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과 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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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일하며 진실한 하나님은 한 분이시며 그분은 자신의 선지자들을 통하여 성경에서 자신을 나타내셨다. 그리고 기독교인의 하나님과 무슬림의 알라를 비교한다면, 우리는 많은 차이점을 발견할 것이다.
그들의 신격에 있어서 무슬림의 알라와 기독교인의 하나님의 차이점
질문:
그들의 신격에 있어서 무슬림의 알라와 기독교인의 하나님의 차이점에 관하여 설명해주겠는가?
답:
Labib 박사: 무엇보다도 우리의 지적인 능력으로 하나님을 알 수 없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사실상 인간이 그들의 마음으로 하나님을 상상하려 하였을 때, 로마서 1장에 따르면, 우리는 인간들이 자신들을 위하여 신들을 만들었음을 본다. 어떤 종류의 신들인가? 그들은 태양을 숭배하였고, 그들은 소, 개구리, 파리를 숭배하였다. 인간의 마음은 사탄에 의하여 완전히 암흑이 되었다. 그리고 그것 때문에, 인간은 진정한 하나님이 전혀 아닌 다른 신들을 만들었다. 이제 진정한 하나님을 알기 위하여, 하나님이 자신을 우리에게 드러내야 한다. 그분이 어떻게 자신을 우리에게 드러내었는가? 그분은 성경을 통하여 우리에게 자신을 드러내었다. 그리고 나는 여기서 아주 명확하고 쉬운 말로 말하는데, 만약에 여러분이 성경을, 성경의 영감을, 성경의 진실함을 알지 못한다면, 여러분은 곤경에 빠져 있는 것이다. 그 이유는 성경은 유일한 책이며, 다시 말하지만, 성경은 진정한 하나님에 관하여 여러분에게 말해줄 수 있는 유일한 책이다. 그 유일한 책! 여러분은 가서 스스로 성경을 구하고, 스스로 성경을 읽고, 하나님, 성경에 나와 있는 진정한 하나님을 발견하려고 노력하라.
이제, 우리는 어떤 종류의 하나님을 가지는가? 이슬람의 알라는 절대적으로 하나이다. 그러나 기독교의 하나님은 세 가지 위격을 가지신 하나님이다. 어느 분이 진정한 하나님인가? 우선, 하나님의 자격이 되기 위하여, 그분은 삼위일체 하나님이 되어야 한다. 내가 왜 그렇게 말하는가? 그 이유는 하나님이 그분의 속성들을 나타내기 위하여, 그분은 삼위일체 하나님이 되어야 한다. 그분은 사랑의 하나님, 말씀하시는 하나님, 치료하시는 하나님이다. 그리고 이러한 속성들을 나타내기 위하여 그분은 삼위일체 하나님이 되어야 하는데 그 이유는 영원 전에, 시간이 시작되기 전에, 그분이 한 가지 위격만 가지셨다면 하나님이 누구를 사랑하였는가? 그분이 한 가지 위격이었다면 누구와 말씀하였는가? 그분이 한 가지 위격이었다면 그분이 누구를 사랑하였는가? 그래서 하나님의 자격이 되기 위해서 그분은 반듯이 삼위일체 하나님이 되어야 한다. 다시, 인간을 구속하기 위하여, 그분은 삼위일체 하나님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창세기를 보면,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로 시작한다. 그리고 창세기 1장1절의 ‘하나님’이라는 단어는 엘로힘(Elohim)이며 하나 안에서 복수를 나타내는 복수(명사)이름이다.
그리고 창세기 첫 장을 읽을 때,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하나님의 영은...”라는 구절을 보는데 여기서 우리는 창조의 디자이너 엘로힘을 보며 하나님의 영을 보며 그리고 이어서 읽으면 하나님이 이르시되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었고”. “빛이 있으라”고 말씀하신 분은 누구인가? 요한복음 1장을 보면,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그래서 “빛이 있으라”고 말씀하신 분은 하나님의 말씀 예수 그리스도였다. 그래서 우리는 엘로힘이라는 모든 신격 안에서, 성부, 성자, 성령을 본다. 우리는 스스로 존재하는 성령을 본다. 우리는 “빛이 있으라”고 말씀하신 창조주 하나님의 아들을 본다. 이어서 바로 그 동일한 장에서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라는 말씀을 읽는다. 우리가? 누가 그것을 말하는가?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우리는 단수로 읽는다. 그리고 이어서 복수로 “우리가.....” 복수 가운데서 일체성 삼위일체이다.
의문이 없다. 성경은 우리가 성경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한다. 내가 왜 이런 말을 하는가? 그 이유는 하나님은 미스터리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그분의 존재에 있어서 미스터리이다. 하나님은 그분의 지식에 있어서 미스터리이다. 하나님은 그분의 사랑에 있어서 미스터리이다. 하나님은 그분의 지혜에 있어서 미스터리이다. 우리는 우리 정신으로 하나님을 이해할 수 없으며, 우리 마음으로 그분을 담을 만큼 그분이 작지도 않지만, 그분은 우리의 경배를 요구할 만큼 충분히 크다. 그리고 이것은 창세기 첫 장이다. 창세기 3장에 이르면, 인간이 죄에 빠진 후, 하나님은 “보라 그 사람이 우리 중 하나와 같이 되어”라고 말씀하셨다. 한 위격의 하나님? 복수격 우리 중의 하나. 그것은 복수성 안의 일체성이며, 일체성 안의 복수성이다. 아주 분명하다. 이것이 우리의 이해력을 넘어서는가? 그렇다, 그러면 누가 하나님을 이해할 수 있는가? 우리가 누구기에 천지의 창조주를 이해하는가? 그러나 그분은 우리가 한 분 하나님 안에서 복수성과 일체성을 볼 수 있는 방식으로 우리에게 자신을 드러내었는데 그것은 성부 하나님, 성자 하나님, 성령 하나님이 동등하게 공존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을 우리는 이해해야 한다. 하나님이 하나님 자격이 되기 위하여, 그분은 삼위일체 하나님이 되어야 한다. 하나님이 인간을 구속하기 위하여, 그분은 삼위일체 하나님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여러분은 거기서 모든 장면을 상상할 수 있다. 영원 전에, 인간을 창조하기 전에, 삼위일체 하나님은 협의를 하였다. 우리는 성경에서 하나님이 협의를 하였다는 것을 읽으며 협의는 한 사람 이상이 필요하다. 그 협의는 무엇이었는가? 그 협의는 인간의 타락을 논하기에 이르렀다. 성자 하나님이 말하였다, “내가 인간을 구속하겠다. 내가 그를 만들었으니 내가 그를 구속하겠다.” 경청하기 바랍니다, 예수께서 갈보리 십자가에서 죽으셨을 때, 그는 모든 인간의 창조주였으며, 그는 죄의 삯은 죽음이라고 말씀하였던 율법의 수여자였으며, 그는 심판주였으며, 그는 대속자였습니다. 그리고 놀라운 것은 그분이 자신의 선택으로 대속자였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더 이상 큰 사랑은 없습니다!
우리는 자기 신장을 누군가에게 주기로 자원하는 한 여성에 관한 뉴스를 들으며, “오 놀라워. 그 여성은 위대해!”라고 말한다. 왜? 그 이유는 그녀가 자기의 신장 중에 하나를 신장이 필요한 누군가에게 주기 때문이다. 누군가가 자신의 간 일부를 기부하면 우리는 대단한 기사를 쓴다. 이 사람 또는 저 사람이 자신의 간의 일부를 누군가에게 주면 우리는 그들의 희생에 관하여 그 사람들을 칭찬한다. 하나님은 신장 또는 간의 일부를 주지 않았다. 성자 하나님은 “내가 만든 사람을 위하여 죽을 것이고, 그에게 나의 사랑을 보여주고, 그에게 삼위일체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주겠다.”라고 말하였다. 그리고 이것이 우리가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라고 읽는 이유이다. 그렇다 하나님이 사랑하셔서 주셨다. 그리고 성자 하나님은 자신을 주셨고, 성령 하나님은 이 사랑을 우리 마음에 전하여 주셔서 영접하고 받아들이고 누리는 것이다. 하나님이 삼위일체 하나님이라는 것은 가장 중요한 믿음이다. 그리고 우리는 수치를 당하지 않는다. 때로는 무슬림들이 “이봐 당신은 다신교도야”라고 말한다. 우리는 다신교도가 아니다! 노, 우리는 다신교도가 아니다! 우리는 삼위일체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며, 그 삼위일체 하나님은 하나님 자격이 되시며, 그 삼위일체 하나님은 인간을 구원할 계획을 가지셨으며, 그 계획 때문에, 우리가 마태복음 28장에 보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의 사도들에게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라고 명령하셨다. 결론 예수는 삼위일체 하나님을 고백하였다. 그들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라.
이제 꾸란으로 가보자. 우리가 꾸란을 읽으면, 우리는 아주 정말 재미있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꾸란의 알라는 자기 피조물을 들어 맹세한다. 작은 자가 큰 자를 들어 맹세하며 그 반대의 경우는 아니라는 것이 알려진 사실이다. 이제 꾸란에서 알라는 맹세한다. 누구를 들어 맹세하는가? 그는 달을 들어 맹세하며, 태양을 들어 맹세하며, 메카를 들어 맹세하며, 꾸란을 들어 맹세하며, 무화과나무를 들어 맹세하며, 감람나무를 들어 맹세한다.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가? 자, 나는 언젠가 한 무슬림 친구에게 말하였다, “들어봐, 재판정이 있고 내가 증인이라고 가장하자. 그리고 재판장이 내게 말할 것이다, 여기 서서 진실만을, 오직 진실만을 말한다고 맹세하시오.“ 내가 말하였다, ”재판장님 알았습니다, 저는 무화과나무를 들어, 감람나무를 들어, 태양을 들어, 달을 들어 진실만을 말할 것을 맹세합니다.“ 그 재판장이 뭐라고 말하겠는가? ”당신 미쳤소? 무화과나무, 감람나무, 태양, 달이 무엇인데? 당신은 하나님을 들어 맹세해야지!“ 그러나 꾸란에서 우리는 알라가 메카를 들어 맹세하고, 천사를 들어 맹세하고, 꾸란을 들어 맹세하고, 무화과나무를 들어 맹세하는 것을 거듭하여 읽는데 무슬림은 이것이 하나님을 그의 피조물보다 작게 만든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성경에서 우리는 자신을 들어 맹세하는 삼위일체 하나님을 보는데, 그 이유는 그분보다 위대한 존재는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
다시 꾸란으로 돌아가서, 우리는 무함마드가 당신을 놀랍게 하는 방법으로 자신을 하나님과 엮는 것을 볼 것이다. 그리고 자이납과 자이드 이야기와 같이 알라와 그의 사도 무함마드가 결심을 하였을 때, 무슬림은 이 결심에 따를 수 밖에 없다고 꾸란은 말한다. 누가 무함마드에게 하나님과 함께 결심하는 권리를 주었는가? 어떻게 그가 하나님 자신과 아주 동등한 지위에 자신을 둘 수 있는가? 하나님과 협의할 수 있는 존재는 하나님 밖에 없다! 그리고 이것이 우리가 주 예수 그리스도에 관하여 읽는 이유인데 우리에게 아들이 주어졌고 그 이름들 가운데 하나가 협의자(카운슬러)인데 여러분이 보았듯이 그분은 하나님과 동등하시고 그래서 그분은 아버지 하나님과 협의할 수 있다. 그러나 무함마드가 알라와 협의하는 것은 너무 지나치다고 생각한다. 결론에 이르기 전에 우리는 두 번 생각해야 한다. 내가 거듭하여 말하지만, 성경 전체를 통하여 우리는 삼위일체 하나님을 본다. 창세기로부터 요한계시록까지 우리는 삼위일체 하나님을 본다. 요한계시록 첫 장에서, 삼위일체 하나님이 일곱교회에 보내는 인사, 성부 하나님으로부터 인사, 성령 하나님으로부터 인사를 본다. 그분의 첫 번째 속성 안에서 성령에 적용되는 일곱 영들은 이사야 11장에서 언급된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를 사랑하시고 자신의 피로 우리를 죄에서 씻어주었다. 우리는 성부와 성령과 성자를 가진다.
바울이 고린도에 보내는 그의 두 번째 서신서에서 결론에 이를 때,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너희 무리와 함께 있을지어다.“라고 말하였다. 자 이제 우리는 삼위일체라는 믿음을 만들어내지 않았고, 성경 전체가 그런 방식이다. 성경 전체가 삼위일체 하나님이 계시다고 말하는데, 천사 가브리엘이 예수 그리스도의 수태고지를 하러 왔을 때도 마리아에게 ”마리아여, 네가 하나님께 은혜를 입었느니라.“고 말하였다. 그리고 그녀가 ”나는 남자를 알지 못하는데 어찌 이 일이 있으리이까.“라고 말하자 그가 ”성령이 네게 임하실 것이다.“라고 말하였다. 이어서 그가 ”나실 바 거룩한 이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어지리라.“고 말하였다. 여러분이 보듯이 이야기는 분명하다, 하나님이 계셔서 마리아에게 은혜를 주셨고; 성령님이 계셔서 마리아에게 오셨고; 아들이 계셔서 마리아에게서 태어나셨고 그분은 하나님의 아들이라 호칭되는 것이다. 우리는 성부(아버지), 성자(아들), 성령을 가지는 것이다.
계속해보자. 우리가 성경 전체를 살펴본다면 구약에서 신약까지 관련된 그 모든 구절을 모으는데 한 두시간 걸릴 것이라고 생각한다. 구약 잠언 30장에서 아굴은 이러한 질문을 하였다, ”하늘에 올라갔다가 내려온 자가 누구인지,.......그의 이름이 무엇인지, 그의 아들의 이름이 무엇인지 너는 아느냐?“ 여러분은 압니다, 이것은 구약이고 거기에 아버지가 있고 거기에 아들이 있다는 것은 아주 분명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신교도가 아닙니다. 우리는 진실로 성경의 권위 따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영감된 말씀을 따르며 그것 때문에 우리는 삼위일체 하나님을 믿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분명하게 선포합니다. 아버지는 성경에서 하나님으로 호칭됩니다. 아들은 성경에 하나님으로 호칭됩니다. 성령은 성경에서 하나님으로 호칭됩니다. 그들은 공존하며, 영원부터 동등하며 그것이 성경에서 아주 분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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