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들은 삶을 사랑하고 우리는 죽음을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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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취자 여러분, 신자들과 불신자 쿠파르 여러분, 역사에 기록된 삶보다 죽음을 찬양하는 유일한 종교는 더러운 사이비종교 이슬람이라는 것을 다시 한 번 말해주고 싶다.
무함마드의 추종자들은 현재 인간의 존재에 대한 그러한 왜곡되고 사악한 관점을 받아들이도록 유년기로부터 성인이 되기까지 세뇌되고 있다.
하나님을 위한 죽음을 사랑하는 대신에 자신들의 삶을 사랑한다고 무슬림들은 기독교인들과 유대인들을 특히 비방한다.
우리가 265개의 비디오에서 결론적으로 입증하였듯이, 무함마드가 그의 추종자들에게 남긴 유산은 그의 꾸란과 샤리아의 기초가 되는 그의 순나에 의하여 명령된 대로 증오, 전쟁, 속임수, 인종차별, 분노, 불행함, 복종, 기쁨이 없음, 비참함, 시샘, 무지로 가득한 삶이다.
그의 추종자들은 사실상 행복하지는 않더라도 평범한 사람을 만족하게 만드는 쾌락의 대부분이 금지된다는 것을 기억하라.
그들은 놀음, 음주, 춤, 노래, 악기연주, 시낭송, 사람 또는 짐승의 형상을 그리거나 조각하는 것, 비단 옷 입기, 금장식 착용, 장기두기, 합의에 의한 섹스, 인류 가운데 “다른 사람들” 존중하기, 다른 종교에 관하여 배우기, 친구 또는 보호자로 무슬림이 아닌 사람 사귀기 등이 금지되며 그들의 여성배우자들을 극도로 경멸한다.
무슬림 남성 대부분이 성적으로 좌절되었고, 분노하며, 시샘하며, 증오를 선동하고, 비정상적으로 폭력적이며, 스스로 혐오하는 사람들이라는 것에 어떤 이상함이 있는가?
무엇보다도 누가 그러한 비참하고 썩은 동태 눈알 같은 삶을 살기 원하며 완전히 역기능적인 인간들인가?
이러한 비참함을 그의 추종자들이 무고하며 비무장인 불신자 쿠파르를 살해하면서 ‘순교자’로 죽을 때에 내세에서-창녀촌 버전의 낙원에서-그들이 얻을 무함마드의 약속과 비교하라.
현세에서 그들에게 금지된 술의 강들, 우유의 강들, 꿀의 강들, 물의 강들.
그들은 물론 그들의 선택에 따라서 분명하게 영원히 처녀인 여성들 그리고 아름다운 남자 소년들로 보답을 받을 것이다.
그들은 가장 화려한 옷을 입을 것이다.
그들은 가장 아름다운 환경들, 나무들, 꽃들, 새들이 가득하게 둘러싸인 안락한 쿠션에 기댈 것이다.
그들이 바라는 고기, 야채 또는 과일인 모든 음식을 먹을 것이다.
청취자 여러분, 그러한 불합리한 것들 그리고 우둔한 것들에 관하여 우리가 생각하는 것은 전혀 상관이 없는데 왜냐하면 중요한 것은 무함마드의 추종자들 수억명이 그것들을 믿으며, 적당한 조건에서 그들 가운데 수백만명이 죽음을 각오하고 무함마드의 명령을 따른다는 사실이다.
여기서 우리는 논리 또는 합리성이 아닌 신실함과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 믿음을 토론하고 있다. 무함마드의 꾸란과 하디스들은 결국 이러한 끔찍하고 비겁한 사실들을 입증하는 구절들로 가득하다.
소위 믿는 자들과 불신자 쿠파르 여러분, 나는 무함마드 꾸란의 메시지에 계시된 이슬람의 핵심이 되는 믿음에 관한 다음의 결론을 여러분들이 생각해보기 바란다.
핵심이 되는 믿음은 무함마드의 신자들 가운데 단 한 사람도 이제까지 헤아리지 않은 두 개의 가증스럽고, 비합리적이며, 모순되는 교리들에 사실상 근거한다.
첫 번째 교리는 그들이 오직 단 하나의 목적을 위해서 창조되었다는 그들의 믿음인데 언제나 그리고 모든 환경에서 무함마드 꾸란에서 알라가 말한 모든 말씀과 명령을 의문을 제기하지 않고 또는 생각하지 않고 복종하여 노예와 같이 따르는 것이다.
그들의 삶 전체는 사실상 그들의 믿음에 대한 시험(Test)이다. 그것이 시험으로 여겨지기 때문에 거기에서 실수를 하느냐 복종을 하느냐 선택이 있다는 것을 분명히 의미한다.
두 번째 교리는 모든 인류는-창조된 모든 것은-실수하여 그의 지옥에 가거나 순종하여 창녀촌 버전의 그의 낙원에 가도록 알라에 의하여 운명이 예정되었다는 것이다.
분명히 운명예정은 자유의지를 배제하며 그럼으로 이 개념에서 인간은 선택의 여지가 없다.
여기에 무슬림들이 그들의 더러운 사이비종교를 버리지 않고는 풀 수 없는 부조리한 상황이 있다.
운명예정은 시험에 관한 첫 번째 교리를 무효로 만드는데 사실상 거기에 시험이 없기 때문이다.
이제 나는 운명예정의 교리에 관하여 가장 진실을 폭로하는 하디스들 가운데 두 개를 여러분들에게 낭송하겠다.
사히 알-부카리 하디스 6.473(Ali의 이야기)
......무함마드가 말하였다, “그를 위하여 기록된 낙원 또는 지옥의 장소 그리고 그를 위하여 기록된 행복한 또는 비참한 운명을 가지지 않은 영혼은 여러분들 가운데 아무도 없다.”
***이 하디스는 분명히 무함마드 자신의 입으로 운명예정의 교리를 말한다***
알-티르미지 96(Abdullah ibn Amr의 이야기)
알라의 사도가 나왔고 그의 손에 책 두 권이 있었다. 그가 말하였다, 이 두 권의 책이 무엇인지 당신들은 아는가? 우리가 말하였다, 알라의 사도여, 우리는 단지 당신이 가르쳐 준 것만 압니다.
그리고 그가 말하였다, 내 오른 손에 있는 이 책은 세상의 주님에게서 온 책이다. 이 책은 낙원에 들어가는 사람들의 이름 그리고 그들 조상들의 이름 그리고 그들 부족들의 이름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완전하여서 영원히 그것에 아무것도 더하여질 수 없고 그것에서 어떤 것도 제하여 질 수 없다.
그리고 그가 말하였다, 내 왼 손에 있는 이 책은 세상의 주님에게서 온 책이다. 이 책은 지옥에 들어가는 사람들의 이름 그리고 그들 조상들의 이름 그리고 그들 부족들의 이름을 가지고 있다. 그것도 완전하여서 그것에 아무것도 더하여질 수 없고 그것에서 어떤 것도 제하여 질 수 없다.
무함마드의 추종자들이 말하였다, 알라의 사도여, (그것이 사실이라면)
“모든 것이 이미 정하여졌다면 선행을 할 필요가 어디에 있습니까?”
그래서 무함마드는 “옳은 길을 따르고 가능하면 그것에 가까이 있으라......”고 말함으로 대답을 회피하였다.
청취자 여러분, 1400년 전에 대부분 문맹이며, 속임을 당하기 쉽고, 배우지 못한 그의 추종자들조차도 무함마드의 운명예정 개념에 관하여 가장 중요하고 타당한 질문을 할 수 있었는데 그것에 대하여-무함마드에게 있어서 항상 그렇듯이-그들은 만족할만한 답변을 얻지 못하였다.
1400년 동안 그리고 지금도, 무함마드의 수억명의 추종자들 가운데 한 명도 이 논리적이며 근본적인 질문을 하지 못하였다.
다음의 구절들은 그의 추종자들이 삶 보다 죽음을 더 선호하는 것에 관하여 무함마드의 꾸란과 하디스들에 가득한 것들 가운에 단지 몇 개의 예들이다.
꾸란 2:86 “그들은 내세를 팔아 현세를 사는 자들이니 그들의 죄는 절대 경감되지 않을 것이며 어떤 도움도 받지 못할 것이라”
꾸란 4:74 “그로 하여금 알라를 위해 성전에 참여하도록 하여 내세를 위해 현세의 생명을 바치도록 하라 알라의 길에서 싸우는 자가 살해를 당하건 승리를 거두건 알라는 그에게 커다란 보상을 주실 것이라”
꾸란 9:38 “믿는 자들이여 너희에게 무슨 일이 있느뇨 알라를 위해 전쟁에 임하라 하매 너희가 주저하였노라 이는 너희가 내세보다 현세에 만족하고 있기 때문이라 현세의 삶이 내세에 가면 아무런 의미가 없노라”
꾸란 9:39 “너희가 전쟁에 임하지 아니하였다면 너희에게 고통스러운 벌을 주셨을 것이오 너희 대신에 다른 백성을 선택하셨을 것이라 너희는 알라를 조금도 해칠 수 없나니 알라는 모든 일에 전지전능 하심이라”
무함마드의 많은 추종자들이 그를 위하여 싸우기를 거부하였을 때 무함마드가 이러한 구절들을 낭송하였다는 것을 주목하라. 그들은 전쟁하기를 거부하였다! 그래서 무함마드는 그들이 거룩하지 않은 지하드를 하라는 그의 명령을 따르지 않을 경우 부담이 크고 영원한 형벌들로 그의 속임을 당하기 쉽고, 글자를 모르며, 미신을 믿는 추종자들을 두렵게 하였다.
꾸란 13:26 “알라는 그분의 뜻이 있는 자에게 일용할 양식을 더하시거나 줄이시니라 불신자들은 현세의 생활로 기뻐하나 현세의 생활은 내세의 기쁨에 비하여 스쳐가는 순간의 기쁨에 불과하니라”
꾸란 14:3 “내세보다 현세의 삶을 좋아하는 자들과 알라의 길을 방해하는 자들과 삐뚤어짐을 갈구하는 자들 모두는 오랜 방황 속에 있게 되리라”
꾸란 12:57 “믿음을 갖고 정의에 사는 자들에 대한 내세의 보상은 이보다 더욱 훌륭하니라”
꾸란 17:21 "알라가 어떻게 그들 가운데 우열을 두었는지 보라 내세에서는 그 우열이 더욱 크노라“
어떠한 종류의 긍휼하고 자비로운 신이기에 그의 신자들에게 그가 의도적으로 알면서 실수하도록 예정한 불신자들을 살해하라고 명령하고 그 결과로 믿는 자들인 집단 살인자들이 창녀촌 버전의 낙원으로 보답을 받는가?
그러한 신의 정의, 긍휼, 자비는 어디에 있는가?
그들이 출생부터 성인이 될 때까지 이슬람의 더러운 사이비종교를 믿도록 완전히 세뇌가 되지 않았다면 수억명의 무슬림들이 그러한 증오에 차고 사탄적인 신을 믿는다는 것이 어떻게 가능한가?
어떤 종교가 삶보다 죽음을 더 선호하는 것은 의심할 여지도 없이 생리, 논리, 신학의 완전한 왜곡이다.
모든 생명체는 최대한 오래 살려고 노력하며 수명을 단축하는 것은 드물다. 그것은 무함마드 이슬람의 사이비종교 추종자들의 세뇌되고 뒤틀어진 생각을 제외하고 생리적인 명령이다.
그럼으로, 무함마드의 꾸란은 그것에 하나님이 없다고 증명된 모든 다른 이유들을 제외하고도 이 구역질나는 개념 하나만으로도 절대로 하나님이 계시한 경전이 아니다.
죽음을 사랑하는 개념의 또 다른 예는 초기 이슬람 역사에 있으며 오늘날 무슬림들의 서방세계에 대한 전쟁의 가르침으로 역할을 한다.
이 이야기는 무슬림 군대의 사령관 카리드 이븐 알-와리드(Khalid ibn Al-Walid)가 페르시아 사령관 코스루(Khosru)에게 칼리프 아부 바크르(Abu Bakr)의 메시지를 가진 사자를 보냈을 때인 636년 까디시야(Qadisiyya) 전투에서 유래되었다.
그 메시지는 “당신들[코스루와 그의 국민들]은 이슬람으로 개종해야 하고 그렇게 하면 당신들은 안전할 것이며, 만약 당신들이 개종하지 않는다면, 당신들이 삶을 사랑하듯이 죽음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군대를 데리고 당신들에게 갈 것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였다.
이 문구는 오늘날 무슬림 설교들, 신문들, 교과서들에서 영광스럽게 낭송된다.
꾸란 29:64 “현세의 삶은 향락과 오락에 불과하나 그들이 내세의 집을 안다면 그것은 곧 생명이니라”
꾸란 16:106 “일단 믿은 후 알라를 배반하는 자, 단 마음은 믿으면서도 강제당한 자를 제외하고는 가슴을 열고 믿음을 배반하는 자에게는 알라의 노여움이 내린다. 그들에게는 커다란 벌이 있을 뿐이다”
꾸란 16:107 “그것은 그들이 내세보다 현세의 생활을 사랑하기 때문이며 알라께서 믿음이 없는 백성들을 인도하시지 않기 때문이다”
***무엇이든지 무함마드를 괴롭히는 것은 또한 알라를 괴롭히는 것이며 무엇이든지 알라를 괴롭히는 것은 또한 무함마드를 괴롭히는 것이라는 것은 무함마드가 그의 꾸란의 수많은 구절들에서 아주 분명하게 만들었다. 무함마드의 적들은 또한 알라의 적들이다. 무함마드가 증오하는 자들은 또한 알라에 의하여 증오를 받는다.
이러한 상황의 문제들은 이것이 문제가 되는 이유에 관한 해답을 이미 아는 우리의 독자들을 놀라게 하지 못하는데 알라는 무함마드가 주장하는 계시들에 거룩함을 주는 단지 무함마드의 마우스피스이기 때문이다***
꾸란 40:39 “백성들이여 현세의 삶은 지나가는 향락에 불과하니 영주할 곳은 내세뿐이라”
꾸란 42:20 “내세를 위한 경작지를 원하는 자 알라는 그의 경작지를 더하여 줄 것이라 현세를 위한 경작지를 원하는 자에게는 그것의 일부를 주리라 그러나 내세에서 그에게는 아무런 몫이 없노라”
꾸란 75:20~21 “그러나 너희는 지나가는 현세의 삶을 사랑하고 내세를 무시하고 있노라”
꾸란 87:16~17 “그래도 너희가 현세의 삶을 좋아하나 내세가 더 좋으며 영원하니라”
꾸란 93:4 “실로 그대에게는 내세가 현세보다 나으리라”
사히 알-부카리 7.481(Ibn Umar의 이야기)
알라의 사도가 말하였다, “세상에서 술을 마시고 (죽기 전에)회개하지 않는 자는 내세에서 술을 마시지 못할 것이다.”
사히 알-부카리 7.537(Hudhaifa의 이야기)
예언자가 말하였다, “금 또는 은잔으로 마시지 말고, 비단 옷을 입지 말라, 이러한 것들은 현세에서 그들(불신자들)을 위한 것들이며 내세에서 당신들(신자들)을 위한 것들이다.”
알-티르미지 하디스 5179(Abu Musa의 이야기)
알라의 사도가 말하였다, “현세를 사랑하는 자는 그의 내세에 손해를 주며 내세를 사랑하는 자는 그의 현세에 손해를 주니 일시적인 것보다 영원한 것(내세)을 선호하라.”
사히 알-부카리 8.423(Sahl bin Sad As Saidi의 이야기)
Al-Khandaq(전투)에서 우리는 알라의 사도와 함께 있었는데 그는 참호를 파고 있었고 우리는 그 흙을 나르고 있었다. 그가 우리를 보고 말하였다, “오 알라시여! 내세의 삶을 제외하고 살 가치 있는 삶이 없으니 안사르(Ansar) 그리고 이주민들을 부디 용서해주십시오.”
청취자 여러분, 이슬람에 대한 유대-기독교의 오랜 반감은 알라의 절대적 능력이 사랑에 의하여 속박되지 않는다는 점에 있다.
“모함메드의 하나님은 충분히 귀찮아서 창조를 하지 않을지도 모르는 조물주이다. 필요에 따라서 행동하지 않으며, 율법을 제정하여 다스리지 않으며, 오히려 임의로 행동하는 자신의 자유를 가지고 폭력을 사용하여 행동하는 동양의 군주와 같이 그는 자신의 권력을 휘두른다.”라고 신학자 프란츠 로젠츠바이크(Franz Rosenzweig; 현대 유대교 신학자)는 기록하였다.
인간 자신이 이 절대적인 권력에 대항할 수 있는지 여부는 다른 문제이다. 오늘날 세계의 실상은 이슬람이 전 세계적으로 파괴적인 급진주의 사체 간음과 같은 더러운 오명을 생산하는 경향을 가졌다는 것이다.
움마 알 쿠파르의 전 세계에 대하여 움마 무함마드 무슬림들의 도전은 단순히 이것이다.
“우리와 다르게, 당신들의 명분을 위해서 당신들은 생명을 바치려하지 않는다.”
그럼으로, “당신들이 삶을 사랑하는 것만큼이나 우리는 죽음을 사랑한다”는 오래 전부터 이슬람의 자랑이며 극도로 사악한 것이다.
그것은 이슬람주의자들이 자신들의 생각에서 얼마나 정확하게 자신들을 사탄의 추종자들과 구별하는지 우리가 생각하게 만든다.
우리가 찾을 수 있는 가장 악한 것으로 세상을 채우기 위하여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나선다면, 그 노력은 그들 자신을 포함하여 무죄한 남자들, 여자들, 어린아이들인 무고하고 무방비 상태의 민간인들의 폭력적인 죽음을 야기하는데 즐거움을 가지는 앞잡이들의 두드러진 특징이 아닌가?
이러한 더러운 인간 돌연변이종들-인간으로 가장한 마귀의 앞잡이들-의 가장 자랑스러운 순간들의 일부가 많은 것들 가운데 몇 개만 들어도 “베슬란(Beslan: 2004년 9월 1일 러시아 연방 북부 코카서스의 베슬란에서 체첸의 독립을 요구하는 무장단체가 한 학교에서 1100명의 인질을 붙잡고 있을 때 러시아군의 진압과정에서 385명이 죽임을 당하였다)” 그리고 “9.11” 그리고 “뭄바이” 그리고 “니콜라스 버그(Nicholas Berg; 이슬람주의 무장단체에게 참수당한 유대계 미국인 사업가)” 그리고 “바그다드 전역의 과일상자에서 발견된 머리들” 그리고 “피자 가계에서 터진 자살폭탄” 그리고 “로커비(Lockerbie; 미국 펜암기 103편이 스코틀랜드 로커비 상공에서 1988년 12월 21일 리비아의 무아마르 가다피의 지령을 받은 테러범에 의하여 폭파되어 탑승하고 있던 승객 243명과 승무원 16명이 사망하였다)”와 같은 사건들이 포함되지 않는가?
이슬람주의자들이 평범한 예절을 가진 우리 움마 알 쿠파르(이교도들의 국민)가 삶을 사랑하는 만큼 죽음을 정말로 사랑한다면, 우리는 쉽게 어떤 공통점을 찾아 그들의 야망을 성취해 주어야 한다.
죽음을 바라는 모든 무슬림들은 그들의 미숙하고 폭력적인 자살로 직행할 수 있으며 아니면 우리가 그들이 생을 마감하도록 해주어서 그들이 내세의 창녀촌 버전의 무함마드 낙원에서 그들이 확신하는 보상들을 받도록 도움을 주어야한다.
단지 그 때 우리 쿠파르의 나머지는 이슬람주의자들이 미친 것으로 받아들이는 그 "생명“의 것과 함께 살 수 있다.
문제들이 해결되었다.
자료출처 http://the-koran.blogspot.kr/2010/04/you-love-life-we-love-death-part-219a.html
자료출처 http://the-koran.blogspot.kr/2010/04/you-love-life-we-love-death-part-219b.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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