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라비아의 기독교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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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아라비아의 유대인들에 관한 장에서 무함마드와 그의 꾸란 이전 수세기에 아라비아 반도에 유대화된 아랍인들이 있었다는 것을 아는 사람들은 세상에 거의 없다는 것을 말했다.
아라비아의 기독교인들에 관하여서도 물론 마찬가지인데 아라비아의 기독교인들도 무함마드보다 적어도 300년 먼저 살고 있었다.
왜 당신은 이것이 문제가 된다고 생각하시는지? 그리고 이 기독교 아랍인들은 누구였는지?
A: 당신의 질문에 대하여 먼저 답변해야할 부분으로, 무함마드와 그의 꾸란 오래 전에 아라비아 반도에 기독교화되고 유대화된 아라비아 부족들이 있었다는 것을 일반적으로 모르는 세계에 알리지 않는 것이 아라비아 무함마드 추종자들의 의도적인 정책이었고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이 때문에 그것이 없이는 꾸란이 존재할 수 없었던 경전들과 전통들에 의하여 무함마드가 엄청나게 영향을 받았다는 것을 사람들은 알지 못한다. 우리의 청취자들이 이제는 거의 모두 알고 있듯이 무함마드는 다신교도 아라비아인들, 유대인들, 기독교인들, 조로아스터교인들의 경전들, 전통들, 미신들을 표절하고, 강탈하고, 해적질하고, 왜곡하여서 그것들을 그의 꾸란에 통합하였다.
알라가 신이며, 무함마드는 예언자라는 유일신교를 무함마드가 발견하였다는 그 스스로 증명되는 거짓말들을-무함마드의 무슬림들을 포함하여-세계가 믿기를 그들은 원한다.
기꺼이 듣고 알기를 원하는 사람들에게 이제 그 사실들을 폭로하겠다.
AD325년 콘스탄틴 황제 치하에서 로마제국이 기독교로 개종한 직후에, 기독교는 향료와 그 밖에 동방의 생산품을 얻는 아랍인들과 교역관계를 토론하기 위하여 로마황제들이 보낸 은둔자들, 상인들 또는 사절단들을 통하여 아라비아 반도를 관통하기 시작하였다.
무함마드 오래전에, 기독교는 이미 이집트, 북아프리카, 아비시니아, 시리아, 이라크에 전파되었고 아라비아 반도 남쪽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AD450년 또는 451년에, 예멘의 대홍수가 있었다. 이것 때문에 사바(Saba) 사람들의 다른 부족들은 예멘을 떠날 수밖에 없었고 아라비아와 그 넘어 다른 지역들에 퍼졌다.
그래서 Bani Ghassan 부족은 시리아에, Bani Lakhm 부족은 Hirah(이라크)에, Bani Khuzaah 부족은 제다와 메카 사이에, Aus 부족과 Khazraj 부족은 야트립(Yathrib)에 가서 정착하였다.
비잔틴 제국 치하에서 Bani Ghassan 부족과 시리아 국경의 그 밖의 아랍 부족들은 그리스도 단성론자 기독교를 따랐으며 히자즈(Hijaz; 아라비아 반도의 서쪽지역)에 이르는 대로의 북부 끝 부분을 지배하였다.
동시에 아라비아의 남부인 예멘을 침공하였던 아비시니아인들도 단성론자였다. 따라서 무함마드가 역사의 무대에 나타나기 직전 비잔틴 제국에 활동하는 3개의 주요 종파들이 있었으며 그들 서로는 반드시 관용하는 것은 아니었고 그들은 보통 그리스 정교 또는 멜키트교도(Malkite)라고 부르는 국교, 자코바이트교(Jacobite) 그리고 네스토리우스교(Nestorians)였다.
대부분은 기독교로 개종한 사실상의 아랍인들이었고 부족 간의 교류와 무역대상들을 통하여 반도의 다신교도 아랍인들과 연결되었다. 실제로 초기의 아랍어 시(poetry)들은 기독교 은둔자를 친숙한 인물로 보여주며 꾸란과 하디스의 수많은 구절들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역사 기록에 따르면, 무함마드는 다른 시인들에게서, 다신교도와 기독교인 둘 다로부터 아주 중요한 일부 구절들을 표절하여서 그의 꾸란에 그것들을 넣었다. 그러한 시인들은 Imrul Qays; Hasan bin Thabit; Zayd bin Nufayl, 등이다.
히자즈의 동부이며 반도 내부지역의 우물인 Wadi l-Qura에 기독교인 은둔자의 오두막들이 있었고 그곳의 수도자들은 다신교도 아랍인들의 신성하며 삼가 하는 달들 동안 정기적으로 열리는 시장에 나와서 거래를 하였고 이야기들과 시낭송으로 듣는 자들을 즐겁게 해주었다. 그 기독교인들은 다신교도들 가운데 ‘말씀’을 전파하고 개종하는 것을 도울 수 있었다.
아랍의 역사는 기독교가 파이미윤(Faymiyoun; Phemion)라고 부르는 시리아인 수도자에 의하여 아라비아 남부에 소개되었다고 말한다.
다신교도 아라비아인들은 정착하여 사는 것 보다 그들의 유목생활 방식을 훨씬 더 가치 있게 여겼고 여건만 되면 그들이 마음대로 약탈할 수 있었던 농경하는 사람들을 경멸하였다는 것을 다신교도 아라비아인들의 시는 보여준다.
아라비아 기독교인들의 역사에 관하여 세상에서 알 수 있는 거의 모든 기록들은 처음부터 살고 있었던 기독교 원주민들을 강제로 개종시키고, 살해하거나 추방하였고 그들의 모든 기록들과 흔적들을 지구상에서 파기하였던 무함마드의 무슬림 승리자들에 의하여 우리에게 남은 편향적이며 입증되지 않은 보고들에서 나왔다는 것을 여러분들이 알기를 우리는 원한다.
그 기독교인들은 문명화된 사회와 접촉하고 있었기 때문에, 유대인들 그리고 유대화된 아랍인들과 마찬가지로, 그렇지 않았으면 건조하며 불모의 사막이었을 수만 평방마일 가운데 그들이 찾을 수 있는 가장 비옥한 지역을 그들도 차지하였다.
아라비아 남부에서 기독교의 가장 중요한 중심지는 비옥한 지역의 한 부분에 위치한 Al Najran(Najjar; 예수를 기념하여 목수라는 의미) 도시였다.
무함마드의 이슬람이 출현하기 직전에 그곳에는 아마도 그 지역에서 가장 부유한 사람들이 살았다. 그곳은 실크를 사용한 옷감을 만드는 것으로 유명하였다. 초기 다신교도 아랍인의시에서 많이 등장하는 예멘의 옷이 거기에서 생산되었다. 그곳은 또한 가죽과 무기 산업으로도 유명하였다.
Najran은 메카 또는 메디나를 포함하여 다른 아라비아 도시들 보다 훨씬 더 발전된 정치적 구조를 가지고 있었음에 틀림없다. 그것은 Sayyid, A'qib, Bishop의 3인 집정으로 통치되었다.
Sayyid는 아랍 부족 지도자들의 전통과 동일하게 족장/세이크로 행동하여서 모든 외교문제를 다루었고, 협정을 교환하였고, 상업을 관리하였고, 정기 시장에서 주빈 역할을 하였고 군사원정을 지휘하였다.
Al A'qib는 지방자치 관리와 시의 치안과 같은 내무적인 사무만을 취급하였던 것 같다.
Bishop은 교회에 관한 모든 일들의 수장이었고 그 공동체의 상당한 부분을 형성하였던 성직자와 수도자 모두를 다스렸다.
기독교 메시지가 전파되고 있었던 것은 아라비아 반도에서 기독교의 중심지가 되었던 이 도시를 통하여서였다.
일반적으로 다신교도 아랍인들은 그들의 많은 재산을 시샘하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Najran의 사람들은 자신들의 고귀함에 많은 자부심을 가졌고 옛날의 시인들은 그들이 아랍에서 가장 고귀한 자들로 간주하였던 듯하다.
이것은 물론 메카 꾸라이시 부족의 거짓된 자부심들 보다 시대가 훨씬 앞서는데 그들이 고귀하다는 평판은 단지 무함마드의 이슬람이 전파된 이후에 알려졌고 무함마드와 그들의 친족관계에 전적으로 근거한다.
메카와 마찬가지로, 아라비아 반도는 또한 카바라고 부르는 다른 신성한 순례지가 몇 개 있었고 그것들 가운데 하나가 기독교 아랍인들이 있기 전에도 Najran에 있었다. 비잔틴 황제는 다신교도 아랍인들에게 인상을 주기 위한 전진기지 그리고 기독교를 전파하기 위한 중심으로 아주 웅장한 성당을 짓는데 많은 돈을 들였다.
이것은 모두 시리아에서 도로로 운반해온 대리석과 모자이크로 장식된 아주 웅장한 건축물이라고 기록되어있다.
Najran은 그 주민들이 제 2대 칼리프 우마르 이븐 알 카탑에 의하여 추방될 때까지 무함마드의 무슬림 시대동안 기독교인 도시로 남아있었다. 추방된 사람들 대부분은 이라크로 갔는데 거기에서 그들은 또 Najran이라고 부르는 도시를 만들었다.
아라비아의 기독교인들은 대부분이 살해되거나 노예가 되었던 유대화된 아랍인들의 운명 보다 훨씬 더 적은 기간 고난을 받았다. 무함마드가 운명할 때 그의 추종자들에게 “무함마드의 무슬림 땅에 두 종교는 존재할 수 없다”고 가르쳤던 것을 핑계로 두 공동체는 무함마드와 그의 추종자들의 손에 엄청나게 그리고 회복이 불가능하게 고난을 당하였다.
알-무와타 하디스 45.17(메디나에서 유대인들의 추방)
야히야(Yahya)는 이스마엘 이븐 아비 하킴(Ismail ibn Abi Hakim)을 통하여 말리크(Malik)가 말하여 준 것을 내게 이야기해 주었는데 우마르 이븐 압드 알-아지즈(Umar ibn Abd al-Aziz)가 “알라의 사도(알라가 그를 축복하고 그에게 평화가 있기를)가 말하였던 마지막 것들 가운데 하나는
‘알라께서 유대인들과 기독교인들과 싸우시기를 기원합니다. 그들은 예배의 장소로 그들 예언자들의 무덤을 차지하였습니다.
아랍인들의 땅에서 두 종교는 공존할 수 없을 것이다.‘“
알-무와타 하디스 45.18(메디나에서 유대인들의 추방)
야히야(Yahya)는 이븐 시합(Ibn Shihab)을 통하여 말리크(Malik)가 말하여 준 것을 내게 이야기해 주었는데 알라의 사도(알라가 그를 축복하고 그에게 평화가 있기를)가 말하였다, ”아라비아 반도에서 두 종교는 공존할 수 없을 것이다.“
말리크는 이븐 시합이 “우마르 이븐 알 카탑은 알라의 사도(알라가 그를 축복하고 그에게 평화가 있기를)가 ‘아라비아 반도에서 두 종교는 공존할 수 없을 것이다’라고 말하였다는 것을 절대적으로 확신할 때까지 그것에 관한 정보를 찾았고 그로인하여 그는 카이바르에서 유대인들을 추방하였다”라고 말하였다.
지금 21세기에도 거의 모든 무함마드의 무슬림 국가들에서 기독교인들은 박해를 받고 있으며 이민을 통하여 숫자가 줄어들고 있다. 가장 역겹고 불쾌한 사실은 서방세계 언론과 정치인들과 교회들이 이 문제에 관하여 귀 구멍을 막은 것과 같이 침묵하고 있는 것이다.
자료출처 http://www.the-koran.blogspot.kr/2008/07/christians-of-arabia-part-52.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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