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아담을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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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Khaled
나는 이란-이라크 전쟁 중인 1980년대에 수니파 아랍 무슬림으로 이라크 바그다드에서 자랐다. 이란 공군기들이 바그다드를 폭격하는 것을 기억한다. 폭탄의 폭발음과 항공기가 공격하는 소리는 나에게 있어서 일상적인 것이 되었다.
상당한 기간 동안 나를 괴롭히는 질문이 있었다. 이 폭탄들 가운데 하나가 나에게 떨어져서 지금 내가 죽으면 무슨 일이 일어날까? 죽음 후에는 무슨 일이 있을까?
무슬림으로서 나는 지옥이든 낙원이든 심판의 날과 내세가 있다는 것을 안다. 그래서 내가 낙원에 가는 것이 확실하기를 원하였다.
이 문제에 심취하여서 우리 가족의 도서에서 내가 이용할 수 있는 이슬람 서적 그리고 나중에는 가까운 모스크의 공중도서관에서 나 혼자 연구하기 시작하였다.
이슬람 포교(Dawah)는 80년대에 이라크에서 금지되었다. 세속주의였던 바트(Baath)당은 종교 활동을 장려하지 않았다. 수니파 모스크들은 예배자들로 가득하였던 금요일 오후 예배시간을 제외하고 평상시 기도시간에 참석하는 사람들이 거의 없었다.
믿음에 헌신적이었던 모스크 이맘과 일부 무슬림 장로들 몇 명과 대화와 나의 연구를 통하여 나의 질문들에 대한 해답을 배웠다: 지옥에 가지 않고 낙원에 가기 위하여, 당신은 알라에게 복종하고 그의 명령에 순종해야 한다.
모든 인간이 살아생전에 한 일을 평가받고 그것에 따라서 심판을 받는 심판의 날에 관한 미잔(Mizan; 저울)의 개념을 이해하였다.
각 사람은 알라의 앞에 설 것이고 그 또는 그녀가 생전에 한 일을 질문 받을 것이다. 이 저울 위에서 선행과 악행이 저울질 될 것이다. 어느 쪽으로 기울어지는가에 근거하여, 즉 그들의 행위의 무게에 따라서 천국 또는 지옥으로 갈 것이다.
그 또는 그녀가 얼마나 많은 선행을 하고 악행을 하였는지 아무도 모르기 때문에 아무도 그들이 어디로 가는지 확실하게 모른다. 따라서 이러한 방법으로는 구원의 확신이 없다. 구원의 유일한 확신은 전쟁(지하드)에서 알라를 위하여 죽는 것으로 자기 자신의 피를 통하여서 이며 이것은 당신에게 순교자(Shaheed)의 반열에 들게 만들 것이다. 그리고 알라는 이 사람이 낙원에 갈 것이라고 약속하였다.
꾸란 9:111 “알라는 믿는 자 가운데서 그들의 영혼과 그들의 재산을 사시고 천국을 주실 것이라 그것은 알라를 위하여 성전하고 투쟁하며 순교하는 자를 위해 구약과 신약과 꾸란에 약속된 것이라 알라보다 약속을 잘 지키시는 분이 누구이뇨 너희가 알라와 거래한 것에 기뻐하라 그것이 영광된 승리라”
나는 젊었고 아직 알라를 위하여 전투에 참여하는 방법을 몰랐기 때문에, 나는 선행을 통하는 다른 방법으로 가기로 결심하였다.
그래서 나는 하루 다섯 번 기도를 하여서, 미명에 일찍 일어나기 위하여 노력하였고, Qiyaam Al-Layl(밤 기도)를 하였고, Gama’a(집단) Fajer(새벽) 기도를 미명에 모스크에서 하였다. 내가 집단 예배가 없는 학교에 있었던 때인 정오를 제외하고 나는 모스크 예배의 대부분을 참석하였다.
내가 할 수 있는 한 금식을 하였고 내가 줄 수 있는 것을 주었다. 나는 예언자 무함마드의 모든 것을 모방하여 그의 의상과 그의 습관을 따랐다. 나는 오직 예언자의 초기 추종자들과 같아지기를 원하였다.
80년대의 수니파 또는 시아파든, 종교인들을 향한 바트당의 적대감에도 불구하고, 알라를 위하여 나 자신을 위험에 처하게 하는 것이 지하드라고 생각하여서 알라에 대한 그들의 불순종을 회개하고 선한 무슬림들이 되는 것에 관하여 십대였던 나의 친구들과 대화하려고 하였다.
그들 가운데 몇 명이 나에게 합류하였고 우리 젊은 사람들 몇 명은 자주 모스크에 갔고 거기에서 만났다. 이 작은 그룹을 만들고 우리는 죽은 후에 낙원에 가기 위하여 더 많은 선행을 축적하기 위하여 다른 방법을 찾느라고 머리를 짜내기 시작하였다.
우리는 사아파와 같이 정통파가 아닌 (우리가 이단이라고 믿는)무슬림들을 예언자 무함마드의 진정한 순나로 인도하면 어떨까하고 생각하였다(나는 지금 그들에게 도발하는 것이 아니며 그것이 당시에 수니파로서 우리가 믿는 것이었다).
그 집단에서 나는 책벌레가 되어서, 다른 이슬람 종파를 연구하고 그것들이 어떻게 생겨나고 수니파와 어떻게 다른지 배우기 시작하였다. 물론, 나는 시아파에 집중하였지만, 이슬람 서적들에서 종파들과 이단들에 관하여 읽는 것은 나를 소름끼치게 만들었고 내가 이전에 절대로 알지 못한 새로운 사상들과 정보를 제공하였다. 어째든, 우리 그룹에 합류하여 수니파가 된 적어도 두 명의 시아파 학생들과 함께하였다.
그 그룹의 누군가가 Ahmed Deedat과 Jimmy Swaggart의 토론 비디오를 시청하자고 우리를 초청하였다. 그것은 아랍어로 더빙이 되어있었다. 기독교 목사에 대한 Deedat의 승리 때문에 우리는 감격하였고 우리는 기독교인들도 이슬람으로 초청하기 원하였다.
헌신되지 않은 무슬림들을 회개로, 이단에 속한 무슬림들을 올바른 길로, 그리고 비-무슬림들을 진리의 종교(이슬람)로 데려오는 나의 시도들은 대부분 이기적이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누군가를 알라에게로 인도할 때마다, 이 사람이 이후로 그의 삶에서 할 선행이 무엇이든지간에 내가 알라에게서 보상 그리고 일종의 수수료를 받는다고 이해하였다. 이러한 방법으로 나는 저울의 균형이 악행보다 선행 쪽으로 기울어지게 만들고 있었고 그래서 나는 낙원에 갈 수 있다.
나는 모스크의 공중도서관에서 기독교의 책에 관한 자료들을 발견하였다. 그것들 모두는 무슬림 관점이었다. 그것들 가운데 기독교 관점은 전혀 없었다. 우리 무슬림들이 예언자 또는 거룩하다고 여기는 많은 사람들의 죄를 보여주는 Mustafa Mahmoud의 책 “The Torah(토라; 모세오경)”를 읽으면서 내가 얼마나 성경에 혐오감을 느꼈는지 절대로 잊지 못할 것이다. 예를 들면, 술 취하였을 때 그의 딸이 동침한 롯이다.
우리는 공격을 시작하였고 예전부터 이라크에 있었던 (가톨릭과 동방정교)기독교인 친구들에게 피해를 주었다. 그들이 답변할 준비가 안 된 그들의 신앙에 대하여 공격하였다. 이것 때문에 현지 사제들 가운데 한 명이 주목하였다.
그 사제는 그러한 젊은 사람들의 마음속에 그들의 신앙이 건강하다는 확신을 심어주기 원하였다. 그래서 그는 의심하고 있는 젊은 기독교인들 앞에서 자신과 토론하자고 우리를 초청하였다.
내가 이슬람의 영웅이라고 생각하며, 내가 이라크의 Deedat이라고 생각하며 이 모임에 갔다. 내가 준비한 질문들에 해답이 없을 것이라고 확신하였다. 내가 대답할 수 없는 질문이라고 제기한 것에 대하여 이 사제가 나에게 간단한 답변들을 하였을 때 내가 얼마나 충격을 받고, 화가 나고, 창피하였는지 여러분은 상상할 수 있다.
그 사람은 우리를 기독교인으로 만드는 것에 관하여 신경을 쓰지 않았고, 그는 단지 자기의 양을 돌보는 목자였다. 무슬림이 다 되었다고 내가 생각한 기독교인 친구들의 얼굴에 떠오른 승리의 미소를 나는 잊을 수 없다. 또한 그 사제와 상대가 안 되었고 무능하다고 나를 비난한 무슬림 친구들 얼굴의 실망감을 나는 잊을 수 없다.
창피하여서, 나는 화가 난 채로 집으로 돌아갔다. 다음 몇 일 동안 나는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분석하기 시작하였다. 내가 한 실수를 발견하였다. 그 사제에게 답변하는 것을 준비하기 위하여 기독교인 관점에서 나온 기독교 출판물 어떤 것도 읽지 않았던 것이다. 나는 성경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
다음 몇 년 동안 나의 모토는 ‘너의 적들을 알라’였다. 그래서 나는 기독교인이 쓴 기독교 자료들을 얻기 위하여 힘든 과정을 거쳤다. 나의 첫 목표는 성경이었다. 그것은 어려운 과정이었지만 성경 한 권을 찾기 위하여 일 년을 보낸 후에, 나는 드디어 이라크 외부에서 아랍어 성경을 한 권 구할 수 있었다. 나는 아랍어 기독교 라디오를 듣고 내가 가지고 있는 성경과 몇 권의 기독교 서적들을 읽기 시작하였다.
한 참 후에, 내가 기독교인으로 태어났고 나의 신앙에 관한 이러한 설명들을 들었다면(그러한 설명들이 아무리 미약할 지라도) 내가 절대로 이슬람으로 개종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교회와 가족과 기독교인 친구들에 의하여 교리적으로 세뇌되었을 것이다.
그 반대의 경우도 나의 생각 속에 떠올랐다. “~~~하였다면 어땠을까”라는 끊임없는 질문들이 떠올랐다.
왜 내가 이슬람이 진리의 종교라고 믿을까? 아마도 내가 개종시키려 하는 이 기독교인들과 같이 나도 독선적인가 그리고 단지 내가 무슬림으로 태어났기 때문에 이슬람을 믿는가?
이슬람이 진리의 종교인지 내가 어떻게 아는가? 꾸란이 무함마드에게 계시되었기 때문인가? 그러나 천사가 무함마드에게 내려오는 것은 본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것은 단지 한 사람(무함마드)의 증언일 뿐이다!
나 자신이 메카 사람들의 입장이 되어 보았다. 오늘 한 사람이 내게 와서 자신이 예언자라고 말한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왜 내가 그를 믿고 내가 태어날 때부터 가진 종교를 버려야하는가? 단지 그가 그렇게 말하였기 때문에? 그의 증거는 무엇인가? 천사 가브리엘을 통하여 알라에게서 받았다고 그가 말하는 계시 때문에? 그렇다면, 이 계시에서 무엇이 위대한가? 그렇다, 그것(꾸란)은 아름답지만 언제 진리에 대한 증거가 아름다움이었는가? 아마도 다빈치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그림을 그렸기 때문에 다빈치도 예언자라고 생각하여야 하는가? 그것 외에도, 이슬람과 이단들의 역사를 공부하여서 예언자라고 주장하며 꾸란보다 더 나은 것을 가져온 Al-Mutanabbi와 같은 다른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을 나는 안다. 누군가가 꾸란과 같은 것을 만들 수 있다는 증거 한 가지는 수라 Al-Wilaya와 수라 Al-Nurain과 같은 꾸란의 잃어버린 장들에 관하여 말하는 시아파였다.
무함마드가 예언자라는 외부적인 증거들을 찾는데 나는 실패하였다. 이슬람을 믿기 위해서, 당신은 무함마드의 계시를 믿어야 한다. 그러나 그것은 논리적인 추론을 사용하여 여러분이 입증하지 못하는 것이다.
당혹함과 초조함으로 나는 질문하였다: 내가 기독교인으로 태어났다면 어땠을까? 지옥에 가지 않기 위하여 이슬람의 진리의 종교로 어떻게 개종하였을까? 그렇다, 비-무슬림은 지옥에 가는데 꾸란이 다음과 같이 말하기 때문이다:
꾸란 3:85 “이슬람 외에 다른 종교를 추구하는 자가 있다면 절대로 그를 받아들이지 말라 그는 내세에서 패망자 가운데 있게 되리라”
그렇다면 내가 어떻게 구원을 받는가? 무슬림들은 말할 것이다: 꾸란을 읽으라 그러면 당신은 그것이 진리라는 것을 알 것이다. 그것이 진리라는 것을 당신이 어떻게 아는가? 꾸란의 아름다운 운율 때문에? 내가 아랍어를 못한다면 어떻게 되는가? 그러면 나는 아름다움을 모르고 개종하지 않을 것이다!
나의 “~~~하였다면 어땠을까”라는 질문이 늘어감에 따라, 꾸란 구절들이 내게 떠오르고 나를 더 불안하게 만들면서 나는 더더욱 꾸란과 씨름하였다.
꾸란 43:36 “알라는 그분의 자비로우신 교훈으로부터 외면하는 자를 위해 사탄을 그에게 묶어 두어 사탄이 그의 친구가 되더라”
진리에 대한 나의 신실한 요구와 심판의 날 나의 구원을 확실하게 하기 위하는 것 때문에 알라가 나에게 불쾌하여 나에게 사탄을 묶어두어 내가 그와 씨름하게 만든다는 것을 이 구절이 의미하는가? 얼마나 큰 도움인지, 알라시여! 감사합니다!
예수가 하나님과 인간의 두 가지 본성을 가진다는 기독교 개념에 있어서 나의 이슬람 관점의 어려운 문제는 예수를 무함마드와 비교하거나 그분을 보통의 인간으로 생각하는 것이 실수라는 것을 깨달으면서 사라지기 시작하였다. 사실상 우리는 예수와 꾸란을 비교해야 하는데 왜냐하면 그들 둘 다 (당시에 내가 믿기로는)알라의 말씀이기 때문이다.
꾸란 4:171 “.....실로 구세주 예수는 마리아의 아들이자 알라의 선지자로써 마리아에게 말씀이 있었으니 이것은 알라로부터 온 혼이라.....”
무슬림으로서, 나는 꾸란이 알라의 말씀이기 때문에 꾸란이 거룩하며 동시에 꾸란이 인간의 언어인 아랍어로 낭송될 때 꾸란이 인간적인 것이 된다고 믿었다. 그래서 알라의 말씀인 꾸란이 거룩하고 인간적이라면 알라(예수)의 다른 말씀도 거룩하고 인간적이어야 했다.
나는 또한 성육신한 기독교 개념의 하나님을 이해하기 시작하였다. (당시에 내가 알라의 말씀으로 믿었던)꾸란은 종이 위에 잉크로 기록된 인간의 언어를 입었는데 우리는 그것을 Mus'haf(꾸란이 담긴 책)라고 부른다. 그리고 그렇다면 그리스도 안에서 알라의 말씀이 예수의 육체 안에서 피와 살로 성육신하는 것도 가능하다.
게다가, 나 혼자서 무함마드가 예언자인지 입증하려 하는 동안, 그가 정말로 예언자였는지에 관한 많은 의심에 봉착하였다. 그가 토라(Torah; 모세오경)와 인질(Injeel; 복음서)에 언급되어 있다는 꾸란의 주장을 추적하였지만 그를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었다. 물론, 이슬람이 내게 가르친 대로 그들의 경전들에서 무함마드에 관한 예언들을 숨기기 위하여 기독교인들과 유대인들이 그들의 경전(성경)을 변질시켰다는 결론에 이르러야 했다.
그것도 내게 해결책이 되지 않았다. 그것은 사람이 하나님보다 더 강하다는 것을 의미하는가? 알라가 꾸란을 보호하고 보존할 수 있다면 왜 그는 꾸란보다 이전에 내려온 계시들을 보호할 수 없는가? 나의 글 “꾸란이 보존되었는가?”를 읽으라.
또한 지상에서 누군가가 그와 같은 짓을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하나님의 말씀을 변질시키기 위하여! 이 사람들은 종교를 가진 사람들이다. 그들이 어떤 예언자가 오는 것을 원하지 않기 때문에 정말로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변질시켰는가? 그러한 음모를 폭로하고 우리를 위하여 어떤 원본 기록들을 보존할 믿는 자들이 그들 가운데 있지 않았을까? 누가 하나님을 대적하기 원하는가? 단지 소수의 사람들이 그러한 짓을 할 수도 있지만 모든 사람은 거의 아니다.
또한, 언제 그러한 경전들이 누락되거나 변질되었는가? 무함마드가 그것들을 진실한 것으로
말하기 때문에 무함마드가 예언자였던 이슬람 초기는 확실히 아무런 문제가 없었을 것이다.
꾸란 5:43 “그들의 그대에게 심판을 부탁하려 오겠느뇨 그들은 구약을 갖고 있으며 그 안에 알라의 규범이 있지 않느뇨....”
그래서 무함마드 당시에 성경은 틀림이 없었다!
(무함마드 당시에 서로 좋아하지 않았던)유대인들과 기독교인들이 그들의 경전들을 변질시키기 위하여 함께 모였다! 양측의 모든 지도자들이 국제적인 회의로 함께 모였고 전 세계에서 모든 (유대교와 기독교)성경들을 모아서 그것을 변질시키고 무함마드에 관한 예언들을 누락시키고 그 성경들이 온 곳으로 이러한 수많은 성경들을 보냈다고 생각할 수 없다!
이것은 현대의 기준으로도 단순히 불가능하다. 오늘날 우리가 가진 모든 발전된 기술로도 완전히 이행할 수 없는 엄청난 물류작업이다. 무엇인가 잘못 되었다.
무함마드를 떠나고 그의 메시지에 더 이상 신앙을 가질 수 없다고 나는 느꼈다. 또 다른 꾸란 구절이 생각났고 그것에 내게 이치에 맞지 않았다.
꾸란 4:115 “이미 참된 가르치심을 받고 있으면서도 사도와 손을 끊고 올바른 신자들과는 반대의 길을 찾아든 자, 이러한 자에게는 그가 하는 대로 내버려 두어라. 결국에 가서는 지옥의 불에 던져지게 할 것이다. 찾아간 길의 끝이 이처럼 무섭다.”
그래서 그러한 곤경에 빠진 것이 나의 잘못인데 내가 합리적인 신앙을 가지려 노력하였기 때문이다. 내가 이러한 불신앙의 지경에 이르게 속박하는 것은 마귀가 아니라 알라이다. 더 나쁜 것으로 나를 불신앙으로 인도한 존재가 알라이다.
꾸란 35:8 “....알라는 그분의 뜻에 따라 방황케 하고 옳게 인도하기도 하시니라.....”
나는 알라에게 마지막으로 말하였다, “당신이 원하는 자를 인도하고 당신이 원하는 자를 방황하게 한다면, 당신은 나를 지옥에 보낼 수 없다는 것을 아는데 그 이유는 내가 당신의 손에 인형이기 때문이다.”
용기를 얻어서 우주의 진정한 하나님에게 외쳤다, “제발 당신을 내게 보여주세요, 나는 내 힘으로 당신을 찾을 수 없습니다.”
이상하게도, 다음날 나는 살아서 잠에서 일어났다. 자는 동안 나는 한 꿈을 꾸었는데 그 꿈은 나를 편안하게 하였고 이슬람과 나의 마지막 연결을 끊었다. 그 결과 나는 이슬람 예배를 드리고자 하는 욕망이 없어졌고 더 이상 무슬림이 아니라는 것에 대하여 마음에 평강이 있었다.
안정을 찾자 나는 진리를 찾는 나의 탐색을 시작하였다. 이번에는 교리적 신앙의 눈가리개는 없었지만 목마르고 방황하는 신실한 마음이었다.
성경을 다시 읽는 것은 기쁨이었다. 이번에는 사실이고 진실한 기록으로 성경을 다르게 보기 시작하였다. 내가 잘못 된 것들이라고 여기던 것들도 성경의 진실성의 증거가 되었는데, 누군가가 성경을 실제로 변질시켰다면, 오류로 여기지는 것을 그가 감추어야 했기 때문이다.
나는 예언자들의 죄를 있는 그대로 보았다. 그들은 인간이며 죄인들이며 하나님의 도구가 되기로 선택받았지만 그것이 그들이 완전하다고 의미하지 않는다. 하나님을 제외하고 완전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분이 과거에 항상 그랬듯이 예수께서 내게 호기심을 끌었다. 내가 무슬림이었을 때, 나는 그 분을 가장 존경하였다. 나는 항상 예수에 관하여-내가 무슬림이었을 때 그들이 그렇다고 믿었듯이- 다음과 같은 “사탄적인” 생각들을 가졌다.
왜 예수가 처녀 어머니에게서 태어났는가? 왜 그는 죄가 없는가? 왜 그는 죽지 않았는가? 왜 그는 아직 천국에서 살아있는가? 왜 그가 이러한 모든 기적들을 행하였는가? 왜 그는 그렇게 특별한가?
예수가 처녀 어머니에게서 태어났다고 꾸란과 복음서가 동일하게 말하는 점에 당황하였다. 왜 그는 아버지가 없는가? 나는 이슬람 관점의 대답을 생각하였다.
꾸란 3:59 “알라께서 아담에게 그랬듯이 예수에게도 다를 바가 없노라 알라는 흙으로 그를 빚어 그것에 있어라 말씀하시니 그가 있었노라”
그래서 예수는 아담과 같다! 예수를 아담과 비슷하게 만드는 것이 오직 한 가지 있다. 그들은 둘 다 아버지가 없지만 확실하게 예수는 모든 것에서 아담의 정반대이다.
아담은 낙원에서 살았고, 그 당시 그가 하나님의 명령에 불순종하고 금지된 나무에서 열매를 따먹고 낙원에서 지상으로 추방될 때까지, 그는 죄가 없었고 불멸의 운명이었다(꾸란 20:115-123).
알라가 아담을 용서하였다고 꾸란은 말하지만, 아담이 죄가 없다고 우리는 말할 수 없다. 그는 이제 “용서받았지 죄가 없는 것”은 아니다. 지상에 살면서, 아담은 낙원에서 그의 특권인 불멸성을 누리지 못하였다. 아담은 이제 죽는다.
아담이 낙원에서 추방된 것이 그의 불순종에 대한 유일한 형벌이 아니라는 것이 내게 분명하며, 그는 여분의 형벌을 받았는데 그것은 사망이다.
아담의 후손으로서, 우리는 그와 같이 모두 죽는다. 한편으로, 우리는 그에게서 죽음을 유업으로 받았고, 다른 한편으로 우리는 아담의 형벌을 유업으로 받았다.
하나님은 공평하시기 때문에, 우리가 하지 않은 것에 대하여 우리는 형벌을 받지 않아야 하지만, 진실로 우리들 가운데 아무도 죄를 피할 수 없다. 우리 모두는 어떻게든 죄를 가진다. 나의 결론이다. 우리는 아담으로부터 범죄의 능력 또는 죄의 본성을 상속받았고 그럼으로 우리는 아담과 마찬가지로 사망의 공정한 심판을 받았다.
그러나 한 사람의 죄에 의하여 사망이 인류에게 들어왔듯이, 한 사람의 무죄함을 통하여 우리가 낙원의 영생으로 되돌아가는 것이 가능한가?
아담과 같이 오직 무죄한 사람은 예수이다. 그는 절대로 죄를 짓지 않은 마지막 아담이다. 우리가 그분을 믿고 따른다면 진실로 그분은 우리를 낙원의 영생으로 되돌릴 수 있다.
나는 성경에서 이 개념을 가르치는 그 하나님의 말씀을 발견하였다. 이 정확한 개념에 관하여 말하는 본문을 볼 때 나는 놀랐고 경탄하였다. 읽으라: 로마서 5:12-21 그리고 고린도전서 15:20-22, 45이다 스스로 찾아보라.
로마서 5:19 “한 사람의 순종치 아니함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 된 것같이 한 사람의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리라”
고린도전서 15:21-22 “사망이 사람으로 말미암았으니 죽은 자의 부활도 사람으로 말미암는도다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
예수가 범죄의 능력 그리고 아담으로부터 사망의 형벌을 상속받지 않기 위하여 예수가 아담의 씨에서 태어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은 이치에 맞는다. 그것이 그가 마지막 죄가 없는 아담이 되어서 신자들을 낙원에서 하나님과 영생하도록 회복시킬 수 있는 이유이다.
자, 여러분들은 이제 내가 이 진리를 발견한 후에 일어난 일을 알 것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죽은 후에 그분이 나를 천국의 그분의 처소로 데려갈 것이라고 믿으며 천국에서 내려왔다가 천국으로 돌아간 유일한 죄 없는 사람을 나는 단순히 따랐다. 나는 예수를 따랐고 그분이 나의 유일한 주님이요 나의 유일한 구세주임을 고백하였다.
이제, 여러분 차례이다. 당신은 죽은 후에 낙원에 들어갈 확신을 가지기 원하는가? 당신은 선행을 통하여 당신 스스로 낙원을 얻을 필요가 없다. 당신이 지불해야할 대가가 있다. 이제 당신은 비싼 대가를 주고 당신을 그분의 것으로 산 예수의 종이 될 것이다. 당신은 매일 같이 그분을 따라야 할 것이다.
첫 아담이 범죄하고 자신의 불순종의 죄 때문에 자신과 같이 우리 모두를 사망에 이르게 만들었듯이, 마지막 아담(예수)은 그분의 순종과 무죄함을 통하여 그분을 믿고 따르는 사람들을 낙원의 영생으로 회복할 것이다. 당신은 그분이 당신의 주님이며 구세주라는 것을 믿고 끝까지 그분을 따르기만 하면 된다. 그렇게 할 것인가?
당신이 구원함을 받을 것이라고 전능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당신을 위하여 기도한다. 나의 하나님의 영이 당신을 진리로 인도할 것이다. 축복한다.
더 많은 질문을 가지고 내게 연락하는 것을 환영한다.
자료출처 http://www.answering-islam.org/authors/khaled/testimony.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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