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위대함
관련링크
본문
여러분은 하나님이 당신의 상황을 통제하고 있다고 믿는가, 아니면 그분이 당신이 다시 실수하기를 기다리며 가만히 있다고 생각하는가? 스탠리 박사는 성경을 통해 하나님의 자기 계시와 인격, 속성을 설명한다.
제목: 하나님의 위대함
성경 본분: 이사야 40:26 | 시편 139:7-12
관련 성경 구절: 출애굽기 3:14 | 출애굽기 20:1-6 | 출애굽기 32:12-14 | 요나 3:1-10 | 베드로후서 1:16 | 히브리서 1:1-3
요 약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을 생각할 때, 모든 사람을 사랑하지만 이 세상의 사건들에 대해 많은 통제력을 가지고 있는 할아버지 같은 타입을 생각한다.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 관계없이, 주님이 자신에 관하여 실제로 말씀하시는 것을 알기 위해서는 성경을 보는 것이 중요하다. 그 안에서, 우리는 그분이 어떤 분인지, 무엇을 사랑하는지, 그리고 그분이 우리와 어떻게 관련되는지를 배운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잘못된 가정을 하여 풍요롭고 진실에 기반한 우리의 위대하고 장엄한 하나님과 관계하는 기쁨을 놓칠 위험이 있다.
설교 요점
이사야 40장은 하나님의 위대함과 위엄을 중심으로 그분이 피조물보다 훨씬 우월하다고 묘사한다.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통치자도 그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며, 아버지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은 모든 것을 다스릴 수 있다. 시편 139편은 이번에는 그분의 전능함을 중심으로 주님의 위대함을 더욱 조명한다: "내가 주의 영을 떠나 어디로 가며 주의 앞에서 어디로 피하리이까.... 주에게서는 흑암이 숨기지 못하며 밤이 낮과 같이 비추이나니 주에게는 흑암과 빛이 같음이니이다"(7절, 12절).
하나님의 위대함
성경은 하나님의 위엄에 대한 언급으로 가득 차 있다. 시편 93장 1절은 "여호와께서 다스리시니 스스로 권위를 입으셨도다"라고 말한다. 이사야 40장 1~26절은 하나님이 어떻게 그분의 모든 피조물보다 더 위대한지 설명한다. 여호와와 비교할 때 땅의 나라들은 "통의 한 방울 물과 같고 저울의 작은 티끌 같다"(15절). 마찬가지로, 그분은 기도에 응답할 수도 없고 우리에게 힘을 줄 수도 없는 인간이 만든 생명이 없는 우상보다 더 강력하다(18-20절). 주님은 또한 이 세상을 초월한다: "그는 둥근 땅 위에 앉으시나니… 그가 하늘을 차일 같이 펴셨으며 거주할 천막 같이 치셨고"(22절). 그분은 위대한 지상의 왕보다 더 장엄하다. 그분은 "귀인들을 폐하시며 세상의 사사들을 헛되게 하시나니"(23절). 그분은 하늘과 별들 위에 있으면서 "그들의 모든 이름을 부르시나니 그의 권세가 크고 그의 능력이 강하므로 하나도 빠짐이 없느니라"(26절).
하나님의 네 가지 속성
우리 창조주의 가장 중요한 특성들 가운데 몇 가지를 보자.
하나님은 인격체이시다. 성경은 우리의 창조주가 보이지 않는 힘이 아니라는 것을 계시하며 대신 그분은 감정, 지성, 의지, 그리고 인격을 가지고 있다. 아담과 이브는 이러한 동일한 특성을 가지고 완벽하게 설계되었다(창세기 1장 26절). 그들의 배반 이후 모든 사람들이 타락한 본성을 가지고 세상에 태어난 것은 사실이지만, 우리는 여전히 그분의 모습으로 만들어졌고 그분과 친밀한 관계를 맺을 수 있다.
우리는 성경 전체에 걸쳐 하나님의 인격에 대한 증거를 본다. 하나님이 불타는 가시덤불에서 모세에게 말씀하실 때, 그는 자신을 "그것"이 아니라 "나"라고 소개했다(출애굽기 3:14). 출애굽기 20장 1~5절에서 우상숭배에 반대하는 명령은 인간이 다른 우선순위를 그의 자리에 둘 때 하나님의 감정적 반응을 드러내지만, 우리가 그분을 사랑하고 순종한다면 그분의 변함없는 사랑과 보살핌을 기대할 수 있음을 나타낸다(출애굽기 6절). 그리고 예수님은 하늘 아버지께 기도하는 모델을 제시하셨다. 하나님은 비인격적인 에너지가 아니라 우리를 그분과 가까운 관계로 초대하시는 사랑하는 아버지이다.
하나님은 영이시다. 예수님은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요한복음 4:24)고 말씀하셨다. 요한계시록에서 요한은 찬란한 빛에 둘러싸인 천상의 보좌를 설명하지만, 그 위에 앉아 계신 분을 물리적인 용어로 설명하지는 않는다. 실제로 그 사도는 다른 곳에서 "어느 때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요한일서 4:12)고 썼다.
물론 예수님, 아들이신 하나님께서 이 땅을 걸으셨을 때 몸이 있었고, 사람들은 예수님을 보고 아버지에 대해 알 수 있었다. 그러나 이제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을 우리의 개인적인 구세주로 믿을 때 성령을 통해 우리의 마음에 거하게 된다.
하나님과 성령이 하나이기 때문에 그분의 거하심은 항상 우리와 함께 한다. 그분은 어디에나 계시기 때문에, 우리는 어떤 시련, 유혹, 어려움도 혼자 마주할 필요가 없다. 우리는 항상 그분의 완벽한 보살핌 안에 있고 그분의 앞에 있다(시편 139:7-13; 마태복음 28:20). 영으로서, 그분은 우리가 지구상 어디에 있든 항상 우리 모두와 함께 한다.
하나님은 영원하시다. 창조주는 항상 존재했었고, 지금도 존재하고, 앞으로도 존재할 것이다. 그분의 존재는 시작도 끝도 없다. 그분은 영원하며 시간에 제한받지 않는다(시편 90:1-2). 이것은 우리가 이해하기 어렵지만, 그 어려움이 하나님이 항상 존재하셨다는 사실을 바꾸지는 않는다. 삼위일체의 일부로서 예수님은 이 영원한 본성을 공유하시는데 요한복음 8장 58절에서 그는 "아브라함이 나기 전부터 내가 있느니라"고 말한다.
하나님은 변하지 않으신다. 우리가 주님의 변함없음을 말할 때, 우리는 그분의 본성이 변하지 않고 우리는 그분이 약속한 약속을 믿을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말라기 3:6; 이사야 40:28). 그분은 영에서 단순한 육체로, 인격체에서 비인격체로, 또는 영원에서 일시적인 것으로 변하지 않을 것이다. 그분의 원칙과 특성은 불변하다(야고보서 1:17).
사람들이 염려하는 한 구절은 출애굽기 32장 12~14절에서 발견되는데, 성경은 "여호와께서 뜻을 돌이키사"(14절)라고 말한다. 그러나 우리가 주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멸하지 않기로 하신 이유를 살펴보면, 모세가 그들을 위하여 중보기도한 것을 알 수 있다. 물론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시니 미래를 보신다. 모세가 자비를 간절히 기도할 것임을 미리 알고 있었으므로 여기 출애굽기의 말은 의인화된 것이다. 성경은 모세의 기도에 대한 주님의 응답을 기록하기 위해 인간의 용어를 사용한 셈이다.
하나님이 마음을 바꾸신 것처럼 보이는 또 다른 경우는 니느웨(요나 3:1-10)의 이야기에서 발견된다. 요나는 죄악 때문에 이 도시가 멸망될 것이라고 선언하였다. 그러나 "하나님이 그들이 행한 것 곧 그 악한 길에서 돌이켜 떠난 것을 보시고 하나님이 뜻을 돌이키사 그들에게 내리리라고 말씀하신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셨다"(10절). 사람들이 요나의 경고에 응답했기 때문에 하나님은 멸망을 내리지 않았다. 니느웨의 이야기는 변하지 않는 원칙을 설명하는데 주님은 항상 그와 화해하려는 사람에게 응답할 준비가 되어 있다는 것이다. 예수님은 아무도 외면하지 않으시겠다고 말씀하셨고(요한복음 6:37), 그분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다"(히브리서 13:8).
묵 상
하나님은 인격체이시고 영적이며 영원하고 변하지 않는다. 이 속성들 중 어떤 것이 오늘날 여러분의 마음에 가장 많이 와닿으며, 그 이유는 무엇인가?
중생한 신자로서, 우리는 우주의 창조주를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특권을 가지고 있다. 그 진실을 기억하는 것이 어떻게 여러분 삶의 문제에 대한 생각을 바꿀 수 있는가?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