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함마드, 테러, 시인들(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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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우흐드(Uhud) 전투
날짜: 625년 3월 21일
장소: 우흐드 산(Mount Uhud)
희생자들: 꾸라이시 부족과 그들의 동맹들
바드르(Badr) 전투에서 무함마드와 그의 살인자들에 의하여 그의 부족 사람들이 집단학살 당하고 부상당한 것에 메카 사람들은 분노하였다. 그들은 자신들을 방어해야 했기에 군대를 모아서 메디나로 향하였다.
무함마드도 그의 오합지졸인 강도떼를 모아서 출발하였다. 그가 메디나의 유대인들에게 자신에게 협조하도록 강요하였으나 이제 무함마드의 실제 성격을 알게 된 그들은 거부하였다. 무함마드와 그의 부하들은 메카 사람들이 잠자는 동안 새벽 전에 공격하려고 메카 군대 숙영지 윗쪽 우흐드 산기슭에 숙영하였다. 그러나 서투른 무슬림들은 기습공격 이전에 메카 사람들이 알아차리게 만들었다.
바로 이때에 메카 사람들은 그들의 무기를 쥐고 무슬림들과 전투에 들어갔다. 무함마드는-평소대로-뒤에 남아서 그를 경호하는 병사들에게 둘러싸여 있었다. 그들이 그를 위하여 싸운다면 그의 군대는 낙원에 들어간다고 약속하며, “누가 알라를 위하여 순교자가 될 것인가” 그리고 “너희들 가운데 누가 우리를 위하여 자신의 몸을 팔 것인가”라고 가끔씩 그는 소리를 질렀다. 그러나 이번에는 무슬림들이 메카 사람들에게 상대가 되지 않았다.
그들 대부분이 우흐드 산을 기어오르며 자신이 살기 위하여 도망하기 시작하였고 이에 무함마드는 미친 사람처럼 맹세하기 시작하였다.
무함마드가 살아남은 것은 단지 행운이었다. 그의 군대는 처참하게 패배하였고 이제 메디나 사람들은 공개적으로 이 사람이 정말로 알라의 사도인지 의심하기 시작하였다. 그가 정말로 알라의 사도라면 왜 알라는 무슬림들이 승리하게 만들지 않았을까? 엄청나게 당혹스러운 이 패배를 설명하기 위해서, 무함마드는 더 많은 “계시들”을 내놓았고 그의 부하들과 자신이 우흐드에서 당한 완전한 패배를 설명하였다.
무함마드 꾸란의 제3장은 우흐드 전투에 관한 이야기들로 가득하다:
꾸란 3:140-1 “너희가 상처를 입었다면 그 백성들도 그만큼 상처를 받았노라 이것은 알라가 인간에게 주는 흥망성쇠이거늘 결국 알라는 믿는 신앙인들을 알고 계시어 너희들 가운데 증인들을 택하시도다 이처럼 알라는 우매한 자들을 사랑하지 아니 하시니라 이렇게 하여 알라는 믿음을 가진 자들을 입증하시고 불신자들을 멸망케 하시니라”
여기서 무함마드의 알라는 비록 그들이 엄청난 손실을 입었어도 메카 사람들도 손실을 입었다고 말하면서[메카 사람들 사망자 수는 20명이 안되지만 무슬림 사망자 수는 100명이 넘었다] 무슬림들의 패배에 대하여 편리하게도 핑계를 대고 있다.
이것에 더하여, 알라는 그 패배가 무슬림들을 위한 “시험”이었다고 핑계를 대면서 편리하게도 무함마드를 곤경에서 빼내고 있다.
이 장은 또한 무슬림들이 모든 곳에서 죽음과 파괴만을 가져오는 이유를 아주 분명하게 설명한다. 이슬람의 알라는 나가서 불신자들을 살해함으로 그들의 충성을 입증하라고 그의 추종자들에게 가르친다. 그러면 그러한 불신자들이 누구인가? 무함마드의 왜곡된 이슬람 버전에 동의하지 않는 모든 사람이다. 그러한 교리에 근거한 종교는 가장 잔인하고 야만적인 본능을 가진 사람들만이 받아들일 수 있다.
꾸란 3:153 “너희가 언덕에 올라 어느 누구에게도 주의를 기울이지 아니했을 때 너희 뒤에 계시던 선지자께서 싸움을 독려하였다 그리하여 알라께서는 선지자의 슬픔에 대하여 너희에게 슬픔으로 보상을 주시었으며 너희가 잃은 것과 너희에게 닥친 것에 대하여 슬퍼하지 말라 하시었으니 알라는 너희들이 행하는 모든 것을 알고 계심이라”
여기서 무함마드는 그를 버렸던 부하들을 문책하고 있다. 그의 자존심은 너무 대단해서 이 장에서 무함마드는 그의 추종자들에게 “사도”를 버리는 것은 알라를 버리는 것과 같은 것이라고 말한다! 그리하여 알라의 종 무함마드는 자신을 알라와 동등하게 만들고 있다. 요약하면 무함마드의 추종자들은 자신의 목숨으로 무함마드를 보호하지 않는 자는 누구든지 알라에게 벌을 받고 그의 가족과 부족 사람들은 알라의 뜻에 따라 죽임을 당한다.
6) 시인 살해
날짜: 625년 3월 말
장소: 메디나 외곽 바니 나디르(Bani Nadir) 부족 요새
희생자들: 카브 이븐 알 아시라프(Kaab Ibn Al' Ashraf)
바니 나디르 유대인 부족 가운데 카브 이븐 알 아시라프라는 이름의 유명한 시인이 있었다. 그는 재능이 있는 시인으로 알려졌으며 굉장히 유명하고 교양이 있는 시인이었다. 그는 바드르 전투에서 정당하지 못하게 학살당하고 부상당하였던 꾸라이시 부족 사람들에 관한 애도시를 작성하였다.
어느 날 무함마드가 말하였다, “누가 카브 이븐 알 아시라프라는 개를 내게서 제거해 줄 것인가?” 무함마드 빈 마스라마(Muhammad Bin Maslama)가 그 일을 하겠다고 대답하였고 “그 일을 하기 위하여 우리는 거짓말을 해야 합니다.”라고 덧붙였다. 무함마드는 알라의 권위로 필요하다면 거짓말을 하여도 좋다고 말하며 그 암살을 허용하였다.
말할 것도 없이, 어두워진 후에 카브는 무함마드 마스라마와 다른 세 명의 열성적인 무슬림들에 의하여 그의 침대에서 소리를 지르며 끌려나왔고 그의 젊은 부인이 보는 가운데 계속하여 칼에 찔렸다.
7) 바니 나디르(Bani Nadir) 부족 침공
날짜: 625년 5-6월
장소: 메디나 외곽 바니 나디르(Bani Nadir) 부족 요새
희생자들: 바니 나디르 유대인 부족 전체
단지 그가 무함마드를 비판하였던 몇 구절들을 썼기 때문에 그들의 위대한 시인 카브 이븐 알 아시라프가 암살당한 것에 바니 나디르 유대인 부족은 분노하였다.
한편으로 바니 나디르 부족이 소유한 재산들을 보고 무함마드 속의 광란의 시기심이 발동하였고 무함마드는 알라가 바니 나디르 부족이 그를 암살하려 계획을 꾸미고 있다는 것을 계시하였다고 주장하였다.
나디르 부족은 무슬림 사자 한 명이 무함마드의 편지를 가지고 그들의 오아시스에 갑자기 나타난 것에 놀랐는데 그 편지는 평소대로 냉혹한 필체로 다음과 같이 적혀 있었다:
“당신들이 내게 대항하여 계획한 반역을 알게 되었으니 이 도시를 떠나고 더 이상 여기서 살지 말라.”
단지 민간인들인 나디르 부족이 해야 할 최선의 일은 그들의 집들에 방호물을 설치하는 것이라고 결정하였다. 즉시 무함마드는 그들을 그의 살인자 군대로 포위하였고 자신은 평소대로 자신을 경호하는 자들에 의하여 보호되어 외곽에 않아 있었다. 나디르 부족 사람들이 싸우려고 하지 않자 자비심이 많은 무함마드는 그 오아시스의 모든 종려나무를 베기 시작하였다. 아라비아와 같은 사막 환경에서 이러한 행위는 집단학살과 동일하며 사실상 사형이라는 것을 기억하라. 나디르 부족 사람들은 그들의 오아시스가 파괴되는 것을 참을 수 없었고 나와서 항복하였다. 여전히 그의 경호원들 뒤에 숨어 있는 무함마드는 외쳤다:
“이곳을 떠나라, 너희들의 생명은 보장한다”
그들의 땅을 정성으로 가꾸어 수 세기의 고난 끝에 그 땅을 오아시스로 만든 그 평화를 사랑하는 부족은 칼날 아래 쫓겨났고 그들의 모든 재산들은 빼앗겼다.
그들은 살기 위하여 또 다른 유대인 정착촌인 카이바르(Khayber)로 도피해야 했고 나중에 이곳도 “평화의 사도”에 의하여 파괴되었다. 풍부한 전리품과 토지를 모두 무슬림 강도들이 차지하였지만 가장 많은 몫은 항상 무함마드가 가졌다.
평소대로 주문에 따른 계시들이 줄줄이 나왔다.
꾸란 59:2-5 “성서의 백성들 가운데 불신자들을 모아 그들의 주거지로부터 최초로 추방케 하신 분이 바로 알라이시라 너희는 그들이 나갈 것이라 생각지 아니하였으며 그들은 자신들의 요새가 알라에 대항하여 그들을 지켜줄 것이라고 생각하였느니라.....그것은 그들이 알라와 그분의 선지자를 거역했기 때문으로......너희가 종려나무를 베어 넘어뜨리거나 또는 뿌리를 내리고 세워 두는 것은 알라께서 허락하신 것 이니라 이로 하여 알라께서는 사악한 자들을 혼란스럽게 하고자 하셨노라”
또 다시 알라가 무함마드를 구하러 온다. 그것뿐만 아니라 알라는 유대인들이 단순히 다음과 같은 이유로 그들의 고향에서 추방되어 마땅하다고 명령한다:
1. 그들은 무슬림들이 아니다.
2. 그들은 무함마드를 반대하였다(무함마드를 감히 비판하였기 때문에 무함마드가 그들의 무고한 시인을 암살하였다는 사실은 무시된다).
3. 그들이 좋은 땅을 가졌고 엄청난 재산을 가졌으며 이것에 더하여 무함마드가 종려나무를 베어버린 범죄를 저지른 것에 대하여 알라는 그에게 깔끔한 핑계를 주어야 했다.
마지막으로 무함마드는 누가 보스인지 아주 분명히 하고 있다. 누가 무함마드를 반대하였다면 그것은 그가 알라를 반대하였다는 것을 의미하였고 모든 무슬림들은 알라를 반대하는 자는 누구든지 죽여야 한다.
8) 카이바르(Khaybar)에서 유대인 노인 살해
날짜: 626년 4월 말
장소: 카이바르 유대인 오아시스
희생자들: 아부 라피(Abu Rafi)
바니 나디르 부족의 유명한 시인 카브 이븐 알 아시라프를 암살하였던 무슬림들은 무함마드와 그의 추종자들에 의하여 영웅들로 여겨졌다. 정말로 살인자들은 지금도 이상적인 무슬림들로 여겨지고 있다.
예언자에 대한 그들의 충성을 입증하기 위하여, 카즈라이(Khazraj) 부족의 한 무슬림 집단이 유대인 공동체의 존경받는 사람을 살해하기로 결정하였다. 아부 라피는 무함마드 또는 무슬림들에 대항하여 절대로 어떤 일도 하지 않은 노인이었다. 그는 단지 유대인들을 두렵게 하려는 무함마드의 계획에 애석하게도 표적이 되고 말았다.
무함마드는 6명을 보내서 한 밤중에 그 노인의 집을 침입하여 그가 잘 때 그를 난자하여 조각을 내버렸다. 범죄를 저지른 후에 무슬림들은 집에서 나와 만족해하는 그들 예언자의 품속으로 도망하였다. 누가 사실상 아부 라피를 죽였는지에 관하여 그들 가운데 다툼이 있었다. 이 때 무함마드는 밝게 웃음을 지으며 그들의 칼들을 검사하기 시작하였다.
결국 칼날에 음식의 흔적이 있는 칼을 가진 자가 승자라고 결정되었다. 아부 라피는 잠들기 전에 저녁식사를 마쳤을 것이 분명하며 칼은 그의 위장을 꿰뚫었고 위장의 음식물이 칼에 묻어있었다.
***다시 한번 거대한 역경에 대항하여 훌륭한 용기로 무함마드 무슬림들은 자신들과 그들의 예언자를 방어하였다.***
9) 바누-L-무스탈릭(Banu-L-Mustaliq) 부족 학살, 강간, 강탈
날짜: 626년 12월
장소: 홍해인근 무라이시(Muraysi) 우물
희생자들: 바누-L-무스탈릭(Banu-L-Mustaliq) 부족
무함마드는 그들의 재산 때문에 바니 무스탈릭 부족을 공격하였다. 기습공격에서 무슬림들은 그들을 바다로 몰았다. 그들은 바니 무스탈릭 부족의 많은 사람들을 학살하였고 낙타 2,000마리, 양 5,000마리, 여성 500명을 전리품으로 챙겼는데 그 여성들은 그들의 남편들과 아들들이 학살되는 것을 보고 비명을 지르며 울었다.
가장 아름다운 포로는 주와이리야(Juwayriyya)였고 족장의 딸이었다. 무함마드는 자신의 정욕을 채우고자 그녀를 차지하였다. 포로가 된 그 밖의 여성들은 몸값을 받고 되돌려 줄 예정이었지만 그 전투가 끝난 밤에 무함마드와 그의 군대는 그들 모두를 강간하였다.
남자들 가운데 한 사람인 무함마드 군대의 아부 사이드 쿠드리(Abu Sa'id Khudri)가 보고하였다: “우리는 여성들을 원하지만 정절을 지키는 것은 우리에게 너무 어렵고 우리 포로들에 대한 몸값을 받기도 원한다. 그래서 우리는 ”Azl"(질외사정으로 남성이 사정하기 전에 성기를 빼내는 것)을 하기 원한다.......우리는 예언자에게 이것에 관하여 요청하였고 그는 말하였다: “당신들이 그와 같이 질외사정을 할 어떠한 의무도 없다.” 나중에 여성들과 어린아이들은 몸값을 받고 그들 사절들에게 돌아갔다. 그들 모두는 자신들의 나라로 갔고 비록 그들이 선택권이 있었지만 한명도 남아있기를 원하지 않았다.“
그래서 무함마드는 그의 부하들이 여성들의 질 내부에 사정을 하지 않고 그로인하여 그들이 임신을 하지 않는 한 여성을 강간하는 것은 완전히 괜찮다고 그의 부하들에게 말하였다. 무슬림들은 이 끔찍한 범죄를 저질렀을 뿐만 아니라 그 부족남자들을 속여서 여성들의 명예를 구하는 필사적인 시도로 그들의 여성들에 대한 몸값을 지불하게 만들었다.
10) 바니 꾸라이자(Bani Qurayza) 부족 학살
날짜: 627년 4-5월
장소: 메디나
희생자들: 메디나에 남은 마지막 유대인 부족 바니 꾸라이자
이때까지 무함마드는 바니 꾸라이자 부족을 제외하고 메디나의 유대인 부족들을 모두 살해하였거나 몰아내었다. 이제는 그의 옆구리에 마지막 남은 가시인 이 부족을 제거할 시기였다.
바니 꾸라이자 부족은 꾸라이시 부족과 대항하는 무함마드를 돕기를 꺼려하였다. 다시 한번 편리하게 무함마드는 자신을 살해하려는 바니 꾸라이자 부족의 음모에 관하여 알라의 계시를 받았다고 주장하였다. 그는 그들의 요새를 25일 동안 포위하였다. 굶주림에 지친 그 부족이 항복하자 무함마드는 그들 가운데 한 노인에게 무함마드의 선고를 발표하도록 강제하였는데 모든 남성은 사형, 모든 여성과 어린아이는 노예, 그리고 그들의 모든 재산의 강탈이었다.
예언자는 메디나의 큰 시장 근처에 엄청나게 큰 도랑을 파게 만들었다. 꾸라이자 부족의 남자와 소년들을 모아서 그들의 손을 몸 뒤로 단단히 묶었다. 그 다음 한명씩 그들은 도랑의 가장자리로 끌려왔고 무릎이 꿇렸다. 거기서 그들에게 “진리의 종교”로 개종하느냐 아니면 그들의 머리가 참수되느냐 마지막 기회가 주어졌다. 머리 하나가 떨어져 땅에 구르자마자 시신을 발로 차서 도랑으로 떨어뜨렸고 계속하여 그렇게 하였다.
그들의 아버지들, 남편들, 형제들, 아들들이 죽는 것을 보자 흥분한 여성들과 어린아이들이 비명을 질렀다. 그 다음 그들의 대다수는 야만적으로 강간을 당한 후에 "상처받은 상품들“로 팔리기 위하여 몇 명씩 묶였다.
새벽까지 900명의 시신이 피와 머리털과 살 조각으로 뒤엉킨 구덩이에 가득하였다. 그 끔찍한 광경에도 유대인들 가운데 아무도 개종하지 않고 용감하게 죽임을 당하였다.
그들의 유일한 죄는 그들 자신들의 하나님 그리고 그들 조상들의 종교를 선택하는 기본적인 인간의 권리를 행사하기로 선택한 것이었다.
무함마드는 유대인 여성 라이하나 빈트 아무르(Raihana Bint Amr)의 남편을 그녀의 눈앞에서 조각내고 몇 시간 후에 그녀의 아버지를 살해하였다. 이것이 무함마드의 왜곡된 버전의 결혼식 현장이었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는데 왜냐하면 이러한 학살 후에 무함마드는 그 굴욕을 당한 여성을 강간하였고 그녀가 개종하도록 강요하였기 때문이다.
무슬림 역사가들은 아직도 라이하나 빈트 아무르의 강간을 그녀가 “자신의 뜻으로 이슬람에 복종하였고 예언자의 아내가 되었다”라고 기술한다. 그들에 따르면, 그녀의 남편, 아버지, 형제들과 부족이 그녀의 눈앞에서 학살되는 것을 본 여성이 그 살인자들의 종교로 개종하기로 결심하였고 무함마드와 결혼하였다고 생각하는 것이 자연스러운가보다!
사실상, 라이하나는 개종하기를 거부하였고 무함마드와 결혼하기도 거부하였다. 그래서 무함마드는 그의 삶 동안 그녀를 지체가 낮은 첩으로 두었다. 그것이 “평화의 사도” 그리고 여성을 무한하게 존중하는 자가 한 짓이다.
무함마드는 연쇄강간범일 뿐이며, 그는 피해자의 가족들을 먼저 살해하고 그 피해자들을 가졌다. 알라는 평소대로 다른 종교들의 여성들을 강간하고 희롱하는 권리를 그의 예언자에게 주는 또 다른 영원한 알라의 계시를 제공하였다.
꾸란 4:24 “이미 혼인한 여성과도 결혼은 금지되나 너희들의 오른손이 소유한 것은 제외라 이것은 알라의 명령이며 이것 외에는 너희를 위해 허락이 되었으며 간음이 아닌 합법적 결혼을 원할 경우 지참금을 지불해야 되나니......”
요약하면,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이봐 무슬림들아, 결혼한 여성들을 건드리는 것은 범죄야, 그렇지만 그들이 너희들의 포로가 되었다면 너희들이 그들을 강간하고 성적인 고통을 주는 것은 자유야. 여기서 언급한 사람들을 제외하고 모든 자들이 너희들에게 정당해.” 알라는 무슬림들이 비-무슬림 여성들을 강간하는 것을 정당하게 만들고 있다!
무함마드는 유대인들에 대한 그의 범죄들을 더 많은 주문에 따른(Made to Order) 계시들로 정당화하였다. 다음의 장들은 바누 꾸라이자 부족 학살과 동시에 계시되지 않았지만, 그것들은 유대화된 아랍인들에 대한 무함마드 관점의 전체적인 사상과 그가 그들을 살해하고, 약탈하고, 강간하는 것을 완전히 괜찮다고 하였던 이유를 보여준다.
꾸란 5:51 “믿는 자들아 유대인과 기독교인들을 친구로 그리고 보호자로 삼지 말라 그들은 서로가 친구들이라 너희들 가운데 그들을 친구로 삼는 자가 있다면 그는 그 무리의 일원이거늘......”
꾸란 5:64 “유대인들이 말하기를 알라의 손은 묶여 있어 그들의 손들도 묶여 있다고 하더라 그들이 말하는 것에 저주가 있을 것이라 그러나 그분의 두 손은 관대하게 펼쳐져 있어 그 분이 원하는 대로 주시니라 알라로부터 그대에게 계시된 것은 분명히 그들 대다수에게 거역함과 신앙을 더하여 줄 것이라 알라는 그들[유대인들]을 적대시하며 심판의 날까지 증오하리라 그들이 불을 질러 싸움을 하려 할 때마다 알라는 불을 끄시도다!......”
위의 구절들은 유대인들에 대한 무슬림들의 증오가 그들의 예언자에 의하여 규정되었음을 분명히 보여준다. 또한 이 구절들은 이슬람이 유대교 그리고 기독교와 항상 공존하였던 평화의 종교라는 무슬림들의 속빈 주장들을 폭로한다.
이 정당하지 못한 유대인 학살들은 행위에 관한 이슬람 법전의 토대를 형성한다. 그로인하여, 전 세계에 걸쳐서 무슬림들에 의한 힌두교인들, 기독교인들, 유대인들에 대한 계획적인 집단학살은 전혀 놀랄 것이 없다.
이스학(Ishaq) 597page "사도가 Ta'if을 공격한 후에 메디나로 돌아왔을 때, 그를 풍자하고 모욕한 사람들 가운데 일부를 그가 살해하였다는 말이 퍼졌다. 남아 있던 시인들이 사방에 소문을 전파하였다.“
사히 무슬림 하디스 5611(Abu Sa'id al-Khudri의 이야기)
우리는 알라의 사도와 같이 가고 있었다. 우리가 Arj로 알려진 곳에 도착하였을 때 한 시를 낭송하고 있었던 시인을 만났다. 곧 바로 알라의 사도가 외쳤다: 그 사단을 잡거나 그 사단을 감금하라, 그 이유는 고름으로 사람의 배를 채우는 것이 시로 머리를 채우는 것보다 더 좋기 때문이다.
1,400년이 지난 후에도, 근본주의 무함마드 추종자들은 거짓말, 테러, 증오, 차별, 학살 등의 무함마드의 방법을 사용하여 전 인류를 더러운 무함마드 사이비종교의 심연으로 끌고 가는 것을 여전히 더 좋아한다.
근본주의자들 또는 무함마드의 믿는 무슬림들은 바뀔 수 없는데 그 이유는 그들의 꾸란과 무함마드 자신의 순나가 그들의 뇌를 감염시킨 그 바이러스를 제거하는 것을 금지하기 때문이다.
그들을 격리하고 그들을 재교육하도록 시도하는 것은 소위 불신자 쿠파르(kuffar) 또는 움마 알 쿠파르(불신자들의 국민)인 우리 모든 기독교인들, 불교인들, 힌두교인들, 유대인들, 조로아스터교인들, 토속신앙인들, 다신교도들, 무신론자들, 불가지론자들인 나머지 80%의 인류에게 달려있다. 이것이 실패한다면, 우리를 해치려고 하는 우리 가운데 있는 자들을 다루기 위하여 우리의 법률이 제공하는 모든 수단들을 사용해야 한다.
자료출처 http://www.the-koran.blogspot.kr/2008/08/muhammad-terror-poets-part-119.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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