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람이 거짓이라는 것을 증명하는 꾸란의 실수들(2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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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명 저자
꾸란이 하나님에게서 온 것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단 하나의 오류이다. 하나님의 책은 단 한 번의 실수도 담을 수 없고, 책에 오류가 없다고 해도 사람도 실수 없이 책을 쓸 수 있기 때문에 그것이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라는 증거가 될 수 없다. 우리는 1부에서 꾸란의 그러한 중대한 실수 15가지를 보았다. 여기서 몇 가지 더 보자. 우리는 또한 이슬람교를 믿는 자들이 부정할 수 없는 것을 부정하고, 방어할 수 없는 것을 방어하며 설명할 수 없는 것을 설명하기 위해 모든 논리 규칙을 부정하는 어떤 수준까지 간다는 것을 여기서 기억하고 다시 말해둔다. '명백한 책'에서 모순을 설명할 필요는 없다.
16. 꾸란 84:1-5 “하늘이 갈라져서, 두려움으로 주님의 말씀을 듣게 될 때, 대지가 펼쳐지고, 땅 속의 것이 일체 내던져져서 텅 비게 되고, 두려움으로 주님의 말씀을 듣게 될 때”
꾸란 84장 2절과 84장 5절은 하늘과 땅이 하나님을 두려워한다고 말한다. 하늘과 땅 모두 당연히 감정이 없는 무생물이고, 살아 있는 존재처럼 '하나님에 대한 애착'을 가질 수 없다.
17. 꾸란 29:14 “우리는 지난날 노아를 그의 백성에게 보내 1천년에서 50년이 모자라는 950년 동안 머무르게 했다. 그런데 그 백성들이 불의를 저지를 때 그들은 돌연한 대홍수에 말려들었다.”
이 29장 14절은 노아가 적어도 950년을 살았다고 말한다. 이 구절에 따르면 그는 사실상 950년 동안 그의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사자로 말씀을 전파했다는데, 이것은 그가 950년보다 더 오래 살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선지자”는 초능력이 전혀 없고 수명이 다하면 죽음을 맞이하는 하나님의 사자이기 때문에 이는 물론 불합리하다. 평범한 인간은 950년 동안 살 수 없으며, 이것은 꾸란에서 동화 같은 이야기이며 큰 실수이다. 만약 현재 알려진 가장 나이 많은 사람이 120-125년 이상을 살 수 없다면, 과거의 사람이 950년 이상 살 수 있는 방법은 없다. “하나님의 최고이자 마지막 예언자” 즉, 무함마드는 62세 이상을 살 수 없었다. 물론 창세기 9장 28~29절에서도 노아가 총 950년을 살다가 죽었다는 내용이 언급된다. 꾸란에서는 그가 하나님 말씀을 전한 기간만 950년으로 언급되며, 그가 예언자가 되기까지 몇 년을 살았는지, 그리고 그의 전파가 끝난 후 몇 년 후에 죽었는지에 대한 더 이상의 정보는 없다.
18. 꾸란 10장 5절, 25장 61절, 71장 16절은 달에는 빛이 있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달에는 빛이 없고 단순히 태양의 빛을 반사한다고 말한다. 이 정보(달은 단순히 태양의 빛을 반사한다는 것)는 무함마드 시대 최소 1,000년 전부터 알려져 있었다. 꾸란 10장 5절은 말한다: ”알라께서는 해를 찬란히 빛나게 하시고 달을 맑게 빛나게 하시고 너희들이 세월의 계산을 알도록 그 운행을 정해주시는 분이시다. 알라께서 그것을 만드시는 것은 진리에 의한 것이다. 이해하는 사람들에게는 이렇게 증거를 자세히 설명해 주신다.“ 꾸란 71장 16절은 말한다: ”하늘에 달을 두어 빛을 삼고, 태양을 두어 등불로 삼으시고,“ 꾸란 25장 61절은 말한다: "하늘에 별들을 뿌려놓고, 그 안에 큰 등불과 빛을 내는 달을 두신 분은 축복 받으소서!“
무슬림 설명: 자키르 나이크(Zakir Naik) 박사와 같은 일부 무슬림들은 "달을 뜻하는 아랍어는 '까마르(qamar)'이고 거기에 묘사된 빛은 빛에서 빌려온 '무니르(muneer)' 또는 빛의 반사인 '누르(noor)'가 있다"고 거짓말을 한다. 나이크 박사는 꾸란에서 달의 빛은 빌려온 빛임이 분명하고, 그것을 증명하기 위해 '누르(nur)'는 반사를 의미한다고 주장한다. 이것은 명백한 거짓말이다. 누르는 빛도 반사도 아니다. 그것은 빛이다. 무니르(munir)는 또한 빌려온 빛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빛나는'이라는 의미이다. 꾸란에는 누르와 무니르라는 단어가 사용되는 구절이 많은데, 이 구절들은 빌린 빛으로 해석될 수 없다. 예: 2장 257절(그들을 어둠에서 빛으로 이끌어 내셨다), 6장 91절(모세가 사람들을 위해서 빛과 지침을 가지고 왔다), 4장 174절, 5장 15절, 5장 44절, 5장 46절, 6장 1절, 6장 122절, 7장 157절, 9장 32절, 13장 16절, 14장 1절, 14장 5절, 64장 8절, 33장 46절, 35장 20절, 39장 69절 등 다른 많은 것들이 있고 이것들은 어떻게 생각하든 간에 절대로 ‘빌려온 빛’이 아니고 단순히 ‘빛’을 의미한다.
물론 이 지식은 무함마드보다 적어도 1,000년 전에 고대 그리스 천문학자들에게 알려졌으며, 기적적인 지식이라고 하기 어렵다. 예를 들어, 아리스토텔레스 (기원전 384년-322년)가 지구의 모양을 논할 때, 그는 달의 빛이 태양의 빛을 반사할 뿐이라는 것을 분명히 하였다.
일부 무슬림들은 꾸란이 태양의 빛과 달의 빛에 대해 말하면서 다른 단어들을 사용하기 때문에, 태양이 빛의 원천인 반면, 달은 빛을 반사할 뿐이라고 주장한다. 왜 꾸란은 이 진실을 보여주기 위해 달을 "빛"이라고 부르고 태양을 "등불"이라고 부르며 다른 명사를 사용했을까? 꾸란의 저자가 이 뜻을 전하고 싶었다면, 왜 단순히 "달빛은 태양 빛의 반사일 뿐 달빛은 그 자체의 빛이 없다"고 말하지 않았을까. 간단하고 분명하게! 꾸란에는 빛과 태양을 뜻하는 단어가 많이 쓰이고, 반사를 뜻하는 아랍어(in`ikaas)도 있지만 달빛을 설명하는데 사용되지 않는다.
꾸란은 반복적으로 "명확한 책"(5:15), "이해하기 쉬운"(44:58, 54:22, 54:32, 54:40), "자세히 설명된"(6:114), "명확히 설명된"(5:16, 10:15), "의심할 것 없는"(2:1)이라고 주장한다. 그런 책의 경우 '빛을 내는 달'처럼 노골적인 오류가 있는 것 같다면 책 자체에는 '달은 자체의 빛이 없다'는 말이 명쾌하게 적혀 있을 것이다. 꾸란이 달은 빛이라고 말하지만 실제로는 달 자체의 빛이 없는 것은 큰 실수이다.
19. 꾸란 18:85-86 “그는 하나의 길을 따라 결국 태양이 지는 데에 이르렀을 때, 그것이 진흙의 샘 속으로 지고, 또 그 주위에서 한 무리의 백성을 발견하였다. 우리들은 말하였다. ‘쌍각왕이여, 너희는 그들을 벌하거나 혹은 그들에게 선을 베풀어 주어라,’“
무슬림 설명: 자키르 나이크 박사와 같은 쇼맨은 “여기에 사용된 아랍어 와자다(wajada)의 의미는 줄까르나인(Zulqarnain; 쌍각왕{雙角王}으로 알렉산더 대왕을 말함)에게 나타난다. ‘와자다’는 ‘그것이 나타나다’를 의미한다. 알라는 줄까르나인에게 나타난 것을 기술하고 있다.”라고 거짓말을 한다.
“와자다”는 "찾았다"는 뜻이지 "나타났다"는 뜻이 아니다. 우리가 참고하는 꾸란의 10명의 번역가 모두가 이 단어를 “찾는다”는 의미로 번역했다. 나이크 박사는 거짓말을 한다. 18장 85절은 말한다 "그리고 그는 길을 따라 갔다. 그가 해가 지는 곳에 다다랐을 때, 그는 그것이 진흙의 샘으로 지는 것을 발견했고(wajada), 그 근처에 있는 사람들을 발견했다(wajada). 우리는 말했다: 오 줄까르나인! 벌을 주든지 아니면 친절을 베풀든지요."
“와자다”라는 단어는 두 번 쓰였다. 그가 본 사람들이 사람이 아니라 유령이었다고 이해를 해야 하는가? 어떻게 그가 그러한 상상의 사람을 보상하고 벌할 수 있는가? 다시 우리는 같은 수라에서 같은 단어를 발견한다:
18장 92-93절 “다음에 그는 다시 또 하나의 길을 따라갔다. 결국에 두 봉우리 사이에 도착하였을 때, 거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는 하나의 백성을 만났다(wajada; 발견했다).
다른 두 구절에서 와자다(wajada)가 사용되었고 ‘나타났다’가 아니라 ‘발견했다’를 의미할 수 있다.
꾸란 3:37 ”그 여인의 주님은 그 여인을 온전히 받아 주시고, 그 여인에게 잘 자라게 해주셔서, 사가랴를 후견인으로 삼으셨다. 사가랴가 그 여자가 있는 성소에 들어갈 때마다, 그는 그 여자가 먹을 것을 가지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wajada).“
꾸란 28:23 ”그가 미디안의 물에 이르렀을 때에, 한 부족 전체가 물을 주고 있는 것을 발견하였다(wajada).“
자키르 나이크와 같은 사람들은 거짓말을 하고 줄까르나인에게 책임을 전가하며 줄까르나인이 잘못 추측한 것을 말한 것은 알라의 잘못이 아니라고 말한다. 만약 그렇다면, 왜 알라는 줄까르나인이 실수를 했다는 것을 분명히 하지 않았는가? 그 당시 모든 사람들이 지구가 평평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이것은 줄까르나인이 잘못 알고 있었다는 것을 명확히 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는데 왜냐하면 태양이 물속으로 지는 것이 아니라 지구가 돌고 있기 때문에 태양이 지고 뜨고 있다고 생각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꾸란 전체 어디에도 ”지구가 자전한다“고 쓰여 있지 않다. 반대로, 지구는 ”평탄하다“고 묘사된다. 지구의 창조주가 그 모양을 모를 수 있을까?
20. 꾸란 86:6-7 “그는 등뼈와 갈비뼈 사이에서 나온 한 방울로부터 만들어졌다.....”
꾸란은 정자가 등뼈와 갈비뼈 사이에서 생성된다고 말한다. 이것은 틀린 것이다. 심지어 저명한 파키스탄 학자 자베드 아흐메드 가미디(Javed Ahmed Ghamidi)와 그의 제자 칼리드 자히르(Khalid Zaheer) 박사도 알리 시나와의 토론에서 이것이 현대 과학적 지식으로 볼 때 잘못된 것이라고 인정했지만, 과학은 우리가 미래에 지식이 증가하면서 사실을 바꿀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21. 꾸란 24:24 “그들이 하던 일에 대하여 그들의 혀와 손과 발이 그들에게 불리한 증언을 하는 날에"
인간의 팔다리와 장기는 신경계를 통해 전기 신호를 전달하는 뇌에 의해 제어된다. 그러나 꾸란은 팔다리가 목소리도 기억도 마음도 없지만, 그 사람에게 불리한 증언을 할 수 있다고 믿는다. 이것은 새로운 실수가 아니다, 꾸란은 바위가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언덕과 산이 감정이 있다고 생각하는 그런 실수들로 가득 차 있다.
22. 꾸란 41:21 “그들은 자신의 피부를 향해 ‘어째서 우리에게 불리한 증언만 하느냐’라고 말한다. 피부가 말하였다. ‘만물에 말씀을 가르쳐 주신 알라께서 우리로 하여금 말하게 하신 것입니다. 알라께서는 최초로 당신들을 창조하셨습니다. 당신들은 알라께 돌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이 구절은 피부가 말할 것이라고 한다. 이것은 또 다른 엉터리이며 큰 실수이다. 피부는 스스로 말을 할 수 없다. 꾸란에서는 무생물이 말을 하거나 감정을 갖는 이런 엉터리가 여러 번 반복되는데, 예를 들어 2장 74절에는 “바위가 하나님을 두려워한다'” 하고, 41장 11절에는 “땅과 하늘이 하나님과 대화했다”고 말한다.
23. 꾸란 2:65-66 “너희는 안식일을 어긴 자들을 알고 우리가 그들에게 한 말은 ‘멸시와 미움을 받는 원숭이가 되어라!’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것을 그들 자신과 다음 세대에게 본보기로 만들었고, 알라신을 두려워하는 자들에 대한 훈계로 만들었다."
알라는 안식일을 어기는 유대인을 원숭이로 만들어 멸시와 미움을 받도록 하였다. 현대 유대인들은 원숭이의 후손이다. 이것은 물론 터무니없는 말이다. 동일한 내용이 5장60절에서 반복되는데 이 구절은 알라가 일부 기독교인과 유대인을 원숭이와 돼지로 만들었다고 말한다. 또한 7장166절에서 알라는 인간을 원숭이로 만든다.
24. 꾸란 2:243 “죽음이 두려워 수천 명이 한꺼번에 집을 뛰쳐 나온 것을 보지 않았느냐. 그때 알라께서 그들에게 죽으라고 말씀하시고 또 소생시키셨다. 알라께서는 인간에게 은총을 내리시는 분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은 감사도 하지 않는다.”
이 구절은 죽은 사람들이 다시 살아났다고 말한다. 이건 말도 안 되는 소리다. 만약 죽은 사람들이 영원한 천국이나 지옥의 판결을 받기 위해 하나님 앞에 살아날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심판의 날이 아닐까? 이슬람이 심판의 날 이전에 이 삶이 유일한 삶이라고 주장하는데 어떻게 사람들이 심판의 날 전에 이 세상에 두 번의 삶을 얻을 수 있을까? 죽은 지 100년이 지난 사람이 되살아났다는 2장 259절에도 같은 실수가 반복되고 있다.
25. 꾸란 2:245 “알라에게 더 좋은 것을 빌려 주는 자는 누구냐. 그러면 알라께서는 몇 배로 하여 돌려 주신다. 알라께서는 좁히시는 것도 넓히시는 것도 마음대로이시다. 그대들은 언젠가는 알라 곁으로 돌아가게 될 것이다.”
알라는 이자를 붙여 갚겠다고 약속하며 “빌려줄 것”을 요청한다. 알라는 구부러진 것 또는 작은 것이든 곧게 펴고 크게 만든다. “알라에게 빌려준다”는 개념은 꾸란에서 자주 반복된다. 분명히, “빌려주는 것”이 필요한 그런 신은 전능하지 않다. 이 말씀들은 하나님이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빌려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 지성이 부족한 사람의 말임이 분명하다. 자신의 명분을 위해 차용이 필요했던 사람은 무함마드이지 하나님이 아니었다는 것은 명백하다.
26. 꾸란 6:6 “이전에 우리들이 얼마나 많은 세대를 멸망시켰던가를 그들은 모르는가? 우리들은 지상에 있어서 너희들에게도 주지 않은 많은 힘을 그들에게 주어 하늘을 풀어 그들 위에는 풍족한 비를 내리게 하고, 그들 아래에는 냇물이 흐르게 했다. 그러나 우리들은 그런데도 그들의 죄로, 그들을 멸망케 하고, 그후에 다른 세대를 일으켰다.”
어떻게 (당시에 거기에 없었던) 사람들이 알라가 이전 세대를 파괴하는 것을 볼 수 있었을까? 한 학자는 하나님이 인류와 대화하기를 원하신다면 자신의 진술을 오직 한 사람에게만 공개하고 그 사람에게 의지하여 다른 사람들에게 계시하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말했다. 이것은 다른 사람들에게는 확실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왜 하나님은 자신의 진술을 다른 사람에게 밝히기 위해 한 인간에 의존해야 하는가? 그리고 어떻게 다른 사람들은 그 한 사람에게 의지할 수 있는가?
패트리샤 크론(Patricia Crone)은 "하나님이 인류에게 자신을 드러내고 싶을 때 오직 한 사람과만 소통하는 것은 하느님의 독특한 습관이다. 나머지 인류는 그 사람으로부터 진리를 배워야 하며, 따라서 그 사람에 대한 종속을 감수하여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구해야만 하는데 결국 그 사람은 인간의 제도로 대체되고 그 결과 종교는 다른 사람들의 통제하에 있게 된다."[TLS, January 21, 1994, p 12]
페인(Paine)은 말하였다: “사건을 인정하여 어떤 것이 어떤 사람에게 계시되었고 다른 어떤 사람에게도 계시되지 않았다면, 그것은 그 사람에게만 계시이다. 그가 제이의 사람에게 그 계시를 말하였고 그 제이의 사람이 제삼의 사람에게, 제삼의 사람이 제사의 사람에게 계시하고 그렇게 계속되었다면 그것은 모든 사람에게 계시가 될 수 없다. 그 계시는 처음 사람에게만 계시이며 다른 모든 사람들에게는 불확실한 것이며 그 결과 그들은 그 계시를 믿을 의무가 없다......꾸란이 천국에서 작성되어서 천사에 의하여 무함마드에게 전하여졌다고 들었을 때, 그 사건은 앞에서 말한 것과 동일한 종류의 불확실한 증거 그리고 간접적인 권위와 아주 가깝다. 나는 천사를 보지 못하였고 그러므로 그것을 믿지 않을 권리가 있다.”
"왜 나는 무슬림이 아닌가" 의 저자인 이븐 워라크(Ibn Warraq)는 말한다(130-131쪽): "하나님이 자신을 드러내시기로 결정하셨을 때, 그는 오직 한 개인에게만 그렇게 하신다는 것은 매우 이상하다. 그야말로 전 세계 수백만 명이 지켜보는 월드컵 결승전 때 축구 경기장에서 대중들에게 자신을 왜 드러내지 않는가?"라고 말했다.
그러나 여기서 꾸란은 현세대의 사람들이 태어나지도 않았을 때 "우리가 어떻게 이전 세대를 파괴했는지 너희들은 보지 못하였는가?"라고 말했다. 어떻게 그걸 볼 수 있는가? 과거에 그들이 실제로 존재했고 신에 의해 파괴되었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하나님이 어떻게 사람을 멸하시거나 멸하시었는지 그들에게 보이시기를 원하셨다면 그들의 눈으로 보여주셨을 것이다.
27. 누가 최초의 무슬림이었는가? 무함마드 6:14,163; 모세 7:143; 어떤 이집트인들 26:51; 아브라함 2:127-133, 3;67; 아담 2:37
이것은 분명한 모순이며 이 다섯 부류의 사람들 가운데 네 부류의 사람은 잘못된 것이며 하나님에게 온 책은 하나의 실수도 있을 수 없다.
무슬림 설명: 이 사람들은 인류가 아니라 “그들 공동체의” 첫 무슬림이었다. 이 설명은 완전히 틀렸는데 그 이유로 꾸란 어디에서도 그들이 그들 공동체의 첫 무슬림이었다고 말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들 공동체의”라는 말은 분명한 모순을 설명하기 위하여 일부 무슬림들이 만들어낸 것이다. 이를 설명하려는 이들이 하고 있는 꾸란의 말을 바꾸는 것도 극악무도한 죄다.
28. 꾸란은 하나님(알라)의 은혜로 배들이 바다를 행해한다고 말한다. 예: 꾸란 14:32, 17:66, 22:65, 30:46, 31:31, 36:41, 42:32, 45:12
배들은 실제로 기계와 선원에 의해 추진되는데 하나님의 은혜를 통해 바다를 항해한다는 것은 참된 지식에 반하는 것이다. 배가 철이나 돌로 만들어지면 하나님의 표적(배)이 가라앉지 않을까? 철이나 돌로 만든 배가 가라앉지 않고 바다를 항해하는 모습을 보였다면, 그것을 하나님의 “표적”으로 여겼을지도 모른다. 철이나 돌로 만들어지지 않은 많은 배들 또한 바다로 가라앉는다.
29. 꾸란 38:75 “알라께서 말씀하셨다. ‘아, 이블리스야, 내가 두 손으로 만든 자를 너는 어찌 무릎 꿇어 절하지 않느냐? 너는 왜 방종하려 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네 자신이 지고자(至高者)라고 말하는 것이냐?’” 두 손을 가지고 있는 하나님이 꾸란 5:64에도 반복된다.
이를 통해 꾸란의 하나님이 두 손을 가진 자임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그는 전재하고 전능할 수 없다. 이는 꾸란 저자의 제한된 지능을 보여주기도 하는데, 그는 하나님이 아니었고, 매우 총명한 인간도 아니었고 제한된 지능을 가진 사람이어서 꾸란에서 하나님은 두 손밖에 없다는 잘못된 생각을 한 번이 아니라 두 번이나 나타낸 사람이기도 하다.
30. 죽을 때 누가 영혼을 데려가는가: 죽음의 천사 32:11, 천사들(복수) 47:27, 알라 39:42 ? 이것은 분명한 모순이다.
무슬림 설명: 위의 모든 것들은 영혼이 궁극적으로 도달하는 하나님에게 영혼을 가져가는 존재들이다. 죽음의 '천사' 혹은 '천사들‘은 하나님(오직 알라)을 대신하여 그것을 한다. 물론 이것은 분명한 모순을 설명하기 위한 필사적인 시도인데 왜냐하면 꾸란이 "명백한 책"(5:15), "이해하기 쉬운"(44:58, 54:22, 54:32, 54:40), "자세하게 설명된"(6:114), "명백히 설명된"(5:16, 10:15), "전혀 의심할 것 없는"(2:1)이라고 주장하는 책이기 때문에, 죽음에서 영혼을 데려가는 3가지 다른 경우에 왜 3가지 다른 존재가 거명되는지 직접적으로 분명하게 설명되어야 한다. 어떤 경우에 오직 한 명의 천사만이 그들을 데려가고, 어떤 경우는 많은 천사들이, 어떤 경우는 알라만이 그들을 데려가는가? 아니면 천사들이 항상 그들을 데려가서 알라의 명령에 따라 알라에게 그들을 데려오는 것인가? 이것은 물론 꾸란에 어떠한 설명도 제공되지 않은 명백한 모순이며, 이는 명백한 실수라는 것을 의미한다.
이슬람에 대한 문제는 불관용, 공격성, 박해, 야만성, 성노예와 같은 관행, 개종 또는 살해에 대한 공개적인 교리에 국한되지 않는다(꾸란 9:5). 이슬람의 폭력적인 본질과 독선, 반국가적 태도는 차치하고라도 이슬람은 사실이 아니라는 단순하고 보편적인 이유로 비난받아 마땅하다.
이슬람이 거짓임을 드러내는 명백한 실수를 보고도, 많은 무슬림들은 단지 지옥에 대한 두려움 그리고 희망 혹은 천국에 대한 신기루 때문에 터무니없고 억지스러운 설명을 늘어놓는다. 이슬람이 거짓임을 알면서도, 꾸란의 실수를 보고도 이슬람을 고수한다면 천국이 아닌 지옥으로 간다는 사실을 무슬림들은 깨달아야 한다. 그것은 단순히 거짓 예언자와 거짓 종교를 따르기 때문이 아니라, 꾸란의 실수를 알면서도 하나님이 질투하신다는 광기를 하나님께 돌리기 때문이다. 그리고 물론, 이슬람교에는 배교자들에게 주어진 사형제도가 있다!
(To be continued in Part 3)
https://www.faithfreedom.org/mistakes-in-the-quran-which-prove-islam-is-false-part-i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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