일한 아들’ 이삭은 그의 첩 하갈에서가 아닌 그의 첫 부인 사라에서 태어난 자였음을 강조하여 아브라함에게 분명히 말하였고 그로인하여 이스마엘은 제물이 되는 것과 약속의 땅을 유업으로 받는 복에서 모두 제외되었다.
우리는 여기서 성경이 가짜인지 꾸란이 가짜인지의 아주 중요하고 엄청난 딜레마에 처한다. 동일한 사건에 대하여 그것들이 상반되는 버전을 가지고 있을 때 둘 다 옳을 수 없다.
성경은 꾸란보다 적어도 2100년 앞서기 때문에 하나님이 모세와 ‘직접 대면하여’ 주었고 이차적으로 전달 받지 않았으며 꾸란의 경우와 같이 어떠한 매개자를 통하여 불순하게 되지 않은 것이었기 때문에 이것과 다른 완전히 변경된 버전의 토라를 천사 가브리엘이 무함마드에게 주었다고 믿을 수밖에 없다.
우리는 가브리엘이 의도적으로 하나님의 성경을 변경하였다고 추측할 수밖에 없는데 이 또한 생각할 수도 없다.
성경 사건의 꾸란 버전에 스며있는 모든 불일치, 증오선동, 전쟁선동, 차별, 문법적 오류, 역사와 인물의 혼란, 거짓들, 이상한 것들, 앞뒤가 안 맞는 것들, 시간과 공간의 착오의 모든 것을 어떤 전능하시며 자비하시며 긍휼하신 하나님이 계시하였다고 믿는 것이 불가능한데 그렇다면 단 한 가지 결론이 가능하다.
꾸란에 있는 모든 글자, 모든 단어, 모든 구절, 모든 장은 무함마드가 유대인과 기독교인들에게서 들은 이야기들과 설화들을 모은 것에서 그가 왜곡한 것들에 기초하여 무함마드 마음의 개인적인 생각과 상상과 남 모르게 가지고 있던 것들의 산물이다.
그것들은 사실상 무함마드 자신의 또 다른 자아이지만 검은 돌이라고 부르며, 카바 신전의 한 쪽 구석 벽에 박혀 있으며, 돌로 된 메카의 다신교도 우두머리 우상신이며, 사람들이 의심하지 않는 알라의 입으로 교묘하게 표출되었다.
꾸란의 저자들은 무함마드, 알라, 가브리엘인데 하나이며 같다.
그것들은 모두 무함마드 자신이며 알라, 가브리엘, 사탄은 단지 그가 주장하는 계시들에 신성과 하나님의 권위를 주기 위하여 필요한 소도구들이다.
자료출처 http://www.the-koran.blogspot.kr/2008/07/isaac-or-ishmael-part-49.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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