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함마드가 구약에 예언된 선지자 였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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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진리를 찾는 자 (2013. 2. 21)
이슬람 학자들은 그들이 생각하는 예언자 무함마드가 세계에 존재하는 모든 종교의 경전에 언급되어 있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하여 필사적이다.
역설적인 것이 이 동일한 학자들은 다른 종교들이 진실하다는 것을 믿지 않으며 그래서 다른 경전들이 진정한 것이 아니며 그것들이 변질되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무함마드의 이름이 그 경전들 모두에 언급되어 있다고 증명하기 위하여 필사적이다.
문제는 그 동일한 예언이 거짓의 또는 변질된 책에 언급되어 있는데 어떻게 그 예언이 진실일 수 있는가이다. 분명히 거짓의 또는 변질된 책의 내용은 의심되거나 거짓이지만 이슬람 학자들이 그러한 경전들에서 무함마드의 이름을 발견하려고 할 때 그들은 이 단순한 논리를 잊어먹는다.
토론의 목적을 위하여 우리는 구약에 있는 한 예언을 선택하여 무함마드가 거기에 언급되어 있는지 아닌지 알기 위하여 그것을 분석할 것이다.
이슬람 학자들은 무함마드의 이름이 구약에 언급되어 있다고 주장하며 그들의 주장을 위하여 구약에서 하나님이 모세에게 말씀하고 있는 다음의 구절을 전형적으로 사용한다:
신명기 18:18-19: “18:18 내가 그들의 형제 중에서 너와 같은 선지자 하나를 그들을 위하여 일으키고 내 말을 그 입에 두리니 내가 그에게 명령하는 것을 그가 무리에게 다 말하리라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전하는 내 말을 듣지 아니하는 자는 내게 벌을 받을 것이요.”
이제 우리는 위의 성경말씀에 따라 무함마드가 그 사람인가 아닌가를 분석할 수 있다. 이 성경말씀은 예언자가 되는 사람의 기준을 충족시키는 몇 가지 조건들을 가지고 있는데 그것들은 다음과 같다:
1. 예언자는 모세의 형제들에서 나올 것이다.
2. 하나님은 자신의 말씀을 그 예언자의 입에 넣어 줄 것이다.
3. 하나님 자신이 그 예언자의 말을 듣지 않는 사람을 벌 할 것이다.
첫 번째 조건
우리는 누가 모세의 형제들인지 알아야 한다. 구약성경에서 우리는 아브라함에게 두 아들-이삭과 이스마엘-이 있었다는 것을 안다. 구약은 또한 이스마엘이 단지 어린아이였을 때 어머니 하갈과 같이 추방되었다고 말한다. 이삭의 아들 가운데 한 명은 나중에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이 붙여진 야곱이었다. 야곱은 12아들이 있었고 각 아들은 한 부족의 아버지 또는 시조로 여겨진다. 이 12부족은 이스라엘 민족이라고 불리었다. 이스라엘 민족이 파라오의 노예로 이집트에 살고 있었을 때 모세가 이스라엘 민족에게 태어났다. 모세가 홍해를 건너면서 이집트에서 이스라엘 민족을 구하고 있을 때 하나님은 위의 구절을 말씀하고 계셨다. 그래서 이제 우리는 이 모세의 형제들이 누구인지 알 수 있다. 분명히 이 이스라엘 민족들이 그의 형제들이며 이스라엘 민족 외에는 어느 누구도 아니다. 이삭은 야곱 외에 다른 아들들이 있었지만 그들의 후손들조차도 또한 이스라엘 민족이라고 간주되지 않을 것이다. 오직 야곱의 후손들만이 이스라엘 민족으로 간주되며 어느 누구도 아니다. 구약전체가 항상 이것을 말하였다. 모세는 이스라엘 민족으로 태어났고 그러므로 이 이스라엘 민족들이 유일한 그의 형제들이 될 것이며 어느 누구도 아니다.
자신이 이스마엘의 후손이라고 주장하였던 자는 무함마드뿐이며 성경은 그것을 증거 하지 않는다. 무함마드 전에 어느 누구도 그렇게 말하지 않았다. 성경은 이스마엘이 어린아이였을 때 어머니 하갈과 같이 추방되었고 그들은 아라비아 반도의 메카가 아닌 이집트 근처 어딘가로 보내어졌다. 우리가 무함마드의 주장을 받아들이더라도 그것이 그를 “모세의 형제들”가운데 한 명으로 만들 수 없는데 그 이유는 이스마엘의 후손이 이스라엘 민족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삭의 모든 후손도 이스라엘 민족으로 간주되지 않으며 단지 야곱의 후손만이 이스라엘 민족으로 간주된다. 그러므로 이것이 무함마드가 이스라엘 민족 출신이 아니었으며 따라서 그는 신명기 18:18-19에 언급된 예언자가 될 수 없는 것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신명기 18:18-19는 모세가 그의 형제들을 이집트에서 구하고 하나님이 그들을 선택하였을 때 하나님이 모세에게 말씀하신 것이다. 그것이 그들이 또한 “선택된 백성”으로 호칭되는 이유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얼마 후에 이 선택된 백성이 (되풀이하여) 하나님을 잊어버릴 것이고 하나님의 명령을 불순종할 것을 알았고 그래서 하나님이 그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하고 그들을 올바른 길로 인도할 모세와 같은 또 다른 예언자를 보낼 것을 모세에게 약속하였다. 그래서 이 예언은 세상에 있는 다른 모든 민족이 아닌 오직 이 선택된 백성(이스라엘 민족)에게 적용된다. 그리고 꾸란도 하디스도 무함마드가 이 선택된 민족의 집단에서 태어났다고 말하지 않는다. 무함마드 자신도 역시 그렇게 주장하지 않았다. 그래서 무함마드가 어떻게 신명기 18:18-19에 따라 예언된 선지자가 될 수 있는지 나는 이해할 수 없다.
이 예언은 하나님이 이 약속을 아브라함(이브라힘)에게 하였을 경우에만 적용될 수 있었다. 이 경우에 무함마드는 이브라힘의 아들이었던 이스마엘이 그의 조상이라고 주장하였듯이 자신이 이브라힘의 후손이라고 주장할 수 있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이 약속은 하나님이 이브라힘이 아닌 모세에게 하였다.
이제 무함마드가 이스마엘의 후손인가 아닌가를 분석해보자. 성경은 하갈과 그녀의 어린아이 이스마엘이 이집트 근처로 추방되었다고 말한다. 이브라힘이 이집트, 요르단, 그리고 현재의 이스라엘 지역에서 자신의 종교를 전파하였다고 우리는 기억한다. 그러나 무함마드는 추방된 지역이 메카이고 이브라힘도 거기에 갔다고 주장하였다. 지리적으로 이스라엘에서 메카까지 직선거리가 약 1200km 라는 것을 우리는 안다. 이스라엘에서 메카까지 길은 전부 황량하고 건조한 사막이다. 그러므로 이브라힘이 그의 어린 아들 이스마엘과 그의 어머니 하갈을 그러한 험한 길을 통과하여 보냈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주 신빙성이 없다. 그러므로 이 이야기는 단지 우둔한 머리에서 나온 생각뿐이 아닐까? 그러므로 무함마드는 첫 번째 조건에서 실패한다.
두 번째 조건
하나님은 “모세와 같은”예언자자의 입에 그분의 말씀을 넣어 주겠다고 말한다. 이전의 모든 예언자들이 하나님과 직접적으로 연결되어있었고 하나님이 그들에게 직접적으로 말씀하신 것을 우리는 안다. 하나님은 이브라힘과 이삭과 야곱과 모세와 다윗과 솔로몬 등의 사람들에게 직접적으로 이야기 하였다. 그러한 식으로 하나님은 자신의 말씀을 그러한 예언자들과 입에 넣어주었고 그들은 이어서 그 말씀을 사람들 가운데서 전파하였다. 그리고 대부분의 경우 하나님은 사람들 앞에서 그들에게 말하였는데 그것은 많은 목격자들이 있었음을 의미한다. 예를 들면 모세는 그의 백성 모두 앞에서 하나님과 이야기하였다. 그의 백성 모두가 시내산 꼭대기에서 하나님의 존재가 불로 나타나는 것을 목격하였고 모세는 그 산을 올라갔고 그 꼭대기에서 하나님과 직접 대화하였고 그의 백성 대부분이 그것을 목격하였다. 그것은 비밀리에 만나는 것이 아니었다. 모든 무슬림들도 이것을 믿는다.
무함마드는 절대로 하나님과 직접적으로 이야기 하지 않았다. 가브리엘이라는 천사가 그에게 와서 알라의 말씀을 말하였다고 무함마드는 항상 말하였다. 아무도 가브리엘이 무함마드에게 오는 것을 보지 않았고 그러므로 모든 이야기는 항상 무함마드의 말에만 의존한다. 이것이 그 이야기를 의심스럽게 만든다. 그러나 모세에게 있어서는 모세가 하나님과 직접 만나는 것을 목격한 수천의 목격자들이 있었다. 그러므로 모세는 그의 추종자들이 그를 믿도록 동기를 부여하거나 강제할 필요가 없었다. 오히려 모세 주변의 사람들이 그를 믿지 않는 것이 불가능하였다. 신명기 18:18-19의 예언에서 약속된 예언자는 “모세와 같을”것이라고 아주 분명히 말씀하시는 하나님을 보는데 그것은 그도 역시 하나님과 직접적으로 이야기할 수 있고 그러므로 하나님은 그의 말씀을 그 예언자의 입에 넣어준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슬람 자료에서 무함마드가 하루 밤 동안 사라진 후 다음 날 아침에 그가 알라를 만나서 이야기하기 위하여 알라에게 갔었다고 주장하는 것을 우리는 발견하는데 물론 불행하게도 그것은 어느 누구에게도 목격되지 않았다. 그러나 사실 무함마드는 그의 사촌 Umm Hani의 집에서 그날 밤을 보냈고 그 때에 그녀의 남편은 집에 없었다. (이슬람에서 그날 밤은 “Miraz”라고 호칭된다.) 그리하여 그녀의 남편이 없는 가운데 무함마드가 Umm Hani의 집에서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쉽게 알 수 있는데 특히 많은 이슬람 자료가 무함마드가 Umm Hani와 결혼하기 원하였지만 그녀의 아버지 Abu Talib이 동의하지 않았다고 말하기 때문이다.
무함마드가 실제로 가브리엘을 통하여 알라의 메시지를 받았다는 무함마드를 위한 증인이 한 명도 없고 모두가 그를 맹목적으로 믿는 것이 요구되었지만 불행하게도 그는 메카에 사는 십년동안 많은 사람들이 그를 믿게 만드는데 실패하였다. 그가 메디나로 이주하였을 때 그는 거기서 지배자가 되었고 군대를 모았고 강성하게 되어 그는 더 이상 그를 믿는 누군가에게 의지하지 않았고 오히려 사람들이 그를 믿도록 강제하기 시작하였는데 이것은 모세 그리고 성경의 다른 모든 예언자들의 경우와 정반대였다. 성경에서 우리는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을 믿으라고 강제하는 예언자는 전혀 보지 못 한다. 그러므로 이 기준에 따르면 무함마드는 “모세와 같은” 예언자가 아니다. 무함마드는 이 조건도 실패한다.
세 번째 조건
하나님은 말씀하신다-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전하는 내 말을 듣지 아니하는 자는 내게 벌을 받을 것이요.”(신명기 18:19)
여기서 하나님은 말을 듣지 않거나 또는 “모세와 같은” 예언자를 믿지 않는 자를 그분 자신이 직접 벌 줄 것이라고 분명히 말한다. 어떤 경우든 예언자는 “불신자들”을 벌 줄 수 없다. 그러므로 “모세와 같은” 예언자의 유일한 사명은 사람들 가운데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것이며 그를 믿고 안 믿고는 그 사람들에게 달려있다. 그러나 무함마드의 삶에서 우리는 무엇을 보는가?
그의 초기 삶에서 그는 이 조건을 따랐는데 예를 들면 “종교에는 강제함이 없나니”(꾸란 2:256) 또는 “너희에게는 너희의 종교가 있고 나에게는 나의 종교가 있을 뿐이라”(꾸란 109:6) 이다. 그러나 그가 메디나로 이주하여 강성해지게 되자 그의 말은 변하였고 주변 사람들이 그를 믿도록 강제하기 시작하였다. 그뿐만 아니라 그는 불신자들을 심판하기 시작하였다. 예를 들면 무함마드가 유대인 모든 남자들을 죽이고 유대인 여자들을 노예로 만든 카이바르(Khaibar) 집단학살 후에 무함마드는 유대인 지도자 키난(Kinan)의 아내 수피아(Sufia)를 전리품으로 가졌다. 다시 그들이 무함마드를 예언자로 믿지 않으므로 무함마드의 승인으로 일어났던 바누 쿠라이자(Banu Kuraiza) 부족에 대한 대규모의 악명 높은 집단학살이 있었는데 거기서 유대인 700명 이상이 붙잡힌 다음 살해되었다.
그러므로 무함마드는 “내게 벌을 받을 것이요.”라고 하나님이 분명하게 말했던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하였다. 무슬림들은 무함마드가 자신을 방어하기 위하여 싸웠고 불신자들(주로 유대인들)을 살해하였다고 말하지만 어떤 이슬람 자료에도 카이바르 또는 바누 쿠라이자 유대인들이 무함마드를 먼저 공격하였고 그래서 무함마드가 대량학살로 그들 모두를 살해함으로 자신을 ‘방어‘할 수 밖에 없었다는 역사적 증거는 없다. 오히려 갑자기 그들을 공격하였고 그들을 대량학살 한 자들은 무함마드와 그의 군대였다. 그는 우리 역사의 잔인한 독재자들인 스탈린과 모택동과 사담 후세인 등과 같이 행동하였다.
그뿐만 아니라 무함마드의 집단은 메디나를 지나가는 무고한 대상들을 자주 공격하여 상인들을 살해하고 그들의 물건 모두를 훔쳐서 그들 가운데 “전리품”으로 분배하였다. 그러나 그것은 전혀 전쟁이 아닌 분명한 노상강도질(아이러니컬하게도 이슬람에서 노상강도에 대한 형벌은 십자가형이다)이었고 무함마드와 그의 무리가 메디나에서 사는 동안에 이 강도질을 하면서 주로 생계를 유지하였다.
무함마드와 함께 메디나로 이주한 메카 사람들은 농업을 전혀 몰랐다. 농업은 메디나 사람들의 주요 생계수단이었고 그것 때문에 무함마드와 그의 집단은 무고한 대상들을 강도질하였고 강도질은 그들의 주요 생계수단이 되었다. 놀라운 일은 모든 ‘이슬람 학자들’이 그 모든 노상강도 행위들이 “정당방위 전쟁들”이었음을 입증하려 한다는 것이다.
이제 무함마드 자신이 (1) 불신자들을 심판하여 그들을 처형하였고 (2) 강도질로 살았으므로 우리는 무함마드가 그 세 번째 조건에 실패하였다고 결정적으로 말 할 수 있다.
그러므로 “모세와 같은 예언자”에 대하여 성경이 말하는 세 가지 조건에서 무함마드는 세 개 모두 실패한다 - 그러므로 무함마드가 “모세와 같은 예언자”가 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이슬람 ‘학자들’이 말하는 가장 논란이 되는 주장은 그들이 성경은 변질되었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 주장은 토라(Torah; 구약의 일부분으로 모세오경)를 변질시킨 자들이 주로 유대인들이며 동시에 이슬람 학자들은 자신들의 주장을 ‘입증’하기 위하여 토라에서 인용하였다는 것이다.
그것이 어떻게 가능한가? 변질된 책에서 인용한 것은 변질되었음에 틀림없고 그것이 거짓임을 의미한다. 그러면 신명기 18:18-19의 예언은 이슬람 관점에서 거짓임이 틀림없다. 이제 이슬람 학자들이 무함마드가 성경에 있는 거짓된 예언에서 언급된 예언자라고 주장한다면 그것은 무함마드의 예언자 직임이 거짓임을 의미한다. 더 이상 다른 논리적 결론이 있는가?
이제 우리가 다음 구절인 신명기 18:20을 보면 다음과 같이 말한다-
“만일 어떤 선지자가 내가 전하라고 명령하지 아니한 말을 제 마음대로 내 이름으로 전하든지 다른 신들의 이름으로 말하면 그 선지자는 죽임을 당하리라 하셨느니라.”
우리는 인간이 영원하지 못 하다는 것을 알며 그러므로 인간인 예언자는 반드시 죽는다. 그것이 그러한 일반적인 현상이라면 하나님은 왜 “그 선지자는 죽임을 당하리라”라고 말씀하는가? 그러므로 분명히 이것은 그 죽음이 정상적인 것이 아니라 비정상적이며 꼴사나운 것으로 아마도 매우 고통스러운 것임에 틀림없다. 우리가 무함마드의 죽음을 연구하면 무엇을 발견할까? 우리는 하디스에서 알 수 있다-
아이샤가 말하였다: 그가 죽을 때 고통가운데 예언자가 “오 아이샤! 카이바르에서 먹었던 음식으로 인한 고통을 아직도 느껴, 이번에는 그 독 때문에 나의 대동맥이 끊어지고 있는 것같아.”라고 말하곤 하였다.(Sahih Bukhari, Book-59, Hadith-713)
무함마드는 63세에 죽었고 물론 이것은 많은 나이가 아니다.
또 다른 하디스는 유대인 여성이 카이바르에서 무함마드에게 독이 든 고기를 먹으라고 주었고 무함마드가 그것을 먹고 중독되었다고 말한다. 그 하디스는 무함마드가 그 독으로 극심하게 고통을 받았고 그것이 매우 고통스러웠다는 것을 또한 보여준다. 우리는 무함마드의 상태가 얼마나 고통스러웠는지 보여주는 또 다른 하디스를 볼 수 있다:
아이샤가 말하였다: “예언자가 심하게 앓게 되었고 그의 병이 악화되었을 때 그는 자신의 부인들에게 나의 집에서 간호 받는 것을 허락해 줄 것을 요청하였고 부인들이 허락하였다. 그는 두 남자의 도움으로 왔는데 그의 다리가 땅에 끌리고 있었다. 그는 알-압바스(Al-Abbas)와 한 남자의 사이에 있었다.”(Sahih Bukhari, Book-11, Hadith-634)
그의 상태는 아주 심각하여 그가 전혀 걸을 수 없었고 두 사람이 그를 어께로 부축할 때 그의 다리는 끌리고 있었다. 결국 무함마드는 아주 고통스럽고 수치스러운 죽음을 맞았다. 예언자가 그러한 죽음을 당하여야 한다는 것은 믿을 수 없다. 오히려 우리는 신명기 18:20의 예언 때문에 그가 그러한 꼴사납고 고통스러운 죽음을 당했다고 본다. 이것은 신명기 18:20의 예언이 자신이 스스로 선포한 예언자 무함마드에게 정말로 입증되었고 그래서 신명기 18:18-19도 또한 진실임에 틀림이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신명기 18:18-19에 설정된 조건에 따르면 무함마드는 거짓 예언자였다.
이제 무함마드가 거짓 예언자였다면 그는 신명기 18:20에 따라서 하나님에게서 오지 않은 말씀을 사람들 가운데 전파하였음에 틀림이 없다. 놀랍게도 우리는 모든 이슬람 자료들에서 무함마드가 정말로 “사탄의 계시들”을 전파하였다는 것을 보는데 그것은 다음과 같다:
“너희는 라트와 웃자 우상과 세 번 째의 우상 마나트를 보았느뇨? 이들은 존경받는 학들(중보자들)로 그들의 중보는 기대되느니라.”(꾸란 53:19-22)
이 사탄의 계시들에서 무함마드는 쿠라이시(Kuraish) 다신교도들의 세 여신들인 알-라트와 웃자와 마나트를 받아들이고 있는데 그들은 실제로 카바 신전 안의 주신 Hubal(aka Allah)의 세 딸들이었다. 무함마드에게 이것을 들은 쿠라이시족은 기뻐하였다. 이 소식은 메디나와 아비시니아(Abyssinia)까지 전해져 이주한 많은 무슬림들이 메카로 돌아왔다. 그리고 그때서야 그의 가장 열렬한 추종자들 가운데 일부로부터 압력으로 무함마드는 이 계시들이 옳지 않음을 알았고 그래서 그는 19-20구절 대신에 다음의 “대체구절”를 계시하였다:
“너희는 라트와 웃자 우상과 세 번 째의 우상 마나트를 보았느뇨? 너희에게는 남자가 있고 하나님에게는 여자가 있단 말이뇨? 실로 이것은 가장 공평치 못한 분배라!”(꾸란 53:19-22)
사탄의 계시들에 관한 상세한 내용은 여기로 사탄의 계시들-1 (http://www.answering-islam.org/Responses/Saifullah/sverses.htm#part2b), 사탄의 계시들-2 (http://en.wikipedia.org/wiki/Satanic_Verses)
그러나 이어서 무함마드는 “계시”를 바꾸었다는 비난에 처한다. 그리하여 “알라”는 그에게 다음의 계시를 보냈다:
“하나님이 그대 이전에 선지자나 예언자를 보내 그가 말씀을 전파할 때마다 사탄은 유혹으로 방해하였노라 그러나 하나님은 사탄의 방해를 제거하시고 그분의 말씀을 확립하셨노라 하나님은 모든 것을 아시고 현명하시니라.”(꾸란 22:52)
무함마드는 아주 교활하게 위의 구절을 말하면서 이 사탄의 사건을 무마하려 시도하고 있다. 이제 문제는 어떻게 그의 “알라”는 사탄이 계시를 보내도록 허용할 수 있으며 그가 그렇게 한다면 나중에 누가 그를 믿을 것인가이다. 그 때에 그의 알라는 잠자고 있었는가? 또 다른 문제는 이것인데 사탄도 그에게 와서 그의 알라의 이름으로 메시지를 말할 수 있다는 것이 이미 증명되었는데 어느 것이 사탄의 계시이고 어느 것이 그의 알라로 부터의 계시인지 어떻게 우리가 알 수 있는가 이다. 꾸란 전체가 사탄으로부터 온 것이 아닌지 어떻게 우리가 확신할 수 있는가? 위의 꾸란 구절은 무함마드가 때로는 사탄으로부터 메시지를 받을 수 있으며 경우가 그렇다면 무함마드가 항상 사탄으로부터 메시지를 받지 않았다는 것을 어떻게 우리가 확신할 수 있는가? 그러나 구약전체에서 우리는 자기도 모르게 사탄에게서 메시지를 받았던 진정한 예언자는 절대로 볼 수 없다.
그러므로 “알라의 이름으로” 무함마드는 사탄의 말씀을 사람들 가운데 전하였고 그러한 사탄적인 행위들(이것은 구약예언에 꼭 맞다)에 대하여 하나님은 그를 엄중하게 처벌하였다. 우리는 구약의 많은 예언자들을 알고 있으며 아무도 무함마드와 같이 고통스럽고 꼴사나운 그러한 죽음으로 죽지 않았다. 그러므로 이슬람 학자 자신들의 주장과 구약으로부터 무함마드가 거짓 예언자임이 틀림이 없으며 그가 사탄에게 속한 메신저였을 확률이 높다.
이 세상에서 무함마드가 나타난 이후 1400년 동안 그들이 들어간 모든 사회를 무함마드가 얼마나 망가뜨렸는지 우리는 보았다. 이 세계에서 무슬림들이 지배하는 국가들을 보면 그들이 정말로 문명화되었다고 말 할 수 없다. 모든 종류의 사탄적인 행위들이 그러한 무슬림 국가들과 사회들을 지배하고 있는 것을 본다. 그리고 그들은 이제 문명화된 사회에 들어오고 있으며 그들을 또한 망가뜨리려고 하고 있다. 이제는 이 사탄을 막고 저지할 때이며 이 문명화된 인류사회를 구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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