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시아 왕의 개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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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요시아 왕의 개혁
본문: 열왕기하 23장 4-5절
“4.왕이 대제사장 힐기야와 모든 부제사장들과 문을 지킨 자들에게 명령하여 바알과 아세라와 하늘의 일월 성신을 위하여 만든 모든 그릇들을 여호와의 성전에서 내다가 예루살렘 바깥 기드론 밭에서 불사르고 그것들의 재를 벧엘로 가져가게 하고
5.옛적에 유다 왕들이 세워서 유다 모든 성읍과 예루살렘 주위의 산당들에서 분향하며 우상을 섬기게 한 제사장들을 폐하며 또 바알과 해와 달과 별 떼와 하늘의 모든 별에게 분향하는 자들을 폐하고
우리는 지금 혼돈의 시대에 살고 있다. 북한의 핵 위협으로 정치적으로 혼돈하다. 좌파와 우파의 대립으로 사회적으로 혼돈하다. 우리는 신앙에 있어서도 혼돈 가운데 살고 있다.
그 혼돈은 언제부터인지 우리 가운데 흘러들어와 우리의 신앙으로 자리 잡은 번영신학의 문제이다. 번영신학을 좀 더 쉽게 말하면 기복신앙이다.
위키백과사전에서 번영신학을 찾아 보면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번영신학(Prosperity theology, gospel of success, prosperity gospel, the health and wealth gospel)이란 재정적 축복이나 물질적 풍성함이 항상 하나님의 뜻이라고 믿으며 신앙이 자신들의 물질적 부를 증가시킨다고 믿는 반성경적 신학이다. 번영신학은 인간이 하나님을 믿는다면 그가 안정과 번영을 준다고 믿음으로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계약으로서 성경을 이해한다. 번영신학의 교리는 개인적인 능력을 강조하고, 하나님의 백성들에 대한 하나님의 뜻은 행복해지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런 성경해석은 초기 유대주의의 주된 흐름에서 나타나는데 기독교 전통에서는 없다. 하나님과 화해된 속죄를 죄와 가난을 완화시킨다고 해석하며 저주란 믿음이 깨진 것을 말한다고 한다. 대표적인 교회는 호주 시드니에 있는 힐송 교회이다. 번영신학은 인본주의에서 나온 신학이다.
번영신학을 다른 말로 하면 성공의 복음, 번영 복음, 건강과 재물의 복음이라고 말할 수 있다.
예수를 믿으면 모두 성공하고 번영하고 건강과 재물을 얻는다고 하는데 이것이 현실에 맞는 이야기인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예수 믿으면 모두 성공하고 번영하고 건강과 재물을 얻는가?
우리 주위에 수십년 예수를 믿은 사람들이 모두 성공하고 번영하고 건강과 재물을 얻었는가?
하나님의 자녀에게 고난과 시련과 질병과 시험같은 것도 당연히 다가온다. 우리에게 다가오는 고난과 시련과 질병과 시험에는 하나님의 뜻이 담겨 있다.
히브리서 12장 5절에서 11까지 이렇게 기록한다.
”내 아들아 주의 징계하심을 경히 여기지 말며 그에게 꾸지람을 받을 때에 낙심하지 말라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가 받아들이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라 하였으니 너희가 참음은 징계를 받기 위함이라 하나님이 아들과 같이 너희를 대우하시나니 어찌 아버지가 징계하지 않는 아들이 있으리요 징계는 다 받는 것이거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요 친아들이 아니니라 또 우리 육신의 아버지가 우리를 징계하여도 공경하였거든 하물며 모든 영의 아버지께 더욱 복종하며 살려 하지 않겠느냐 그들은 잠시 자기의 뜻대로 우리를 징계하였거니와 오직 하나님은 우리의 유익을 위하여 그의 거룩하심에 참여하게 하시느니라 무릇 징계가 당시에는 즐거워 보이지 않고 슬퍼 보이나 후에 그로 말미암아 연단 받은 자들은 의와 평강의 열매를 맺느니라“
하나님은 그분의 자녀들이 슬픔과 고통 가운데 걷게 하는데, 때로는 죄 때문에(민 12:10-12), 때로는 잘못을 깨닫게 만들기 위하여(히 12:5-12), 때로는 강하게 만들기 위하여(고후 12:7-10; 벧전 5:10), 때로는 그분의 위로와 은혜를 드러내는 기회를 주기 위한 것이다(고후 1:3-7).
그러나 성도들이 고통을 받는 명확한 이유를 알 수 없는 경우가 있는데 그것은 이 세상의 사람들이 분별할 수 없는 하나님의 목적이 있기 때문이다(출 4:11; 요한 9:1-3).
그 고난과 시련과 질병과 시험을 통하여 우리를 더욱 단련하여 세상에 빛과 소금과 같은 존재로 만들고자 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자녀라고 해도 인생의 모든 과정에서 모두 성공하고 번영하고 건강과 재물을 얻지 않는다.
욥기를 읽으면 인생의 과정에서 악인이 번성하고 의인이 고난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욥은 이유를 모르는 자신의 고난 과정에서도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았다.
하나님은 이 모든 고난 과정에서 욥의 믿음과 순종을 보시고 최종적으로 그에게 두 배의 물질의 복, 자손의 복을 내려주셨다.
모든 결과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믿음과 순종에 달려 있다.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믿고 순종하면 하나님은 우리들의 믿음과 순종의 범위 안에서 모든 복을 내리실 것이다.
번영신학의 문제 즉 기복신앙의 문제를 어떻게 개혁하였는지 우리는 열왕기하 요시아 왕의 개혁을 통하여 살펴보고자 한다.
요시아 왕은 통일왕국, 남유다, 북이스라엘 모든 왕들 가운데 가장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 신실하고 정직한 왕이었다고 성경은 말한다.
열왕기하 23장 25절은 다음과 같이 기록한다.
“요시야와 같이 마음을 다하며 뜻을 다하며 힘을 다하여 모세의 모든 율법을 따라 여호와께로 돌이킨 왕은 요시야 전에도 없었고 후에도 그와 같은 자가 없었더라”
성경 열왕기상하를 읽어보면 솔로몬 이후 타락해가는 이스라엘 백성을 볼 수 있다. 북이스라엘은 여로보암이 왕이 되어 벧엘과 단에 금송아지를 설치한 후 급속히 여호와 신앙이 쇠퇴한다. 남유다도 점차적으로 쇠퇴하여 므낫세 왕 때 타락의 정점에 도달한다.
오늘 본문을 보면 요시아 왕은 바알과 아세라 우상을 제거하는 것을 시작으로 그의 종교개혁을 시작한다.
바알과 아세라는 어떤 우상인가?
바알은 이스라엘 민족이 가나안 정벌 이전부터 존해하였던 이방신으로 그들이 태양신으로, 비옥함의 신으로, 생산의 신으로 섬겼던 신이다.
아세라 또는 아스다롯 역시 이방신으로 풍요, 다산, 사랑 또는 쾌락의 여신이다.
요시아 왕은 이 두 우상을 가장 먼저 척결하였다.
그 옛날에 이스라엘 백성도 여호와 하나님을 예배하면서 한 편으로 이 두 풍요의 신을 섬겼다는 것은 현재 번영신학과 기복신앙에 빠져 있는 현대의 크리스천들에게 시사해주는 바가 많다.
나는 몇 년 전에 한 교회를 방문한 적이 있다. 그 교회 목사는 부흥사 단체에서 부흥강사로 활동하는 사람이었다.
그의 교회를 방문하여 내부를 살펴보니 이곳이 교회인지 무당집인지 모를 정도였다.
왜냐하면 교회 내부 벽에다 물질의 축복, 사업의 축복, 직장의 축복, 장수의 축복, 자녀의 축복에 관한 글을 써서 벽을 붙여 두었는데 그 글이 성경의 글도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나는 이 목사와 대화하면서 이 사람이 정말로 하나님의 종인지 속으로 생각하였다.
우리가 세상을 살다 보면 물질이 필요한 것은 사실이다. 물질이 부족하면 우리의 삶이 피곤해지고 피폐해진다.
그러나 기억할 것은 전능하신 우리 하나님 아버지는 우리가 필요한 것을 이미 모두 알고 있다는 사실이다.
마태복음 6장 31,32절에서 우리 주님은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고 말씀한다.
필요한 것을 구하면 그 자녀에게 해가 되지 않는 범위에서 아버지 하나님께서 주신다.
문제는 이렇게 자비하시고 은혜로우신 하나님을 물질의 복을 받기 위한 도구로 이용하려는 자세이다.
우리는 하나님에게 필요한 것만을 구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과욕, 탐욕, 정욕으로 구하지 말라는 것이다.
탐욕은 우상숭배이다.
골로새서 3장 1절에서 5절에서 사도 바울은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의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위의 것을 생각하고 땅의 것을 생각하지 말라 이는 너희가 죽었고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추어졌음이라 우리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그때에 너희도 그와 함께 영광중에 나타나리라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숭배니라”고 말한다.
야고보서 4장 2절, 3절에서 사도 야고보는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하기 때문이요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물질의 유혹에 약한 자에게 하나님은 물질의 복을 내리지 않는다. 물질의 복으로 인하여 그 사람의 신앙이 하나님에게서 멀어지거나 타락한다면 장래의 일을 아시는 하나님은 그 사람에게 물질의 복을 내려주지 않는다.
번영신학 기복신앙을 주장하는 자들은 물질의 복의 예를 성경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서 찾는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이 하나님에게 물질의 복을 받은 것은 그들이 이미 하나님에 대한 믿음과 순종의 사람이 되었기 때문이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은 하나님 말씀을 믿고 순종하였다.
중요한 것은 믿음과 순종이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은 그 믿음과 순종이 크기에 그에 맞게 하나님께서 그 믿음과 순종의 크기만큼 물질의 복을 주신 것이다.
우리들의 믿음과 순종이 크다면 하나님은 우리가 물질의 복을 구하지 않아도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처럼 우리에게 물질의 복을 내리실 것이다.
역대하 1장 11절에서 12절은 “하나님이 솔로몬에게 이르시되 이런 마음이 네게 있어서 부나 재물이나 영광이나 원수의 생명 멸하기를 구하지 아니하며 장수도 구하지 아니하고 오직 내가 네게 다스리게 한 내 백성을 재판하기 위하여 지혜와 지식을 구하였으니 그러므로 내가 네게 지혜와 지식을 주고 부와 재물과 영광도 주리니 네 전의 왕들도 이런 일이 없었거니와 네 후에도 이런 일이 없으리라 하시니라”라고 기록한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사람이 되면 하나님께서 솔로몬에게 행하신 것처럼 부와 재물과 영광을 구하지 않아도 내려주시는 것이다.
요한1서 3장 21,22절에서 사도 요한은 말한다.
“사랑하는 자들아 만일 우리 마음이 우리를 책망할 것이 없으면 하나님 앞에서 담대함을 얻고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그에게서 받나니 이는 우리가 그의 계명을 지키고 그 앞에서 기뻐하시는 것을 행함이라”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을 행하면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받는다고 말한다.
요한1서 5장 14,15절에서 사도 요한은 다시 말한다.
“그를 향하여 우리가 가진 바 담대함이 이것이니 그의 뜻대로 무엇을 구하면 들으심이라 우리가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들으시는 줄을 안즉 우리가 그에게 구한 그것을 얻을 줄을 또한 아느니라”
하나님의 뜻대로 무엇을 구하면 얻는다고 말한다.
믿음과 순종으로 우리가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사람이 되면 구하는 것을 받고 얻는다고 사도 요한이 말하고 있다.
하나님은 사람의 믿음이 감당할 만한 물질 축복만을 주시고 사람이 감당할 만한 시련만 주시는 분이다.
마귀는 우는 사자와 같이 삼킬 자를 찾고 있다. 우리가 물질의 유혹에 약하다면 마귀는 물질을 통하여 우리를 파멸시킬 기회를 노릴 것이다.
물질의 유혹이 올 때 이 말씀을 기억하기 바란다.
디모데전서 6장 6절에서 10절에서 사도 바울은 “그러나 자족하는 마음이 있으면 경건은 큰 이익이 되느니라 우리가 세상에 아무 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으매 또한 아무 것도 가지고 가지 못하리니 우리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족한 줄로 알 것이니라 부하려 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 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욕심에 떨어지나니 곧 사람으로 파멸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이라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탐내는 자들은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라고 말한다.
빌립보서 4장 11절에서 13절에서 사도 바울은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나는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고 말한다.
히브리서 13장 5절은 “돈을 사랑하지 말고 있는 바를 족한 줄로 알라 그가 친히 말씀하시기를 내가 결코 너희를 버리지 아니하고 너희를 떠나지 아니하니라 하셨느니라”고 기록한다.
번영신학, 기복신앙은 바로 사단, 마귀가 바라는 것이다. 하나님은 그 사람이 감당할 만한 물질만을 주시는 분이다.
번영신학과 기복신앙은 예수를 믿으면 이 땅에서 모두 복을 받는다고 하는데 위에서 말하였듯이 하나님에 대한 믿음과 순종이 따르면 번영신학과 기복신앙이 말하는 복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에 대한 믿음과 순종이 있어도 그러한 복을 받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히브리서 11장 35절에서 40절까지 다음과 같이 기록한다.
“또 어떤 이들은 더 좋은 부활을 얻고자 하여 심한 고문을 받되 구차히 풀려나기를 원하지 아니하였으며 또 어떤 이들은 조롱과 채찍질뿐아니라 결박과 옥에 갇히는 시련을 받았으며 돌로 치는 것과 톱으로 켜는 것과 시험과 칼로 죽임을 당하고 양과 염소의 가죽을 입고 유리하여 궁핍과 환난과 학대를 받았으니 이런 사람은 세상이 감당하지 못하느니라 그들이 광야와 산과 동굴과 토굴에 유리하였느니라 이 사람들은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증거를 받았으나 약속된 것을 받지 못하였으니 이는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더 좋은 것을 예비하셨은즉 우리가 아니면 그들로 온전함을 이루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위 말씀에 대한 가까운 증거는 일제 시대에 순교한 주기철 목사, 공산당에게 순교한 손양원 목사, 문준경 전도사이다.
더 가까운 증거는 현재도 중동, 아프리카, 파키스탄, 나이지리아 등 이슬람 세계에서 죽임을 당하고 있는 기독교인들이다.
이들은 야고보서 1장 12절과 요한계시록 2장 10절의 생명의 면류관을 받은 것이다.
이들은 번영신학이나 기복신앙이 말하는 이 세상의 복을 받지는 못하지만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예비한 더 좋은 것, 즉 영생의 복, 구원의 복, 천국의 복을 받은 것이다.
따라서 성도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과 순종이 있을 때 이 세상의 복과 천국의 복을 다 받는 경우가 있지만 위 히브리서 말씀을 보면 이 세상에서는 고난을 받다가 죽은 후에 영생의 복, 구원의 복, 천국의 복을 받는 경우도 있는 것이다.
번영신학은 이 점에 있어서 성경이 말하는 것과 다른 것이다.
요시아 왕이 그 당시 번영신학, 기복신앙인 바알 숭배와 아세라 숭배를 어떻게 척결하였는지 살펴보자.
본문 4장 말씀을 보면 “왕이 대제사장 힐기야와 모든 부제사장들과 문을 지킨 자들에게 명령하여 바알과 아세라와 하늘의 일월 성신을 위하여 만든 모든 그릇들을 여호와의 성전에서 내다가 예루살렘 바깥 기드론 밭에서 불사르고 그것들의 재를 벧엘로 가져가게 하고”라고 기록한다.
바알과 아세라와 하늘의 일월 성신을 위하여 만든 우상 숭배를 위한 모든 그릇들을 여호와의 성전에서 꺼내 불사르라고 한다.
요사아 왕이 우상 숭배를 위한 모든 그릇들을 여호와의 성전에서 꺼내 불사른 것과 같이 대한민국 교회를 오염시킨 번영신학과 기복신앙을 모두 꺼내어 불사르고 청소해야 한다.
근동의 이방인들은 일월 성신도 바알과 아세라와 마찬가지로 농사, 목축의 풍요를 위하여 숭배하였다.
여담으로 이슬람의 알라신은 달신이다. 근동의 사막 지역에서 태양신 보다는 달신을 더 숭배하였다. 태양신은 농경문화에서 많이 숭배하였고 특히 이집트는 나일강의 범람으로 물이 풍부한 농업국가였기에 태양신을 숭배하였다.
이슬람의 창시자 무함마드가 태어난 아라비아 반도는 사막 지역이기에 물이 부족하고 달이 뜨는 밤에 이슬이 내려 목초가 자랄 수 있었기에 달신을 숭배하였다.
달신 알라를 숭배하는 아라비아 사람들에게 기독교 복음이 전파되자 이집트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한 여호와 하나님의 위대한 기적의 사역을 전해 듣고 그들이 섬기던 달신 알라가 기독교 하나님 여호와와 같은 신이라고 주장하면서 이슬람이 시작된 것이다.
알라가 여호와와 같은 신이라는 것은 이 세상 역사 이래로 최대의 거짓말이다.
지금 이 시간에도 전 세계 곳곳에서 이슬람은 전쟁과 테러와 살인과 폭력과 강간과 강제개종과 강제결혼과 명예살인으로 세상을 혼란스럽게 하고 있다.
이슬람은 사단이 만든 종교로 우리는 이슬람의 정체를 정확하게 알고 있어야 한다.
본문으로 돌아가서 요시아 왕은 여호와 성전에서 바알, 아세라, 일월성신 숭배에 사용하는 그릇들을 꺼내서 불태운다.
여호와 하나님 종교에 스며들어 있던 풍요의 신 바알, 아세라, 일월성신 우상의 도구들을 완전히 척결한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신앙에 스며들어 있는 풍요의 신, 재물의 신, 맘몬 신의 신학과 신앙인 번영신학, 기복신앙을 완전히 척결해야 한다.
우리가 번영신학, 기복신앙을 추구한다면 마귀는 이것을 올무 삼아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여호와 하나님이 아닌 맘몬 신 즉 재물의 신을 숭배하게 만든다.
자신이 하나님을 예배한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 그는 맘몬 신, 재물의 신에게 예배하는 것이다.
번영신학, 기복신앙은 탐욕이라는 우상이다. 우리는 이 우상을 확실하게 척결해야 한다.
번영신학, 기복신앙은 여호와 하나님의 신앙을 세상의 무당집, 점집의 수준으로 낮추는 도구이다.
우리는 여호와 하나님의 자녀이다.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다.
번영신학, 기복신앙은 시민권이 이 땅에 있는 사람들의 종교이다. 하늘의 시민권 보다 이 땅에 사는 동안 물질로 풍요를 누리면서 잘 사는 것이 이 사람들의 철학이요 종교요 신앙이다.
빌립보서 3장 17절에서 21절에서 바울은 “형제들아 너희는 함께 나를 본받으라 그리고 너희가 우리를 본받은 것처럼 그와 같이 행하는 자들을 눈여겨 보라 내가 여러번 너희에게 말하였거니와 이제도 눈물을 흘리며 말하노니 여러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느니라 그들의 마침은 멸망이요 그들의 신은 배요 그 영광은 그들의 부끄러움에 있고 땅의 일을 생각하는 자라 그러나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거기로부터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 그는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하게 하실 수 있는 자의 역사로 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하게 하시리라”고 말한다.
이 세상에 속한 종교이며 신학과 신앙인 번영신학, 기복신앙을 우리는 확실하게 정리해야 할 것이다.
이제 본문 5장 말씀을 보자. “옛적에 유다 왕들이 세워서 유다 모든 성읍과 예루살렘 주위의 산당들에서 분향하며 우상을 섬기게 한 제사장들을 폐하며 또 바알과 해와 달과 별 떼와 하늘의 모든 별에게 분향하는 자들을 폐하고”
본문에서 요시아 왕이 우상을 섬기게 한 제사장들을 폐하고 바알과 해와 달과 별 떼와 하늘의 모든 별에게 분향하는 자들을 폐하였다고 한다.
새번역 성경으로 본문을 보면 “우상을 숭배하는 제사장들을 내쫓았다. 그리고 바알과 태양과 달과 성좌들과 하늘의 별에게 제사지내는 사람들을 모두 몰아냈다”고 기록한다.
번영신학, 기복신앙의 정체를 이제 우리는 알았다. 본문을 따르면 이제 그러한 신학과 신앙을 추구하는 목사와 성도들을 내쫓고 몰아내야 한다.
그런데 그들을 어떻게 내쫓고 몰아내는가? 물리적으로 그들을 내쫓고 몰아낼 수 있는가?
현대 사회의 여건상 그렇게 할 수는 없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우리는 하나님에게 기도하는 수밖에 없다. 어떻게 기도하는가?
이렇게 기도하자. 오직 여호와 하나님의 순수한 복음, 예수 그리스도의 순수한 복음만 이 땅에서 전파되기를 기도하자.
이 땅의 모든 목회자가 오직 순수한 복음만을 전하기를 기도하자.
이 땅의 모든 성도가 오직 순수한 복음만을 따르기를 기도하자.
모든 목회자의 사명은 오직 순수한 복음전파이어야 한다.
고린도후서 2장 17절에서 사도 바울을 말한다.
“우리는 수많은 사람들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하게 하지 아니하고 곧 순전함으로 하나님께 받은 것 같이 하나님 앞에서와 그리스도 안에서 말하노라”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하게 하지 말고 순전함으로 말하라고 한다.
고린도후서 4장 2절에서 사도 바울은 말한다.
“이에 숨은 부끄러움의 일을 버리고 속임으로 행하지 아니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하게 하지 아니하고 오직 진리를 나타냄으로 하나님 앞에서 각 사람의 양심에 대하여 스스로 추천하노라”
다시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하게 하지 말고 오직 진리를 나타내라고 한다.
번영신학, 기복신앙과 같은 불순물이 섞인 복음, 물 탄 복음, 변질된 복음, 왜곡된 복음을 완전히 청소해야 한다.
이 기도를 하나님이 들어 주신다면 기독교 속에 들어 있는 이단 교회인 신천지, 하나님의 교회와 같은 모든 이단 교회들도 사라지게 될 것이다.
오직 순수한 순전한 복음의 전파에는 중요한 이유가 있다.
불순물이 섞인 복음, 물 탄 복음, 변질된 복음, 왜곡된 복음이 전파된다면 이 세상에서 교회의 영향력은 약화된다.
불순물이 섞인 복음, 물 탄 복음, 변질된 복음, 왜곡된 복음은 고차원의 기독교를 이 세상의 저속한 무속신앙으로 추락시키는 것이다.
무속신앙이 추구하는 것이 무엇인가? 재물의 복, 건강의 복, 자손의 복, 직장의 복, 사업의 복, 이런 것들 아닌가?
더불어 중요한 것으로 교회는 세상과 타협을 하지 말아야 한다.
교회가 세상과 타협하면 그 영향력은 더욱 더 약화될 것이다.
교회에 있어서 통합주의, 혼합주의, 다원주의 이것을 대단히 경계해야 한다.
이것은 기독교를 다른 종교와 통합하고 혼합하고 구원의 길이 다른 종교에도 있다는 다원화이다.
고린도전서 10장 20,21절에서 사도 바울은 말한다.
“무릇 이방인이 제사하는 것은 귀신에게 하는 것이요 하나님께 제사하는 것이 아니니 나는 너희가 귀신과 교제하는 자가 되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너희가 주의 잔과 귀신의 잔을 겸하여 마시지 못하고 주의 식탁과 귀신의 식탁에 겸하여 참여하지 못하니라”
고린도후서 6장 14절에서 16절에서 사도 바울은 말한다.
“너희는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함께 메지 말라 의와 불법이 어찌 함께 하며 빛과 어둠이 어찌 사귀며 그리스도와 벨리알이 어찌 조화되며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가 어찌 상관하며 하나님의 성전과 우상이 어찌 일치가 되리요”
요한복음 14장 6절에서 주님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고 말씀한다.
사도행전 4장 12절은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하였더라”고 기록한다.
통합주의, 혼합주의, 다원주의는 다른 종교에도 구원의 길이 있다고 인정하는 것이다.
구원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가능한 것이다.
번영신학, 기복신앙, 통합주의, 혼합주의, 다원주의로 인하여 복음이 변질되면 교회는 약화되게 되어 있다.
교회가 약화되면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우리는 유럽과 미국의 사회를 보면 알 수 있다.
유럽과 미국은 세상과 타협하여 동성애를 합법화하였다.
동성애자를 차별하거나 혐오하는 발언을 하면 경찰에 체포된다. 판사 앞에 서서 형사재판을 받게 된다.
교회 강단에서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동성애를 차별하거나 혐오하는 내용을 말할 수 없다.
유럽과 미국의 교회가 세상과 타협하여 교회의 세력이 약해지자 이제 그곳에 이슬람이 확장되고 있다.
사람들이 이슬람이 진실한 하나님의 종교라고 생각하고 이슬람을 따르고 있는 것이다.
이슬람 국가에서 동성애자는 사형에 처한다.
이슬람 경전 코란을 글자 그대로 실천하는 ISIS는 동성애자들을 건물 옥상에서 밀어 떨어뜨려 처형한다.
이슬람주의자들이 미국에서 동성애자 나이트클럽을 무자비하게 테러하여 수십명을 살해한 사건도 있다.
이것을 보면서 우리는 구약성경에서 하나님은 타락하는 이스라엘을 앗수르와 바빌론을 사용하여 징계하시고 나중에는 도구로 사용하신 그 앗수르와 바빌론도 역시 징계한 역사를 기억할 수 있다.
하나님은 유럽과 미국을 징계하는데 이슬람을 사용하고 나중에 이슬람도 징계하실 것이다.
유럽과 미국은 이슬람에 의하여 하나님의 징계를 받는 과정에 있다.
유럽은 이미 이슬람에 의한 징계가 시작되었고 미국은 이제 곧 시작될 것이다.
유럽은 과거 산업인력으로 이슬람에서 이민을 받았고 지금은 이슬람 난민으로 들어오는 사람들이 있다.
그래서 유럽의 각국은 이슬람 인구가 많게는 10%에서 5%까지 가지고 있다.
그런데 유럽의 교회는 세속화되면서 교회는 사라지고 교회 건물은 다른 용도로 매도되어 술집, 나이트클럽, 전시장, 심지어 이슬람 사원으로 변하고 있다.
유럽의 사람들은 아이를 많이 가지지 않는다. 그러나 이슬람을 믿는 무슬림들은 부인을 4명 까지 둘 수 있고 한 명의 부인에게서도 아이를 많이 출산하므로 출산율이 유럽 본토 사람들 보다 4배 이상이다.
현재도 유럽에서 미국에서 무슬림들의 테러, 살인, 폭력, 강간, 명예살인과 같은 사건들이 심심치 않게 일어나고 있다.
시간이 지나면 자연히 유럽은 이슬람화 되는 것이다.
이것이 복음의 능력을 잃어버린 국가와 교회에 대한 하나님의 징계가 아니고 무엇인가?
현재 이슬람 국가에서 기독교인은 엄청난 핍박과 박해를 당하고 있다.
그런데 그러한 사실을 세상의 미디어에서 거의 도보하지 않는다.
세상의 미디어에서 보도하여도 기독교 국가 또는 그 국민들이 거의 반응하지 않는다.
현재 자기 나라 일이 아니고 자기의 일도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현재 우리나라 국민들 가운데 청년들의 결혼율이 저조하고 또 결혼한 사람들의 출산율이 매우 저조하다.
우리 대한민국의 출산율은 전 세계 국가들 가운데 가장 낮다.
올해 2분기 우리나라에서 태어난 출생아 수가 6만명 아래로 떨어졌다.
이 기간 여성 1명이 평생 낳는 아이의 수인 합계출산율도 0.75명까지 추락해 2분기 기준 사상 최저 수준으로 낮아졌다.
이에 따라 이미 세계 꼴찌인 연간 합계출산율은 지난해 0.81명에서 올해 0.7명대로 낮아질 것이 확실시된다고 한다.
합계출산율이 2명이 되어야 현재 인구가 유지되는데 현재 0.7명인 합계출산율이 계속되거나 더 낮아진다면 장차 우리나라는 사라지는 것이다.
대한민국에서 번영신학, 기복신앙, 통합주의, 혼합주의, 다원주의와 같은 변질된 복음으로 인하여 교회는 계속하여 세속화되고
더불어 창세기 1장 28절 말씀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에 역행하여 아이를 낳지 않아 국가의 신생아 출산율이 낮아지면 어떻게 될까?
우리도 이슬람국가에서 이민을 받아들게 될 수도 있다.
인구가 계속 감소하여 국가의 존망이 위태로운 경우 이슬람 이민이라도 받아들여야 국가가 유지된다면 그렇게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이슬람 국가는 인구가 넘쳐난다.
전 세계의 이슬람화가 이슬람의 목표인데 그 목표를 그들은 이민으로 달성할 수 있다고 말한다.
이슬람 국가 리비아의 전 독재자 가다피가 그것을 예상하였다.
그의 예상대로 유럽은 현재 이슬람화가 진행중이다.
이슬람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위에서 죽음을 부인한다.
이슬람 경전인 꾸란 4장 157절은 이렇게 기록한다.
“마리아의 아들이며 하나님의 선지자 예수 그리스도(메시아) 를 우리가 살해하였다라고 그들이 주장하더라. 그러나 그들은 그를 살해하지 못하였고 십자가에 못 박지 아니했으며 그와 같은 형상을 만들었을 뿐이라 이에 의견을 달리하는 자들은 의심할 따름이며 그들이 알지 못하고 그렇게 추측을 할 뿐이라 그들은 그를 살해하지 아니했노라”.
이것은 기독교의 핵심을 부정하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위에서 죽음과 부활을 부정하는 것은 기독교의 핵심 교리인 죄의 대속 그리고 구원과 부활 사상을 부인하는 것이다.
이것으로 우리 이슬람의 본질을 알 수 있다.
이슬람의 본질은 사단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 위에서 죽게 하심으로 우리의 모든 죄를 대속하고 구원받도록 계획하신 하나님 아버지의 전 인류 구원의 계획을 이슬람이라는 사단이 저지하고 있는 것이다.
무함마드에 의하여 이슬람이라는 종교가 나타나기 전에 무함마드의 아라비아 부족은 아라비아 사막에서 달신 알라를 숭배하였다.
현재도 사우디아라비아 메카에 있는 메카 사원은 무함마드가 나타나기 전에 아라비아 부족이 섬기는 360개의 신을 섬기는 사원이었다.
이슬람의 신 알라는 그 360개 신들 가운데 우두머리 신으로 아라비아 부족들이 섬기는 달신이었다.
오늘 본문 말씀 가운데 있는 일월성신에 달신도 포함된다. 달신 알라를 섬기는 것은 우상에게 예배하는 것과 같다.
현재 이슬람은 알라가 달신이 아니고 여호와 하나님과 같은 하나님이라고 주장하지만 성경 어디에도 “알라”라는 하나님의 이름은 없다.
요한복음 8장 44절에서 주님은 마귀에 관하여 말한다 “그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그가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라”
이슬람은 알라가 여호와 하나님이라고 거짓말하는 마귀 사단의 종교인 것이다.
내가 이슬람을 연구하면서 나중에 생긴 의문이 있었다.
그 의문은 “왜 하나님은 7세기에 기독교 제국이었던 중동과 북아프리카가 이슬람에게 넘어가도록 방관하였을까?”이다.
하나님은 사탄의 종교 이슬람에게 대부분 가톨릭 국가들이었던 중동과 북아프리카가 넘어가도록 방관하셨다.
내가 분석한 바로 7세기에 중동과 북아프리카가 이슬람에게 점령당한 역사적 사건의 원인은 교회의 타락으로 인한 것이다.
그 당시 교회이며 현재의 가톨릭은 주후 590년에 교황 칭호를 가지는 것으로 시작하여 교회의 변질과 타락이 시작되었다.
788년에 십자가, 초상화, 성자상, 유골 숭배를, 800년에 마리아에게 기도를, 850년에 소금물을 성수로 공인하였고,
1090년에 염주(묵주) 사용을, 1091년에 면죄부 발명을, 1184년에 종교재판소 설치를, 1190년에 면죄부 판매 개시를, 1220년에 성체(떡) 숭배를, 1229년에 성경구독 금지를,
1439년에 연옥설 확정을, 1546년에 유전을 성경과 같은 권위로 결정을, 1546년에 가경을 정경으로 공인을, 1568년에 성모송 완성을, 1854년 마리아 무죄 잉태설을,
1870년 교황 무오설을, 1870년 요셉을 교회의 수호신으로 정하였고, 1917년 마리아가 은총의 중재자라고 정하며, 1931년 마리아는 하나님의 어머니라고 확정하였고,
1950년 마리아 부활 승천설을, 1962년 마리아 종신처녀설을 만들었다.
인간을 신처럼 받드는 교황이라는 칭호로 가톨릭 배교의 역사가 주후 590년에 시작되었고 무함마드는 570년에 태어나서 610년부터 이슬람을 전파하다가 메디나로 이주한 622년부터 이슬람력인 헤지라가 시작된다.
하나님의 계명을 변질시키고 왜곡하는 로마 교황청이 있는 유럽의 아래 부분 중동과 북아프리카의 가톨릭 세계 일부를 하나님께서는 사단의 종교인 이슬람에게 넘어가도록 방관하셨다.
구약시대 하나님의 계명을 따르지 않는 이스라엘 민족을 앗수르와 바벨론이라는 몽둥이를 사용하여 징계하셨던
하나님은 주후 7세기에 동일하게 하나님의 계명을 따르지 않고 변질되고 있는 가톨릭 세계의 일부인 중동과 북아프리카를 이슬람이라는 몽둥이로 징계하셨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유럽의 교회들을 계속 지켜보고 계셨다. 이제 유럽은 사회가 엄청나게 세속화되어서 동성애가 이미 오래전에 합법화되었다.
유럽의 교회가 복음의 생명력을 잃어버리고 사회에서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하지 못한데 그 원인이 있다.
복음이 생명력을 잃어버리니 교회는 약화되고 세속화되고 사회는 더욱 더 세속화되는 것이다.
우리는 유럽의 경우를 타산지석으로 삼아 대한민국에서 동성애가 합법화되는 것과 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대한민국 교회 가운데 퍼져있는 번영신학, 기복신앙, 통합주의, 혼합주의, 다원주의와 같은 변질된 복음, 왜곡된 복음, 물 탄 복음, 불순물이 섞인 복음을 완전히 척결하고 청소하여 순수한 복음, 순전한 복음만이 대한민국에서 전파되도록 만들어야 한다.
이것은 목회자와 성도가 깨어 있을 때 가능한 일이다.
성령에 의하여 의식이 깨어 있는 자들이 대한민국에 모든 변질된 복음, 왜곡된 복음, 불순물이 섞인 복음, 물 탄 복음이 청소되도록 기도할 때 하나님은 역사할 것이다.
지금 전 세계는 대한민국의 한류로 인하여 열광하고 있다.
이제 우리 대한민국의 교회도 모든 변질된 복음, 왜곡된 복음, 불순물이 섞인 복음, 물 탄 복음을 청소하고 순수한 복음, 순전한 복음 전파와 선교로 대한민국의 기독교 한류를 전 세계로 전파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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