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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함마드

무함마드가 이스마엘의 후손인가?

작성자 워치독 작성일16-12-08 19:10 조회8,209회 댓글0건

본문

글쓴이 Dr. Rafat Amari

 

 

무슬림들은 무함마드가 이스마엘의 후손이라고 믿는다. 그들의 주장에 대한 증거로서 무슬림들은 A.D. 770-775년 경에 Ibn Ishak이 쓴 족보를 주장한다.

그가 쓴 것은 진실이 아니다. Ibn Ishak에 따르면 이스마엘 족속들, 특히 무함마드의 조상이라고 여겨지는 느바욧 (Nebaioth) 부족은 시나이 반도와 비옥한 초생달 지대에 살았던 유목민 부족이었다. 이 부족들은 B.C. 7세기 이후 사라졌다.

무함마드의 가문은 예멘의 시바인 집안(Sabaean Yemeni family)이었고 반면에 비옥한 초생달 지대의 광야에 살았던 이스마엘족은 무함마드의 가문이 예멘을 떠나기 여러 세기 이전에 사라졌다.

 

 

역사가들은 무함마드의 가문이 시바-예멘에 살았던 가문이었고 말한다. A.D. 5세기에 무함마드의 8대 조상인 Qusayy Bin Kilab이 꾸라이시족으로 구성된 많은 예멘 가문들의 연합체를 결집하였고 그 연합체 안의 부족에서 무함마드가 나왔다. 이 가문들은 단지 A.D. 5세기에 메카를 점령했다. 메카의 시는 A.D. 4세기에 Khuzaa'h 부족에 의하여 건설되었다.

무함마드의 가문은 어떤 이스마엘 부족과도 연결이 안되는데 왜냐하면 무함마드의 가문은 A.D. 5세기 까지 예멘을 떠나지 않았고 그것은 이스마엘족이 사라지고 1,100년 정도가 지난 시기이다. 무함마드의 부족은 역사를 통하여 어느 시점에서도 이스마엘족이 살았던 같은 지역에 살수 없었다.

 

Ibn-Ishak에 의하여 조작된 족보는 무함마드의 말과도 모순되어서 무함마드는 그의 17대 조상이전의 선조들에 대하여 알지 못한다고 말하였다.

 

Ibn-Ishak은 그의 시대의 무슬림 학자들에 의하여 거짓 족보를 만들고 위조한 것에 대하여 책임이 있는 것으로 간주되었다. [1][i]

Ibn Ishak 훨씬 전에 무함마드 시대에 살았던 무슬림들도 또한 무함마드를 이스마엘의 후손으로 연결시키기 위한 시도로 족보를 조작하였다. 무함마드 자신은 이 모든 거짓 족보들을 거부하고 그의 조상들의 족보에 관하여 한계를 두었다. 거짓 족보에 대한 무함마드 자신의 거부에 대하여 Amru bin al-As는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

무함마드는 al-Nather bin Kinaneh에 도달할 때까지 자신의 조상들에 관하여 스스로 족보를 세었고 그 다음 “다른 주장을 하거나 조상들을 더 이상 더하는 자는 누구든지 거짓말하는 것이다”라고 말하였다. [2][ii]

이것에 의하여 무함마드는 자신도 그리고 어느 누구도 al-Nather bin Kinaneh 이상의 자신의 조상에 대하여 모른다고 고백하였다. Nather bin Kinaneh는 무함마드가 진정한 것으로 인정하는 족보에서 17대 조상이다. 하디스라고 불리우는 무함마드의 말 또는 관습에 대한 다른 이야기들은 무함마드가 Maad 이상으로 계보를 찾는 것을 거부하는데 Maad는 누군가가 주장하기를 al-Nather bin Kinaneh의 4대 조상이었다고 한다.[3][iii]

우리가 무함마드의 조상들을 볼 때 무함마드의 17 조상들의 각 세대에 대하여 30년으로 추정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무함마드가 그의 부족들의 족보에 대하여 약 510년 전까지 알았다고 결론지을 수 있다. 무함마드가 올린 다른 4 조상을 더하기를 원한다면 630년 전까지 갈 수 있다. 진실은 어느 누구도 그 시점 이전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Ibn Ishak과 그의 추종자들이 B.C. 2050년 경에 살았던 이스마엘까지 옛날의 족보를 확실하게 기록할 수 있었을까? 이것은 무함마드의 21대 조상과 이스마엘 사이에 대략 2000년의 기간을 준다. Ibn Ishak은 어떻게 이스마엘족이 이 기간 동안 메카에 살았다는 주장을 할 수 있었고 무함마드 자신이 17대 또는 21대 조상 이전의 그의 친족들에 대하여 어느 누구도 모른다고 말했을 때 그들의 역사에 관한 구체적인 부분을 설명할 수 있었을까? 우리가 분명히 증명하였듯이 메카는 이 기간 동안 존재하지도 않았다. Ibn Ishak의 족보는 무함마드가 자신의 17대 조상인 al-Nather bin Kinaneh보다 이전의 조상에 대하여 모른다는 무함마드 자신의 주장과 모순이 된다.

 

무함마드 당시에 나타났던 모든 족보들은 무함마드와 그의 추종자들에 의하여 거짓으로 간주되었다.

 

무함마드의 추종자들로부터 만들어진 무함마드에 관한 하디스의 많은 버전들 모두는 무함마드가 이스마엘의 후손이 된다는 것에 반대하였다고 보고한다. 무함마드와 가장 가까운 동시대 사람들과 추종자들은 무함마드 당시에 나타난 족보들이 거짓으로 간주하였다. 그러한 족보에 대하여 무함마드의 반대를 보고하였던 사람들 가운데는 무함마드의 아내인 Aisheh와 무함마드에 관한 하디스의 가장 중요한 보고자들 가운데 한명인 무함마드의 사촌 Ibn Abbas가 있다.[4][iv] Ibn Ishak은 무함마드의 조상들과 이스마엘을 연결시키는 족보를 만듬으로 이 모든 사람들이 말했던 것과 모순이 되고 있다.

 

Ibn Ishak은 창세기에 기록된 족보들을 변경하였는데 그는 자신이 살던 시대의 아랍식 이름을 집어넣어 아말렉에 관한 역사에 모순을 만들었다.

조작은 이것을 초월한다. Ibn Ishak과 그 이후의 다른 사람들에 의하여 만들어진 족보는 창세기에 있는 족보에 아랍식 이름들을 집어넣었다. 예를 들면 Ibn Ishak은 “Arab,”이라는 단어에서 유대된 “Ya’rab,”이라는 아랍식 이름을 “ Khahtan.”의 아들을 지칭하는 것으로 집어넣었다. Ibn Ishak은 창세기에서 노아의 아들 셈, 셈의 셋째아들 아르박삿, 아르박삿의 손자는 에벨, 에벨의 아들로 언급된 욕단을 까탄(Khahtan)으로 바꾸었다.[5][v] 우리는 “Arab”이라는 용어가 B.C. 10세기까지 존재하지 않았다는 것을 안다. 그런데 어떻게 그것이 아마도 B.C. 5500년경의 노아 직후의 역사에 들어갈 수 있었을까?

Ibn Ishak은 더 나간다. 그는 셈의 넷째아들 인 룻(Lud)이라는 이름을 루쓰(Luth)로 바꾸었다. 그리고 그는 루쓰(Luth)를 아말렉족의 조상인 아말렉(Amalek)으로 만들었다. 그는 또한 아말렉과 그의 부족이 메카에 살았다고 주장했고 고대 이집트인들이 또한 아말렉의 후손이었다고 주장하였다. 그 다음 그는 아말렉을 아랍족에 연결시키기 위해서 아말렉의 원래 이름을 “Arib,”으로 바꾸었다.[6][vi] 이러한 거짓 족보를 통하여 간접적으로 Ibn Ishak은 메카가 노아와 그의 손자 룻의 시대에 존재하였다고 주장하였다. 이것은 우리가 전에 검토하였던 메카가 A.D. 4세기까지 존재하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역사적 사실에 직접적으로 모순된다.

아말렉은 이삭의 아들인 에서의 후손이다. 창세기 36:12은 딤나가 에서의 첫째아들인 엘리바스의 첩이었고 그녀는 엘리바스에게 아말렉을 낳았다고 말한다. 아말렉은 아말렉족의 조상이 되었고 이들은 원래 남부 요르단에 살았던 에돔족속 이었지만 모세의 시대에 입증된 바와 같이 시나이의 동쪽 지역으로 이동하였다. 아말렉족은 B.C. 10세기 이후 사라졌다. 어떠한 그리스 역사가의 글속에 또는 어떠한 비문들에서도 아말렉에 관한 언급이 없는데 이것은 그 부족이 아라비아의 중앙과 서쪽 또는 북쪽에 살았다는 것을 가리킨다.

 

주르흠에 관한 주장 반박

 

Ibn Ishak은 주르흠(Jurhum) 부족이 메카에서 아브라함 시대부터 살았다고 주장하였다. 그는 또한 주르흠이 에벨의 아들 욕단의 손자였다고 주장하였다. 그는 나아가서 주르흠의 원래 이름이 “Hathrem” 이었다고 주장하였다.[7][vii] “Hathrem”이라는 이름의 중요성은 그것이 Ibn Ishak 당시인 8세기에 사용되었던 아랍식 이름의 전형적인 것이라는 것이다. 예멘과 북아라비아의 비문에 있는 이름들은 Ibn Ishak의 족보에 있는 이름들의 스타일과 전혀 다른데 Ibn Ishak의 족보는 자신의 세대의 이름들을 반영하기 때문이다. 어느 비문도 어느 그리스 또는 로마 역사가도 그리고 아라비아를 방문하였던 어느 지리학자도 주르흠이라 불리우는 부족을 언급한 적이 없다. 또한 예언자라고 주장하였던 무함마드의 외삼촌인 Ummyya bin Abi al-Salet의 시에서 주르흠에 관한 최초의 언급을 우리는 발견할 수 있다. Ummyya의 것으로 여겨지는 시는 “아드와 주르흠의 주님(the Lord of Ad and Jurhum)”을 이야기한다.[8][viii] 무엇보다도 그 시는 이슬람 도래 이후에 만들어졌을 가능성이 높은데 우리는 주르흠에 관한 어떠한 언급도 이슬람 이전 자힐리야(Jahiliyah;무지의 시대) 시대에서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슬람 이후에 자힐리야의 많은 시들이 추가되었다는 생각은 유명한 이집트인 학자인 Tah Hussein과 같은 위대한 학자들에 의하여 받아들여졌다. 두 번째로 논쟁에 있어서 우리가 그러한 구절이 진실임을 수용하기 원한다하여도 아브라함 시대부터 아라비아에 주르흠이라는 불리우는 민족이 존재하였다는 역사를 그것을 기초로 만들 수 없는데 왜냐하면 Ummyya는 무함마드와 동시대 인물이고 그는 자신의 시대보다 2700년 전에 존재하였던 한 민족에 관한 기록의 출처가 될 수 없다. 당시에 는 오늘날과 같이 파일을 보관하는 방법도 없었고 인쇄술도 없었으므로 전통은 단지 그것이 저작자들로부터 4세기 이내에 기록된 경우만 정확한 것으로 간주될 수 있다는 것이 통상적으로 받아들여진다. 주르흠이 아라비아에 존재하였다면 그것은 기독교 시대 이후 어떤 시기에 나타났던 작은 부족일 수 있다. 존재하였어도 어느 고전 저자도 이 부족을 언급하지 않았으므로 그 부족은 중요하지 않다. Ummyyia의 시는 신화로 가득하여서 솔로몬 왕을 방문하였던 사바의 여왕이 자신의 고모라고 주장하는데 그는 예언자의 역할에 대한 자신의 주장을 정당화하기 위하여 이것을 주장하였다. 게다가 Ummyyia는 마귀의 영과 관계를 가지고 있어서 마귀의 영은 그를 가르치기도 하였는데 이것은 그가 아라비아의 신비한 종교에 속하였다는 것을 증명한다. 이 시가 그에 의하여 저작되었다는 것을 받아들이기를 원한다 할지라도 그의 시대에서 2700년 전까지 소급되는 역사를 정립하기 위하여 그러한 성격의 시를 어떻게 믿을 수 있을까?

 

꾸란에는 무수한 역사적 오류들이 존재하고 족보들은 꾸란을 뒷받침하기 위하여 이슬람 도래 이후에 만들어졌다. 일부 예들은 사무드와 니므롯에 대한 족보이다.

 

이슬람 족보에는 사무드 부족에 관한 다른 일련의 역사적 오류들이 있다. 사무드는 비문들을 통하여 앗수르 왕 사르곤 2세의 시대에 증명되듯이 8세기에 나타났던 아라비아 부족이다. 나중 A.D. 5세기 경에 사무드는 정치적 힘을 잃었다. 사무드와 아드(사무드 다음에 나타났던 또 다른 아라비아 부족)가 노아 직후에 나타났던 부족들로 기록하고 있는 꾸란에서 언급된 진술들은 이슬람의 족보들을 소급하려고 시도하였다. 그래서 그들은 사무드 부족의 선조를 만들었고 그를 “사무드”라고 명명하였다. 그리고 그들은 그가 노아의 아들인 셈의 손자라고 주장하였다.[9][ix] 이 모든 것이 단지 꾸란의 이야기에 맞추려고 만들어졌다.

꾸란은 사무드 부족이 노아 이후 세 번째 세대라고 주장하고, (꾸란은 아라비아 부족 아드를 노아 세대 이후 두 번째 세대로 사무드를 세 번째 세대로 만들었다, 수라 7:69; 23:31,32;14:8,9를 보라) 그것은 알라에게 바람에 의하여 징벌을 받는 것으로 정죄되었다.(바람은 조로아스터교에서 심판을 가져오는 신이었다) 우리는 이것이 또한 엄청난 역사적 오류라는 것을 안다. 사무드가 B.C. 8세기까지 나타나지도 않았을 뿐만 아니라 앗수르인들의 비문이 보여주는 바와 같이 공식적인 역사는 사무드가 B.C. 7세기 동안 계속해서 존재하였다는 것을 증명한다. 또한 아라비아에 관한 글을 쓴 다양한 그리스와 로마의 지리학자들에 의한 글도 북부 아라비아의 넓은 지역을 점령하였던 정치적으로 조직된 부족으로 사무드가 A.D. 5세기까지 존재하였다고 말했다. 꾸란이 주장하듯이 어떠한 바람도 그 부족들 멸망시키지 않았다.

이것은 우리를 믿게 만들기에 충분하지만 이슬람 족보에는 여전히 또 다른 엄청난 역사적 오류들이 있다. 이것은 니므롯과 관계가 있다. 창세기 10:8-11에 따르면 니므롯은 메소포타미아 고대도시들의 최초로 건설한자였다. 그는 구스의 아들이었고 구스는 함의 아들이었고 함은 노아의 아들이었다. 우리는 니므롯이 B.C. 5000과 4500년 사이에 살았다고 추정할 수 있다. 이슬람 족보는 니므롯이 구스의 아들이었다고 올바르게 말하지만 그가 아브라함의 시대에 살았다고 잘못 말하고 있다.[10][x] 니므롯에 관한 이 거짓 주장은 꾸란의 오류에 조화시키기 위해서 만들어졌는데 꾸란은 니므롯이 아브라함 시대에 살았다고 한다. 꾸란은 니므롯이 아브라함을 핍박해서 그를 불속에 던졌지만 그를 해치지 못하였다고 말한다. 우리는 이것을 꾸란 21:51-70과 37:95에서 볼 수 있다. 그 꾸란의 이야기는 미드라쉬 랍바(Midrash Rabbah)라는 유대인 책 17장에서 가져온 것이다.

우리는 무슬림들에게 역사를 공부하고 사실들을 꾸란과 이슬람 전통에서 말하여진 것들과 비교하라고 권장한다. 무함마드와 꾸란과 이슬람의 주장들은 명확하게 발견되지 않는다. 비록 그러한 역사적 오류들이 무함마드 시대에 추종자들에 의하여 받아들여졌어도 우리는 지금 그것들이 오류에 빠져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너무나 많은 증거들을 가지고 있다. 단순한 역사의 공부가 그것들이 얼마나 잘못되었는지는 증명하는데 어느 누가 이러한 엄청난 오류들을 받아들일 수 있는가?

 

자신의 주장을 증명하는 기록된 문서를 가지고 있지 않다면 어느 누구도 자신보다 2,000년 이전에 살았던 한 특별한 사람으로부터 자신이 후손이 되었다고 주장할 권리가 없다. 무함마드의 경우 그러한 문서는 절대로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에게는 무함마드의 조상들이 이스마엘의 후손들이었다는 증거가 없다.

 

나는 A.D. 8세기에 나타나기 시작하였고 무함마드를 이스마엘과 연결시키려고 애쓴 이슬람 족보들을 분석하는 것을 계속할 것이다. 나는 이미 무함마드의 하디스를 인용하였는데 거기서 그는 자신보다 17대 전에 살았던 Nather bin Kinaneh보다 더 소급하여 자신의 조상들을 기술한 어떠한 족보도 금지하였다. 무함마드에 관한 다른 하디스는 무함마드가 Maad 이전으로 족보가 계수되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고 말하는데 일부 사람들은 Maad가 Nather bin Kinaneh의 4대 조상이었다고 말하였다. A.D. 8세기 이후 나타난 많은 족보들은 무함마드의 족보가 무함마드 이전 17대까지로 제한되고 분명히 21대 이상은 아니라는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다.

무함마드의 족보에 관한 우리의 연구에 있어서 왜 이것이 중요한가? 첫 번째로 무함마드 자신이 17대 이전의 조상에 대하여 아무것도 모른다고 고백하였다. 두 번째로 17대 이전에 우리는 그러한 족보들에서 차이점들을 발견하기 시작한다. 21대 조상 Maad bin Adnan 이전 족보들은 커다란 차이점을 가지고 스스로 모순되기 시작하는데 그러한 족보들의 저자들이 그들의 족보들을 만들 자료들을 찾을 수 없다는 사실을 반영한다. 그것이 무함마드가 동시대 사람들에게 17대 조상 이전으로 소급하는 것을 금지한 이유이다. 그러므로 모든 사람들이 무함마드의 족보를 서로가 다르게 꾸며내었다.

그들의 작업에서 또 다른 흥미 있는 것은 전기 작가들 모두가 8~9세기의 아랍식 이름들을 사용하였지만 그들은 그 이름들을 이스마엘이 살았던 세대에도 적용하였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우리는 Tabari에 의하여 언급된 족보를 가지고 있는데 거기에서 족보의 저자는 이스마엘의 장자 느바욧(Nebaioth)이 al-Awam이라는 이름의 아들을 낳았고 al-Awam은 al-Saboh를 낳았다. 아랍식 이름을 주목하라. 족보에서 al-Awam과 al-Saboh라는 이름의 사용은 각자가 그 이름들을 모방하도록 만들었다.[11][xi] 기독교시대 이전 북 아라비아의 비문에서도 이러한 식의 이름을 찾아볼 수 없다. 대신에 이러한 이름들이 A.D. 8세기와 9세기 이후 Umayyad와 Abassid 왕조시대의 이름들과 같은 식이라는 것을 우리는 안다.(Abassid 왕조시대는 A.D. 750에 시작되었다).

그 위에 다른 무슬림 저자들이 최근에 더 많은 것을 만든 Ibn Ishak에 의하여 조작된 족보로 돌아가면 그의 족보가 아랍화 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먼저 말했듯이 Ibn Ishak은 이스마엘의 장자 느바욧의 아들을 Yashjub으로 그의 아들을 Yarob으로 기록하였다. Yarob 그 자체가 Arab이라는 단어에서 유래된 단어이다. Ibn Ishak은 이스마엘을 아랍인으로 나타나게 만들기 위하여 이렇게 하였다. 우리는 “Arab”이라는 단어가 B.C. 10세기 이전에는 알려지지 않았다는 것을 알지만 Yarob과 Yashjub같은 식의 이름들은 Ibn Ishak이 살았던 A.D. 8세기의 전형적인 것이다. 이 모든 족보들에 있어서 통상적인 성격은 그것들이 무함마드가 이스마엘의 후손이고 그들 모두 무함마드와 이스마엘 사이에 제한된 수의 조상들을 두고 있다는 것이다.

 

이스마엘과 무함마드 사이에 2,670년이 있고 이 장구한 시간은 단지 40세대로 커버될 수 없다는 것이다.

 

Ibn Ishak은 40명의 조상들을 기록한다. 그가 무함마드의 족보를 조작하였을 때 그는 40명의 조상들이 이스마엘과 무함마드 사이의 장구한 기간을 커버하는데 충분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지 못하였다. 이스마엘은 2050년경에 살았고 무함마드는 A.D. 620년에 메디나로 이주하였다. 그러므로 이스마엘과 무함마드 사이에는 약 2,670년이 있다. 이 장구한 기간이 어떻게 단지 40명의 조상들로 커버될 수 있을까?

대조적으로 마태복음은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를 아브라함까지 기록한다. 우리는 아브라함과 예수 사이의 기간이 단지 1,950년 일지라도 42명의 조상들을 찾을 수 있다. 무함마드의 족보는 720년을 더하여 계산하여야 한다.

또 다른 고려할 점은 유대인의 세대는 아랍인의 세대보다 길다는 것이다. 아브라함에서 다윗왕까지 이삭의 후손들을 생각해보라. 이 사람들 가운데 많은 사람들이 그들이 40세 또는 50세가 되었을 때 그들의 장자를 낳았다. 우리는 B.C. 586년 바벨론의 유수와 예수의 탄생 사이에 14세대가 있다는 것을 안다. 이것은 그 기간의 유대인 세대가 약 41년 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그러나 아랍인 세대로 올 때 우리는 각 세대에 41년을 적용할 수 없다. 학자들은 아랍인 세대는 약 20년을 가지는 것으로 간주하는데 왜냐하면 아랍인들은 기후와 그들의 문화적인 환경 때문에 약17-20세에 결혼하였다.

 

아라비아의 고고학은 아라비아인 세대가 상대적으로 짧았음을 입증하였다.

 

고고학은 아라비아에서 한 세대의 기간들이 보다 짧았음을 입증한다. 우리가 아라비아에서 즉 북부 아라비아와 예멘에서 일련의 왕들을 연구한다면 이스라엘과 같은 다른 지역의 세대들과 비교하였을 때 아라비아 세대들이 짧았음을 입증하게 된다. 예를 들면 사바(Saba)와 예멘의 힘야르(Himyar)에서 일련의 통치자들은 B.C. 9세기에 Karibil A로 시작하여 그 일련의 통치자 가운데 102번째이며 마지막 통치자인 Himyar의 왕 Maadikarib III까지 간다. Maadikarib III는 A.D. 575-577 사이에 통치하였다. [12][xii] 우리는 약 1,400년의 기간에 102세대의 왕들을 볼 수 있다. 이러한 통치자들 가운데 약간은 같은 세대 안의 다른 왕들의 형제였다는 것을 기억하면 우리는 75에서 80세대 사이로 간주할 수 있고 아라비아인의 평균 세대는 약 17-20년이었다고 결론지을 수 있다.

아라비아 세대가 짧았다는 것을 고려하여 무함마드 족보에서 각 세대는 20년 이라고 가정하자. 무함마드가 2,670년 전에 아브라함과 이스마엘로부터 분리되었다면 그들 사이에 133세대가 약간 넘어야 한다. 계산을 하여 2,670년을 20년으로 나누면 결과는 133세대와 반 세대로 무함마드의 조상들에 대한 족보를 조작한 Ibn Ishak과 다른 사람들이 주장하였듯이 35 또는 40세대가 아니다. 우리는 무함마드가 아브라함과 그의 아들 이스마엘의 후손이라고 주장하기 위하여 그들이 얼마나 준비가 덜 되었고 현명하지 못하였는지 알 수 있다.

 

수세기를 걸쳐 성경에 기록된 책에 의하여 문서화된 예수의 족보를 제외하고 역사에서 다른 어느 가문도 2,000년 이상동안 그들의 조상들을 설명한 적이 없다.

 

이것을 다른 방식으로 살펴보자. 우리가 무함마드의 21대 조상이 알려졌고 한 세대를 20년이 아닌 25년으로 만든다고 가정하면 21대 조상은 무함마드로부터 525년 소급될 것이다. 이것은 무함마드의 21대 조상이 A.D. 50-70년 사이에 살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그와 이스마엘 사이에 약 2,000년의 기간을 만든다.

예수의 족보를 제외하고 역사의 어느 가문도 2,000년의 기간 이상 그들의 조상들을 입증하지 못하였다. 유다의 왕족의 후손인 요셉의 가문도, 같은 부족의 후손인 성모 마리아의 가문도 그들의 조상들을 아브라함까지 설명할 수 있었다. 왜냐하면 각 세대에 성경의 책들에 기록된 것이 있었고 그 사실들은 거듭해서 입증되었다. 그 책들은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하나님이 이어서 메시아의 족보에 관한 거의 모든 구성원들을 확증한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과 만들었던 약속에 대한 증거를 준다. 하나님의 거룩한 약속은 모세에 의해서 성경의 첫 번째 책인 창세기에 기록되었듯이 메시야의 족보에서 이삭과 그의 아들 야곱 그리고 그의 아들 유다와 같은 다른 사람들에게 수행되었다.

그 족보는 성경의 많은 다른 책에 계속해서 기록되었다. 예를 들면 우리는 하나님이 메시아 계보의 계속성을 다윗왕의 조상들 가운데 한명인 보아스를 통하여 룻기에서 확증하시는 것을 볼 수 있다. 구세주로서 거룩한 아기의 탄생에 관한 하나님의 약속은 다윗과 그의 아들 솔로몬 그리고 이어서 B.C. 586년경에 바벨론의 포로기에 유다를 통치하였던 마지막 왕에 이를 때까지 많은 다른 왕들에게 확증되었다. 하나님 약속의 확증은 바벨론 포로기 이후에 계속되었다. 사실상 하나님은 다윗왕의 계보에서 또 다른 통치자인 스룹바벨에게 자신의 약속을 갱신하였는데 스룹바벨은 B.C. 538년경에 유다의 통치자가 되었다.

스룹바벨이 총독이 된 이후 많은 선지자들이 인간의 육신을 입는 하나님의 성육신을 예언하였다. 계속된 예언들이 말라기 선지자에 이르기 까지 계속되었고 말라기는 B.C. 436년경에 구약의 마지막 책을 썼다. 말라기의 세 번째 장은 다음과 같은 말로 시작된다: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보내리니 그가 내 앞에서 길을 준비할 것이요 또 너희의 구하는바 주가 갑자기 그의 성전에 임하시리니

말라기와 모든 선지자들에게 말씀하신 구약의 하나님은 그분께서 오심의 표시로 그분을 위하여 길을 준비할 사자를 보낼 것을 말씀하시면서 오실 것을 약속한 그 분이었다. 이 사자는 세례 요한이었고 하나님은 그리스도가 성육신하셨던 같은 세대에서 그를 부르셨고 그는 요한복음 1:26,27에서 예수에 관하여 증언하였다. 그가 말하기를:

나는 물로 세례를 베풀거니와 너희 가운데 너희가 알지 못하는 한 사람이 섰으니 곧 내 뒤에 오시는 그이라 나는 그의 신발 끈을 풀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노라 하더라.

나중에 유대인들이 세례 요한에게 그가 메시아냐고 물었을 때 마태복음 3:2에서 그는 자신이 “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라고 말하였다. 그는 이사야 40:3의 예언을 성취하여 주님이 오시기 전에 길을 준비하기 위하여 온 자였다. 세례 요한은 예수를 메시야, 하나님의 아들, 세상의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으로 지목하였다.

 

예수의 메시야 족보에 관한 기록과 역사적 증언들의 완벽한 연속성이 있다.

 

메시야 족보는 말라기와 예수의 시대 사이에 연속되어 잘 나타나 있다. 사실상 유다의 통치자들은 B.C. 2세기 동안 마카비 왕조시대에 예루살렘에서 통치를 계속하였다. 이것은 마리아와 요셉에 이르기 까지 구전으로 감추어졌던 기간은 120-140년을 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은 가문들이 140년 먼저 살았던 그들의 증조할아버지에 관하여 알 수 있는 짧은 기간이었다.

신약에서 뿐만 아니라 유대-로마 역사가인 요셉푸스 플라비우스(Josephus Flavius)의 저작물과 같은 역사적인 문학작품에서도 그에 관한 증언이 있는 세례 요한을 생각해 볼 때 우리는 예수의 메시야 족보에 관한 기록들과 역사적 증언들의 완벽한 연속성을 볼 수 있다.

 

무함마드가 이스마엘의 후손이라는 이슬람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무함마드와 이스마엘 사이의 기록의 부재

 

반면에 가장 문제가 되는 조상이 무함마드로부터 21대 선조이고 그는 A.D. 1세기에 예멘에 살았던 무함마드의 가문으로 올 때 어떻게 무함마드의 21대 조상을 그보다 2,000년 전에 시나이에 살았던 이스마엘과 연결할 수 있는가? 무함마드 이전에 기록된 어떠한 아랍의 문서들도 그러한 주장에 대한 암시조차도 없다.

이슬람은 아브라함과 이스마엘이 메카의 시를 건설하였다고 주장하지만 메카는 A.D. 4세기 이전에 존재하지 않았다. 무함마드의 21대 조상과 이스마엘의 시대 사이의 2,000년동안 무함마드의 21대 조상이 이스마엘의 후손이었다고 주장하는 역사적 기록문서는 없다. 그리고 무함마드의 21대 조상의 시대와 무함마드 자신의 시대 사이에 기록된 신빙성 있는 문서도 없다.

만약 이것이 무함마드가 이스마엘의 후손이 아니라는 증거에 충분하지 않다면 우리는 많은 다른 부족들에 속하였던 아라비아의 수백의 통치자들에 관하여 말하여주는 수천의 비문들과 연대기들과 고고학적 기록들에 관한 증거들을 가지고 있지만 어느 비문 또는 기록도 무함마드의 조상들에 관한 자료를 가지고 있지 않다. 이것은 무함마드의 집안이 예멘의 다른 어떤 가문과 마찬가지로 평범하고 잘 알려지지 않은 가문이라는 것, 그리고 비록 이슬람 전통이 무함마드의 가문이 메카에서 통치하였다고 주장할지라도 무함마드의 가문은 서부 아라비아의 어떠한 도시에서도 통치하지 않았다는 것을 단지 확증할 수 있다.

 

무함마드의 21대 조상이 이스마엘의 후손이 되는 것의 불가능성

 

무함마드는 평범한 예멘의 가문출신인데 그의 21대 조상이 어떻게 아브라함 시대에 살았던 조상들에 관한 정보를 가질 수 있을까? 비록 인쇄술이 15세기에 발명되고 그때 이후로 이전 세기들 보다 파일보관과 기록이 더 잘 조직화되고 쉬워졌지만 우리 세대의 어느 가문들도 1,000년 전에 살았던 그들의 조상들의 이름을 모른다. 그렇다면 A.D. 1세기경에 살았던 무함마드의 21대 조상과 같은 평범한 사람이 어떻게 자신 보다 2,000년 전에 살았던 한 조상에 관하여 무언가를 알 수 있었을까?

B.C. 9세기와 7세기 사이의 앗수르인들의 기록에서 우리는 이스마엘 부족이 시나이와 비옥한 초생달 지대에서 유목민으로 살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기록들 가운데 어느 것도 이스마엘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지 않다. 어떠한 비문도 그들이 누군가를 그 이름으로 불렀다는 것을 보여주지 않는다. 이것은 그들의 계보가 이스마엘과 닿았다는 것을 그들이 몰랐다는 것을 우리에게 증명한다. 그렇지 않았다면 그들은 틀림없이 그의 후손임을 자랑스러워하였을 것이고 이스라엘인들이 그들이 쓴 모든 고대의 책에서 이삭을 그들의 이스라엘의 종교적 유산의 일부로 기록한 것과 같이 그들 이후 각 세대에서 이스마엘을 기록하였을 것이다.

이스마엘은 하나님으로부터 영적인 부름을 못 받았기 때문에 그의 유일한 역사적 후손들은 그의 아들들로 유래된 12부족들이 있었다. 이어지는 세대들에서 비록 이스마엘과 이러한 부족들 사이의 기간이 단지 약 1,200년(B.C. 9세기와 7세기 사이)이었을지라도 그의 아들들의 후손은 그의 이름을 포함하여 그에 관하여 잊어버렸다. 이것이 이스마엘의 진정한 후손들에 대한 경우인데 어떻게 이스마엘이 살았던 곳과 거리가 먼 예멘에 살았던 사람이 자신보다 2,000년 전에 살았던 이스마엘의 후손이라고 주장할 수 있는가? 이스마엘족 자신들이 그들의 조상이 이스마엘로부터 유래되었다는 것을 알지 못하였다면 누가 무함마드의 21대 조상에게 그가 이스마엘의 후손이라고 말해주었는가?

무함마드의 17대 또는 21대 조상이 이스마엘의 후손이라고 주장했다는 증거가 없다. 무함마드 이전에 그러한 주장을 하는 기록된 문서가 없다. 그러한 문서가 존재한다고 하여도 여전히 이 조상은 자기의 주장을 증명하는 각 세대에 기록된 문서 없이는 자신 보다 2,000년 전에 살았던 한 사람으로부터 후손이라고 주장할 권리가 없다.

무함마드가 이스마엘의 후손이라는 이슬람의 주장은 내가 지금으로부터 2,000년 전에 살았던 줄리어스 시저의 후손이라고 주장하는 것보다 진리에서 더 멀다는 것은 분명하다. 나의 21대 조상이 줄리어스 시저의 후손이라고 주장할 지라도 나의 주장을 확증할 것이 아무것도 없다. 그러한 주장은 우리 세대에 살고 있는 누군가에 의해서 입증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그것이 오늘날 어느 누구도 로마 자체에서도 줄리어스 시저의 후손이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없고 1,000년 전에 살았던 어느 이탈리아인도 감히 그러한 주장을 할 수 없는 이유이다. 어떠한 기록된 증거가 없는 1,000년도 그 주장을 조롱거리로 만든다는 것이 이해된다.

 

예언자임을 주장하는 많은 사람들이 자신들이 성경 인물의 후손이라고 주장하였다는 것은 무함마드 당시에 아라비아에서 통상적인 관습이었다.

 

누군가가 그것을 받아들였다면 그러한 주장은 정직과 논리를 위반한 것으로 간주될 것이다. 그러나 특히 무함마드 당시에 아라비아에 그러한 사람들이 있어서 고의적으로 자신들이 성경 인물의 후손이라고 주장하였다. 예언자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종종 역사적으로 알려진 인물들 또는 성경에 언급된 사람들의 후손이라고 주장하였다. 무함마드의 외사촌인 Umayya bin abi al-Salt는 예언자라고 주장하였다. 그는 솔로몬을 방문하였던 시바의 여왕이 자신의 고모라고 말하였다.[13][xiii] 그는 자신이 그녀의 남자형제의 후손이라는 것을 내세우기 위하여 이것을 말하였다. 또한 Tubb'a(A.D. 410-435년에 통치하였고 메카를 점령한 예멘의 지도자)도 예언자라고 주장하였고 시바의 여왕이 자신의 아주머니라고 주장하였다.[14][xiv] 역사를 통하여 우리는 Umayya bin Abi al-Salt와 같은 사람들을 만나는데 그들은 자신들의 사람들 위에 예언자가 되기를 원하였다. 그들 주위의 많은 사람들이 순진하고 무지하여 그들의 주장을 반박하지 못할 것이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자신들의 주장을 하였다.

비록 아라비아의 거짓 예언자들은 자신들 보다 1,000년 전에 살았던 사람의 후손이라고 주장하는 담대함을 가졌지만 무함마드는 역사적인 어떤 기록도 없이 자신보다 2,700년 전에 살았던 이스마엘의 후손이라고 주장하였다. 나의 마음은 논리와 역사에 반하는 주장에 대한 그들의 영원한 운명을 계속해서 믿는 우리의 무슬림 친구들에로 간다.

 

무함마드는 자신이 아브라함의 후손이라는 것을 추종자들이 믿게 하기 위해서 천국에 올라갔고 아브라함을 만났고 자신이 아브라함의 진정한 카피였다는 것을 알았다고 주장하였다.

 

우리는 무함마드가 어떻게 이스마엘이 자신의 선조라고 주장하는지 보았다. 그는 자신과 이스마엘 사이의 기간이 2,700년이고 이 주장을 뒷받침하는 기록된 것이 어느 시기에도 없음에도 이 주장을 하였다.

그러나 비역사적인 주장을 뒷받침하는 것보다 더 관련된 것이 있다. 무함마드는 자신이 육신적으로 진정한 아브라함의 카피라고 말하면서 자신을 아브라함에 연결시켰는데 왜냐하면 그가 많은 성경의 인물들을 만났고 그 가운데 아브라함도 있었다는 천국에 올라갔기 때문이다.

그는 또한 그 당시 영지주의와 마니교와 조로아스터교와 같은 많은 종교들과 종파들에 의하여 수용된 사상을 모방하여 천국이 7층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하였다. 영지주의 문서는 인간이 하늘 7층의 각층에 대하여 책임이 있다고 한다. 무함마드가 똑같이 주장하였다. 무함마드는 아브라함을 하늘의 7층에[15][xv] 두었는데 거기서 아브라함은 더 많은 일을 하는 성도들을 다스렸고 낮은 층에 있는 사람들 보다 더 많은 종교의식을 수행하였다.

 

추종자들에게 자신이 아브라함의 후손이라는 것을 설득시키기 위하여 무함마드는 자신이 아브라함의 진정한 카피라고 주장하였다.

 

그의 추종자들이 무함마드에게 아브라함이 어떻게 생겼는지 물었을 때 그는 아브라함이 무함마드 자신의 카피였다고 말하였다. 그는 그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나는 당신의 친구처럼 그와 비슷한 사람을 보지 못하였고 당신의 친구가 그와 같은 어느 사람도 보지 못하였다.[16][xvi] (“친구”는 무함마드 자신을 의미한다.)

무함마드에 관한 하디스의 권위 있는 책 Al-Bukhari는 무함마드가 “나는 아브라함과 가장 닮은 아들이다”라고 말했다고 인용한다.[17][xvii] 무함마드는 자기의 추종자들에게 자신이 아브라함의 후손이라고 설득하기를 원하였고 그래서 그는 자신이 육신적으로 아브라함의 카피라고 주장하였다. 이삭은 비록 그가 아브라함의 아들이고 그의 어머니는 아브라함의 이복자매였지만 감히 그러한 주장을 하지 않았다. 야곱도 또는 아브라함의 시대에 가까이 살았던 아브라함의 어떤 후손들도 자신들이 아브라함의 카피라고 주장하지 않았다. 아브라함보다 2,700년 이후에 살았던 사람이 어떻게 그러한 주장을 할 수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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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i] Halabieh, I, page 93 ; comments on Ibn Hisham, page m

[2][ii] Halabieh I, page 36

[3][iii] Masudi, Muruj al-Thahab, Beirut-Lebanon, 1991, II, pages 280-282

[4][iv] Halabieh, I, page 35, 36

[5][v] Tarikh al-Tabari, I , page 127

[6][vi] Tarikh al-Tabari, I, page 127

[7][vii] Tarikh al-Tabari, I, page 127

[8][viii] Diwan Ummiah bin Abi al-Salt, ( Beirut-1938), page 58

[9][ix] Tarikh al-Tabari, I, page 128

[10][x] Tarikh al-Tabari, I, page 128

[11][xi] Tarikh al-Tabari, I, page 516

[12][xii] K.A. Kitchen, Documentation For Ancient Arabia, Part I, pages 90-222

[13][xiii] Diwan Ummiah, page 26

[14][xiv] Tarikh al-Tabari, I, page 429

[15][xv] Sahih al-Bukhari, I, page 92

[16][xvi] Ibn Hisham, 2, page 32; Halabieh, 2, page 91

[17][xvii] Sahih al-Bukhari, 4, page 125

 

 

원문출처 Is Mohammed a Descendant of Ishmael? (rrimedia.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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